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산에 오랫동안 머물렀으니 (신명 1:1-8)
이스라엘 백성들은 유대력으로 1월 14일 유월절에 이집트를 떠났습니다. 그리고 3개월만에 시나이광야에 도착해서, 출애굽한지 2년 되던 해 2월 20일까지 시나이광야에 머물렀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나이산이라고도 부르고 호렙산이라고도 부르는 그 시나이광야에서 대략 10개월 조금 더 되는 시간을 머물렀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 동안에 모세는 시나이산에서 율법을 받아 율법대로 성막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행군을 하기 위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제 1차 인구조사를 마쳤습니다. 그러자 이제 하느님의 명령이 떨어집니다. “'우리 하느님 야훼께서 호렙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이 산에 이만큼 오랫동안 머물러 있었으니, 이제 길을 떠나 행군을 계속하여, 아모리인의 산악지대로 들어 가거라. 그들은 아라바와 산악지대와 야산지대와 남부지방과 해안지대에 널리 흩어져 살고 있다. 또 가나안인의 땅과 레바논을 지나 큰 강 유프라테스에까지 가거라. 보아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땅이 너희 눈앞에 펼쳐져 있다. 들어가서 저 땅을 차지하여라. 저 땅은 내가 너희의 선조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과 그 후손에게 주겠다고 서약한 땅이다”(1:6-8) 하느님께서는 10개월 만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변화를 요구하셨습니다. “시나이산에 더이상 머물지 말라. 그 곳도 좋은 곳이지만 이제 너에게 더 큰 축복을 예비하였으니 가나안 땅을 향해서 가라. 변화해라.” 우리는 오늘 이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 보겠습니다.
1. 교회의 적은 변화가 없는 것이다
교회의 적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조직과 프로그램에 의해서 일상화에 빠지는 것입니다. 매주일 새로운 것이라고는 조금도 없고, 기대감도 없으며, 똑같은 일이 다람쥐 쳇바퀴 돌듯 되풀이 되는 것이 교회의 적입니다.
교회가 일상화에 빠지면 정체되고 말기 때문입니다. 똑같은 일이 계속 반복되는 일상화는 시간이 지나면 판에 박힌 상습, 관례가 되고, 이것이 더 지나면 부패가 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일상성을 타파하고 변화를 추구해야 됩니다. 우리들도 삶에 즐거움과 행복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면 일상성에 빠진 것은 아닌지 의심해 봐야 합니다. 일상성을 타파하고 변화를 추구하시기 바랍니다.
사람이 머리 스타일이나, 옷, 넥타이 같은 작은 부분이라도 변화를 주면 기분이 달라지는데
하물며 신앙은 더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 우리 신앙도 정체되면 좋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변화를 주저하거나 두려워하지 마시고 오히려 하느님께서 더욱 아름다운 방향으로 변화시켜 주시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방향으로 늘 변화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2. 변화가 요구되는 세 가지 이유
우리 인간 사회에는 반드시 변화가 필요하기 때문에 우리에게도 변화가 요구됩니다. 스펄젼 목사님은 설교에서 변화는 세 가지 원인이 있기 때문에 필요하다고 말씀하였습니다.
첫째로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변화하며 변화하지 않는 것은 아무 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정치도 변하고, 대통령도 변하고, 국회의원도 변하고, 경제도 변하고, 문화도 변하고, 날씨도 변하고, 국가도 변합니다. 변하지 않는 것은 오로지 하느님과 하느님의 말씀과 교회, 이 세 가지뿐입니다. 나머지는 모두 변합니다.
둘째로 사람도 계속해서 변하기 때문입니다. 유아기에서 소년기로, 소년기에서 청년기로, 청년기에서 장년기로, 장년기에서 노년기로, 노년기에서 내세로 변합니다. ‘나는 영원히 청년이 되겠다’고 생각하는 분은 꿈을 깨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자꾸 늙어가며 변합니다. 이것은 당연한 결과입니다. 어느 한 시기에 계속해서 머무를 수 없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변화하는 것은 많은 유익이 있기 때문입니다. 변화가 유익할 때가 있습니다. 집안의 분위기를 바꾸고 싶을 때는 가구를 바꿔보고, 부부 사이에 분위기를 바꾸고 싶을 때는 머리에 염색을 하거나 다른 방법으로 화장해보면 재미가 있습니다. 무엇을 조금이라도 바꿔보면 재미가 있습니다. 변화는 재미있는 것입니다.
변화가 없다면 사람이나 사회에 진보가 없습니다. 바뀌어야 삶에 활력도 생기고 바뀌어야 성장이 있습니다. 국가 정치에서도 정당이 바뀌든, 사람이 바뀌든 자꾸 바뀌어야 뭔가 좋은 변화가 일어난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변화는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변화가 다 좋은 것은 아닙니다. 바람직한 변화가 있는 반면에 바람직하지 않은 변화도 있습니다. 미국 속담에 보면 ‘프라이팬에서 뛰어나와 불 속으로 뛰어든다(Out of the frying pan into the fire)’라는 말이 있습니다. 변화를 했더니 더 나빠졌다는 의미입니다. 우리 속담에도 ‘갈수록 태산이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산이 어렵다고 해서 좀 쉬운 산이 있는가 했더니 더 높은 태산이 나오더라는 말입니다. 사람이 변화를 해도 잘못된 동기로 변화하면 잘못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변덕이나 하느님께 대한 반항심, 혹은 세속적인 동기를 가지고 변화하는 것은 잘못된 변화이며 바람직한 변화가 아닙니다.
3. 바람직한 변화는 어떤 것인가?
그러면 어떤 변화가 바람직한 변화일까요? 두 가지 변화가 바람직한 변화입니다.
첫째는 하느님이 인정하시는 변화가 바람직한 변화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나이산을 떠난 이유는 단순히 그 곳에서 오래 머물렀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명령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로는 섭리의 인도가 있어야 합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앞서 진행하고, 성막도 완성이 되었습니다. 율법도 모두 받았고, 행군을 위한 인구조사도 모두 마쳤으며 행군을 위한 진형도 갖추게 되었으므로 시나이산이 은혜스러운 곳이기는 하지만 더 이상 머물 필요가 없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슨 변화를 추구하든지 먼저 기도해서 하느님의 인도를 받아야 하고, 환경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변화를 원하신다는 것을 확신하고 변화를 추구하시기 바랍니다.
4. 떠날 곳과 향할 곳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변화하라고 말씀하실 때, 떠날 곳과 향할 곳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떠날 곳은 호렙산이요, 향할 곳은 가나안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호렙산을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서 그 곳을 차지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호렙산이 나쁘기 때문에 떠나라고 하시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단지 호렙산은 목적지가 아니기 때문에 떠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떠나라, 혹은 변하라고 말씀하시는 이유는 과거가 잘못됐기 때문이 아닙니다. 과거를 부정하는 것도 아닙니다. 과거도 물론 좋지만 그 곳이 최종 목적지가 아니므로, 최종 목적지를 향해 가라는 것입니다.
떠나야 하는 호렙산에는 두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로 호렙산은 은혜 받은 산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호렙산에서 하느님의 은혜를 체험했고, 율법도 받았으며, 거대한 법을 갖춘 국가를 형성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은혜는 호렙산에서 그치고 마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는 때를 따라 다른 은혜를 주십니다. “모세여! 나는 호렙산에서 은혜를 받았으니 이곳을 절대 떠나지 않겠소”라고 고집을 부려서는 안됩니다. 은혜를 받았더라도 떠나라고 말씀하시면 떠나야합니다. 왜일까요? 새로운 은혜의 세계, 새로운 도전의 세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과거에 받은 은혜에 연연하지 말고 새로운 은혜의 세계를 향해 목표를 세우고 도전하며 앞으로 전진해야 합니다.
두 번째로 호렙산은 훈련의 산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를 통해서 ‘광야에서 어떻게 생활할 것인가? 광야에서 어떻게 행군할 것인가? 광야에서 어떤 법을 따라야 될 것인가? 또 어떻게 하느님을 섬기고 하느님을 만날 것인가?’에 대한 모든 훈련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훈련만 받고 전쟁이 일어났을 때 전쟁에 안 나가는 군인이 있다면 그런 군인은 쓸모없는 군인일 것입니다. 훈련받고 전쟁에 나가서 싸워야 합니다.
우리들은 여러 가지 영적 훈련을 많이 받았습니다. 기도 훈련, 전도 훈련, 예배훈련 등 많은 훈련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훈련에서 그친다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행동으로 옮겨져야 합니다. 우리가 선교에 대해 배우고 말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것을 행동으로 옮겨야 합니다. 행동할 때에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새로운 은혜의 세계를 열어주십니다.
우리는 은혜 받은 산, 호렙산을 떠나야 합니다. 비록 좋은 산이요, 은혜의 산이지만 이제는 떠납시다. 왜입니까? 가나안 땅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들어가야 할 곳은 가나안 땅입니다.
한편 가야할 땅인 가나안 땅에는 네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로 약속의 땅입니다. 하느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하신 땅입니다. 둘째로 좋은 땅입니다. 모세는 “나는 이 고장에서 죽어 요르단강을 건너지 못하겠지만 너희는 건너가서 그 좋은 땅을 차지하여라”(신 4:22)라고 고백합니다. 셋째로 가나안 땅은 부요의 땅입니다. 신명기 6장 11절을 보면 “너희가 채우지 않은 온갖 좋은 것으로 가득찬 집들이 있고 너희가 파지 않은 우물이 있고 너희가 가꾸지 않은 포도원과 올리브밭이 있다. 너희는 그것을 마음껏 먹게 되리라”고 기록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가나안 땅은 승리의 땅입니다. “너희는 너희 하느님 야훼께서 옳게 보시고 좋게 보시는 일을 해야 한다. 그래야 너희는 잘 될 것이다. 야훼께서 너희 선조들에게 주겠다고 맹세하신 저 좋은 땅에 들어가서 그 땅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 때 야훼께서는 약속하신 대로 너희 원수들을 쫓아 내 주실 것이다”(신 6:18-19)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호렙산에서 은혜를 입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은혜는 호렙산에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땅을 예비하시고 더 큰 은혜를 주시기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호렙산에서 더 머물지 말고 이제는 변화하라, 이제는 떠나가라, 더 큰 은혜의 목표를 세우고 향하고 전진해 나가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마시고 주저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