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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회 밭다리 걸기 / 선우미정

작성일 : 2015-02-05       클릭 : 517     추천 : 0

작성자 성공회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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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회 밭다리 걸기
 
 
선우미정*


 
 
나는 날라리 교인이다. 그냥 날라리면 다행인데 고약한 노마드 교인이기도 하다. 덕분에 만년 아마추어다. 성공회를 만난 지 어느새 ‘10년이나’ 되었지만 꼬박꼬박 예배에 참석한 게 아니므로 만으로 치면 3~5년쯤? 대리나 과장급일 터다. 뭘 좀 아는 것 같은데 깊이 아는 건 없고, 몸에 익은 것 같은데 어느 날 보면 또 아닌 것 같은…… 그런 상태다. 또 누군가가 “성공회는 어떤 데에요?” 하고 물으면 대한민국 사람 절반이 아는 그 ‘흔한’ 대답밖에 할 줄 모르는 풋내기다. 성공회 교인인 듯 아닌 듯, 여전히 그런 세월을 보내고 있다. 대체 이 모호함의 정체는 뭘까? 종종 내 자신에게 묻는 질문이다. 하지만 오늘은 “쾌청하지 못한 이 상황은 전적으로 나의 무지와 게으름과 불성실함 탓이다”라고 말하지 않을 생각이다. 크든 작든 문제를 자꾸 개인의 영역으로 돌리는 것은 건강한 공동체가 할 일이 못 된다. 또 “성공회는 이런 점이 참 좋아요”라고 고백할 생각도 없다. 아직은 불편함이 가시지 않은 탓이다. 나아가 “이 투덜거림은 세상과 주님에게 헌신하는 사제님들과 아무 관계없음을 밝힙니다”는 면피성 멘트도 덧붙이지 않을 작정이다. 많은 경우 형식이 내용을 규정하니까. 자, 결론은 “마음 내키는 대로, 내가 보고 느낀 대로 말하자”이다. 시골구석 이름 없는 필부의 구시렁거림 따위, 뭐 대수이겠나.

 
사랑스러운 성공회, 딱 거기까지

성공회는 장점이 많은 교단이라고 한다. 가장 민주적이며 제도가 진보적이라고 한다. 구교와 신교의 좋은 점만 두루 지녔으며,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라고 한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침 없이 보편적 진리를 추구한다고 한다. 기도와 영성을 중시한다고 한다. 옳은 말이다. 내가 성공회로 발길을 튼 맥락과 비슷하다. 사회 참여가 많은 교회에 나가자니 몸이 안 따르고, 박수 치며 울고 웃는 교회에 나가 설교를 듣자니 온몸이 오그라들고, 그 어디에도 안 가자니 어릴 적부터 몸에 밴 의식이 꿈틀거리고……. 그런 와중에 성공회를 만났다. 감동적인 만남이었다. 경건한 성찬례가 있는 교회, 자매님이나 형제님이라는 호칭이 어색하지 않은 곳, 따뜻한 밥과 교제가 있는 사랑스러운 곳, 가정을 가진 신부가 사제인 교회, 교단이 운영하는 대학에 바른 목소리를 내는 학자들이 있는 곳.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시간이 흐르고 감동의 물결이 잦아들 무렵 다른 모습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역동성을 잃은 교회, 배려는 있지만 깊은 관심이 없는 교회, 자존심은 강하지만 자존감이 떨어지는 교회, 바닥의 경계선이 좀 높은 교회, 하나인 듯 여럿인 교회, 선민의식이 있는 교회, 그들만의 리그를 펼치는 교회, 안전과 안정 지향적인 교회, 자기 위안에 빠진 교회, 전통에 비해 상대적으로 비전과 기획이 부족한 교회, 프로페셔널하지 못한 교회. 그리고 마침내 2014년 4월, 전대미문의 어둠이 세상을 덮었을 때 보여준 성공회의 반응은 의혹을 증폭시켰다. 우리는 왜 가장 먼저 광야에 설 수 없었을까?
 
세상을 향해 눈을 들리라

예수를 ‘주님’으로 고백한 자 두세 명이 모여 예수가 간 길을 걷는 것. ‘모이’지만 고여 있지 않고, ‘걷지’만 따로 가지 않고 한길을 가는 사람들의 모임. 내가 생각하는 교회의 모습이다. 모여서 한 길을 가는 데에는 어려움이 따른다. 한 길을 가려면 모두가 동의하는 목적(목적지)이 분명해야 하고, 그에 따른 다양한 방법론이 있어야 하는 탓이다. 예수에게는 아주 큰 기획이 있었다. ‘인류의 구원과 하느님 나라의 완성’이다. 세부 계획도 있었다.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그토록 ‘구체적’인 스승의 가르침을 제대로 실천하고 있는가? 매 주일 “나가서 주님의 복음을 전합시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를 암송하면서 ‘어떻게’라는 구체적인 계획을 마음에 세우고 있었던가? 혹시 ‘우리를 사랑하는 사람들’만을 위해 계획을 세우지는 않았는가, 그러면서 만족한 것은 아닐까? 잠깐만 세상을 향해 눈을 들면, 교회가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들이 눈 더미처럼 쌓여 있는 것을 보게 되는데도! 줄어들지 않는 미혼모와 노숙자들, 점점 더 많이 버려지는 아이들, 빈곤과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 자살하는 노인들, 복지사각지대에 놓인 가정들, 농촌으로 시집와 가부장적 폭력에 시달리는 외국인들, 제도권 교육에 적응하지 못하는 청소년들, 밥을 굶는 학생들, 차라리 학교에 가는 게 좋다는 맞벌이 가정의 자녀들, 시급 5천 원에 목숨을 걸고 매연이 가득한 쇼핑몰 주차장에 서 있는 아이들, 차별과 폭언․폭행에 시달리는 수많은 노동자들…… 그리하여 마침내 ‘붙잡을 손’ 하나 없어 살아갈 이유와 희망을 잃은 이웃들. 어떻게 하면 이들과 함께 갈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이들에게 웃음을 돌려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우리 모두가 ‘사람답게’ 살 수 있을까. 그러기 위해 교회는 무엇을 해야 하나? 모든 교회가 세워야 할 기획과 작은 계획들은 바로 이 지점에서, 제대로 보아야 할 곳을 정확하게 돌아보는 지점에서 시작되는 게 아닐까? 교회는 쇼윈도 안에 있어서는 안 된다. 교회는 쇼윈도 밖에 서 있는, 그 안을 들여다보며 손을 호호 불고 있는 성냥팔이 소녀를 안으로 불러들여야 한다. 지금, 성공회의 시선은 어디를 향해 있을까?
 
사제가 행복한 교회

성공회에 발을 들여놓을 때까지만 해도 나는 신부님들이 교구로부터 경제적인 보살핌을 받는 줄 알았다. 그래서 마음이 많이 놓였다. 각종 헌금 부담으로 인한 유혹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는 안도감도 있었다. 물론 내 생각이 틀렸다는 건 바로 알게 되었지만……. 여타 개신교 교회에 비해 상대적으로 교인 수가 적고, 상대적으로 충성도가 낮은 이들을 구성원으로 둔 성공회 사제들은 한마디로 우울할 것이다. 지아비이자 아버지이기에 더 그렇다. 하지만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사정이 나아질 것 같지는 않다. 갈수록 더 어려워질 것이다. 인간관계는 점점 각박해지고, 우리 모두 앞이 보이지 않는 삶을 하루하루 견뎌나가는 중인 터에, 과연 어느 누가 다른 누구를 위하고 지속적으로 돌볼 수 있겠는가? 선택이 어쨌다느니, 소명이 어떻다느니 하는 하나마나한 이야기는 그만두자. 비자발적인 결핍은 그가 누구이든, 어떤 직업에 종사하든 삶에 좋지 않은 영향을 주게 마련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므로 직장인들의 급여에 기본급으로 책정되는 부분이 있는 것처럼 성공회 소속 ‘모든 사제’에게 기본급이 보장되었으면 좋겠다. 4대 보험도 보장되고 말이다. 중요한 것은 반드시 ‘모든’ 사제가 보호받아야 한다는 점이다. 기본이 해결되지 않으면 불안해지고, 불안은 영혼을 잠식하게 되고, 불안한 영혼은 아무 것도 할 수 없으니까,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으니까. 실제로 사제는 21세기 유망 직종을 소개할 때 당당하게 이름을 올리는 직업이다. 충분히 그럴 만하다. 사람의 마음과 정신의 건강을 돌보는 것은 병원에서 건네는 영혼 없는 도파민과 세로토닌이 아니니까. 그 일은 전적으로 사제들의 몫이다. 사제는 인류 최고의 의사이자 치유자였던 예수의 제자들이 아니던가? 행복하고 건강 사제가 건강한 영혼을 만든다. 당당한 사제가 에너지 넘치는 공동체를 이끌 수 있다.
 

* * *
 
주절거리고 보니 선무당이 사람 잡을 기세다. 뭐 어떤가. 지금의 내 마음이 그런 것을. 노마드 교인 주제임에도 자꾸 눈에 밟히는 게 있는 것을. 나는 계속 찾을 것이다. 에너지가 넘치는 교회, 행복한 사제와 그의 건강한 공동체가 있는 교회, 공동체를 위해 기도하고 연구하느라 야근을 불사하는 사제가 있는 교회, 낮은 곳으로 내려가는 교회, 감상적이 아니라 감성적인 교회, 겸손하고 온유한 교회, 권위를 내려놓은 교회, 눈과 마음이 열린 교회, ‘우리가 거저 받은 것처럼’ 거저 주는 교회, 오직 행함과 진실함이 있는 교회…… 이런 모습을 가진 교회를 만날 때마다 나는 걸음을 멈출 것이다. 노마드의 옷을 벗고 그 안에 들어가 사제와 함께, 교우들과 함께 신앙과 삶을 나눌 것이다. 짧지 않은 인생길에서 만나는 그런 곳이 모두 성공회 소속 교회라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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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우미정 : 신명은 예로니모, 현재 도서출판 들녘 편집장으로 있으며, 파주 우물교회에 출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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