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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심과 치유 / 강용주

작성일 : 2015-07-14       클릭 : 265     추천 : 0

작성자 성공회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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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심과 치유

- ‘진실의 힘’ 경험을 중심으로

 
 
*강용주
 
 
1. 기억과 재트라우마(re-traumatization)

과거 확정판결을 대상으로 이뤄지는 재심재판을 받기 위해서는 형사소송법상 일정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과거 고문조작 사건의 경우 주로 “공소 제기된 수사에 관여한 검사나 사법경찰관이 그 직무에 관한 죄를 범한 것이 확정판결에 의하여 증명된 때”, 재심을 개시한다. 

 재심을 하기 위해서 피해자는 과거 고문실의 고통스런 시간 속으로 걸어 들어가야만 했다. 불법감금과 고문, 고통스런 기억을 전면에 떠올리는 과정이었다. 은폐되고 감춰진 진실을 찾아나가면서 그걸 공식적으로 드러내야 했다. 말해야했고, 말할 수밖에 없었고, 글로 표현해야 했다.
 
“고문 관련된 얘기나 장면이 나오면 내 몸이 그냥 어떡할 줄 모르는 거야. 살이 저절로 파박파박 뛰죠. 눈빛이 달라지고 머리 끝이 서고 긴장을 하게 되요. 고문했던 것이 머릿속에서 팽팽 돕니다. 발가벗기고 물고문, 전기고문, 성고문, 손톱 밑을 쑤시고, 깍지 끼고.. 지들 끼리 농을 지껄이고... 그때 생각이 떠오르면 아주 핏발이 서요!”_ 김양기, 제1기 고문치유모임
 
 피해자가 그 고통의 시간과 장소, 사람을 재현한다는 것은 다시 그 트라우마적 상황으로 돌아감(re-traumatization), 즉, 트라우마를 다시 생생하게 재경험하게 되는 끔찍한 상황을 의미했다. 고문 사실을 증언하는 과정에서 피해자들은 다시 그 시간으로 돌아가기 일쑤였고, 그때의 모멸감과 수치심, 분노, 두려움, 공포 등이 생생하게 살아난다고 했다. 재심을 위해 기록을 뒤지고 기억을 떠올리는 것, 그것은 피해자들에게 불법사실을 입증하는 문제를 넘어서서 현재진행형의 생생한 고통이었고,  그것이 바로 ‘고문증후군’(Post-touture syndrome), ‘고문후유증’이었다.
 
2. 재심과 치유

불법적인 절차와 불공정한 판결의 피해자가 겪고 있는 고통은 무척 다층적이다. ‘치유’란 고문이라는 트라우마를 거치면서 파괴된 자아와 일상을 회복시켜나가는 것과 아울러 트라우마를 일으킨 원인에 대한 진실과 정의를 회복하는 일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가해자에 대한 정당한 처벌, 재발방지에 대한 보증, 그 모든 것이 피해자의 치유를 가능하게 한다. 배상 역시 정의를 성취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1) 형사 재심


(1) 사건의 정치적 맥락 이해하기

재심을 준비하고 진행하는 전 과정은 피해자들이 고문과 허위자백으로 이어졌던 고문수사실의 어두운 시간들을 기억해내는 한편, 그것이 어떤 과정을 거쳐 간첩이라는 엄청난 사건으로 만들어졌는지를 알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한 개인이 ‘억울하게 당한, 말도 못할 사건’이라는,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고통을 객관적이고 정치적인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시대를 잘 못 만난’ 단순한 피해자에서 과거의 어두운 역사를 증언하는 생존자, 끝까지 진실을 파헤쳐나가는 진실의 담지자로서 공적인 지위를 획득해 나가는 과정으로 의미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사건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것이다.
 
“... 감옥살이를 하던 중 우연하게 헌법을 들여다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제12조에 ‘모든 국민은 고문을 받지 아니하며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아니한다’고 적혀 있었습니다.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고문을 받지 않아야 한다는데 우리는 고문을 당하고 간첩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헌법을 위반한 것인가요 아니면 우리 가족이 이 나라의 ‘국민’이 아니었단 말인가요?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저의 의문은 지금도 여전합니다. 이제는 판사님이 답을 해 주셔야 한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_ 박동운, 재심 최후진술 2009.10.9.
 
(2) 변호사, 치유자로서 역할
 
“인간으로서 도저히 감내할 수 없는 억울함과 고통을 이겨내며 끝까지 진실을 밝히기 위해 분투해온 피고인들 덕분에 과거 법조인들이 저지른 큰 오점을 일말이나마 씻어내고 법률가의 역할과 사명에 대해 다시 한 번 성찰할 기회를 준 것에 대해 피고인에게 감사해야한다” _ 조용환, 진도간첩단 조작사건 재심 변론, 2009
 
재판에서 피해자들이 법률과 사법절차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진실을 밝히는 토대였다. 이 과정에서 변호사의 존재와 역할은 무척 중요하다. 재심재판을 담당하는 변호사는 집단상담 진행과정 내내 참관자로 함께 했다. 재판의 전 과정에서 변호사는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 역할 뿐 아니라 인권의 옹호자로서, 인권 치유자로서 역할까지 부여받게 된다. 고문피해자로 살아온 피고인들의 삶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고문증후군에 대한 이해, 고문생존자를 대하는 태도 등 통상적으로 치유자에게 요구되는 공감과 내적성찰, 인간존중, 지속성, 고통 감내의 능력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변호사의 절대적 지지와 공감은, 사람에 대한 신뢰를 상실한 고문피해자들에게 신뢰관계를 회복하고 구축하는데 가장 큰 밑바탕이 되었고 그런 변호사의 존재로 피고인들은 법정에서 용기 내어 말할 수 있었고, 어두운 시대를 증언할 수 있었다.
 
(3) 고문수사관 증언 문제
 
피고인 : “때리고 물고문 해 놓고 얼굴이 얼마나 두꺼우면 아니라고 하시오.”
중앙정보부 김모 전 수사관 : “상황이 바뀌었다고 그런 말 하지 마시오. 고문한 사실 없습니다.”

 
2008년 12월 11일 서울중앙지방법원 법정. 28년 만에 열린 재심 법정에 검찰 측 증인으로 안기부 전 수사관이 나왔다. 고문수사관들은 한결 같이 고문 및 불법행위를 부인했다. 허위증언에 대해 변호인은 “증인을 위증죄와 법정모독죄로 처벌해 달라”고 주장했다. 그들의 뻔뻔한 태도는 역겨웠지만, 변호인의 치밀한 준비로 앞 뒤 진술이 모순되는 상황과 그들이 불법적으로 범한 범죄가 드러났다. 피고인들은 용기 있게 가해자들을 대면하고 맞섰다. 

한 생존자는 “비로소 얼굴을 들어 나를 고문했던 수사관을 당당하게 쳐다볼 수 있었다. 고문당할 당시 그는 나를 잡아먹을 수도 있는 호랑이 같았지만, 지금은 구차한 변명으로 일관하는 초라한 노인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 수사관이 얼마나 구타를 했던지 두려움과 공포로 수사과정 중 수사관의 얼굴을 단 한 번도 바라볼 수 없었다. 25년 만에 대면한 재심법정에서 그는 수사관의 얼굴을 똑똑히 쳐다보며 그 죽음 같았던 고통의 시간을 직면했던 것이다. 또 한 생존자는 “옛날 같으면 아주 서슬이 시퍼런 사람들인데, 이제는 사람 꼴이 아주 형편없다. 발뺌하는 모양이 아주 궁색해보이고. 그 사람보다 내가 더 훌륭한 삶을 살아왔다는 생각이 든다”고도 했다. 
 
(4) 검찰 항소 상고 _ 재판 끌기

재심을 청구하면 법원은 검찰과 재심청구인에게 의견을 요청한다. 대부분의 사건에서 검찰은 “재심개시청구를 기각함이 마땅하다”는 일률적인 의견서를 법원에 제출했다. 재심의 사유가 되는 수사기관의 불법체포, 감금, 독직폭행, 고문, 허위공문서 조작 등이 국가기관에 의해 이미 밝혀진 경우도 예외가 아니었다. 재심개시 결정에 반대 또는 소극적 의견을 피력하던 검찰은 재심재판이 시작되면 피고인의 고문 주장을 여전히 의심하고, 과거의 공소사실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으려 한다. 법원의 무죄판결이 선고 난 다음, 검찰은 항소나 상고를 한다.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려고 노력하거나 기존 공소사실의 적절성에 대한 의문 없이 그저 형식적인 태도로 일관하더니 무죄판결 난 결과에 대해서는 불복하는 것이다. 피해자들은 “또 뭐가 잘못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불안하고, 자신의 운명이 또다시 “칼자루 쥔 사람”한테 있다는 생각에 화가 난다.
 
“재심 재판과정에서는 검사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법원의 무죄 판결이 선고되니까, ‘고문을 당했는지 의심스럽다’며 상고를 했습니다. 의문스러운 점이 있었다면 재판에서 말하고 밝혔어야 합니다. 정작 재판에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다가 항소하고 상고하는 것은 오로지 무죄를 뒤로 미뤄보려는 술책으로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1982년 제가 검찰에서 조사받을 때가 떠오릅니다. 보안대에서 진술한 내용을 부인하자, 검사는 “이렇게 부인하면 다시 보안대에 보내버리겠다”고 호통을 쳤습니다. 지금 검사의 모습이 그때 검사와 다를 게 뭐가 있습니까. 몸서리 쳐집니다.” _ 최양준, 검찰 상고에 대한 의견서, 2011.1.18.
 
(5) 무죄판결문

“본 재판부의 법관들은 과거 잘못된 역사가 남긴 가슴 아픈 교훈을 깊이 되새기며 열린 법정에서 피고인들의 진정 어린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실체적 진실 발견에 만전을 기해 이 사건과 같은 불행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각오를 새로이 하는 한편, 그 동안 형언하기 어려운 고통을 겪으며 인고의 세월을 지낸 피고인과 그 가족들에게 모두의 마음을 담아 심심한 위로의 뜻을 밝힌다. 이 판결로 인하여 사법부의 그늘진 역사를 드러냄으로써 정의가 넘쳐나는 밝은 미래로 나아가는데 소중한 희생을 한 피고인과 그 가족들에게 명예가 회복되어, 이미 고인이 된 피고인의 넋이나마 조금이라도 위안을 얻고, 가족들 또한 이 땅에서 평화롭고 복된 삶을 누리시길 진심으로 기원한다.” _ 피고인 김정인에 대한 서울고등법원 제8형사부 판결, 2009재노3 2010.7.16.

 
재심재판에서 무죄판결을 선고한 법원은 대체적으로 판결문에 “국가가 범한 과오에 대하여 용서를 구하고”, “인권의 최후 보루로서 역할을 다할 것을 다짐”한다는 내용을 명시하기도 했다. 법원의 이와 같은 태도로 피고인들은 오랜 고통의 세월을 위로받기도 한다. 무죄를 이끌어낸 힘은 두려움, 고립, 허위와 맞서 싸우면서도 진실을 포기하지 않고, 마침내 진실을 찾은 피해 당사자의 건강성이다. ‘무죄’라는 재심 판결은 그것을 확인하는 증명서였다.
 
3. 고문생존자의 회복 _ 진실의 힘과 삶의 의미 복원
 

“우리가 고통과 절망의 늪에 빠져 있을 때 누군가가 내민 도움의 손길을 붙잡고 희망을 찾았듯이 우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국가 폭력으로 고통 받는 분들에게 위로와 격려의 손길을 내밀 것입니다. 비록 가진 것은 없지만, 인간의 삶은 폭력보다 강하며 국가권력보다 귀하다는 사실을 이 사회에 보여드리고 싶은 것입니다.”_ 박동운, 2012, 진실의힘 이사장 취임식


 
트라우마 치유적 관점에서 볼 때, 피해자가 인권옹호 활동을 벌여나가는 것은 가장 바람직한 치유의 방식이자 결과일 것이다. 자신의 고통에 의미를 부여하고 사회화시킴으로써, 다시는 그와 같은 국가폭력이 재발하지 않도록 스스로 감시자가 되고 인권옹호자가 되는 것이다. 고통 속에 갇힌 나약하고 굴욕당한 수동적인 존재인 피해자(victim)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자신의 인생을 통제할 수 있는 의지와 능력을 가진 생존자(survivor)가 되는 것이다. 나아가 외상후 성장(posttraumatic growth)을 이뤄 자신의 고통을 치유의 원천으로 삼아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상처입은 치유자'(Wounded Healer)로 자기 정체성을 형성한다.


그런 점에서, ‘진실의 힘’은 고문생존자의 정체성을 새롭게 만들어낸 모델이라 할 것이다. ‘진실의 힘’은 고문피해자 심리상담, 국가폭력 피해자 생활 및 의료지원, 치유센터 건립운동, 고문방지협약 이행감시 활동, 고문조작사건 진상규명 지원, 유엔 고문생존자 지원의 날 기념대회, <진실의힘 인권상> 시상 등 인권옹호 활동을 적극적으로 벌여왔다. 앞으로도 고문과 국가폭력을 낳은 법, 정책, 관행을 시정하고 사회의 전반적인 인권의식을 높이는 등 인권침해가 재발하지 않도록 근본적인 문제제기와 아시아 국가폭력 고문피해자들을 돕기 위한 사업도 점차 확대해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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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폭력 생존자와 그 기족을 위한 치유센터인 광주트라우마센터 센터장이며 아나파의원 원장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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