이경래 신부 칼럼  
 

제하분주(濟河焚舟)와 계승자들(다해 연중13주일)
작성일 : 2022-06-26       클릭 : 274     추천 : 0

작성자 베드로  

220626 다해 연중13주일

열왕 하 2:1-2, 6-15 / 갈라 5:1, 13-25 / 루가 9:51-62

 

 

 

제하분주(濟河焚舟)와 계승자(繼承者)

 

매 주일 예배 때 설교 후에 우리는 니케아 신경을 고백합니다. 이 기도문에 하나이요, 거룩하고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공교회와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Anglican Church 혹은 Episcopal Church를 한자문화권에서 어떻게 부르면 좋을지 고심했던 서양선교사들은 신경에 나온 이 대목을 근거로 해서 거룩한 공교회, 성공회(聖公會)’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이걸 통해서 교회란 삼위일체 하느님으로부터 나오는 하나이며 거룩한 특성을 사도로부터 계승해 오고 있는 곳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중 오늘 제가 주목하여 말씀드리고자 하는 부분은 이 정신을 사람들이 이어오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머리에 손을 얹는 안수예식이라는 형식을 포함할 뿐만 아니라 그보다 훨씬 더 크고 깊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은 바로 우리가 이것을 어떻게 계승해야 되는지 좋은 길잡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복음은 이 정신을 이어갈 사람들, 다시 말해 후보자들을 선발하는 기준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첫 번째 사람은 예수님께 저는 선생님께서 가시는 곳이면 어디든지 따라가겠습니다.(루가9:57)”라고 주도적으로 청합니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여우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 둘 곳조차 없다(루가9:58)”라고 말씀하십니다. 저는 어렸을 때, 당신을 따르겠다고 찾아온 사람에게 예수께서 왜 이렇게 쌀쌀맞게 구시나?”하고 느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삶의 경륜이 쌓이면서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신 의도를 조금이나마 헤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젊었을 때는 모든 일을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 패기와 자신감이 넘치지만, 세상 일이 그리 녹록치 않듯이, 주님의 일도 겉에서 보는 것과 달리 그 정신을 살아간다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그 사람은 예수께서 일행들을 거느리시고 이곳저곳 다니시며 말씀을 하시고, 아픈 사람을 치유해 주시는 것을 보면서 예수님의 그러한 능력을 잘 승계하면 자신 또한 예수님처럼 멋진(!) 사람일 되지 않을까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합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를 위해 일하기 위해선 어려움도 기꺼이 감수해야 한다는 점을 상기시켜 주십니다.

첫 번째 사람이 예수님께 먼저 와서 요청했던 것과는 달리, 두 번째 사람한테는 예수께서 먼저 초대하십니다. 그러나 그는 먼저 아버지 장례를 치러야 한다고 합니다. 세 번째 사람은 예수님을 따르긴 하겠지만, 식구들과 작별인사 하러 집에 가겠다고 합니다. 두 사람 모두 예수님의 부르심에 조건을 달았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쟁기를 잡고 뒤를 자꾸 돌아보는 사람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자격이 없다(루가9:62)”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들을 때마다 저는 제하분주(濟河焚舟)’라는 고사성어가 생각납니다. ‘황하를 건넌 다음, 배를 불사라 버렸다는 제하분주는 고대 중국 진백이 황하를 건넌 후, 배들을 불살라 버림으로써 남쪽에 있는 진()나라 징벌을 완수하기 전까지 절대로 안돌아오겠다는 굳은 결의를 보이기 위해 한 행동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이러한 제하분주와 같은 결기는 오늘 제1독서에도 나옵니다. 스승 엘리야와 제자 엘리사 그리고 그들을 추종하는 50명의 예언자 수련생들이 요르단 강 쪽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강에 이르러서 스승 엘리야가 자신의 겉옷으로 물을 치자 물이 좌우로 갈라지면서 그들은 그 사이를 가로질러 건너갑니다. 그러면서 스승은 제자에게 야훼께서 이제 나를 데려가실 터인데, 내가 자네를 두고 떠나기 전에 무엇을 해주면 좋겠는가? 말해보게.(열왕하2:9)”하고 말합니다. 그러자 제자는 스승님, 남기실 영검에서 두 몫을 물려주십시오(열왕하2:9)”라고 청합니다. 여기서 영검이란 영어성경에선 ‘sprit’, 중국어성경에선 ()’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뜻은 스승님의 정신, 좀 더 확장해서 해석하자면 스승님 안에 있는 하느님의 정신, 하느님의 영, 즉 성령을 물려달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교회 지도자들에게 중요한 점을 시사합니다. 제자가 스승을 계승하고, 교회의 주교, 사제, 심지어 평신도 지도자들이 리더십을 이어받는다고 했을 때, 단지 전례예식이나 취임식이라는 형식보다 더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느님의 정신, 하느님의 영, 다시 말해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스승의 사명을 물려받을 사람이 가장 먼저 청해야 하는 기도는 바로 하느님의 영을 구하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엘리야와 엘리사의 이야기를 봅시다. 스승과 제자가 대화중에 갑자기 하느님의 불 수레가 내려와 스승 엘리야를 데리고 올라가시자, 지상에 남겨진 제자 엘리사는 스승이 남겨주신 겉옷을 가지고 다시 요르단 강으로 와서 스승과 똑 같이 물을 칩니다. 첫 번째 쳤을 때는 아무런 반응이 없자, 그는 엘리야의 하느님 야훼여, 어디 계십니까?(열왕하2:14)”라고 기도하며 다시 물을 칩니다. 그러자 물이 갈라지고 그 사이를 건넙니다. 이 모든 광경을 본 예언자 수련생들은 엘리사 앞에 엎드려 절합니다. 제자 엘리사가 마침내 하느님의 사명을 계승한 것입니다. 이 광경 또한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교회에 중요한 시사점을 줍니다. 그것은 신앙의 선배로부터 정신을 이어받은 지도자들은 행동할 때, 자신의 이름이 아닌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며 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느님의 은총이 제대로 발휘됩니다. 그럴 때 영적권위가 세워집니다. 이런 의미에서 엘리야와 엘리사 이야기는 오늘날 우리교회에도 여전히 중요한 모범이 됩니다.

친애하는 교우 여러분!

앞서서 주님의 몸 된 교회의 계승자들이 어떠한 마음자세로 부르심에 응답하고 따라야 하는지, 그리고 가장 우선적으로 청해야 하는 기도가 무엇이며, 어떠한 정신으로 행동해야 하는지 말씀드렸습니다. 언뜻 들으면 참으로 어렵고 힘들구나하고 느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 우리를 가볍게 해주는 길입니다. 이것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형제 여러분, 하느님께서는 자유를 주시려고 여러분을 부르셨습니다.(갈라5:13)” 이 자유는 우리를 옥죄고 있는 온갖 멍에로부터 풀려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란 주님이 주신 자유를 향해 나아가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다만, 이 자유의 의미를 잘 알아야 할 것입니다. 이 자유란 내 맘대로 하면 되는 그런 자유가 아닙니다. 그것은 자유라기보다는 방종에 가까워서 잠시 기쁨을 누릴 수 있을지 모르지만, 결국 나를 파멸로 몰아넣습니다. 이것에 대하여 바울은 자유를 여러분의 육정을 만족시키는 기회로 삼지 마십시오. 오히려 여러분은 사랑으로 서로 종이 되십시오.(갈라 5:13)”라고 권고하십니다. 여기서 참된 자유는 사랑과 짝을 이루어야 함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랑이 있는 자유! 이것이 우리 신앙인이 추구해야 할 목표입니다. 예수께서 사람들을 부르시고, 제자 엘리사가 스승 엘리야로부터 배운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그리고 과거부터 현재까지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공교회가 추구하는 것이 바로 사랑이 있는 자유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바로 사랑과 자유 자체이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계승해야 할 것은 교회의 법, 전례, 교리, 조직도 중요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주님이 몸소 삶으로 보여주신 그 사랑과 자유의 정신(sprit)이며 영()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이어받아야 할 영적자산입니다.

이제 우리는 제자 엘리사가 스승 엘리야에게 청한 것처럼 그 정신을 나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달라고 청합시다. 우리를 당신의 제자로 부르시는 주님께서는 우리의 청원을 기꺼이 들으시고 우리가 청하는 것 보다 더 크고 풍성하게 당신의 성령을 부어주실 것입니다.

우리를 당신의 제자로 부르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씀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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