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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화로 얻을 게 무엇인가? / 김원혁

작성일 : 2015-12-02       클릭 : 230     추천 : 0

작성자 성공회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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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화로 얻을 게 무엇인가?

 
김원혁

 
아침 드라마를 좋아하지 않는다. 내용이 뻔하니 전개가 너무 자극적이다. 그래서 연속극도 좋아하지 않는다. 평생을 살아도 마주칠 것 같지 않은 일들이 좁은 공간에서 일어난다. 마치 마트에 장 보러 간 기분이다. 긴 이야기를 건네는 다큐멘터리를 좋아한다. 아침 드라마와 연속극을 싫어한다고 했는데, 늘 곁에 두고 괴로워하며 보는 막장 드라마가 있다. 바로 정치이다. 지긋지긋한 드라마는 혈압만 올릴 뿐 우리네 삶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그런 드라마도 시청자의 말에 이야기가 달라지거나 제 명을 다하지 못하고 끝나버리는 경우도 있다. 시청률이 모든 걸 말한다. 그런데 눈앞에 펼쳐지는 정치는 사뭇 다르다.
 
관심 끌기?, 시간 끌기?
 
새누리당이 잘하는 장르는 일일 연속극이고, 아침 드라마이다. 아침 드라마나 연속극의 시청 패턴을 생각해 보자. 아침이나 저녁 시간은 일하는 시간이라 드라마에 집중할 수 없다. 그래서 줄거리를 단순하고 드라마 시작 5분만 봐도 결론이 나온다. 그러나 자극적이어서 잠시 손을 멈출 수는 있어야 한다. 그리고 선과 악은 분명하게 갈라야 놓아야 감정 이입을 할 수 있고 시청률이 유지된다. 대부분의 이야기는 출생의 비밀을 이야기하거나 신데렐라 콤플렉스를 활용한다.
새누리당은 국정화란 주제에 기본 시청률을 보장하는 색깔론을 입혔다. 뭘 이야기해도 색깔론이 기본 줄거리이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김무성 대표 “이제 역사전쟁이 시작됐으며, 학생에게 올바른 역사를 가르치기 위해 절대 물러설 수 없다”고 말했고 “지금 학생들이 우리 현대사는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했다고 배우는 게 현실”이며 “지금 대한민국의 국사학자들은 90%가 좌파로 전환돼 있다”면서 “그들에 의해 쓰인 중·고교 교과서는 현대사를 부정적 사관으로 기술하고, 패배한 역사라고 가르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말에 화답하듯 황우여 장관은 20일 한국대학교교육협의회 이사회에 앞서 열린 간담회에서 “과거 대학의 역사 전공 학생들이 시위 때문에 학업을 잘 하지 않아 지금 역사 교육이 잘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공부도 하지 않고 데모만 하던 사람이 선생이 되고, 교수가 되어 역사학회의 90%를 장악하는 거대한 집단이 되었고, 그들에게 죄 없는 학생들이 배워 빨갛게 물들고 있다는 말이다. 재미있다. 마치 고등학교 3년을 내내 공부도 하지 않고 놀 뿐만 아니라 주먹 좀 쓰던 녀석이 대입 한 달 전에 잠시 공부해서 서울대학교에 수석 입학했다는 소리로 들리기 때문이다. 집권당의 대표와 장관이 친히 나서서 소위 진보 쪽을 이렇게 찬사를 아끼지 않으니 놀랍다. 칭찬이라 새겨듣지 않으면 제 한계를 드러내는 고해성사로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역사교과서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밝혔는데도 시청률이 오르지 않는다. 국정화 교과서 '색깔론 편'은 재미가 없다. 그래서 새로운 이야기를 들고 나온다. 바로 향수 마케팅이다. 이번엔 박정희와 김일성을 붙였다. 김무성 대표는 '제33회 이북도민체육대회' 격려사에서 “교과서에 박정희 대통령의 사진 한 장 나오는데 우리의 원수, 김일성 사진은 세 장 나오는 역사교과서는 이제 없어야 하지 않나”고 말한다. 유관순 열사 사진 없는 걸 아쉬워하고, 김일성 사진 많은 것에 분노한다. 물론 사진 몇 장으로 생각이 바뀌지는 않는다. 자극적인 말이 필요할 뿐이다. 왜 아침 드라마가 그렇지 않은가? 갑작스런 전개와 자극적 설정, 스토리가 아니라 단순한 사건 하나하나가 중요하다.
 
새누리당은 말을 이야기가 아니라 광고처럼 한다. 적당한 시기에 적당한 말을 뱉는다. 감정에 호소하는 말과 이성에 호소하는 말이 부딪치면 감정이 앞선다. 더구나 새누리당의 화법은 강압적이다. 말이 대화지 강요다. 동네 건달과 말하며 이런 기분일까? 저 쪽에서는 주먹을 흔들며 할 말, 못할 말을 하며 고함을 지르는데, 이쪽에선 조목조목 반박을 한다.
 
국정화, 논쟁으로 이기려는 걸까?
 
주장을 하려면 근거가 있어야 한다. 주장하는 사람은 항상 자신의 주장에 대한 입증의 책임을 진다(onus probandi, burden of proof). 자기가 뿌린 씨는 자기가 거둬야 한다는 말이다. 받아들여지는 주장은 정합(整合)적이고 증거능력이 있으며 단순하다. 기존의 지식 체계와 잘 어울리거나 기존 체계가 잘못되었다는 걸 보여줄 때 정합적이라 한다. 기존 주장이 틀렸다고 새로운 주장이 옳은 건 아니다. 새로운 주장은 스스로 옳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아무리 정합적이고 증거력이 있어도 복잡한 가정을 해야 한다면 받아들이기 힘들다. 단순한 가설을 선호한다.

 
그런데 새누리당은 기존 체계가 잘못되었다고 주장할 뿐, 자신의 주장이  정당한 이유를 말하지 않는다. 그리고 9:1의 상황에서 긍정적인 증거보다는 부정적인 증거가 많을 게 분명하다. 마지막으로 많은 양의 부정적 증거는 주장을 복잡하게 만든다. 국정화는 어렵다. 시간이 지날수록 여론은 나빠지기만 한다. 총선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믿는 구석이 있는 걸까? 아마도 이 국면은 공천 시기가 끝나야 진정될 것 같다. 결국 자기 싸움에 역사를 이용하는 셈이다. 그러나 레임덕을 늦추려 국정교과서를 이용한다는 주장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어차피 공천을 하고 나면 이빨 빠진 호랑이가 되고 선거 결과가 좋지 않기라도 한다면 그 책임은 고스란히 무리하게 국정화를 몰아붙인 대통령에게 돌아가게 된다. 그래도 하려고 한다면 한 가지 방법이 있다. 그냥 밀어 붙이면 된다.
 
교과용 도서에 관한 규정에 의하면 교육부 장관이 정하여 고시하는 교과용 도서(4조)를 국정도서라 하고, 국정도서가 있을 때는 학교장은 국정도서를 사용해야(3조)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냥 하면 되는 일을 그저 요식 행위로 이런 저런 일을 벌이고 있을 뿐이다. 여론을 의식하지 않는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가장 중요한 건 교과서이다. 시간 내 교과서를 만들어 내는 일이 가장 급하다. 대부분의 역사 관련 학자들이 집필을 거부하니 고맙다. 집필을 거부하는 학자들을 적당히 무시하면서 국정화를 지지하는 소수의 학자들에게 집필을 맡긴다. 명분은 충분하다. 저들이 집필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또 약간의 지지가 필요하다. 그것도 광범위한 지지이면 좋다. 그래서 반상회에 국정교과서 자료를 배포한다. 그래도 뭔가 미흡하다. 아무래도 투입되는 인력이 적고, 무엇보다 시간이 촉박하다. 그래서 몰래 TFT(Task Force Team : 특수 임무를 위해 새로 구성한 조직)를 구성한다.

 
어디서 많이 봤다. 범행으로 치면 동일범 소행이다. SNS 팀을 꾸려 여론을 조작하고, TFT를 꾸려 일을 전개하는 방식이 지난 대선을 연상케 한다. 박근혜 정부는 '하면 된다'에 충실하다. 정말 하면 되는 줄 아는 모양이다. 물론 법원도 국정화보다 검인정제가 바람직하다는 걸 안다. 교육법 제 157조에 대한 [전원재판부 89헌마88, 1992.11.12] 판결은 국정교과서가 있을 때는 국정교과서를 우선 채택한다는 법이 우선이라는 얘기이지 국정화를 옹호하지는 않는다. 헌재의 결정 요지를 발췌 인용한다.

국정제도가 위헌은 아니더라도 그 제도가 교육이념과 교육현실에 비추어 볼 때 가장 합리적이고 바람직한 제도냐 하는 문제는 별개이다. 국정교과서는 운용 여하에 따라서는 오히려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을 제고시킬 수도 있다. 가정, 농업, 공업, 상업, 수산업 등의 비용은 많이 드나 수요가 적은 교과서를  국가가 책임지고 발행하는 것은 국민의 수학권을 실현시키고 헌법 제10조가 국가에 부과하고 있는 국가의 기본권보장의무를 성실히 수행하는 것이 된다.
 
즉, 국정교과서 제도는 공공재를 생산하는 제도일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정이 인정되는 경우 이외에는 국정제도 보다는 검·인정제도를, 검·인정제도 보다는 자유발행제를 채택하는 것이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고 있는 헌법의 이념을 고양하고 아울러 교육의 질을 제고할 수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국정제도를 채택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교과내용의 다양성과 학생들의 지식습득의 폭을 넓혀주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의 교과서만 고집할 필요는 없을 것이고, 교과서의 내용에도 학설의 대립이 있고, 어느 한쪽의 학설을 택하는 데 문제점이 있는 경우, 예컨대 국사의 경우 어떤 학설이 옳다고 확정할 수 없고 다양한 견해가 나름대로 설득력을 지니고 있는 경우에는 다양한 견해를 소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할 것이다.

헌재의 판단은 지극히 상식적이다. 교과서는 교과서 시장에 맡기고, 국가는 상품뿐만 아니라 학설이나 사상에도 다양성을 인정하되, 그 안에서 국정제도를 이용하라고 한다. 물론 이 정부에서는 의미 없는 얘기이다. 이 판결이 내려진 1992년 11월은 제 13대 노태우 대통령이 재임하던 시기이다. 이 대목을 기억하자. 참 어려운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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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혁 ┃ 청주복대동교회를 출석하고 있으며 (주)SK하이닉스 비정규직 노동자, 지역신문에 고정 시사칼럼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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