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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해 연중 25주일 설교문_하느님에게 우선순위를 둔 충직한 청지기가 됩시다.(룩 16:13)

작성일 : 2019-10-06       클릭 : 6     추천 : 0

작성자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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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에게 우선순위를 둔 충직한 청지기가 됩시다.(룩 16:13)   


김은경 드보라 보좌사제

 

1. 우리는 살면서 어떤 계기를 통해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나 방향성이 바뀌는 시기를 만납니다. 오늘 함께 읽은 약은 청지기 비유이야기는 한 청지기가 위기를 만나서 삶의 방식을 바꾼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루가복음 저자는 1613절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청지기 비유이야기를 들려주시면서, 하느님과의 관계를 우선순위에 두는 삶을 살라고 초대하시는 장면을 기록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서와 설교말씀의 주제는 하느님에게 우선순위를 두는 삶을 살아가자는 것입니다.

 

이제 청지기 이야기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청지기에게 자신의 재산을 맡겼던 주인은 청지기가 자신의 재산을 낭비하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그를 불러 진상을 확인하고, 맡았던 일을 정리하라고 했습니다. 해고통보를 받은 것입니다.

 

당시 유대 사회는 돈을 꾸어주고 이자받는 걸 금지하고 있었습니다. 반면에 곡물이나 기름은 돈이 아니기 때문에 이자를 붙여서 받으면 안 된다는 규정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곡물이나 기름 등을 빌려주고 이자를 붙여서 재산을 증식하고는 했습니다.

 

현대인인 우리가 보기에 돈이나 곡물을 꾸어주고 이자를 받는 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유다사회는 오늘날 우리의 경제구조나 문화와는 다른 점이 많았습니다. 특히 누군가 다른 사람에게 돈을 꾸어줬을 때 이자를 붙여서 꾸어간 돈을 갚게 하는 건 떳떳하게 내세울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성서학자들 중에 몇몇은 이 청지기가 주인이 꾸어준 곡물이나 기름에 자기가 원하는 만큼 이자를 붙여서 갚게 했고 그 이자를 과중하게 걷었을 거라고 추정합니다.

 

이러한 추청을 통해서 청지기의 처신을 어느 정도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청지기는 주인의 재산을 잘 관리하는 것에 관심이 있다기 보다는, 주인의 재산을 사람들에게 꾸어주고 그 이자로 자신이 호의호식하는 것에 더 큰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렇다보니 곡물이나 기름을 꾸어간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아무리 갚아도 변제해야 할 빚이 줄어들지 않으니 청지기가 원망스러웠을 겁니다. 그 원성이 점점 쌓여서 결국 청지기의 행실이 주인의 귀에 들어갔습니다. 그는 이제 청지기직을 박탈당하게 됐습니다.

 

이제 그는 맡은 일을 청산하는 절차를 밟습니다. 그는 마지막으로 기지를 발휘하여 자신이 처한 상황을 분별했습니다. 자신이 어떻게 처신해야 앞으로 일을 못하더라도 살아갈 수 있을지 그 현실적인 대책을 세웠습니다. 그는 빚진 사람들을 불러서 그들이 앞으로 갚아야 할 곡물과 기름의 양을 감면해 주었습니다. 매우 영리한 처신이었습니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건 이 청지기가 위기 앞에서 자신을 살릴 수 있는 게 재물이 아니라, 사람들과의 관계라는 걸 발견해 냈다는 겁니다. 곡물이나 기름을 꾸어갔던 사람들은 그동안 자신들이 갚아왔던 게 감안이 돼서, 이제 갚아야 할 빚이 줄어들었으니 청지기에 대한 원한을 거두어들였을 겁니다. 원한을 거둘 뿐 아니라, 이제는 청지기와 운명 공동체 곧 공생관계가 되었습니다.

 

2. 청지기는 그때까지 자신이 관리해 왔던 재물을 갖고 자기만을 위해서 살았습니다. 하지만 생계수단을 잃어버릴 위기에 닥쳤을 때, 그는 재물이 아닌, 그 재물과 연결되어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는 눈을 떴습니다. 자신을 살릴 수 있는 게 재물이 아니라, 이웃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사람들과의 단절된 관계를 회복시키는 길만이 자신이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살길이 막힌 이후에 자신을 돌봐줄 사람을 얻고자 했습니다.

 

이웃과 화해하려고 한 것도 결국 자기가 살기 위한 이기적인 행동 아니었느냐고 비판하실 수도 있습니다. 하느님이 왜 이처럼 이기적인 동기에서 행동한 청지기를 칭찬하셨는지 의아해 하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이야기를 추상적인 비유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자신의 현실로 가져와서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 자신의 신앙의 동기가 얼마나 순수한지 들여다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말로는 주님을 사랑하고 믿는다고 하지만, 실제로 우리가 얼마나 주님을 믿지 않는지 우리의 일상 생활을 뒤돌아 보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느님께 우리 자신은 감추시고 하느님만 드러나게 해달라고 기도하면서도 나 자신이 인정받기를 바랍니다. 사소하게 오해받는 것조차 견디기 어려워 합니다. 우리 자신이 하느님을 사랑하고 믿기를 바라면서도 실제로는 하느님을 사랑하지도 않고 믿지도 않는 우리 자신을 발견하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신앙의 동기는 이기심과 이타심, 욕심과 비우고자 하는 마음,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과 하느님을 대적하려는 마음이 다 섞여 있습니다.

 

하지만 하느님은 이렇게 완전하지 않은 우리, 뒷걸음질쳤다가 간신히 한 걸음 내딛는 우리를 있는 모습 그대로 너그럽게 봐주십니다. 우리의 죄악과 불신 조차 허용하시며 기다려 주십니다. 우리가 이기심과 탐욕과 하느님을 거스르려는 마음을 비워서, 예수님을 닮은 자로 성장해 나갈 수 있도록 동행해주십니다. 우리가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서 점점 우리의 이기심과 탐욕과 같은 죄에서 벗어나서, 하느님을 우선적으로 사랑하고 우선적으로 믿는 자녀로 성장해나가도록 이끌어주십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부족한 모습에 스스로 실망하여 좌절하고 있을 때조차 다시 일어서서 성장의 길로 나가도록 지혜를 주시고 성령의 도우심에 마음을 열도록 일관되게 불러주고 계십니다.

 

신앙생활은 일평생에 걸쳐서 이 지난한 여정을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아서 하느님과 친교를 나누며 살아가는 겁니다. 이 여정을 통해서 우리는 자신도 미처 모르는 사이에 하느님을 믿는 믿음이 자라나고 이웃을 사랑할 능력을 회복해 나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청지기의 이기심이라는 동기를 비난하기 보다는 그 이기심과 함께 섞여 있는 산한 동기를 헤아리시는 하느님의 마음을 보시기 바랍니다.

 

영리한 청지기가 이웃과의 화해를 실천했던 동기가 이기심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그는 자신이 도와준 사람이 자기를 돌봐줄 거라고 하는 하느님께서 사람들 사이에 숨겨두신 지혜를 찾아냈습니다. 그는 이제 이웃에게 도움을 받고 화해하는 삶을 위한 첫번째 발걸음을 뗐습니다. 도움을 받을 수록 그는 사람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면서 고마워하고 사랑할 능력도 자라날 것입니다.

 

루가복음 저자는 이기적인 청지기조차 너그럽게 바라보시고 기다려주시는 하느님을 믿으라고 우리에게 권면해주고 있습니다. 영리한 청지기처럼 자기중심적인 삶에서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관계적인 삶으로 성장해 나가라고 우리를 초대하고 있습니다.

 

3. 하느님은 우리를 부르실 때 내일 부르시지 않습니다. 바로 지금 여기에서 우리를 부르십니다. 우리의 현재의 삶에서 사랑과 믿음의 삶을 살아가라고 부르고 계십니다. 하지만 우리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내일로 미룹니다. 다음으로 미룹니다.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살라는 부르심, 하느님을 믿고 따르라는 부르심을 우리의 현실로 가져오기를 꺼립니다. 만약 우리가 현실 속에서 사랑하라는 부르심과 믿으라는 부르심을 받아들이고 기꺼이 순종하여 따른다면 우리의 삶은 달라질 겁니다. 우리가 맺고 살아가는 모든 관계들이 화해를 이루고 정의와 평화를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하느님의 부르심에 귀를 막습니다. 그 부르심에 응답하여 살겠다고 말은 하지만, 하느님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살던 대로 살아갑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현실 속에서 하느님 나라를 이루는 일에 무기력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을 믿고 하느님께 자신을 내어 맡기셔서 십자가 수난을 지나가신 예수님과 그분을 다시 살리신 하느님의 사랑을 기억하며 용기를 낼 수 있습니다.

 

아무리 주변이 시끄러워도 엄마 아빠를 믿고 그 품에서 잠든 아이처럼 하느님이 나보다도 더 내가 잘 되기를 바라시는 분이시며 나보다도 더 나를 사랑하시고 믿어주시는 분이심을 믿고 평화이루시기 바랍니다. 하느님의 시선으로 나 자신을 바라보고 서로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정리하자면, 십자가 수난 조차 하느님에 대한 예수님의 믿음을 막아서지 못했다는 걸 기억하면서 지금 여기 우리의 현실 한 가운데에서 하느님을 믿는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내일로 미루지 말고 지금 여기 우리의 현실 속에서 우리 자신보다 더 우리가 잘 되기를 바라시는 하느님의 시선으로 나와 이웃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느님 나라는 우리가 지금 여기 바로 우리의 현실 가운데서 하느님의 주권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이루어질 만큼 우리의 목전에 임박해 있습니다. 하느님 나라를 받아들이고 그 하느님 나라의 삶에 참여하라는 초대는 나중으로 미룰 수 없이 시급하고도 엄중한 일입니다.

 

4.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지금 여기 우리의 현실에서 이루어나가야 할 미룰 수 없습니다.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삶이 가장 가치 있는 삶입니다. 우리의 현실 한 가운데서 가장 가치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 무엇을 우선순위로 둘 것인지 결단하시기 바랍니다. 루가복음 1613절 말씀에서 예수님은 한 종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는 겁니다.

 

재물은 꼭 돈이라고 생각하실 게 아니라, 우리가 가진 각자의 특별한 은사라고 생각하는 게 더 정직한 말일 겁니다. 저같이 재산이 없는 사람 입장에서는 내놓을 게 별로 없기 때문에 재물보다 하느님이 우선이다라고 쉽게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 각자 가진 게 서로 다릅니다. 건강이나 체력일 수도 있고, 관리를 잘 하는 능력이거나, 가르치는 능력, 또는 사람들을 지도하는 능력, 다른 사람을 웃기는 능력일 수도 있고, 예술적 재능일 수도 있고 재력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가진 재물 곧 은사를 하느님보다 절대화하여 우선시 할 수 없습니다. 그 은사도 하느님이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재물이나 은사를 하느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으로 받아들이고 이것을 하느님 나라를 위해서 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영리한 청지기는 위기 앞에서 기지를 발휘하여 마지막으로 자신의 청지기직을 선용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맡은 일을 청산하면서 자신이 갖고 있던 직을 통해서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끼치는 일을 했습니다. 그 일로 그는 친구를 만들었습니다.

 

우리도 하느님이 우리에게 주신 재물 혹은 은사를 하느님 나라를 위해서 쓸 수 있기를 바랍니다.

 

5. 하느님은 우리 모두 각자가 할 수 있는 분량에 맞게 하느님의 일을 하라고 맡기셨습니다. 우리 모두 하느님 나라를 일구어가는 청지기들입니다. 충직한 청지기는 자기가 하는 일을 자기 자신만을 위한 일로 여기지 않습니다. 주인이 자신에게 맡겼다는 것을 의식하며 주인의 뜻에 맞게 일을 수행해 나갑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맡겨주신 일 곧 하느님 나라를 세워나가는 일이 내가 원하고 내가 좋아서 하는 일로 여기실 게 아니라, 하느님이 나자신에게 맡겨주신 일로 받아들이시고 하느님께 힘을 구하며 해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도 바울로는 디모테오전서 21절로 3절까지 말씀에서 충직한 청지기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는 하느님 나라를 일구어갈 청지기들에게 모든 사람을 위해서 간구와 기원과 간청과 감사의 기도를 드리라고 권면해 주고 있습니다.

 

왕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하라고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조용하고 평화롭게 살면서 아주 경건하고도 근엄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기도하는 것이 좋은 일이며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사도 바울로의 권면처럼 우리는 우리가 맡은 일을 해나갈 때 우선적으로 기도할 수 있습니다. 기도를 통해서 이웃을 위한 삶, 하느님을 믿고 사랑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기도에 힘쓰고 하느님께 주의를 기울이려고 하면 할수록 하느님은 우리의 관점을 하느님의 관점으로 변화시켜 주실 겁니다.

 

하느님의 눈 곧 귀하게 여기는 마음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서로의 삶을 격려해 주고 잘 되기를 바라며 기도해 주고, 감사할 때 성령께서는 우리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걸 알게 해주실 거고, 그 연결되어 있음으로 인해서 기뻐하게 해주실 겁니다.

 

6. 지난주에 우리교회에 가끔씩 찾아오시는 노숙자 왕선생님이 찾아오셨습니다. 그분이 오셔서 한참 자신의 자녀들과 살아온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이야기를 한참 듣다보니 험한 세월을 살아오셨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그 중에는 자랑스러운 이야기들도 있었습니다. 그분의 막내따님이 초등학교 교사이신데 얼마 후에 결혼을 하실 거 같다고 하시면서 몇 개 남지 않은 치아 때문에 딸 앞에 나서기도 부끄럽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분에게 치아가 생기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왕선생님은 제가 쌀을 드리겠다고 하는데도 마다하셨습니다. 자신이 지난 번 감옥살이에 들어가기 전 우리 교회를 찾아왔을 때 우리 교회 간사님이 돈을 좀 주셨는데, 그냥 돈만 쥐어 주신 게 아니라 봉투에 넣어서 주셨다면서 자신에게 예의를 다해서 사람 취급해주신 것에 대해서 감사해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들으면서 저는 우리 일산교회에 참 귀한 분, 사람을 천하보다 귀하게 어기는 품위 있는 분이 계시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이처럼 하느님의 시선을 갖고 계신 분이 일산교회를 섬기고 계신 것에 대해서 하느님께 감사하는 기도를 바쳤습니다.

 

바라기는 우리 일산교회 교우님들 모두가 서로를 하느님의 시선으로 긍정해주시고 서로를 나보다 나은 사람으로 여기며 섬기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자신을 낮출 수 있는 사람 그래서 다른 사람을 섬길 줄 아는 품이 있는 사람을 품위 있는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우리 모두가 나보다 남을 나은 사람으로 여길 수 있는 품위 있는 하느님 나라를 위한 청지기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느님의 눈으로 하느님의 마음으로 서로를 바라보시고 그 관점으로 이웃을 돌보면서 하느님의 교회를 든든한 믿음의 반석위에 세워나가시는 충직한 청지기로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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