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불가촉천민 위해 한국교회 나서달라"
윌슨 신검 성공회 주교 / [문화일보] 2009. 9. 14
자신도 달리트 출신이라는 신검 주교는 “지구상에서 영적으로 가장 깨어 있는 한국 교회에 달릿 어린이들의 현실을 알리기 위해 왔다”고 말했다. 신검 주교는 지난달 한국과 인도간 자유무역 협상이 성공한 것과 관련, “세계 2위의 인구와 자원이 풍부한 인도에 한국 교회가 영향력을 확대할 경우, 복음이 인도 전체로 흘러들어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영국 셀리오크 칼리지와 버밍엄 대학을 졸업하고 1997년부터 달리트들을 위한 복음전도 사업을 시작할 때 선교기금 마련을 도와준 것도 한국인 유학생 친구 덕이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이 만든 ‘달리트 선교를 위한 오호그 선교회’를 통해 모세가 억압과 굴종의 상태의 히브리 민족을 해방시켰듯이 인도 달리트의 신분 해방을 위해 남인도에서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고 있다. 오호그는 ‘한 인류, 한 하나님(One Humanity, One God)’이라는 뜻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이 달리트 어린이들을 불쌍히 여겨 의·식·주를 해결해 사람답게 살도록 지원하자는 취지로 한국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 선교회는 지난 10년간 우물을 팠고, 사람들이 모이면 하나님의 사랑을 전했다. 달리트 어린이들의 영양 공급을 위해 염소조합을 만들어 염소젖을 짜 먹였다.
또 고아가 된 달리트들을 위한 쉼터를 만들어 100명에게 상급학교 진학의 기회를 제공했다. 바이블 칼리지에서 달리트 지도자를 길러 내보내 100여개의 교회(신앙공동체)를 만들었다. 이렇게 7000∼8000명의 기독교인을 만들었다고 그는 설명했다.하지만 대부분은 교회 건물이 없어 70∼100명이 천막 안에 모여 기도를 드린다. 현재까지 11개의 교회 건물을 지었고 어린이 기숙사 1곳, 하나와 재봉틀기술학교 1곳, 무료급식소와 헌옷 나눔의집이 있지만 90곳은 교회당이 없는 신앙공동체일 뿐이다.
윌슨 신검 주교를 안내한 성공회 한용걸 신부는 “지금도 남인도 수천만명의 달리트들에게 희망을 주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역사가 일어나고 있다”며 “거리마다 넘쳐나는 인도 장애인들의 재활을 위한 직업훈련시설과 장애인 센터를 만들고자 하는 이들의 꿈을 한국 크리스천들이 담당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진은 OHOG 홈페이지에서 펌. 1. 성공회신학 아카데미 학생들과 함께. 2. 신검 주교와 통역하는 윤정현 신부)
댓글:
새벽강: 신검 신부님 열심히 활동하고 계시군요. <성신아>에서 특강은 물론 청주교회에서 설교도 하셨다지요. 이 신문을 보니 인천도 방문하셨군요. 인도에 직업훈련시설과 장애인 센터를 세우려면 많은 돈이 들어가야 할 텐데 한 두 시민의 자발적 모임(예컨대 OHOG)으로서는 너무 벅찬 과제입니다. 시민단체나 기독교계가 나서야 한다고 봅니다. "인도에서 한국교회가 영향력을 확대하여 복음이 인도 전체로 흘러들어간다"는 말씀에 이의는 없습니다. 다만 너무 낙관적이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네요. 절대 지배종교인 힌두교를 꼭 염두에 두고서 하는 말만은 아닙니다. 큰 틀에서 보아 '전파'보다는 '교류' 쪽에 그 뜻과 무게를 둬야 한다고 봅니다. 수천 년(?) 이어온 강고하기 짝이 없는 신분계급제도도 당연히 생각을 거듭해야 할 대목이라고 봅니다. 다시 말하면 구체제는 쉽사리 물러나지 않을 뿐더러 언제든지 반격해온다고 할까요. 금방 생각할 수 있는 것으로는 뭐니뭐니 해도 연대이지요. 현지에서 땀 흘리시는 활동가나 세계적 기독교 단체라든가.
어쨌거나 천형과도 같은 악조건을 물리치고 10년 동안 100 여개의 교회를 세우셨고 만 명이 넘는 신도를 두셨다니 머리 숙여 경의를 드립니다. 또한 신검 신부님과 맺은 특별한 인연과 함께 성직자로서 무거운 짐을 마다하지 않으시고 말없이 실천해오신 윤정현 신부님께도 마찬가지고요. 게다가 성공회 교구와 상관없이 수행해오셨으니까요. 어제 전화로 말씀 드렸듯이 OHOG이든지(회원이 현재 겨우 10명이라고요?) 다른 모임이든지 효과가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적어봤습니다. 좋은 일이라고 맘 먹은 대로 다 할 수는 없겠지요. 이는 기독교인들에게도 마찬가지일 테고요. 역량이나 사랑의 문제에서가 아니라 말하자면 순서와 경중의 문제가 아닌가 합니다. 저는 특히 어린이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급해집니다. 대표적으로 북한, 아프리카, 버마, 거기에 인도라든가...생태문제도 어린이들을 위해서이죠.
인도 분델리족 ‘달리트 신문’의 기적 [경향닷컴] 2009.9.10
ㆍ최하층 여성·활동가들이 창간
ㆍ문맹 퇴치·자각·취업 ‘놀라운 변화’
인도 북부 우타르프라데시주의 분델칸드는 전형적인 저개발 농촌지역이다. 이곳의 소수민족인 분델리족은 개발에서 완전히 소외돼 10년 가까이 가뭄으로 끼니를 잇기도 어렵다. 이곳 여성들에게 교육은 ‘권리’가 아닌 ‘사치’일 뿐이다. 어른들도 대부분 문맹인 이곳에 몇년 전부터 새로운 움직임이 일고 있다. 한 주간신문이 창간된 것이 그 시작이었다. 뉴델리에서 활동해온 여성단체 니란타의 활동가들은 열악한 현실 속에서 ‘무엇이 문제인지도 모른 채’ 고통받던 분델리 여성들을 위한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분델리어로 ‘뉴스의 물결’을 뜻하는 ‘카바르 라하리야’라는 주간신문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카스트제도의 족쇄가 여전한 인도에서 니란타는 일부러 최하위 계급인 달리트(불가촉천민) 출신 여성들과 일하기 시작했다. 문맹인 달리트 여성끼리, 영어나 힌디도 아닌 지역 방언으로 신문을 낸다는 것은 처음에는 난센스처럼 보였다. 하지만 니란타는 글을 모르는 여성들에게 글을 가르치며 15명의 기자들을 키운 끝에 2005년 5월 4쪽 분량의 첫 신문을 발간했다. 그 지역 최초의 분델리어 신문이었다.
달리트 여성들은 마을들을 돌며 취재, 기사쓰기, 신문제작, 판매의 모든 과정을 맡았다. 힌디나 영어를 모르는 분델리 부족은 세상에서 격리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분델리어 신문이 탄생하자 글을 모르는 이들도 좋아했다. 기자들은 마을을 돌며 ‘문맹 독자’들을 위해 큰소리로 읽어주었다. 편집장 미라는 “상위 카스트들 중에는 우리를 냉대하고 무시하는 이도 많았지만 곧 분위기가 바뀌었다”고 전했다. 지금은 발행부수가 2만5000부에 이르며, 부당 2루피(약 50원)짜리 신문을 파는 가판대가 400개 마을에 총 4000개가 있다. 신문 분량은 8쪽으로, 직원수는 20여명으로 늘었다. 모두 소수자인 무슬림과 달리트 여성들이다. 신문이 자리를 잡으면서 달리트 여성들에겐 직장이 생겼다. 변화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억압과 차별, 가난에 시달려온 여성들 사이에 현실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면서 변화의 바람이 일었다. 당장 글을 배우려는 이들이 많아졌고, 기술을 익혀 일자리를 찾는 사람이 늘었다. 유엔이 정한 ‘세계 문해(文解)의 날’인 8일 유네스코는 니란타와 ‘카바르 라하리야’에 문맹퇴치 공로상인 ‘세종상’과 상금 2만달러를 수여했다.
인도 신문 데칸헤럴드는 “사회정의를 향한 ‘달리트 신문’의 투쟁”을 소개했고, 알자지라 방송은 “분델리인들은 작은 신문을 통해 ‘미래’를 읽는다”고 보도했다. 빈곤지역 주민들, 특히 여성들이 글을 알게 되면 보건·위생 등 삶의 질이 높아지기 때문에 유엔은 미개발국 주민들에 대한 교육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전 세계에는 글을 모르는 성인인구가 7억7600만명이나 된다. 유엔개발계획(UNDP)의 지난해 보고서에 따르면 인도의 경우 평균 61%의 문자해독률을 보이지만 여성들은 47.8%에 불과하다.
<구정은기자 ttalgi2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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