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에게 해야 할 의무를 다하십시오. 그러나 아무리 해도 다할 수 없는 의무가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사랑의 의무입니다. 남을 사랑하는 사람은 이미 율법을 완성했습니다”(로마 13 : 8). 이웃을 향한 여러 계명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네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이웃에게 해로운 일을 하지 않으며 율법을 완성하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사랑하여야 합니까?
마태오복음은 교회에서 발생하는 잘못한 일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타일러 주어도 변화하지 않으면 과정을 거처 교회에서 내치라는 말씀으로 들릴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에제키엘은 그 어떤 사람도 죽기를 바라지 않으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말씀해 주십니다.
지난 주 우리는 원수 갚는 것의 권한이 우리의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에제키엘과 사도바울로의 말씀을 통해서 하느님의 자녀로 공동체의 일원으로 잘못한 사람을 대하는 우리들의 태도와 책임을 분명히 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의 잘못을 깨우쳐 주기 위한 노력을 회피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죄를 지어 죽을지라도 우리가 그 죄를 뉘우치도록 타일러 주지 않을 경우 그 죽음의 책임을 우리에게 지우시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사랑입니다. ‘내가 맹세한다 죄인이라도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않는다’(에제 33:11)는 것입니다. 끝까지 그 죄를 깨닫고 돌아서기를 바라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죄가 죽음을 가져오는 결과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구원의 은총을 얻게 되는 것을 바라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 모든 과정들이 ‘아무리 다해도 다할 수 없는 의무인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것이며 그것이 곧 율법의 완성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오직 사랑뿐입니다. 이것이 곧 과월절의 의미입니다. 이집트를 탈출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내리신 명령, 곧 이집트 노예의 삶에서 해방되어지는 길을, 죄에서 해방되어 자유의 삶을 향한 첫 걸음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땅에서 풀어 내는 일이며 하늘에서 풀리는 일입니다. 어둠의 행실을 벗고 그리스도로 무장하는 길이기도 합니다.
사랑은 어느 누구도 저항할 수 없는 강력한 능력입니다. 진실한 마음으로 훈계하며 타일러 새롭게 서로를 맞이하는 것이 교회와 세상을 향해 져야할 의무입니다.
사도바울로는 이것이 곧 우리가 잠에서 깨어있어야 할 이유, 우리 자신을 성찰하고 깊이 바라보는 일(곧 어둠의 행실을 벗어 버리는 일)이며 빛의 갑옷을 입는 믿음의 행위라고 말씀하십니다. 온 몸을 주 예수 그리스도로 무장하는 일입니다.
교우 여러분! 이것은 먼저 우리가 서로를 진실로 사랑하고 아끼며 이웃에게 베푸는 선한 일들이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다 할 수 없는 의무임을 다시금 마음 깊이 새기는 것으로 출발되어집니다. 오늘 다 할 수 없는 사랑의 의무를 실천하는 새 날이 되시기를 간절히 빕니다. 우리 교회가 이렇게 하늘을 열어가길 간절히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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