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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성공회 사상가 3 - 이블린 언더힐 / 윤정현

작성일 : 2015-12-02       클릭 : 476     추천 : 0

작성자 성공회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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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블린 언더힐(Evelyn Underhill, 1875-1941)
 
 
윤정현
 
 
성공회 사상가와 영성가를 소개하는 가운데, 그동안 사회운동 실천가인 프리데릭 모리스와 노예무역 폐지를 통하여 그리스도인의 정치참여와 사회활동의 바람직한 모습을 보여준 제임스 윌버포스를 소개하였다. 이번 마당지에는 여성으로서 그리스도교 영성사에 우뚝 선 에블린 언더힐을 소개하고자 한다. 언더힐은 여성들이 강단에 서기 힘든 시대에 관상기도와 신비주의를 가르친 최초의 여성 신학자이자, 교회에서 피정지도를 한 최초의 여성 영성의 지도자이며, 전쟁반대를 평화주의자요, 20세기 영국의 관상기도에 많은 영향을 미친 영성가이다.
 
 


언더힐은 1875년 영국의 산업혁명의 중심 도시, 버밍엄(Birmingham) 근교에 있는 윌버햄톤(Wolverhampton)에서 태어났다. 당시에 유명한 변호사인 아버지 아서(Arthur)와 어머니 아이런몽저(Ironmonger) 사이에 무남독녀로 태어났다. 아버지가 런던의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함에 따라 언던힐도 런던에서 학교를 다녔다. 런던의 여학교 킹스 칼리지(King’s College for Women)에 입학하여 역사와 생물을 전공하였다. 그는 대학생활에서 철학과 종교분야에 취미를 가지고 공부하였으며 깊이 생각에 잠기곤 하였다.

언더힐은 어렸을 때의 신비체험을 묘사하였다. 잡다한 것이  없는 아주 단순하고 설명할 필요도 없는 고요한 사막과 같은 평화롭고 구별이 없는 실재의 상태를 보는 뜻밖의 신비주의 체험을 하였다. 이 신비체험은 생애 내내 의문이 되고 고뇌의 근원이었으며 언더힐로 하여금 계속 연구하고 글을 쓰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언더힐은 시인이자 소설가이며 평화주의자이면서 신비주의자이었다. 아버지와 남편, 허버트 무어(Hubert Stuart Moore), 두 사람은 변호사이었으며 요트를 좋아하는 작가이었다. 허버트 무어와는 어려서부터 함께 자랐다. 32세 때인 1907년 7월에 결혼하였으나 부부사이에는 자녀가 없었다. 언더힐은 정기적으로 유럽, 특히 스위스, 프랑스, 이탈리아를 자주 여행하였다. 그녀는 예술과 문화, 가톨릭정신을 찾아 수많은 교회와 수도원을 방문하였다. 남편이나 부모는 언더힐의 영적 여정에 함께 하지 않았다. 이탈리아 교회를 방문하고 나서 언더힐은 로마 천주교회에 나가기 시작하였다. 수도원에 가서 피정을 하면서 로마교회에로 신심이 기울였으나 남편은 성공회에 남기를 바랐다. 1907년 교종 비오 10세의 회칙에서 가톨릭교회 내에 있는 모더니즘과 그 영향을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그리고 모더니즘을 반 교회적 사상으로 규정하였다. 이 회칙으로 인하여 언더힐은 큰 충격을 받았다. 왜냐하면 언더힐은 교종의 회칙이 학문의 자유와 종교인의 양심을 속박하는 것으로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이 회칙은 언더힐이 가톨릭교회로 가는 것을 막았던 계기 중의 하나이다.

많은 친구들이 언더힐을 "무어 부인"(Mrs Moore)이라고 불렀지만 그 호칭을 달갑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30권이 넘는 많은 저서를 남편의 성을 따서 출판하지 않고, 결혼하기 전까지 사용했던 언더힐 성씨로 책을 펴냈다. 또는 필명, 프란시스 수도자 요한(John Cordelier)으로 펴내기도 하였다. 1912년 『나선형으로 올라가는 길』(The Spiral Way)이 수도자 요한이라는 필명으로 낸 책이다. 언더힐은 불가지론적인 생각을 하였으나 점차로 네오플라토니즘에 관심을 가졌다. 그리고 남편이 다니는 영국성공회의 고교회 전통을 이어오는 앵글로 가톨릭교회에 출석하는 것을 언더힐은 꺼려하며 로마 천주교회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언더힐의 남편, 허버트 무어는 언더힐이 성공회 대신에 로마 천주교회에 나가는 것을 결혼 전 교재 할 때부터 반대하였다. 남편의 반대는 당시 영국의 상류층이나 지성인들이 천주교는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모인 우매한 교회로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유가 어떻던 남편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천주교에 출석했던 것은 언더힐에게 중요한 문제였던 것 같다.

1921년부터 1924년까지 언더힐의 영적 지도자인 프리드리히 폰 휴겔(Baron Friedrich von Hügel) 남작은 신비주의에 관한 언더힐의 작품을 잘 이해해주었다. 휴겔 남작은 유신론적이고 지성적인 것에 관심이 있는 언더힐에게 좀 더 그리스도 중심의 신앙을 갖도록 조언을 하였다. 언더힐은 휴겔 남작을 인격적이고 사려 깊고 신실하며 너그러운 성인과 같은 분이라고 여겼다. 그의 영향으로 언더힐은 더 자선적이고 사회적인 활동을 하게 되었다. 1925년 휴겔 남작이 죽은 이후, 언더힐은 성령의 활동에 더 관심을 갖게 되었다. 언더힐은 영국 성공회의 평신도 피정 지도자로서 이름을 높였다. 피정회를 인도하면서 개인의 영적 지도자로서 그리고 라디오 방송과 신앙모임의 강사로 또한 관상기도 인도자로 활동하였다.

언더힐은 20세기 전환기 낭만주의 시대에 살았다. 당시에 풍미하던 것은 정신적이고 심리학적인 것, 초자연적인 것, 중세풍의 신비한 것, 예술의 신격화, 여성성의 재발견, 심미적인 것, 그리고 천성적인 영성을 추구하는 것 등으로 복합되어 있었다. 언더힐에 있어 성공회 정신은 이러한 낭만주의 정신과 언더힐의 세계관이 결합된 것이었다. 언더힐은 성공회를 국교회로 보지 않고 신앙생활 하는 곳으로 그리고 마음으로 하느님을 인식하는 곳으로 하나의 삶의 중심으로 여겼다.

유년시절에는 부모에게 신실하였고, 결혼해서는 남편에게 헌신적이었다. 자선사업과 기도와 예배, 연구와 집필 활동 그리고 묵상생활 등 엄격한 생활을 한 변호사의 딸이자 그리고 아내로서 언더힐은 성실하게 살았다. 거룩한 삶은 그녀의 생활의 원칙이었다. 그녀의 신앙적인 성실한 삶은 성육화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러한 삶은 종교적인 분위기와 생활 속에서 드러난 것이다. 언더힐의 삼촌은 바쓰 교구의 프란시스 언더힐 주교였다.
 
교육과정과 여성 지도자로서 성장

폭스톤(Folkestone)에서 3년간의 학교생활을 제외하고는 유년기를 집에서 공부하였다. 그 후에 런던의 킹스 칼리지에서 역사와 식물학을 공부하였다. 언더힐은 대학에서 철학과 종교분야에 관심을 갖고 공부하면서 사색을 즐겼다. 언더힐은 어버딘대학 명예 신학박사를 받았고 킹스 칼리지 특별회원이 되었다. 영국 성공회에서 성직자들을 가르친 첫 번째 여성 신학자이자 공식적으로 교회의 피정 프로그램을 인도한 첫 번째 여성 영성지도자이었다.

또한 언더힐은 자신이 가르쳤던 영국 대학교와 칼리지에서 첫 여성 신학자 중의 한 사람으로서 교회일치운동의 연대를 위해 일했던 첫 여성이었다. 언더힐은 당시의 가장 유명한 인사들과 연구작업을 한 책 편집자로서 수상하기도 하였다. 언더힐은 학교에서 교육 훈련을 잘 받았으며 서방영성을 잘 이해하고 당대의 신학뿐만 아니라 철학, 심리학, 물리학을 잘 아는 여성으로서 스펙테이터(the Spectator) 잡지의 존경받는 편집자였다.
 
초기 작품

신비주의에 관한 저명한 작품을 쓰기 전에 언더힐은 법의 모순에 관한 풍자시, 『선술집 어린양의 속요』(The Bar-Lamb's Ballad Book)라는 작은 시집을 펴냈는데 많은 사람으로부터 사랑을 받았다. 그 후 어떤 형식이나 틀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깊이가 있는 세 권의 영성 소설을 썼다. 찰스 윌리엄스(Charles Williams), 수산 호와치(Susan Howatch)처럼, 몸과 영혼의 성사적 만남을 설명하기 위한 이야기체의 글을 썼다. 언더힐은 사람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성사적 줄거리(sacramental framework)로 재미있게 풀어놓았다.

언더힐은 『회색 세상』(The Grey World, 1904), 『잃어버린 말』(The Lost Word, 1907), 『먼지 기둥』(The Column of Dust, 1909)라는 이름으로 소설을 펴냈다. 첫 작품, 『회색 세상』에서 지극히 심리학적인 관심을 가진 관찰자로 죽음과 함께 시작하는 영웅의 신비여행을 묘사하였다. 회색 세상을 넘어 새로 환생하여 지고의 선에 헌신하는 단순한 삶을 기술하였다. 언더힐은 젊은 여성으로서 자신의 신실한 삶의 자세를 『회색 세계』 소설에 반영하였다.

“이 시대에는 아름답게 살기보다는 도덕적으로 살기가 더 쉬운 것 같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평생 동안 사회에 저해되는 삶을 살지 않으려고 하나 우리는 매순간 사랑에 죄짓고 있다.”

『잃어버린 말』(The Lost Word)과 『먼지 기둥』(The Column of Dust)에서 두 세상 사이에서 언더힐 자신의 영적인 도전을 반영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 1909년의 소설, 『먼지 기둥』에서 언더힐은 소설의 여성 영웅이 두 세계에서 겪는 갈등을 묘사하고 있다. 언더힐은 착각하지 않도록 하는 가르침이나 진리를 싫어하지 않도록 하는 방어기재의 위험성을 의외로 발견하였다. 언더힐은 현상의 장벽에 아주 작은 구멍을 발견하고 그 안으로 살짝 들어다 보았다. 그 안에서 끊은 물의 표면에서 바로 지금 비등점에서 물방울이 일어나는 것처럼 영적인 힘의 분출하는 순간을 보았다.

언더힐은 소설에서 현상세계와 정신세계를 신비주의자들에게 제시하고자 하였다. 언더힐에 있어서 신비체험은 의식의 확장이나 지각과 심미적인 선상의 팽창 같은 현상에서 분리할 수 없는 것으로 보인다. 신성한 세계의 반대편에서 볼 때 의미 없고 사소한 것으로 보였던 것으로서 사물로 보일지라도 신성하고 거룩한 빛으로 둘러싸여있을 때는 장엄한 발광체 안에서는 아무리 사소한 것도 다 의미가 있다. 그러나 이 상태에서 신비주의자들의 마음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불안정하여 어떤 능력은 나타나지 않는다. 첫 번째 소설은 이러한 심리상태로 인도한다. 다음 단계에서는 깊은 고독 속에 있는 영혼은 잠재적인 가능성을 기르는 이상의 것을 보기 때문에 더 고통스러운 상태에 놓인다. 언더힐의 견해에 의하면, 고통과 긴장이 수반되나 개인의 이기적인 자아(ego cantered life)가 극복되고 ‘참나(true self)’를 얻으면 모든 고통과 긴장은 사라진다는 것이다.

두 번째 소설에서는 인간 삶의 완전한 통합의 필요로서 보이는 것, 그 차체에 헌신하여 자신의 온 존재를 내려놓는 것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예수의 삶과 비유하는 가운데 언더힐이 이끌어 가는 이야기이다. 사람은 이미 방관자나 그것의 일부가 아닌 본래의 보이는 것과 다시 하나가 된다. 자아를 죽이고 다시 사는 차원의 이야기는 그녀의 소설 『잃어버린 말』에서 전개된다. 여기서는 일반적인 불가항력에 대한 약간의 의심은 남는다.

『먼지 기둥』에서 여성 영웅의 육적인 죽음이 극적으로 언더힐이 내어준 신비적 죽음으로 묘사된다. 고통스러운 재통합의 과정은 자아(Self)와 실재(Reality)가 하나로 되는 것을 방해하지 않는 한 두 세상의 삶이 한 세상의 삶보다는 더 낫다. 그녀의 모든 특성이 나타나는 신학적 의미와 가치에 대한 관심과 흥미를 이끌어 낸다. 그리스도교 신비주의 전통과 종교적인 상징을 심리학적인 가치로 아주 잘 구체화한 호와치(Susan Howatch)처럼 20세기의 선구적인 작가로서 언더힐은 아주 어려운 상징적인 이야기를 심리학적인 이야기로 아주 흥미진지하게 다루었다.

언더힐의 첫 작품은 많은 찬사를 받았으나 마지막 소설은 환영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언더힐의 소설은 이세상의 사랑스럽고 긍정적인 것을 묵묵히 받아들이는 대신에 성 어거스틴이 ‘고독에로 비행’(fuga in solitudinem)의 유혹으로 묘사한 것을 피하도록 하는 놀라운 통찰력을 준다. 뒤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고, 언더힐은 이미 당대의 역작(magnum opus)을 써가고 있었다.
 
종교에 관한 작품

인간 의식의 본성과 발달과정에 관한 언더힐의 위대한 작품, 『신비주의』는 1911년에 출판되었다. 이 책은 단순한 영성 교과서이라기보다는 질적으로 수준 높은 책이다. 책의 내용은 역사적이거나 과학적이기 보다는 낭만적이고 이론적으로 짜임새 있게 전개된다. 언더힐은 이론적인 설명이나 전통적인 종교체험, 그리고 일반적인 분류나 분석을 따르지 않았다. 언더힐은 선구적인 종교학자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의 『종교체험의 여러 가지 모습』(The Varieties of Religious Experience, 1902)에서 언급하는 종교체험의 4가지 특성(언표불가해성, 이지적 특성, 일시성, 수동성)을 분석하였다.

윌리엄 제임스의 종교체험 4가지 특성을 언더힐은 다음의 4가지로 대치하였다. 첫째 신비주의는 이론적인 것이 아니라 실재적이다. 둘째 신비주의는 전적으로 영성적인 활동이다. 셋째 신비주의의 임무와 방법은 사랑이다. 넷째 신비주의는 확실히 심리학적인 경험을 수반한다. 언더힐의 심리학적인 접근방법은 제 1차 세계대전 이전에 매력적인 학문이었다. 심리학은 인간의 지성과 창의성, 그리고 천성의 인간 진보의 비밀의 단서를 제공한다. 당시에 이미 심리학적인 면을 신학에 적용하기도 하였다.

언더힐은 주제를 두 부분으로 나누어 썼다. 제 1부는 소개하는 부분이고, 제 2부는 인간 의식의 본질과 발전에 관한 세부적인 연구이다. 제 1장에서 신비주의 주제에 대한 오해와 혼동으로부터 자유롭게 하기 위하여 언더힐은 심리학자와 싱징주의자 그리고 신학자의 관점에서 접근하였다. 신비주의를 마술과 관계있는 것으로 의심하는 것으로부터 분리해내기 위하여 1부의 7장에서 신비주의와 마술의 차이를 기술하였다. 그런데 오늘날까지도 신비주의는 비학(秘學, occult), 비밀예식, 열광주의와 관계된 것으로 보고 있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언더힐은 역사를 통해서 신비주의자들이 선각자인 영성가라는 것을 알았다.

언더힐은 5단계의 길로 나누어 제 2부를 설명한다. 첫 단계는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제자인 헨리 수소의 말을 인용하여 쓴 ‘자아의 깨달음’(Awakening of Self)이다. “종은 존재의 형상도 모습도 없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기뻐하는 것의 본질과 모습을 아는 것 같이 헨리 수소도 그와 같은 기쁨을 맛보았다. 그러나 헨리 수소의 마음은 양에 차지 않았으나 만족되었고 그의 영혼은 기쁨으로 가득 찼다. 그의 기도와 희망은 가득 채워졌다”(Cropper p. 46).

각각의 영혼의 진실한 본성과 목적과 관계된 추상적인 진리가 어떻게 기억되고 성취의 힘이 어떠한 것인지 헨리 수소의 설명을 소개하고, 언더힐 자신의 영성의 길의 출발점이 어디인가를 보여준다.

영성의 두 번째 단계에서 14세기 익명의 저자가 쓴 ‘독일신학’(Theologia Germanica)에서 인용한 ‘참나의 정화’(Purgation of Self)를 언더힐은 심리학적으로 설명한다. ‘참나의 정화’는 자아(ego)의 초월에 관한 것이다. 여기에서 언더힐은 자아를 ‘작은 나’라고 하였다. “우리는 내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우리 자신의 자아를 벗겨내고 우리의 자신의 것이라고 하는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합니다.”

영성의 제 3단계에서 언더힐은 ‘조명’(Illumination)의 단계로 표현한 후 윌리엄 로(William Law)의 말을 인용하였다. “본질적으로 모든 것은 영원한 것으로부터 나와 영원한 것의 보이는 형상으로 태어납니다. 그래서 영원한 것으로부터 죽음과 어둠, 그리고 추악한 것 등등이 어떻게 분리되었는지 알 때, 우리는 영원한 상태에서 영원한 것을 찾게 됩니다.”

영성의 제 4단계에서 언더힐은 ‘영혼의 어둠 밤’(Dark Night of the Soul)을 설명한다. 영혼의 어둔 밤에서 언더힐은 자신의 하느님과의 일치는 삶 전체를 통하여 가장 낮은 단계의 자아로부터 가치 있다고 하는 모든 것을 제거하는 철저한 자기 비움을 통해서 이루어진다고 하였다. 그리고 막디버어그의 메치씰드(Mechthild of Magdeburg)의 말을 인용한다. “내가 당신을 가진 모든 것을 당신은 나에게서 취하였으나 당신의 은총으로 모든 것이 자연적으로 지닌 선물로 나에게 남겨졌습니다. 내가 절망 중에 있을 때, 고통 중에 당신에게 신실한 자가 되었습니다. 나는 당신의 하늘나라보다도 더 열렬하게 이것을 원합니다.”

영성의 마지막 단계에서 언더힐은 신비주의자들의 길의 최고의 단계인 일치의 삶에 열중한다. 그리고 뤼이스브로엨(Ruysbroech)의 말을 인용한다. “만물 위에서 사랑이 우리를 거룩한 어둠 속으로 이끌 때, 아버지의 형상인 영원한 말씀으로 우리는 변화됩니다. 태양 빛이 공기 속으로 들어가듯이 우리도 상상할 수 없는 밝은 빛을 평화로이 받게 됩니다. 그 빛은 우리를 감싸고 우리 안으로 스며들어옵니다.”

언더힐이 마지막 완덕의 경지에 이른 신비주의자에 관한 새로운 근거를 내놓았다. 신비주의자는 은둔적이고 꿈꾸는 하느님을 사랑하는 자가 아니라 가장 실천적인 행동가가 되기 위해서 하느님과 하나 되어 삶 속에서 실천하며 창조적인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언더힐은 주장한다.

“우리 모두는 신비주의자들과 같은 사람이다. 비록 신비주의자들이 우리와는 다르고 멀리 떨어진 존재인 것 같이 보이지만, 건너갈 수 없는 심연으로도 신비주의자들과 우리를 갈라놓을 수 없다. 신비주의자들은 거인으로 우리 종족의 영웅으로서 우리 안에 속한다. 타고난 자질의 성취는 그 자체뿐만 아니라 그것을 가져다주는 사회에 속하는 것처럼, 신비주의자들의 초능력 성취도 역시 우리 자신의 것이다. 눈으로 볼 수 없는 운전자인 무한한 사랑이 실재에로 향해 가는 우리를 목적지로 안내한다. 좀처럼 말할 수 없는 놀라운 기별로 가득 찬 생명의 가장 황송스러운 비밀을 만나는 곳에서 신비주의자들은 우리에게 다가온다. 어떤 확신을 기대하는 사람들은 신비주의자들에게 아득하고 회의적인 오래된 비밀을 드러내라고 말한다. 그러나 신비주의자들은 단지 상징적으로 보이는 것을 단편적으로 보여줄 뿐 말하지는 않는다. 그들의 힘과 열정에 의하여 절대자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고통 때문에 위축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아름다움과 고통이라 불러지는 것들이 영웅적인 반응을 하도록 한다. 신비주의자들에게 있어 겨울은 지났다. 새벽과 함께 신비주의자들은 막을 수 없는 사랑스러운 새로운 생명을 만나게 된다.”(Cropper, p.47)

『신비주의』는 시대를 거처 상호 연관성과 지속성을 보여주는 신비주의자, 아주 의미 있는 사람들의 이름을 나열하는 것으로 마친다.
 
뤼이스브뢰엨(Ruysbroeck, 1914)

14세기 플렌더스 지방의 신비주의자 장 뱅 뤼우스브뢰엨(Jan van Ruusbroec, 1293-1381)에  관한 언더힐의 작품이다. 『뤼이스브뢰엨』 이름을 붙은 책은 1914년 런던에서 출판되었다. 1911년 출간한 『신비주의』와는 약간 다른 관점에서 뤼이스브뢰엑을 다루었다. 동료 수도자인 포멜리우스(Pomerius)와 제랄드 나겔(Gerard Naghel)이 쓴 뤼이스브뢰엑의 삶에 관한 두 작품을 주로 참조하여 언더힐은 뤼이스브뢰엨 전기를 썼다.
 
“플로티노스의 신비주의”(The Mysticism of Plotinus, 1919)

플로티노스의 신비주의는 소논문으로 계간지 평론지에 실렸다. 후에 『신비주의의 본질과 다른 논문들』(The Essentials of Mysticism and other essays, 1920) 116-140쪽에 실렸다. 여기에서 언더힐은 알렉산드리아의 플로티노스(Plotinus of Alexandria, 204–270)에 관하여 썼다.

영성의 안내자이며 신플라톤주의자인 플로티노스는 공식적인 철학을 썼고 그 다음으로 개인의 내적 체험을 다루었다. 언더힐은 마음의 지도를 그리는 지리학자와 정신의 영역을 실제로 여행하는 구도자를 구분하여 설명하였다. 신비주의자들은 단지 형이상학자의 지도를 따르지 않는다고 언더힐은 말하였다.

엔에드스(the Enneads)라는 논문에서 플로티노스는 하향성의 질서에 종속되는 삼위일체를 표현하였다. (a) 일자(the One);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않고, 아무 것도 추구하지 않고, 아무 것도 필요치 않는 완전한 일자는 존재의 근원이며 그 자체 창조성이 넘쳐흐른다. (b) 일자는 지성, 지혜, 직관, 그리고 ‘영혼의 아버지와 협력하는 분’과 함께 이성(Nous)이나 영혼(Spirit)을 방출한다. (c) 일자는 영과 생명, 그리고 이 세상의 물질과 직접 관계하는 하면서 저 세상의 영혼과 교류하도록 하는 세상의 활력소를 방출한다.

인간은 하느님으로부터 나왔으며 왔던 곳으로 귀일(歸一)하여 행복을 찾는다. 처음에는 이성과 하나가 되고 그 다음에는 일자와 하나가 된다. 그러한 것은 형이상학자에게 있어서는 단지 논리적인 결과이지만, 플로티노스와 같은 구도자에게 있어서는 도덕적인 정화로서 그리고 결과적으로 직관적인 아름다움으로 이끄는 비이성적인 미혹을 벗겨내는 거룩한 귀일로 설명한다. 심미적인 삶을 향한 지성적이고 도덕적인 길은 아름다움의 형상인 이성(the Nous), 즉 눈으로 볼 수 없는 근원을 점진적으로 드러낸다. 비록 일자가 비인격적이지만 사랑은 보편적인 영감이다. 신비주의자들은 의식의 궁극적인 전환을 하기 위해 ‘감각에서 정신으로 그리고 정신에서 영혼으로’ 인간 존재의 중심으로 옮겨가는 정화의 단계와 깨달음의 단계를 거친다. 최고의 단계에 이르러 인간은 황홀감을 느끼며 소리로 부르는 것이 아닌 일자 주위에서 들리는 거룩한 합창소리를 느낀다.

성 어거스틴(St. Augustine, 354–430)은 투쟁하며 사는 불완전한 인간의 욕구를 무시하는 신플라톤주의를 비판하였다. 플로티노스의 일자는 인간 영혼의 자석과 같은 역할을 하나 도대체 자비나 도움 또는 사랑, 구원과 관계한다고 말할 수 없다. 신플라톤주의자에 대하여 쓴 다른 서방교회 신비주의자는 인간과 ‘무의식의 미지의 일자’(the unconscious, unknowable One) 사이에 상호 끌어당기는 힘의 부족에 대하여 언급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노위치의 줄리안(Julian of Norwich, 1342–1416)은 인간의 자연적인 의지는 하느님과 관계하려 하고, 하느님의 선한 의지는 인간을 관계하고자 한다고 말하였다.

“플로티노스는 악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지만 희열의 삶의 자리도 갖지 못한다. 이 땅에서 종교의 사회 윤리적인 차원을 다룰 수도 없다. 플로티노스의 철학은 복음서에서 말하는 예수를 통한 고통의 거룩한 극복을 말하지 않는다. 자립하는 성인 플로티노스는 자선을 가르치지 않는다”고 성 어거스틴은 비판하였다.

성 어거스틴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언더힐은 말한다. 플로티노스와 신플라톤주의는 그리스도교(와 이슬람)의 신비주의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교부인 성 어거스틴은 스스로 플로티노스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았고 서방교회 신학 또한 플로티노스 사상을 통하여 형성되었다. 5세기 시리아의 디오니시우스(Dionysius)의 작품 역시 그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증명한다. 에리게나(Erigena), 단테(Dante), 뤼이스브뢰엨(Ruysbroeck) 같은 사람도 플노티누스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예배(Worship, 1936)

머리말에서 언더힐은 자신은 전례 전문가가 아니라고 말한다. 다양한 종파에 의해 드려지는 예배에 대한 다양한 방법을 비판하는 것도 아니고 의도하는 일은 더더욱 아니라고 언급한다. 오히려 언더힐은 경외심을 주는 사랑과 많은 다양한 종류의 영혼에게 쉼을 주는 일에 열심이었다. 『예배』 1장에서 언더힐은 “예배란 모든 차원과 방법에서 영원한 존재에 대한 피조물의 응답이다. 예배에 대한 이 정의에 더 가감할 필요가 없다. 인간은 보이거나 보이지 않거나, 의식하거나 의식하지 않거나, 우주 전체를 예배의 행위로 생각한다”라는 말로 시작한다.
 
각 장의 머리말은 예배의 내용을 지시하고 있다.
 
1부:
1. 예배의 본질(The Nature of Worship)
2. 의식과 상징(Ritual and Symbol)
3. 성사와 헌신(Sacrament and Sacrifice)
4. 그리스도교 예배의 특징(The Character of Christian Worship)
5. 연합예배의 원칙(Principles of Corporate Worship)
6. 예배에서의 전례 요소(Liturgical Elements in Worship)
7. 성찬례의 본질(The Holy Eucharist: Its Nature)
8. 성찬례의 의미(The Holy Eucharist: Its Significance)
9. 개인 기도의 원칙(The Principles of Personal Worship)

 
2부:
10. 유대인의 예배(Jewish Worship)
11. 그리스도교 예배의 기원(The Beginnings of Christian Worship)
12. 동방교회와 서방교회의 가톨릭 예배(Catholic Worship: Western and Eastern)
13. 개혁교회의 예배(Worship in the Reformed Churches)
14. 자유교회의 예배(Free Church Worship)
15. 성공회 전통과 결론(The Anglican Tradition. Conclusion)

 
 
언더힐의 영성에 영향을 미친 사상과 인물

언더힐의 삶은 로마 천주교회에 강하게 이끌리어 다니게 되었다 그러나 남편은 극구 반대하였다. 그러한 반대가 언더힐에게 영향을 미쳤다. 처음에는 언더힐이 천주교인이 되는 것을 미루도록 하는 것으로 생각하였으나 생애 내내 남편의 반대에 부딪혔다. 그러나 남편은 언더힐의 영적인 동반자가 되지는 않았지만, 1907년 결혼 전이나 후에도 언더힐이 글 쓰는 것을 지속적으로 도왔다.

언더힐의 소설은 1903년에서 1909년 사이 6년 동안에 쓰여졌다. 언더힐의 주요 4개 분야의 관심, 즉 철학(신플라톤주의), 유신론(신비주의), 로마 천주교회 전례, 그리고 인간사랑과 동정심에 관한 것이다. 초기작품에서는 신비주의와 신비주의자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였으나 이후의 작품에서는 영성과 성인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하였다. 왜냐하면 영성이나 성인이라는 말이 덜 공격적인 것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언더힐은 보통사람들이 신비적인 삶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하였기 때문에 종종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언더힐의 소설 또한 그녀의 친한 친구 아셔 메이첸(Arthur Machen)의 문학의 영향을 받았다. 1902년에 쓴 아셔 메이첸의 그림문자(Hieroglyphics)로부터 주로 영향을 받았다.

우주와 우주의 본질에 관한 어떤 진리가 있다. 우리가 관찰하기 전에 존재하는 우주 안에는 특별한 사물을 구분하는 진리가 있다. 인간의 이성으로 파악할 수 없거나 특별한 말로 표현해야 하는 것들이 있다. 그러나 그러한 말들은 적어도 신비적 체험을 한 사람에 의해 이해될 수 있다. 예술 작품은 느낌을 말로 표현하는 가운데 위대한 작품이 된다. 그러나 진리는 물질이라는 대상을 묘사하는 말을 넘어 있는 것, 초월적인 것과 관계되기 때문에 상징적인 언어로 표현하게 된다. 그러므로 진리는 문자가 형상화한 그림문자와 같은 것이다.

언더힐의 경우, 심리학적인 실재주의의 탐색은 언더힐이 메이첸(Arthur Machen)과 나누었던 더 심오한 형이상학적인 고찰로 매몰되게 된다. 황금의 새벽회에 비밀의 의식으로 입회하는 원탁의 기사 아셔(Arthur Waite)와 함께 성배 이야기를 그들의 소설에 합류시킨다. 아셔 메이첸에 있어서 모든 사람이 초월하고자 하는 갈망의 대상으로 성배는 거룩한 상징 안에서 그림문자가 하나의 형상으로 구체화 된다. 그러나 언더힐의 마지막 소설에 대한 마가렛 로빈슨의 비평에 언더힐은 응답의 편지를 썼다. 언더힐이 마가렛 로빈슨을 지적하면서 구원의 문제를 언급한다. 언더힐에 있어서는 불만을 진정시키고 진실을 보도록 하는 바로 그 문 안에서 그림문자가 성배로 구체화된다.

당시의 철학자, 오이켄(Rudolf Eucken)과 베르그송(Henri Bergson)의 영향을 받아 언더힐은 신비주의 책을 썼다. 사람들이 신비주의에 대한 관심을 아직 가지고 있지 않을 때, 오이켄과 베르그송은 우주의 영성적인 면을 제자들에게 가르쳤던 것으로 보인다. 언더힐 역시 시간에 대한 놀라운 신념을 ‘생기론’으로 설명해 냈다. 제 1차 세계대전 이전의 문화와 사회에 알려진 모든 면에서 충만하고 다양하며 무한하여 편재해 있는 시간의 생기론이라는 이 단어는 생명의 예배라는 말로 정리되었다. 오이겐과 베르그송은 신비주의자들의 깊은 직관력을 언더힐로 하여금 확신하게 하였다(Armstrong, Evelyn Underhill).

신비주의자들 가운데 뤼이스브뢰엨은 언더힐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친 수도자이었고, 중세 신비주의자의 대표적인 사제이었다. 부르셀(Brussels)의 은둔의 사제로 사역하고 있을 당시의 뤼이스브뢰엨과 언더힐 자신이 스스로 하나라고 생각하였다. 왜냐하면 당시에 언더힐도 스스로 알려지지 않은 은둔의 영역에서 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교 신비주의의 황금기인 14세기의 아주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뤼이스브뢰엨의 경험은 이전의 시대보다도 높은 차원으로 이끈 독신의 수도자의 삶을 보인 것이다. 영원한 생명에 관한 한 중세의 최고의 경지에 이른 경험이었다.
언더힐에게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친 사람 중의 한 사람은 인도의 시인이며 신비주의자이며 여행가, 노벨상을 받은 타고르(Rabindranath Tagore)이었다. 언더힐은 타고르와 교류하며 1915년 카비어(Kabir)의 노래라고 불리는 100수의 카비어를 타고르와 함께 번역 출판하였다.


1921년에 언더힐은 확고하고 부러운 위치에 올랐다. 옥스퍼드 대학으로부터 종교에 관한 새로운 강의 시리즈를 맡아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여성으로서 처음 있는 영광이었다. 언더힐은 신비주의 주제에 관한한 권위가 있고 존경받는 연구가이자 학자가 되었다. 언더힐의 글은 독자들로부터 사랑을 받았고, 유명한 사람들과 교류하게 되었다. 행복한 결혼생활과 좋은 부모 밑에서 잘 자랐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실재에 대한 온 힘을 다하는 언더힐의 의존심은 아주 부서지기 쉬운 것이었고 불안전한 것이라는 것이었다.

1939에 언더힐은 전쟁 반대의 중요한 글들을 썼던 성공회 평화주의자협회의 회원으로 활동하였다.

천주교 철학자이며 작가인 휴겔(Friedrich von Hugel) 남작과의 10년 동안의 교류는 언더힐의 영성에 크게 영향을 미쳤다. 로마 천주교회에서 성공회로 돌아온 언더힐은 높은 단계의 위험한 신비주의 모험을 통해서 신비주의에 대한 지식을 떨리는 마음으로 정리하였다. 찰스 윌리엄스는 언더힐의 편지글을 묶어 펴낸 책에서 언더힐을 잘 소개하였다.
“어떠한 사람에게는 단순한 신앙문제이더라도 어떤 영혼에게는 교회와 관계된 헌신과 회의감으로 고통스러운데, 언더힐이 바로 그런 경우이다. ..언더힐은 확신하고 싶었다. 휴겔 남작에게 보낸 편지에서 언더힐은 ‘내가 무엇을 해야하는가?’...처음에는 자신의 문제를 혼자만 관대하게 대하다가 후에 그 문제가 전문적으로 번영하고 사랑을 받는다하더라도 어떤 규율을 만들어 놓지 않는다면 어떤 것도 제대로 되지 않는다. 어떤 지성이나 종교도 실질적으로 나를 훈련시키지 못했다. 왜냐하면 내가 지성과 종교에 아주 심하게 집착했기 때문이다. ..신심이 깊어지도록 사람들이 충고를 하는 것도 아무 필요가 없다. 그 문제는 나를 넘어서 있는 일이다. 내가 너무도 투명하고 선명하게 본 순간 내가 가는 길의 가능한 목적이 완성되고 무조건적으로 정화되는 나를 보았다. 이 일로 나는 담력과 개성이나 깊이는 갖지 않았으나 거기에는 약간의 잘못이 있었다. 나의 영혼은 그것으로 인해 너무 작았기에 내가 실지 원했던 유일한 것이 아직 맨 밑바닥에 있었다. 내가 가장자리로 내몰려 갈등하고 있고, 나의 심한 결함 때문에 동요하고 있는 동안 나는 감히 바닥을 박차고 뛰어오를 수 없다는 것을 때때로 느끼고 있었다.”


휴겔 남작의 7월 12일자 편지에는 언더힐의 영적 상태를 언급하고 있다. 남작 휴겔의 영적 충고는 심적인 고통 가운데 있던 언더힐에게 통찰력을 주었다. “나는 당신의 이러저러한 경험이 바로 당신의 것인 것 같다고 절대적인 확신을 주는 답을 원할지 모르나 나는 확답을 주지는 않겠습니다. 나는 그러한 경험이 가치 있고 확신하여야 한다고 분명하게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신앙에 관하여 말하는 대상이 아닙니다. .. 당신은 때때로 의심하게 되리라 봅니다. 그래서 만약 모든 합리적인 의심의 영역을 넘어서게 될 개인의 체험을 어떤 사람이 안내한다면 당신은 지시를 받고자 할 것입니다. 그러한 영적 지도를 받지 않는 것은 가장 위험한 일입니다. 당신을 약화시킬 것이고 시들게 하거나 우쭐대도록 할 것입니다. 어찌하든 그러한 체험을 신뢰하십시오. 만약 그들의 안내가 겸손하고 견딜만하면 하느님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생각하십시오. 그러나 당신 스스로 확신하지는 마십시오. 그러한 것들이 단지 수단이 된다면 그것을 목적으로 삼지 마십시오. .. 하느님은 이런 저런 일에 대한 순위를 정하거나 어떤 것이 선하고 덜 선한가를 평가하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분명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제 2차 세계대전의 맹공격의 황폐로부터 단지 평화주의자만이 할 수 있는 의미심장한 고통이라고 확신하는 언더힐은 아름다운 목적을 가진 투쟁을 계속 하였다. 그러나 교회는 영향을 미치는데 아주 미약하였다. 언더힐은 기도에 관하여 수많은 강연과 강의, 말을 통하여 큰 영향을 미치는 일을 하였다. 1940년 런던 비릿츠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병세는 악화되어 더 이상 버틸 수 없었고 다음 해에 언더힐은 세상을 떠났다. 그녀는 런던 햄스테드에 있는 성 요한 교회의 마당에 잠든 남편 곁에 묻혔다.

언더힐은 잃어버린 중세의 신비주의자들과 가톨릭의 영성을 개신교 신자들에게 알리는 데 다른 어떤 사람보다도 더 책임감을 가지고 앞장섰다. 또한 동양의 신비주의자의 삶을 영어를 사용하는 세계에 알리는 것을 사명감으로 여겼다. 1936년 언더힐은 라디오에 출연하여 돔 버나드 클레멘트(Dom Bernard Clements)의 기도 주제에 관한 속편이라고 할 수 있는 언더힐의 영성생활의 이야기가 전파를 타고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쳤다. 동료 신학자인 찰스 윌리엄스(Charles Williams)는 1943년 언더힐의 편지글 서문에 언더힐이라는 큰 여성인물이 널리 드러나게 하는 글을 썼다. 1941년 언더힐이 세상을 떠났을 때, 타임지(The Times)는 “당대의 어느 전문교수도 언더힐의 신학주제에 도달할 수 없었다”고 보도했다.
 
언더힐 기념일 제정

2000년 이후 영국 성공회 전례력에 6월 15일을 언더힐 축일로 기념한다.
또한 미국 성공회에서도 6월 15일에 언더힐을 기념하는 날로 정하였다.

 
언더힐의 작품과 출판물
 
시집(Poetry)
The Bar-Lamb's Ballad Book (1902).
Immanence (1916).
Theophanies (1916).

 
소설(Novels)
The Grey World (1904). Reprint Kessinger Publishing, 1942
The Lost Word (1907).
The Column of Dust (1909).

 
종교에 관한 저술
The Miracles of Our Lady Saint Mary: Brought Out of Divers Tongues and Newly Set Forth in English (1906)

Mysticism: A Study of the Nature and Development of Man's Spiritual Consciousness (1911).
The Path of Eternal Wisdom. A mystical commentary on the Way of the Cross (1912).
"Introduction" to her edition of the anonymous The Cloud of Unknowing (c. 1370) from British Museum manuscript [here entitled A Book of Contemplation the which is called the Cloud of Unknowing, in the which a Soul is one with God] (London: John M. Walkins 1912); reprinted as Cloud of Unknowing (1998) [her "Introduction" at 5–37]; 2007

The Spiral Way. Being a meditation on the fifteen mysteries of the soul's ascent (1912).
The Mystic Way. A psychological study of Christian origins (1914).
Practical Mysticism. A Little Book for Normal People (1914).
Ruysbroeck (London: Bell 1915).
"Introduction" to Songs of Kabir (1915) trans. by Rabindranath Tagore; reprint 1977 Samuel Weiser (ISBN 0-87728-271-4), text at 5–43.

The Essentials of Mysticism and other essays (1920).
The Life of the Spirit and the Life of Today (1920).
The Mystics of the Church (1925).
Concerning the Inner Life (1927).
Man and the Supernatural. A study in theism (1927).
The House of the Soul (1929).
The Light of Christ (1932).
The Golden Sequence. A fourfold study of the spiritual life (1933).
The School of Charity. Meditations on the Christian Creed (1934).
Worship (1936).
The Spiritual Life (1936).
The Mystery of Sacrifice. A study on the liturgy (1938).
Abba. A meditation on the Lord's Prayer (1940).
The Letters of Evelyn Underhill (1943), as edited by Charles Williams.
Shrines and Cities of France and Italy (1949), as edited by Lucy Menzies.
Fragments from an inner life. Notebooks of Evelyn Underhill (1993), as edited by Dana Greene.

 
언더힐 선집(Anthologies)
Fruits of the Spirit (1942) edited by R. L. Roberts.
Collected Papers of Evelyn Underhill (1946) edited by L. Menzies and introduced by L. Barkway.

Lent with Evelyn Underhill (1964) edited by G. P. Mellick Belshaw.
An Anthology of the Love of God. From the writings of Evelyn Underhill (1976) edited by L. Barkway and L. Menzies.
The Ways of the Spirit (1990) edited by G. A. Brame.
Evelyn Underhill. Modern guide to the ancient quest for the Holy (1988) edited and introduced by D. Greene.
Evelyn Underhill. Essential writings (2003) edited by E. Griffin.
Radiance: A Spiritual Memoir (2004) edited by Bernard Bangley.
Margaret Cropper, The Life of Evelyn Underhill (New York 1958).
Christopher J. R. Armstrong, Evelyn Underhil (1875–1941). An introduction to her life and writings (Grand Rapids: Eerdmans 1976).

Michael Ramsey and A. M. Allchin, Evelyn Underhill. Two centenary essays (Oxford 1977).
Annice Callahan, Evelyn Underhill: Spirituality for daily living (University Press of America 1997).
Dana Greene, Evelyn Underhill. Artist of the infinite life (University of Notre Dame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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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교구 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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