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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25주일 설교문_겸손과 순종으로 하느님과 이웃을 섬기며 살아가십시오. (마르 9:30-37)

작성일 : 2018-09-21       클릭 : 106     추천 : 0

작성자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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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해 연중 25주일 설교문

겸손과 순종으로 하느님과 이웃을 섬기며 살아가십시오.

김은경 드보라 신부(보좌사제) 

   

1. 가족 친지들과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며 사랑을 나누는 풍성한 한가위명절로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어린 시절 자주 읽고 들어서 좋아하던 창작 동화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아기 사자 이야기입니다. 정글에 아기사자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어미사자와 정글을 산책하는데 눈앞을 쏜살같이 달려가는 치타를 봤습니다. 아기사자는 빨리 달리는 치타가 멋져보였습니다. 그래서 어미 사자에게 이다음에 크면 치타가 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어미 사자는 빙그레 웃었습니다. 아기 사자와 어미 사자는 계속 산책을 했습니다. 이번에는 긴 팔로 나뭇가지 사이를 펄쩍펄쩍 건너뛰는 원숭이를 봤습니다. 멋지게 나뭇가지를 넘나드는 긴 팔 원숭이를 본 아기 사자는 곧 이어서 이다음에 크면 원숭이가 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아기 사자는 정글을 산책하며 만나는 동물들을 볼 때마다 경탄하며 자신도 저렇게 멋진 동물이 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산책을 한지 한참 시간이 지나자 아기사자는 목이 말랐습니다. 때마침 정글 한가운데 있는 호숫가에서 이르러서 목을 축일 수 있었습니다. 목을 다 축이고 나서 가만히 보니 귀엽고 장난 끼 가득한 모습이 눈앞에 나타났습니다. 그 모습에 반한 아기사자는 어미사자에게 저게 누구냐고 물었습니다. 어미 사자는 '바로 너란다. ' 라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때 비로소 아기 사자는 자신이 어미 사자를 닮았다는 걸 깨닫고는 이 다음에 커서 자신도 어미사자처럼 늠름하고 멋진 어른 사자가 될 거라는 희망에 흡족했습니다.

 

이 이야기에서 아기 사자는 서로 다른 동물들을 하나의 기준에 따라 우열을 매기지 않았습니다. 각각 다양한 동물들의 서로 다른 고유성을 좋게 여겼습니다. 아기 사자 이야기는 나 자신을 포함하여 서로 다른 존재를 경쟁 상대로 여기지 않고 긍정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걸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 본연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의 중요성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2. 이를 신앙적 차원에 대입해볼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형상을 따라서 지음받은 우리 모두는 각자 서로 다른 고유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바울로 사도가 말해준 것처럼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한 몸을 이루고 있는 서로 다른 지체들입니다. 우리들 중에 어떤 분은 조직 운영을 잘합니다. 어떤 분은 전통의 소중함을 지킬 줄 압니다. 또 어떤 분들은 가르치는 일을 즐거워합니다. 또 어떤 이들은 고통 받는 이들에게 공감하는 능력이 뛰어납니다. 이처럼 우리 각자는 하느님이 주신 서로 다른 고유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의 기준으로 서로 다른 존재를 평가하거나 속단하면 다채로운 존재들을 만나기가 어렵습니다.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우리 모두가 한 몸을 이루는 지체라는 하느님의 시선을 가질 때, 우리는 그 어떤 사람도 다른 사람으로 대체 불가하다는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교회를 통해서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하느님의 시선 곧 우리가 한 몸을 이루는 지체들이라는 시선에 나의 시선을 맞추고 살아간다는 의미입니다. 죽은 후에 부활하여 하느님과 더불어 하나가 될 때까지, 서로 견뎌주고 허물을 덮어주고 나의 강점으로 다른 사람의 부족한 점을 보완해주면서, 조화를 이루고 협력하기를 바라시는 하느님의 부르심에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라고 순종하기로 결단한 사람이 선택한 구체적인 삶의 모습입니다. 우리 일산교회에서 지금 만난 여러분 서로는 영원한 하느님의 사랑에 잇대어서 함께 살아가는 친구요,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엮여진 한 가족입니다.

 

3. 때때로 우리는 자신이 지니고 있는 상처와 한계 때문에 하느님의 시선을 잊어버리곤 합니다. 그래서 우리 자신이 이미 하느님께 매인 사람들이라는 걸 망각하고 마치 세상에 매인 사람처럼 살아갈 때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도 그랬습니다. 예수께서 자신이 수난을 당할 것을 두 번째 예고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알고 싶어 하지 않았습니다. 성서는 다만 그들이 그 이야기를 듣고 두려워했다고 기록해주고 있습니다. 그 와중에 누가 제일 높은 자리에 앉느냐는 문제로 수위권 다툼을 했던 것으로 봤을 때, 그들은 예수님이 이제 곧 세상을 뒤집어엎고 왕위에 오를 텐데, 그게 쉽지 않다는 얘길 하시는가보다고 오해했던 것 같습니다. 제자들은 자신들의 공동체에서 자신이 해야할 역할이 무엇인지 그리고 내 옆사람은 무슨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인지에 관심을 기울이기보다는 누가 더 높은 자리에 앉을 것인지에 관심이 가 있었습니다.

 

이는 비단 열두 사도들에게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우리 자신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매우 자주 교회에서마저 우리들이 예수님을 머리로 하여 한 몸을 이루는 각자의 역할이 있는 지체들이라는 것을 잊어버립니다. 우리가 이루고 있는 교회의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가 계심을 인정하지 않고 나를 중심으로 교회와 세상을 바라봅니다. 그러다보니 하느님의 시선에서 볼때는 고유한 역할이 있어서 대체불가한 사람들을 마치 대체가능한 것처럼 여깁니다.

 

이처럼 우리 각자가 하느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았고, 모든 사람이 대체불가하다는 하느님의 시선을 잊으면 하느님이 아닌 자기중심성을 추구하고 힘을 숭상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 지체들입니다. 각자가 지닌 고유성을 인정해주며 조화롭게 협력하라고 주님은 우리를 서로 다르게 지으셨습니다.

 

하느님이 나뿐만 아니라 내가 볼 때 한참 모자라 보이는 저 사람도 사랑하신다는 하느님의 시선에 우리 자신의 시선을 맞출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조건 없이 사랑하시며 부족한 점을 봐줄 수 있는 자비하신 하느님처럼 우리 자신도 자비로워질 수 있는 마음과 능력을 이미 갖고 있다는 믿음을 회복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4. 예수께서는 경쟁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제자들에게 어린아이를 받아들이는 사람이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비본질적인 것이 관심이 가 있는 제자들의 시선을 돌려서 하느님의 시선에 맞추라는 권면입니다. 어떤 사람이 어린아이를 받아들일 수 있나요?

 

어린아이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을 어른이라고 합니다. 어른은 어린아이를 경쟁상대로 여기지는 않습니다. 돌보고 사랑을 베풀어줄 상대로 여깁니다. 부족한 모습은 부족한대로 강점은 또 강점대로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며 부족한 점을 채워주려고 합니다. 이게 어른의 마음입니다. 경쟁상대로 여기지 않는 마음, 그 마음으로 상대방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예수님도 하느님도 받아들일 수 있다고 하십니다.

 

바라기는 우리 일산교회 교우님들이 서로를 어여쁘게 여기시고 사랑스러워하시며 어린아이를 받아들이듯이 서로를 받아들일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그런 마음이 일어나도록 이끌어 주시기를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매주일 교회에 나와서 우리를 몸소 어린아이처럼 받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며 신앙을 고백합니다. 성찬의 전례에 참여함으로써 우리는 우리 자신을 어린아이처럼 받아들이신 하느님의 시선에 우리 자신의 시선을 맞춥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사랑의 시선에 감사하며, 겸손과 순종으로 하느님과 이웃을 섬기겠다는 의미에서 우리자신을 봉헌합니다. 우리가 이처럼 정성을 다해서 우리 자신을 봉헌했을 때 하느님은 교회를 통해서 우리를 다시 세상에 생명을 주는 양식으로 파송하십니다.

 

여러분 이제 예수께서 우리에게 겸손과 순종으로 어린아이를 받아들이듯이 서로를 받아들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세상에 나가서 사람들을 어린아이처럼 받아들이라고 요청하십니다. 교회와 세상의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고 우리 각자는 서로 역할이 다른 지체들이라는 걸 기억하셔서 경쟁이 아니라 겸손과 순종으로 하느님과 이웃을 섬기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세상에 매어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하느님께 매어있는 사람들입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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