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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이 있으라 하신 곳에 있는 사람

작성일 : 2009-07-10       클릭 : 262     추천 : 0

작성자 차준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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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버포스는 줄곧 비방을 받았으며 심지어는 두 번이나 신체적인 공격을 받았다. 한번은 그의 친구가 유쾌한 어투로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다. “나는 자네가 서부 인도의 공장장에게 난도질당해서 아프리카 상인들 손에 바비큐가 되고 기니아 선장들에게 먹혔다는 뉴스를 듣게 될 것 같네. 하지만 굴하지 말게. 내가 자네 묘비명을 써 줄 테니까.”

이 모든 것 가운데 가장 놀랄 만한 사실은 윌버포스가 하마터면 간발의 차로 자신의 원대한 소명을 모두 잃을 뻔했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평생에 걸친 정치 개혁 열정에 불을 지펴 주었다. 한때 그는 69개나 되는 의안을 주도하며 적극적으로 참여했는데, 그중 여러 개는 세계적으로 중요한 사안이었다. 그러나 1785년 25세에 회심했을 때 그는 정치를 집어치우고 기독교 사역의 길로 접어들 뻔했다. 당시나 지금이나 수많은 사람이 생각하는 것처럼 윌버포스 역시 ‘영적인’ 일이 ‘세속적인’ 일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다행스럽게도 한 목사가, 하나님은 그가 기독교 사역보다는 정치 영역에 남기를 원하신다고 윌버포스를 설득했다. 그는 노예 상인으로 일하다가 회심하여 찬송 “나 같은 죄인 살리신”(Amazing Grace)을 작사한 존 뉴턴(John Newton)이었다. 뉴턴은 “나는 주님이 국가를 위해 일하도록 당신을 세우셨다고 믿고 있으며, 또 그렇게 되길 기대합니다”라고 썼다. 윌버포스는 많이 기도하고 숙고한 끝에 뉴턴의 조언이 옳다는 결론을 내렸다. 하나님은 그를 정치가로서 억압받는 자들의 자유를 옹호하라고 부르고 계셨다. 1788년 그는 일기에 이렇게 썼다. “내 길은 공적인 길이며, 내가 일할 곳은 이 세상이다. 그러므로 나는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함께 어울려야 하며, 그렇지 않다면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맡겨졌다고 생각했던 그 직책을 그만두어야 할 것이다.”

 
-오스 기니스 <소명>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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