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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7주일 "하느님이 자비하신 것처럼 우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됩시다!"(루가6:36)

작성일 : 2019-02-22       클릭 : 101     추천 : 0

작성자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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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이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김은경 드보라 신부

 

우리는 살다보면 다른 사람으로 인해서 손해를 보거나 피해를 입을 때가 있습니다상대방이 피해를 입힌 것에 대해서 사과하고 보상한다면 해프닝이라고 생각하고 넘어갈 수 있지만 발뺌하고 도리어 큰 소리를 치거나 뒤집어씌우고 사과하지 않으면 그때부터는 나에게 피해를 입힌 상대방에 대한 원망과 분노모욕감혐오감두려움좌절감 등 부정적인 감정이 올라옵니다그때부터는 스스로 자신을 보호해야겠다는 방어심리가 발동합니다어떻게 해야 피해를 보상받을 수 있으며 나의 무고함을 밝힐 것인지 궁리하기 시작합니다.

 

이게 우리들의 일반적인 반응일 것입니다이 때 중요한 것은 내가 정당하게 대우받았느냐 아니냐가 됩니다그런데 이처럼 정당성에만 집착하다보면 상황에 끌려 다니게 되고 나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우리가 오늘 읽은 성서 말씀들은 고난이 찾아왔을 때 나를 잃어버리지 않고내가 가야할 길을 가는 방법이 무엇이며 그게 어떻게 해서 가능한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첫 번째 구약 말씀은 요셉을 통해서 이 방법을 보여주었습니다요셉은 우리가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나의 정당함을 주장하는 것에 매이지 않을 수 있는 다른 길을 보여주고 있습니다요셉은 어린 시절에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 했습니다그는 꿈을 자주 꾸었습니다.그는 자신이 형들보다 더 높은 지위를 차지하는 꿈을 꾸고 자랑하다가 그만 형들의 시기심을 자극했습니다.

 

시기심에 사로잡힌 형들은 요셉을 죽이려고 하다가 이집트로 가는 상인들에게 은 이십 냥을 주고 팔아 넘겼습니다그렇게 이집트로 팔려 온 요셉은 이집트의 왕 파라오의 경호대장 보디발의 집에 다시금 팔려갔습니다하지만 하느님의 은총으로 요셉은 보디발의 총애를 받았습니다.

 

이제 고난이 끝나나 싶더니 이번에는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을 유혹하기 시작했습니다요셉은 하느님께 범죄 할 수 없다고 말하며 단호하게 그 유혹을 뿌리쳤습니다하지만 보디발의 아내는 요셉이 자신을 겁탈하려 했다고 누명을 씌웠습니다결국 요셉은 감옥에 갇혀야 했습니다이처럼 끝나지 않을 것 같이 이어지는 고난 가운데에서도 요셉은자신과 함께 하시며 돌봐주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잊지 않았습니다.

 

요셉이 옥살이를 하고 있던 어느 날 이집트 왕 파라오는 곧 다가올 풍년과 기근을 예견하는 꿈을 꾸었습니다그런데 온 나라에 그 꿈의 뜻을 해석할 사람이 없었습니다그때 마침 꿈의 사람 요셉이 파라오의 꿈을 해석할 기회를 얻었습니다요셉은 파라오의 꿈을 해석하며 앞으로 다가올 기근에 대비해서 식량을 비축할 것을 제안했습니다파라오는 요셉의 말에 따랐습니다그 덕분에 이집트는 극심한 기근에 대비할 수 있었습니다이 일을 계기로 파라오는 요셉을 이집트의 총리로 임명했습니다노예로 팔려와서 십수년의 세월이 지난 때였습니다.

 

우리가 읽은 창세기 45장은 이집트에 노예로 팔려와서 온갖 수모를 겪고 우여곡절 끝에 이집트의 총리가 된 요셉이 자신을 팔아 넘겼던 형들과 재회하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기근은 이집트 전역 뿐 아니라 이스라엘 땅 전역에 이르고 있었습니다요셉의 형들도 식량을 구하기 위해서 이집트로 와야 했습니다.그렇게 해서 요셉은 이십여 년 만에 형들을 만났습니다그때 요셉의 심경이 어땠겠습니까...

만약 제가 요셉이었다면 형들을 원망하면서 당신들은 천벌을 받은 것이라고 말하며 망신을 주고 싶었을 것 같습니다하지만 요셉은 복수도 망신도 아닌 용서를 선택했습니다.

 

물론 요셉이 형들을 용서하기까지는 이십여년의 세월이 필요했습니다요셉은 형들이 자신에게 죄악을 저지르지 않은 듯이 덮어놓고 용서하지는 않았습니다그는 형들이 지난날 자신에게 행했던 일을 뉘우치고 있는지 알고 싶었습니다그래서 그는 형들을 간첩으로 몰아서 감옥에 가두어도 보고자신을 버렸던 형들이요셉과 같은 어머니에게서 난 동생 베냐민을어떻게 대했는지 알고 싶어했습니다그래서 그는 형들에게 베냐민을 데려오라고 했습니다.

 

베냐민이 이집트로 요셉을 만나러 왔을 때요셉은 신하를 시켜서 베냐민의 봇짐에 요셉 자신이 가장 아끼는 은잔을 몰래 넣으라고 했습니다마치 베냐민이 그것을 훔친 것처럼 꾸민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형들이 도둑으로 몰린 베냐민을 보호하는지 아니면 요셉에게 했던 것처럼 베냐민을 버리는지 지켜봤습니다그 과정에서 요셉은 형들이 지난날의 죄악을 뉘우치는 모습을 지켜봤습니다이제 형들은 베냐민 대신 자신들이 벌 받겠다고 나섰습니다요셉은 형들이 형제를 아끼고 있으며 연로한 아버지 야곱의 마음도 헤아린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그제서야 그는 형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밝혔습니다.

 

만약 요셉이 지나간 과거에 대한 원한에 사무쳐 있었다면 형들이 자신에게 와서 도움을 청했을 때 식량을 내주지 않고 죽게 내버려두었을 겁니다하지만 요셉은 형들이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일과 이집트의 노예로 팔려와서 고난을 겪었던 일 그리고 파라오에게 발탁되어 총리의 자리에 오르게 되기까지 자신이 겪은 모든 일들을 하느님의 섭리로 받아들였습니다.

 

꿈의 사람 요셉은 하느님과 함께 고난을 통과하면서 자비로운 사람으로 성장했습니다노예로 팔려오기 전 어린 요셉은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자기애적인 사람이있었습니다.

 

하지만 고난을 통과한 요셉은 하느님의 시선과 하느님의 마음으로 자신과 세상을 깊이 바라볼 줄 아는 자비로운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을 하느님의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됐을 때 요셉은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형들의 잘못을 용서할 수 있었습니다그런 요셉을 통해서 그의 형들까지 자신들의 죄악을 뉘우치고 하느님이 자신들을 돌봐주신다는 걸 체험했습니다.

 

요셉이야기는 우리에게 상대방의 태도에 따라서 흔들리지 말고깨진 관계를 온전하게 회복시키는 하느님의 다스리심을 구하고 찾으라고 말합니다예기치 않은 고난이 찾아왔을 때 원한을 품고 앙갚음하려다보면 상대방에게 끌려 다닐 수밖에 없습니다상대방에 매여서 내 삶을 살 수가 없습니다그러다보면 깨진 관계가 회복되기 어려울 뿐 아니라나 자신까지 병 듭니다하지만 하느님은 요셉처럼 고난 앞에서 하느님의 뜻을 묻고 씨름하는 사람에게 온전한 화해를 선물로 주십니다.

 

그래서 성서는 고난 속에서 하느님이 어디에 계시는지를 보라고 말합니다고난은 하느님이 함께 하심을 배우는 시간입니다하느님이 나뿐아니라 나에게 피해를 입힌 사람까지도 사랑하신다는 걸 체험하는 시간입니다하느님이 자신을 사랑하시고 동행하신다는 걸 믿는 사람만이 상대방에게 끌려 다니지 않고 하느님의 마음으로 용서할 수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자비를 베푸는 것으로 세상을 당혹시킵니다세상은 사람에게 매이지 않는 사람그러나 하느님 사랑에 매여 있는 사람으로 인해서 당혹스러워 합니다그때가 바로 세상의 질서가 하느님이 다스리시는 질서로 변화되는 순간입니다.

 

요셉 이야기는 우리에게 내가 정당한 대우를 받았느냐에 매여 있는 삶이 아닌 다른 삶이 가능하다는 걸 보여주었습니다그리고 더 나아가 우리의 사명이 하느님의 동행하심과 다스리심을 삶으로 드러내주는 성사가 되는 것임을 일깨워 줍니다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이 세상 사람들에게 우리는 우리 자신의 존재와 삶으로 하느님 나라가 도래하고 있음을 깨닫게 해줄 사명을 맡은 이들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 삶을 통해서 하느님을 드러낼 사명을 지니고 있습니다그게 우리가 존재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입니다하느님은 우리에게 하느님 나라가 이미 왔으며 지금도 오고 있고 마지막 날에 완성될 것임을 삶으로 드러내라는 사명을 맡기셨습니다이처럼 우리는 나의 정당함을 드러내기 위해서가 아니라나를 통해서 하느님이 사랑으로 다스리고 계시다는 걸 드러내기 위해서 사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은 어떠하십니까여러분을 드러내기 위해서 살고 계십니까 아니면 하느님이 오고 계심을 드러내기 위해서 살아가고 계십니까?

 

오늘 읽은 루가복음 말씀도 구약말씀처럼 우리가 무엇을 지향하고 있는지 성찰해 보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내가 세상 사람들처럼 정당한 대우를 받고 있느냐 아니냐에 관심을 기울이며 나를 드러내고 있는지아니면 하느님과 동행하며 하느님의 돌보시고 사랑하시는 관계 속에서 살면서 하느님의 자비하심을 드러내고 있는지 자문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루가복음 6장 27절에서 원수를 사랑하고 미워하는 사람들에게 잘해 주고저주하는 사람을 축복해 주고 학대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이 말씀을 그냥 착한 사람이 되라는 말씀으로 이해하면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치는 것입니다.

 

원수를 사랑하고 미워하는 사람에게 잘해주고 저주하는 사람을 축복하고 학대하는 사람을 위해서 기도할 수 있는 사람그 사람은 무언가 추구하는 게 있는 사람입니다목표가 있기 때문에 다른 것들을 장애물로 여길 수 있습니다심지어 자기 자신이 조롱당하고 멸시받고 천대받을지라도 목표가 분명한 사람은 자신이 추구하는 바를 위해서 다른 것을 희생시킬 수 있습니다그렇다면 원수도 사랑하고나를 미워하는 사람에게 잘해주고저주하는 사람을 축복하고 학대하는 사람을 위해서 기도할 수 있는 사람이 추구하는 게 무엇이겠습니까?

 

하느님 나라입니다하느님의 다스림만을 드러내려고 하는 사람하느님의 다스림에 사로잡힌 사람오직 하느님의 사랑에 매여있는 사람이 원수를 사랑할 수 있고자신을 학대하는 사람을 위해서 기도할 수 있고미워하는 사람에게 잘해줄 수 있고저주하는 사람을 축복할 수 있습니다우리 모두가 사람이 아닌 하느님의 사랑에 매일 수 있기를 바랍니다나 자신이 아니라 하느님이 이미 오셔서 다스리시고 계시며지금도 오고 계심을 드러내고 싶어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원수그리고 미워하는 사람저주하고 학대하는 사람의 주체가 여러분 자신이라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그러면 저 말씀이 얼마나 고마운 말씀인지 절감하실 겁니다나 자신의 한계 때문에 내가 미처 생각지도 못한 때에 우리는 어떤 사람에게 상처를 주어서 그 사람에게 나 자신이 원수가 됐는지도 모릅니다그리고 우리는 이미 누군가를 미워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저주하기까지 합니다뿐만 아니라 나 자신이나 다른 사람을 학대했는지도 모릅니다.

 

이는 우리가 이미 하느님에게 원수가 된 것을 뜻합니다하지만 하느님은 스스로 하느님과 원수 된 우리를 사랑하시고하느님을 미워하고 저주하고 학대한 우리에게 잘해주시고 축복해 주시고 기도해주십니다이처럼 우리 모두는 이미 하느님의 자비를 입은 사람들입니다.자비하신 하느님의 은총에 감사하는 사람은 예수께서 먼저 걸어가신 자비의 삶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에 매인 사람 하느님 나라에 매료된 사람만이 오른뺨을 맞으면 왼뺨도 돌려댈 수 있습니다겉옷을 달라고 하면 속옷까지 벗어줄 수 있습니다돌려받지 못할 것을 알고도 돈을 꾸어줄 수 있습니다.

 

이처럼 하느님의 다스리심을 드러내겠다는 목표를 세운 사람이 무자비한 사람들을 자비롭게 대함으로써 무자비한 세상을 당혹시킬 수 있습니다자비하다는 것은 무자비함을 허용하는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무자비함에 자비함으로 대응하는 것은 가장 적극적인 형태로 무자비함을 무력화시키는 방법입니다예수께서 무자비한 세상에 대해서 다함없는 자비를 베풀어 주셨기 때문에 무자비함은 무의미해지고 무력해졌습니다.

 

무자비함을 자비로 대응하다보면 자기희생이 수반될 수밖에 없습니다예수님도 무자비한 세상에서 자비를 베푸셨을 때 십자가 수난을 당하셔야 했습니다바라기는 우리도 예수님을 따라서 우리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자비로운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자비를 실천하는 삶은 어렵기는 하지만 불가능하지는 않습니다하느님 나라에 매료돼서 자신의 존재와 삶으로 하느님 나라를 살아내고자 했던 많은 성인들도 예수님처럼 십자가를 지고 자비를 베푸는 삶을 살아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만 사랑하고잘해주는 사람에게만 잘해주고되받을 가망이 있는 사람에게만 꾸어준다면 죄인과 별다를 바 없다고 하셨습니다하느님의 자녀가 되려면 원수를 사랑하고 남에게 좋은 일을 해주고 되받을 생각을 말고 꾸어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은혜를 모르고 악한 일을 저질렀을 때 하느님이 우리를 용서해주셨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자비하신 하느님은 독생자 예수님의 수난을 통해서 우리를 용서하시는 자비를 베풀어주셨습니다우리가 하느님의 자비하신 은총에 감사함으로써우리 자신도 다른 사람들에게 자비를 실천하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우리가 인자하며 자비를 베푸는 삶을 살아갈 때 세상은 우리를 통해서 하느님을 보고하느님 나라가 오고 있음을 깨달을 것입니다그렇게 우리는 하느님의 다스리심을 드러내주는 사람들이 될 수 있습니다이 사명을 충실하게 수행하여 하느님이 자비하신 것처럼 우리 모두 자비로운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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