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편을 갈라 서로 소리 지르며 춤추어도 춤추지 않았고 곡을 하여도 가슴을 치지 않았으며 요한이 와서 먹지 않으니 미쳤다하고 사람의 아들이 와서 즐겨 먹고 마시니 죄인들과 어울리는 자라고 말하는 모습이 바로 이 세대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세대도 다르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렇게 말하는 이들에게는 하느님의 지혜와 섭리를 감추셨습니다. 안다는 자들, 똑똑하다는 자들에게는 감추고 철부지 어린아이들에게 나타내 보이셨다는 것은 춤을 추어야 할 때 기뻐하고 슬퍼할 때 함께 슬퍼하며 돌이켜야 할 때 돌아서고 사랑을 받아들여야 할 때 기꺼이 주님의 사랑에 우리 자신을 맡겨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하느님의 자녀들인 우리를 향한 뜻입니다.
사도 바울로는 자신을 비참한 인간이라고 고백합니다. 이성으로는 하느님의 법을 따르지만 육체로는 죄의 법을 따른다고 인정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성인 바울로는 이렇게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자신 안에 감사와 기쁨이 그리고 또한 욕정과 죄가 자신을 다스리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이 모습이 바로 자기 자신임을 깨닫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언제나 주님의 뜻을 따르고자 하지만 죄가 곁에 있음을 고백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해 주심을 압니다.
주님께서 이 세대를 비유하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의(義)를 잣대로 삼지 말라는 명령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아는 체 말라는 것입니다. 세상의 이치를 잘 헤아린다고 잘난 척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보지 못할 것이고 듣지 못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보이셨다는 것은 자신의 기쁨과 슬픔, 의와 죄를 고스란히 스스로 받아들이는 영혼의 상태를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힘으로 할 수 없습니다.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다다를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춤추지 않고 울지 않고 먹지 않는 것이 우리가 지닌 무거운 짐입니다. 옳다. 그르다가 멍에입니다. 즈가리야는 병거와 군마를 없애실 분이 어린나귀를 타고 오신다고 예언합니다. 가장 겸손한 모습이 가장 큰 힘이되어 우리를 구원하여 주시고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신다는 약속입니다.
주님의 멍에는 사랑입니다. 율법입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이 사랑을 실천하는 일입니다. 겸손은 자유함의 짐입니다. 주님의 겸손과 온유의 삶을 배워야 합니다. 이 마음을 우리의 마음으로 채워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영혼은 안식을 얻을 것입니다.
내 안에 도사리고 있는 죄의 힘을 보기 원합니다. 그리고 언제나 우리 곁에 계셔서 도우는 주님도 뵙기 원합니다. 사도 바울로가 자신에게 눈을 뜬 것처럼 우리도 눈을 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받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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