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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의무와 본질 (신명기 6장)

작성일 : 2010-10-29       클릭 : 875     추천 : 0

작성자 잠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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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의무와 본질 (신명기 6장)

 

신명기 6장은 ‘쉐마’로 유명한 장입니다. 6장 4절 말씀이 ‘들으라’는 의미를 가진 히브리 단어 ‘쉐마’로 시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쉐마의 핵심내용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느님 야훼를 사랑하라”(신 6:5)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되 대충 하지 말고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서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전력을 다해서, 힘이 다 빠지는 수준에 이를 때까지 하느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둘째는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이 진리를 가르치라”(신 6:7)는 것입니다. 신명기 6장은 가정에서의 신앙교육도 매우 강조하고 있습니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말고 하느님의 말씀을 강론하며, 눈만 들면 말씀이 보이도록 해야 합니다. 손목과 미간에도 말씀을 붙이고, 문설주와 바깥문에도 말씀을 붙여서 자녀들이 눈만 들면 말씀이 보이도록 하라고 명령합니다.

 

왜 신명기 6장이 이처럼 자녀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할까요? 바로 모세가 미래를 내다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배부르게 잘 먹고 잘 살게 되겠지만, 자녀들이 반드시 신앙문제에 의문을 제기할 것입니다. “우리가 왜 신앙을 가져야 됩니까? 우리가 왜 율례와 규례를 지켜야 됩니까?” 그래서 이를 대비하여 철저하게 신앙교육을 시킬 것을 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가나안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입니다. 신명기 6장 10-12절에 그 땅의 특징을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서 누리는 물질적인 부요와 축복은 그들의 노력과 헌신의 보상이 아닙니다. 그것은 아름다운 물건으로 가득한 건축하지 않은 집이요, 파지아니한 우물이며 심지 아니한 포도원입니다.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셨기 때문에 거저 주셨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거저 얻은 행복과 부요를 누리게 되면 제일 먼저 신앙문제에 시비를 걸고 나오게 될 것을 모세가 알고 있었기 때문에 신명기 6장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1. 자녀들의 두 가지 현상

 

하느님께서 노력하지도 않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을 주신 이유는 하느님의 규례와 명령을 지키는 백성이 이 세상에 적어도 하나는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였습니다. 그 땅에서 의식주는 하느님께서 모두 책임을 지실 것이니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느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이방나라들이 이스라엘을 보면서 ‘저 백성들은 참된 지식이 있는 백성이라’고 고백하게 되고, 하느님을 향한 갈증을 일으켜서 결국 하느님을 섬기는 백성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모세는 하느님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서 공짜로 부요와 축복을 누리면서 대를 거듭하면, 그 자손들에게 두 가지 현상이 나타나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첫 번째 현상은 의식주 문제가 해결되면 하느님의 명령과 규례를 지켜서 사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물질에 대한 탐욕이 더욱 커지게 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신명기 6장 16절에서 “너희가 마싸아에서 시험한 것 같이 너희의 하느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마싸아 사건’은 출애굽기 17장에 나타난 사건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한 직후에 물 없는 곳에 이르자 모세에게 불평을 하고 원망하기 시작합니다. 그러자 모세는 하느님 앞에서 기도하였고, 하느님께서는 모세에게 지팡이를 들어서 반석을 칠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모세가 순종하여 반석을 치자 반석에서 물이 나와서 백성들이 물을 마시고 해갈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모세가 그 장소를 ‘하느님을 시험했다’는 의미로 ‘마싸아’, 혹은 ‘하느님과 다투었다’는 의미로 ‘므리바’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모세는 이 사건을 예로 들면서 이스라엘 백성과 그 후손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의식주 문제를 가지고 염려하여 하느님과 다투거나 시험하지 말라고 명령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너희의 하느님께서 너희에게 명하신 명령과 증거하신 것과 규례를 삼가 지키라”(신 6:17)고 명하십니다. 하느님의 백성들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것보다도 내가 하느님의 명령과 규례를 바르게 지켜 살고 있는지를 먼저 염려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느님께서 의식주 문제를 책임져 주십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6장 33절에서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을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시리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의식주 문제를 걱정하기 때문에 그것을 위해서 살고자 하지만, 그것은 참된 인생의 목적이 아니며 채워져도 만족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백성들은 의식주 문제를 먼저 신경쓰지 말고 내가 하느님의 명령과 규례를 지켜 바르게 살고 있는지를 먼저 살펴서 살아야 합니다.

 

두 번째 현상은 자손들이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하느님 야훼께 받은 이 훈령과 규정과 법령이 웬 것이냐고 훗날 너희 자손이 묻거든, 너희는 너희 자손에게 이렇게 일러 주어라”(20절) 이 질문은 문자적인 질문이 아닙니다. 자녀들이 ‘부모를 공경하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 하지 말라’는 하느님의 계명의 문자적인 의미를 모를 리가 없습니다. 오히려 부모들보다는 자식들이 공부를 더 잘하고 지식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아무런 불편 없이 잘 먹고 잘 살면 됐지 신앙이 왜 필요하며, 하느님의 규례와 명령과 법도를 지켜야할 이유가 무엇인지를 묻고 있는 질문인 것입니다.

 

2. 신앙을 가져야 할 의무

 

이와 같은 자녀들의 질문에 우리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요? 오늘 그 대답을 모세로부터 배우고자 합니다. 모세는 이 질문에 두 가지로 대답을 합니다.

첫째는 하느님께서 명령하셨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너희 하느님 야훼의 계명을 잘 지켜야 한다. 그에게서 받은 훈령과 규정들을 따라야 한다”(17절), “그러시고는 우리를 언제까지나 오늘처럼 이렇게 복되게 잘 살도록 하시려고 야훼께서는 우리에게 우리 하느님 야훼를 경외하며 이 모든 규정들을 지키라고 분부하신 것이다”(24절) 그리고 “그러므로 야훼 우리 하느님께서 분부하신 대로 그의 앞에서 이 모든 계명을 성심껏 지키는 것이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25절)이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왜 우리가 하느님 앞에서 회개해야 합니까? 하느님께서 명령하셨기 때문입니다. 왜 우리가 전도하면서 살아야 합니까? 하느님께서 명령하셨기 때문입니다. 왜 졸더라도 주일이 되면 예배에 나와야 합니까? 하느님께서 명령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시작할 때 가장 먼저 결정해야 할 내용이 하느님이 내게 명령권을 가진 분이시냐, 그렇지 않느냐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향한 명령권을 가지고 계신다고 확신하신다면 신앙을 따라, 하느님의 명령을 따라 살아가야 합니다.

 

‘왜 우리가 신앙을 가져야 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두 번째 대답은 하느님은 구원의 은혜를 베푸신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너희 자손에게 이렇게 일러 주어라. '우리는 에집트에서 파라오의 종노릇을 한 일이 있었다. 그런데 야훼께서 강한 손으로 에집트를 내려 치시고 우리를 거기에서 이끌어 내셨다. 야훼께서 크고 두려운 표적과 기적을 에집트에 내려 파라오와 그의 온 궁궐을 치시는 것을 우리는 이 눈으로 보았다. 이렇게 우리를 거기에서 이끌어 내신 것은, 우리 선조들에게 주겠다고 맹세하신 땅에 우리를 데려다가 그 땅을 차지하게 하시려는 것이었다”(21-23절)고 기록되었습니다.

 

자녀들이 “왜 우리가 하느님을 섬겨야 합니까?”라고 질문할 때, 부모는 “만약 하느님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에집트의 노예가 되어서 지금 누리고 있는 모든 행복을 잃어버린 존재가 되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하느님을 섬기는 것이 마땅하다”라고 대답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하느님의 은혜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아직도 마귀와 죄의 종노릇을 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는 사냥꾼의 올무에서 벗어난 새 같이 마귀에게서 해방되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느님을 섬겨야 할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3. 신앙의 본질

 

하느님을 믿고 산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모세는 두 가지 동사를 통해 신앙의 본질을 정의합니다. 첫째로 24절에 나타난 ‘경외하라’는 동사입니다. ‘경외하라’는 말은 다른 말로 두려워하라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왜 죄를 회개해야 합니까? 죄에 대해서 영원한 형벌을 주시는 하느님이 두렵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왜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합니까? 죄로 말미암아 하느님을 직접 대면하기가 두렵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편들어 주시는 중보자 예수님을 믿고 의지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왜 하느님의 규례와 법도를 지키면서 살아야 합니까? 하느님께 외면당하여 하느님으로부터 끊어지는 삶을 사는 것이 두렵고 고통스럽기 때문입니다. 왜 우리가 함부로 악을 행해서는 안 됩니까? 악에 대해서 속히 징벌을 주시는 하느님이 두렵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의 본질은 첫째로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녀들에게 하느님은 두려운 하느님이라는 사실을 가르쳐야 합니다.

 

신앙의 본질을 나타내는 두 번째 동사는 25절에 있는 ‘지키라’는 단어입니다. 이는 다른 말로 ‘행하라’는 의미입니다. 신앙의 본질은 경외하고 지키고 행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규례와 법도는 말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지켜서 행해야 합니다.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하면서도 하느님의 명령을 지키지 않으면 죽은 믿음이라고 야고보 사도는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명령을 행해야 합니다. 우리 마음에 드는 명령만 행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명령을 행해야 하고, 부주의하게 성의없이 행하는 것이 아니라 삼가 주의 깊게 정성을 다해 행해야 하며, 사람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행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행해야 합니다.

 

4. 신앙의 유익

 

우리가 신앙의 본질을 강조할 때, 우리 자녀들은 하느님의 규례와 법도를 지켜 행하며 무슨 유익이 있는지를 물을 것입니다. 그 때에 부모는 두 가지 유익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첫째로 우리가 신앙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 이유는 신앙에는 반드시 하느님의 보상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미래지향적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미래에 반드시 신앙의 보상을 주십니다.

둘째로 항상 복을 누리게 하기 위함입니다. 이는 현세적인 축복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신앙에는 미래적인 보상과 현세적인 축복이 따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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