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바울로는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와 하나 된 우리는 이미 예수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새 생명을 얻어 살아가게 되었다고 전합니다. 이 죽음은 우리가 죄의 권세에서 벗어나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진정 우리는 죄에 대하여 죽었습니까?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나누는 생명의 삶과 그 분의 사랑이 드러나고 있습니까? 우리들의 삶 속에서 스스로에게 물어야 할 질문입니다. 부활의 신비는 죽음에 있습니다. 그리고 잃어버리는 것에 있습니다. 죽어야 살고 잃어 버려야 얻을 수 있는 신비입니다.
우리가 죽어야 할 죄의 권세는 주님께서 세상의 힘을 가지고 있는 불의한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감추인 것은 반드시 드러납니다. 두려움은 아버지의 사랑을 믿지 못하는데서 오는 것이니 아버지의 사랑을 회복하고 전하라는 것입니다. 이 사랑을 전하는 것이 아버지를 안다고 증언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버지를 증언하는 이 믿음과 사랑을 어떻게 회복해야 합니까? 주님은 나는 세상에 평화를 주러 온 것이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고 선언하십니다. 아들이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와 시어머니가 서로 맞서게 하려고 왔다. 집안 식구가 바로 자기 원수라는 엄청난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가족을 더 사랑하는 사람은 내 사람이 될 자격이 없다하십니다. 가족과 맞서는 일이 진정한 생명을 얻기 위해 겪어야 할 죽음입니다.
가족이 의미하는 것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야할 죄,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소식이 전파되기 전까지의 삶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 옛 삶을 사랑하는 사람은 주님의 사람이 결코 될 수 없습니다. 십자가를 지지 않으면, 곧 우리 자신의 죄를 고백하지 않으면 죽을 수 없고 부활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가족은 누구입니까? 음행, 추행, 방탕, 우상숭배, 마술, 원수 맺는 것, 싸움, 시기, 질투, 분노, 이기심, 당파심, 술주정이라는 육정의 열매입니까? 아닙니다. 우리는 이미 이 죄의 권세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해방되었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사도 바울로가 지금 우리들에게도 하느님을 위해 살아야 할 것을 요구하고 계십니다. 교우 여러분! 하느님께서는 사랑이십니다. 이것이 하느님의 모습이며 기준입니다. 또한 이 사랑이 모든 장벽들을 넘어서게 하는 능력입니다. 이제 옛 삶의 죽음을 기쁘게 맞이하시고 잃어버리셔서 얻으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진정한 생명을 얻으시고 진정한 자아를 되찾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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