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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세화신석2 - 잘생긴 죄 / 장인용

작성일 : 2015-12-02       클릭 : 474     추천 : 0

작성자 성공회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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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화신석世話新釋2
 
잘생긴 죄
 
장인용
 
 
남자나 여자나 키가 크고 잘생겼다면 한 발은 거저먹고 들어간다. 잘생긴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에게 초면에 호감을 주게 마련이고, 그래서 한동안 그 덕을 볼 때가 많다. 이것은 결코 사람의 인물에만 해당하는 문제는 아니다. 우리가 동물을 볼 때도 그 생김새의 차이를 사람만큼 확연하게 구분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크고 잘생긴 것에 대한 호감도가 훨씬 크다. 특히 강아지나 고양이 같은 애완동물을 기르려 한다면 이런 잘생김이란 척도는 무척 중요하다. 일단 잘생겨야 간택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범위를 사람과 애완동물을 넘어 확대시켜도 마찬가지다. 가령 어물전에서 생선을 하나 사더라도 먹지 않는 지느러미 하나라도 훼손된 것이라면 외면당한다. 같은 가격이라면 크고 완전하고 대칭 잡힌 것을 누구나 원한다. 과일을 사더라도 마찬가지다. 찌그러져 왜곡되어 있다면, 크고 완전한 모습을 하고 있는 것에 상품성이 밀릴 수밖에 없다.

사실 이것은 살아있는 생물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이 외연은 생물 아닌 것에도 연장된다. 과자나 빵과 같은 제품이 아무리 맛이 좋더라도 모양이 멀끔하지 않으면 상품으로 팔리는 데 문제가 있다. 비단 먹는 것만이 그런 것이 아니라서 어떤 공산품일지라도 흠집이 난 새 물건을 좋아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곧 모양의 결핍은 기능의 결핍을 상징하는 것으로 여기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흠집이 있는 결함이 있으면, 그리고 결함이 없더라도 잘생기지 않았다면 높은 값이나 좋은 평가를 받을 수는 없다. 곧 생물체에 적용한 시선은 사물에까지 확장된 것이다.
 
보이는 게 다는 아니다

그러나 이런 판단 기준이 반드시 옳다고 볼 수는 없다. 가령 과자는 본디 맛이 더 중요한 법이다. 맛있는 과자가 설사 부서져 있더라도, 온전한 맛없는 과자보다 훨씬 맛있다. 사과도 잘생겼다고 반드시 맛있는 것은 아니며, 사람도 잘생긴 사람의 능력이 가장 뛰어난 것은 절대 아니다. 장자의 말대로 곧은 나무는 집짓기에 좋아서 사람들이 금세 베지만, 굽은 나무는 산에 남아 싱그러움을 던져줄 수 있으니 모습과 용도는 때에 따라 다른 것이다. 세상을 살다 보면 잘생긴 사람이 착하고 선하며 능력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은 금세 깨달을 수 있다. 잘생긴 사기꾼도 많으며, 못생긴 선한 사람들도 많다. 이와 마찬가지로 능력치에 있어서는 잘생긴 것과 못생긴 차이는 아무런 상관도 없다. 얼굴의 표정은 항상 이상하고 고개조차 제대로 못 가누는 스티븐 호킹은 그 어떤 사람보다 뛰어난 물리학자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이렇게 잘생긴 것에 집착을 하며, 또 잘생겼다는 것은 과연 무엇을 뜻하는 것이기에 거기에 그렇게 많은 가치를 부여하는 것일까? 인간에 있어서의 잘 생김은 보통 대칭성이 뚜렷하고, 윤곽이 뚜렷한 것이다. 대개 잘 생긴 사람들은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키와 덩치가 크고, 좌우 대칭의 균형이 잘 잡혔다. 이런 외관적인 표상이 뜻하는 것은 건강함이다. 건장한 사람은 꼭 그렇지는 않아도 대체적으로 이런 기준을 충족하며 대칭성이 뛰어나다. 건강함이 중요한 것은 이것이 우월한 유전자이기 때문에 후손에 있어서 좋은 영향을 끼치고, 또한 오래도록 자손의 뒷바라지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자의 경우에는 젖을 먹이고 아이를 순탄하게 잘 나을 수 있는 조건들이 더해졌다. 배우자의 건강함을 추구하는 것은 물론 사람만이 그런 것은 아니다. 거의 모든 동물들에 있어서 배우자의 선택에는 이런 조건들이 중요하다. 그렇기에 잘생김은 진화의 과정에서 아주 오래된 선택의 조건이었던 셈이다.
 
잘생긴 사람이 옳다?

하지만 잘생김의 용도는 이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말처럼 잘생긴 사람들은 뭐를 해도 예쁘게 보이고, 착하게 보이고, 올바르게 보인다. 그와 반대로 못생긴 사람은 무얼 해도 밉게 보이고, 사악하게 보이고, 비뚤어져 보인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자신은 절대 그렇지 않고 거짓말이라고 강변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또한 사람은 이성적이어서 결코 외모를 보고 그 사람의 됨됨이를 판단하지 않는다고 할 것이다. 물론 이것도 어느 정도는 사실이다. 자신의 주위에서 늘 접하고 교류하는 사람들에게는 잘생김을 절대적인 판단 기준으로 삼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 세상의 절대 다수의 사람들을 알고 지내는 것은 아니고, 실제로 그렇게 많은 사람들과 교유할 방법도 없다.

어쨌거나 사람들에게 처음 만났거나, 아니면 첫 관계를 시작한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판단 기준은 외모이고, 또 그것과 파생해서 선과 악, 유능과 무능, 친근함과 혐오감, 거짓과 진실 같은 판단도 이미 한 발을 먼저 지르고 시작한다. 사람들은 이 말을 너무 나간 것이 아니냐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모르는 사람들이 앞에서 어떤 주장을 펼치게 하고, 그 주장들이 모호하여 진위 판단을 해야 할 청중들이 명확히 기준을 가질 수 없을 경우에는, 대개 외모를 기준으로 진위를 판명했음을 실험을 통해 입증했다. 즉 잘생긴 사람의 말에 더 신뢰를 보이는 것이다. 심지어는 보다 확연하게 잘생긴 사람이 거짓을 이야기할 때도 이를 더 믿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니 여자들이라면 미남이 하는 소리를 더 그럴듯하게 여기며, 남자의 경우는 젊고 아름다운 여성의 말에 혹하기 마련이다. 머릿속의 이성은 자꾸 아니라고 그럴지 몰라도, 결국 외모는 선과 악, 진짜와 가짜에까지 그 영역을 넓히는 것이다. 자신은 이성적인 사람이어서 절대 그럴 리 없다는 사람도 자신의 과거의 행동을 곰곰이 되짚어본다면 이 사실에 대해 어느 정도 수긍할 것이다. 이것은 인간의 머릿속에 심어진 유추에 의한 판단이기 때문에, 이 판단에 대해 도덕적이나 윤리적인 잣대를 들이밀 수는 없다.
 
자본주의의 치명적인 무기

그러나 이러한 사람의 감성적인 판단 경향은 현재와 같이 자본주의의 대량소비사회에서는 다른 목적으로 바꿔서 사용한다. 기업은 물건을 팔기 위해 이런 취향과 선호도를 이용하여, 그런 감정이 상품에까지 이입되도록 하는 것이다. 나이든 주부들이 사야 할 물건은 좋아하는 꽃미남 배우가 나와서 선전하면, 그 배우의 호감도는 금세 그 물건에 옮겨간다. 그 배우가 인기가 하늘로 치솟으면 그 물건의 판매도 덩달아 급증한다. 중년들이 좋아할 소주의 광고라면 용모가 아리따운 모델이 나와 그 소주를 권하면, 나이 든 주당들은 그 미모를 따라 술을 마신다. 그러기에 남자들이 찾는 소주나 위스키 같은 독한 술 광고의 모델은 전부 잘생긴 젊은 여자들이 차지한다. 모터쇼에서 자동차 자체는 멋진 모습과 남성다운 강력한 힘을 과시하지만, 자동차가 눈길을 끌기 위해서는 ‘쭉쭉빵빵’한 미녀들이 이 힘센 남성 자동차를 차지하고 있음으로, 자동차에 또 다른 이미지를 덧씌우는 것이다.

물론 광고의 모델들이 전부 잘생긴 것은 아니다. 못생기고 우스꽝스러운 사람이 있기도 하고, 아니면 그 방면에서 나름대로 전문지식과 권위를 지닌 사람도 등장한다. 하지만 그것은 상품의 특성이 친근감에 편승해야 하거나, 무언가 권위에 의지할 때만 그런 것이다. 그러기에 인쇄매체나 방송에 등장하는 광고의 모델들은 대개는 탤런트, 영화배우, 방송인, 운동선수 등의 유명하고 잘생긴 사람들이다. 그것은 잘생긴 그들이 하는 이야기는 옳고 선한 것일 거라는 믿음에 근거한 것이다.

그러나 실제의 세상에 있어서는 결코 잘생긴 사람만 착하고, 똑똑하고, 옳을 수는 없는 법이다. 사실 생김새와 사람 됨됨이는 별로 상관관계가 없는 법이라, 소도둑놈 같은 험악한 얼굴을 하고 있어도 얼마든지 착하고 선량하며, 올바른 생각과 주장을 할 수 있는 법이다. 다만 그 험악한 얼굴의 사람과 친근하게 잘 알아야만 그가 그런 품성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을 뿐이고, 그를 모르는 상태에서는 그의 말은 그의 용모에 영향을 받을 따름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 모든 사실을 알면서도 또 텔레비전에서 잘생긴 사람이 뭐라고 하면 그것이 옳아 보이는 것이다.
 
성형왕국이 된 사연

잘생김을 중시하는 것이 어쩔 수 없는 본능이라 쳐도, 예전에는 광고가 이렇게까지 지금처럼 득세하지 않았으며, 텔레비전이나 신문 잡지에 나오는 잘생긴 연예인의 말을 그렇게까지 신뢰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광고가 나오면 채널을 돌리고, 애써 외면하려는 사람들도 많았다. 하지만 이제 사람들은 광고가 있는 것을 너무도 당연하게 여기며, 애써 외면하려 하지도 않으며, 이름난 광고는 오히려 검색을 해서 찾아보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소비를 촉진시키는 광고는 자본주의의 꽃이라 여겨 경제에 이바지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으며, 예전의 검약이나 저축이란 미덕은 오히려 경제를 망치는 주범으로 지탄받고 있다.

자본주의의 소비사회는 끊임없이 새로운 소비를 창조하여 기업이 생산하는 물건을 팔아, 어제보다 오늘의 경제활동이 더 많아지는 확대재생산을 추구한다. 멈추는 것은 현상유지가 아닌 퇴보로 생각하여, 계속해서 소비가 늘어나고 돈의 흐름이 많아지는 것을 경제발전이라 여긴다. 그러므로 재화나 서비스는 날로 새롭게 발전하고 증가해야 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에게 알리는 수단인 광고는 필수적인 행위다. 그냥 상품이나 서비스를 알리는 것이 아닌 사람들이 소비하고픈 마음이 솟아나도록 광고를 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광고를 만드는 사람은 소비자의 심리를 연구하고 감정을 연구한다. 그렇게 해서 잘생긴 연예인들이 광고에 대거 등장하고, 그래서 잘생긴 연예인의 본업에 따른 수입보다 광고출연료가 더 많아지는 현상으로 나타난다. 이제 연예인은 광고를 위해 연예인으로 성공하기를 바란다. 게다가 잘생긴 사람이 광고에 출연하는 빈도가 높아지기 때문에 연예계에 진입할 때부터 성형으로 조금이라도 더 잘생기게 만드는데 돈과 시간을 아끼지 않는다.

이런 성형의 확산은 연예인을 우상으로 바라보는 젊은 계층 전체에게로 퍼져간다. 잘생겼다는 것은 이제 인생을 살면서 갖추어야 할 최대의 덕목으로 여기게 되고, 취업도 연애도 결혼도 좌우할 가장 중요한 관건으로 등장한다. 이제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학생들이 수능이 끝나고 성형하는 것은 거의 통과의례가 될 정도로 일반적이 되었다. 연예인들도 서슴없이 방송에서 성형을 공포하고, 일반인들도 성형한 것을 이야기하는 것도 별로 거리낌이 없어진 것 같다. 여자들뿐만 아닌 남자들의 성형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분위기로 바뀌어간다. 성형이 대세다 보니 지하철부터 병원 광고는 거의 다 성형외과 광고이고, 의사들은 돈 벌리는 성형외과 전문이가 되기 위해 목을 건다. 이제는 성형이 유행이다 보니 성형기술이 뛰어나다 소문까지 나서 이웃나라에서 성형을 하러 여행까지 온다. 가히 ‘성형공화국’의 이름을 세계만방에 떨치고 있는 것 같다.
 
잘생긴 죄값은 어떻게 치루나

외모 치중이 아무리 인간의 본성이고 진화의 필요에 의해 발전한 것이라 하더라도, 지금의 우리나라처럼 극단화된 경우는 유례를 찾기 힘들다. 자본주의의 극단을 달리고 있는 나라들에서조차 이렇게까지 외모중심주의에 물들은 경우란 거의 없다. 외모중심주의가 무서운 것은 사람의 모든 능력과 가치와 인격을 외모로 대체하는 것이다. 기실 그것은 모든 가치가 돈으로 환원되는 자본의 극단적인 꼭짓점과 맥락을 같이한다. 그러나 경험이 말해주는 분명한 사실은 외모는 외모일 뿐이다. 외모가 그 사람의 건강을 분명히 일러주는 것도 아니고, 덕성이나 능력이나 인품은 더더욱 알려주지 못한다.

그렇다고 방송에 못생긴 사람들이 나와서 눈을 피곤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건 아니다. 드라마나 예능이나 뉴스나 잘생기고 친근한 모습의 사람들이 등장해 눈까지 즐겁게 해주는 것이 더 좋다. 물론 악역이나 감초 역할의 색다른 즐거움도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자본의 얼굴이 거의 온 세상을 지배하는 지금에 잘생긴 사람들의 효용은 더욱 더 늘어날 것 같다. 하지만 아무리 자본에 종속된 세상이라도 잘생긴 연예인들도 그 천부의 외모를 이용하는 데 조금은 더 도덕적일 필요가 있다. 잘생긴 죄를 선망하는 평범하거나 못생긴 사람들에게도 조금 더 따뜻한 위로를 건네야 한다.

잘생긴 죄를 갚으려면 적어도 돈이 없어 고생하는 사람들 울리는 고대대금업 광고는 외면할 수 있어야 한다. 배고픈 불쌍한 자영업자 등치는 스마트폰 배달 앱 광고 정도는 가볍게 뛰어넘을 수 있어야 한다. 설사 배달 앱이 업자들에게 수수료 받지 않는다고 선언해도 속지 말아야 한다. 그 앱을 이용해 돈을 벌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자영업자들 경쟁심을 부추겨 음식점 광고를 따내는 것밖에는 없다. 부도덕한 방법으로 사회를 속이는 대기업들의 광고에서도 멀어지는 용기를 보여주어야 한다. 가령 땅콩 하나 가지고 비행기를 돌리고 직원들을 멸시하는 기업의 광고를 찍을 수야 없지 않는가? 이런 앞가림을 해야 자신의 잘생긴 죄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나는 길이다.
 
그리고 이 세상의 양심과 종교를 책임지는 스님, 목사님, 신부님들도 다시 한 번 자신을 되돌아봐야 한다. 나 또한 잘생긴 죄에 빠지지 않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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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출판 ‘지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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