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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선교에 대한 한 평신도의 단상 / 김정원

작성일 : 2015-02-05       클릭 : 488     추천 : 0

작성자 성공회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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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회 사회선교에 대한 한 평신도의 단상
 
 

김정원*

 
 
1.

그 날이 언제였는지 모르지만 아마도 내가 꾸준히 교회를 나가기 시작한 것은 대략 1988년쯤 되지 않을까 싶다. 그러고 보니 살아온 내 인생의 반 이상을 성공회와 함께 한 셈이다. 그 중 10년 6개월에 이르는 내 생애 시간을 이른바 성공회 사회선교의 실무자로서 보냈다. 이제는 그렇게 보냈던 시간도 점차 멀어지고 있지만 여전히 성공회 교인이며, 성공회에서 적지 않게 운영하고 있는 지역자활센터들의 대표체인 한국지역자활센터협회에서 최근까지 몸을 담았던 덕분에 성공회의 사회선교 활동이 벽 너머 다른 세상은 아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성공회 사회선교에 대해 무엇인가 이야기를 해달라는 부탁을 받았을 때 흔쾌히 수락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현재의 내 처지가 ‘사실에 대한 객관적 분석’을 바탕으로 하지 못하고, ‘제한된 나의 경험과 생각’이 중심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절하는 방법을 인생에서 잘 배우지 못한 탓에 자료를 찾고 개인의 경험을 재구성하고 생각을 정리해 자판을 두드리는 수고를 해야 했다. 그 말이 맞다. 머리와 마음이 문제일 때 고생은 몸이 한다. 기우에서 하는 말이지만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성공회 사회선교의 실무자라는 생애 경험을 가진 이가 털어놓는 개인의 이야기로 접근해주기를 부탁한다.
 
2.

일단 성공회 사회선교란 무엇을 말하는지를 살펴보자. 자료를 찾아보니, 사회선교는 하느님의 선교(Missio Dei)에 동참하는 것이라고 한다. 하느님의 선교는 선교의 주체를 하느님 자신으로 이해하고, 선교의 목적을 모든 피조물에 대한 그리스도의 지배권을 수립하는, 곧  ‘하느님나라’의 실현에 두는 것을 말한다. 하느님의 선교는 한국에서 빈민선교와 민중교회가 등장하고 민중신학이 태동하는데 중요한 기반이 된 것으로 나는 이해하고 있다. 성공회 사회선교에서 중요한 역사적 기점이 되는 나눔의 집이 민중교회의 한 형태로 이해되고 있는 점은 이렇듯 하느님의 선교에 대한 한국의 역사적 맥락과도 관계가 깊다고 본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성공회의 사회선교라 할 때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상이 존재한다. 나눔의 집, 지역자활센터, 지역아동센터, 각종 쉼터, 각종 청소년 관련 조직들, 푸드뱅크, 사회복지관 등. 이 중 나눔의 집을 제외하고는 모두 사회복지서비스를 공급하는 조직들이다.  초창기 신앙공동체와 삶의 공동체를 표방했던 ‘나눔의 집’조차도 이제는 대부분이 사회복지서비스를 공급하는 각종 조직을 운영하는 모기관으로서의 모습이 강하다. 성공회는 사회선교를 ‘하느님나라의 실현’을 꿈꾸는 활동으로 규정하지만, 현실은 사회복지서비스를 공급하는 활동으로 채워져 가고 있으며, 그것이 굳어져 가는 느낌이다.

내 경험으로 볼 때 한국에서 사회복지서비스를 공급하는 활동을 한다는 것은 상당히 정형화된 활동이다. 대체로 정부의 재정적 지원을 받고, 그 대가로 일정한 통제를 감수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현장의 창조적 태도는 억눌리기 일쑤이며, 표준화된 성과를 내야 한다. 현장의 실무자들 또한 미국식의 표준화된 교육을 받고 사회복지를 접근하는 경우가 많으며, 서비스의 공급 과정에서 기관 내 업무를 중심으로 한 위계적인 조직화가 불가피하다. 또한 서비스 공급 행위는 활동이기보다는 업무이고, 그래서 임금노동이 된다.

물론 사회복지서비스를 공급하는 특성상 가난한 자와 약한 자들이 함께 하는 이들이 되며, 그 자체로 사회선교의 중요한 행위이기도 하다. 그러나 사회복지서비스의 공급이 사회선교로 동일시될 수는 없다. 성공회의 사회선교가 실제 주장하는 바와 달리 현실이 사회복지서비스를 공급하는 활동으로 굳어져 가는 현실은 자칫 성공회 내외에 성공회의 사회선교를 좁은 틀로 이해하는 분위기를 정착시킬 수 있다. 게다가 사회복지서비스는 그것이 공급되는 과정에서 정형화를 야기하게 되고 정부의 통제, 성과의 압박, 위계적인 조직화, 활동이 아닌 업무는 그것이 복합적으로 얽히면서 실제 현실에서는 사회선교라는 의미를 차츰 탈각시키는 힘으로 작동할 수 있다.

김한승 신부의 <교단 사회선교 패러다임의 변화를 꿈꾸며>라는 글에 의하면 천주교 도시빈민운동이나 개신교 민중교회가 빈민지역을 떠나가던 시기에 성공회는 나눔의 집이라는 간판을 짊어지고 현장을 향했고, 이후 나눔의 집은 기독교 전 진영의 부러움을 사는 대안적 선교 모델로 부상했었다. 또한 성공회 내부의 많은 이들이 성공회는 비록 작은 교단이지만 역사적으로 사회선교에서 두드러진 활동을 보였다고 말하곤 한다. 그러나 지금 나눔의 집은 대안적 선교 모델인가? 성공회의 사회선교 활동은 다른 누군가에게 시사점을 줄 수 있는 중요한 장점이 있는가? 아마 어느 시기에는 대안이었을 수 있었고, 중요한 장점이 있었을 것이고, 지금도 이런 면모가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오해였으면 좋겠지만 상당기간 실무자로 일했던 평신도인 내 눈에는 대안적이지도 않고, 특별한 장점도 없는 그저 한 기독교 교단의 평범한 사회복지서비스 공급 활동 이상이 아닌 것으로 비쳐진다. 아마도 사회선교의 무게 중심이 사회복지서비스 공급으로 쏠리면서 불가피하게 정형화된 것이 원인일 수 있겠다. 그러나 그렇게만 정리하기는 아쉽다. 그래서 혹시 이런 것들이 아닐까 하는 원인을 좀 더 찾아봤다.
 
3.

첫째, 과연 성공회 교단 내에 성공회 사회선교에 대한 미션의 공유가 존재하는지 의문스럽다. 물론 자료를 찾아보면 이른바 미션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구나 싶은 것들이 존재하기는 한다. 나눔의 집이 교단 내 주목의 대상이 되면서부터 당시 나눔의 집을 이끌었던 성직자들이 제기했던 것들도 그 중 하나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들이 교단 내에서 사회선교 활동을 하는 이들에게 체계적으로 전달되어왔다고 보기는 어렵다. 내 경험으로 봐도, 나는 지금까지 그런 것들을 몇몇 개인의 의견으로 이해했었으며, 기관장으로 일을 할 때조차도 그것을 함께 하는 이들에게 전달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지 못했었다. 혹자는 나의 게으름을 탓할 지도 모르겠으나 성공회 교단 내 사회선교 활동을 하는 이들을 붙잡고 성공회 사회선교의 미션이 무엇이냐고 물어본다면, 자신 있게 답변할 수 있는 이들을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것인데, 무엇보다도 미션은 사회선교 활동을 하는 이들의 활동 방식과 태도를 규정하는 일차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설사 전체 실무자들 모두가 공유하기는 어렵다 하더라도 기관장 등 책임 있는 역할을 맡고 있는 이들은 이를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내 경험으로 볼 때 미션의 공유가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

둘째, 성공회 교단 내에 사회선교 활동가의 재생산(교육) 시스템이 존재하는지 의문스럽다. 물론 워크숍을 비롯한 몇몇 프로그램이 운영되기는 한다. 그러나 그 정도를 가지고 재생산(교육) 시스템이 존재한다고 할 수는 없다. 기관장이 되려면 갖춰야 할 사회선교에 대한 이해 수준과 업무 역량이 있을 것이고, 중견 실무자로서 역할을 하려면 그에 부합한다고 교단에서 인정하는 유무형의 자격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이를 위해서는 그것이 가능하도록 지원하는 재생산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내 경우를 보더라도 교구 차원의 워크숍 몇 번 참여한 것을 제외하고는 체계적인 시스템에 입각한 피교육 경험이 없다. 그러니 성공회 외부에서 내가 습득한 기준을 가지고 나의 활동 방식을 스스로 만들어나갈 수밖에 없었다. 결국 활동가가 자신의 역량을 제고하기 위한 노력을 개인에게 맡겨버린 셈이다.

셋째, 성공회 교단 내 각 사회선교 활동 간 유기적 시스템이 존재하는지 의문스럽다. 가령, 전국적으로 성공회가 운영하는 지역자활센터나 시니어클럽은 적지 않은 숫자이다. 만약 이들 간에 업무상의 협조가 이뤄지고 공동의 실천이 조직된다면, 취약 집단의 생산 활동을 통한 결과물은 보다 나아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교단 내에서 이를 위한 조직적인 시도는 경험하지 못했었다. 사회선교기관이 몇 개가 된다는 가시적인 양적 지표로 성공회가 사회선교 활동을 통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 아직까지의 수준인 것으로 보인다.

넷째, 말하기 조심스러운 부분이지만 아직까지 비쳐지는 모습은 성직자가 우위에 서는 사회선교 활동이라는 점도 지적할 수 있다. 아주 오래 전에 이재복 신부는 성공회신문에 기고한 글을 통해서 남미의 기초교회공동체를 사례로 들면서 ‘평신도 지도자의 역할’을 눈여겨봐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또한 성공회 내에서 평신도가 기관장으로서 역할을 하는 경우가 점차 증가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여전히 관련 분야에서 경험이 없거나 아주 미흡한 경험만 했음에도 불구하고 기관장으로 임명되는 성직자들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평신도라면 불가능한 일이다. 성공회 내 사회선교 기관의 실무자들은 모두 어떠한 평가를 거쳐서 그 자리에 위치한다. 그것이 구성원들 모두에게 공정하게 적용되어야 하지 않을까? 성직자와 평신도의 차이는 역할의 차이로 나는 이해하고 있다. 그것은 성공회에서 배운 것이다.

다섯째, 작은 교단임을 강조하고 교회의 양적 성장에 무관심함을 주장하지만 성공회 사회선교 활동을 보면, 과연 양적 성장에 관심이 없었는지 의문스럽다. 양적 성장이 꼭 나쁜 것은 아니다. 어쩌면 그것은 열정의 반영일 수도 있다. 그러나 성공회 수첩에 소개되어 있는 그 많은 사회선교기관들을 보면, 각 지역의 성공회가 이를 감당할 수 있는 역량이 되나 하는 생각이 종종 든다. 실제 내부의 문제로 지역자활센터를 반납한 사례들도 몇 곳 있다. 분명 외환위기 이후 정책 환경의 변화는 사회선교기관의 숫자를 늘리는데 큰 기회였다. 그러나 성공회 내부 시스템이나 인적 역량 수준과 사회선교기관의 숫자는 균형이 이뤄져야 한다고 본다. 덧붙이자면 사회복지서비스 공급에서의 양적 성장이 이뤄지다보니, 사회복지서비스 공급이 아닌 다른 중요한 영역들에서 사회선교 활동은 고민의 수준이 덜하지 않는가 하는 기우도 든다.
 
4.

돌이켜볼 때 우연히 뛰어들었던 나눔의 집 실무자로서의 삶은 그 후의 내 인생을 결정지었다고 할 수 있다. 아마 이런 인생 경험이 나만의 것은 아닐 것이다. 초기에는 성공회 사회선교 활동에 많은 자부심이 있기도 했다. 그러나 거리를 두고 볼 수 있게 된 지금 자부심은 과거의 역사에 기대고 있을 뿐, 현재의 것은 더 이상 아니다. 오히려 주변에서 걱정하는 소리를 듣기까지 한다. 가끔씩이라도 그런 소리를 들으면 말한 이의 주장이나 생각이 부정확한 근거를 가지고 있더라도 마음이 별로 좋지 않다. 서두에서 말한 것처럼 여기에 쓴 글은 ‘제한된 나의 경험과 생각’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러니 내 주장이 옳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성공회의 사회선교 활동이 좀 더 대안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또는 어느덧 초창기 문제의식을 잊어가고 있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 든다면, 한 번쯤 그간의 활동을 점검해볼 필요는 있다고 본다. 이 글은 그랬으면 하는 바람을 담은 주제넘은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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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원(요셉)은 전주교회를 다니고 있다. 전주 나눔의 집에서 실무자로 사회선교 활동을 하면서 지역자활센터와 노숙인쉼터의 기관장을 역임했다. 사회적경제 및 노동연계복지를 주제로 해서 몇 권의 책을 쓴 적이 있으며, 현재는 전북대학교 연구교수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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