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을 흉보면 의가 상하지만 남의 허물을 감싸주면 사랑이 돌아온다."(잠17:9) 어느 날 아침 해변가 어느 마을의 해변이 온통 불가사리로 가득 덮였습니다. 날이 뜨거워지면 불가사리들은 모두 죽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을 살려주는 일이 너무나 엄청나게 보여서 아무도 도와줄 시도를 하지 않았습니다. 아침나절에 어떤 사람이 해변을 거닐다가 한 꼬마가 불가사리를 한 마리씩 주워서 바다로 던지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 사람은 한심하다는 듯이 말했습니다. "꼬마야, 여기에는 수천 마리도 넘는 불가사리가 있는데 네가 하고 있는 일은 쓸데없는 일 같구나" 그 소년은 또 다른 불가사리를 집어서는 바다로 되돌려 던지면서 "그러나 이 불가사리에게는 쓸데 있는 일이지요"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내가 하고 있는 작은 행동이 이 시대의 큰 죄악의 물줄기를 어떻게 막을 수 있겠는가 하며 자포자기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 명 한 명이 등불을 밝히면 언젠가는 빛의 동산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나라 속담에도 "티끌모아 태산"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 "작은 물방울이 모여 큰 강을 이룬다"는 말이 있습니다. 작은 친절과 사랑의 말 한 마디가 사회를 밝게 합니다. 성경에 "하늘 나라는 겨자씨에 비길 수 있다." "겨자씨만한 믿음만 있어도.." 작은 겨자씨가 자라서 큰 나무가 되었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열왕기하 5:3-6절에 보면 나아만의 불치병인 나병을 사마리아의 예언자에게 보여서 낫게 하고 싶은 소녀의 작은 행동이 하느님의 치유와 나아만의 회심, 림몬의 신을 떠나 하느님께로 이어지게 되는 기록을 볼 수 있습니다. 나아만은 당시 시리아 왕의 군 사령관으로 위대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소녀를 끌고 와서 몸종으로 만든 나아만의 이름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작은 소녀의 이름은 성경 어디에도 나와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모두가 위대한 사람이 될 수 없을지 모릅니다. 그렇게 될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위를 격려하고 위로를 하는 축복의 사람이 될 수는 있습니다. "지극히 작은 일에 충실한 사람은 큰 일에도 충실하며 지극히 작은 일에 부정직한 사람은 큰 일에도 부정직할 것이다."(루가16:10) 서로가 미소를 지으면 기운이 납니다. 마찬가지로 때로 친절을 베풀면 여러분 자신이 고민하고 있는 문제가 한결 가벼워지지 않을까요? 세상이 그만큼 약간이라도 살기 좋은 곳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마음을 열고 그것을 받아들인다면 여러분은 행복이라는 선물을 가지게 됩니다. 여러분이 아침 출근 시간에 차를 몰고 가는데 누군가 앞에서 당신의 도로 통행료를 대신 내 줬다면 여러분 역시 언젠가는 다른 누군가를 위해 그런 일을 하게 되지 않을까요? 남모르는 선행 역시 하나의 작은 행동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여러분도 한번 시도해 보십시오. 처음부터 위대한 행동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위대한 행동, 처음부터 거창하게 시작되지 않습니다. 작은 벽돌 하나가 만리장성의 시작이고, 돌 하나가 거대한 피라미드의 시작인 것처럼 말입니다. 처음부터 위대한 행동, 위대한 사람은 없습니다. 작은 꿈, 작은 격려, 진심이 담긴 작은 사랑이 자라서 위대한 행동, 위대한 사람을 만듭니다. "예수 믿으십시요"라는 한 마디로 사람의 마음속에 예수님이 들어오고, 교회가 세워지고 복음이 전해집니다. 우리는 작은 일과 작은 행동에 소홀하거나 외면하지 맙시다.
미국 서부시대에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어떤 농부가 자신의 밭에서 심하게 악취나는 웅덩이를 보고 늘 투덜거렸습니다. 소나 말에게도 물을 먹일 수 없었기에 농부의 불평은 갈수록 늘어났습니다. 결국 농부는 그 웅덩이가 딸린 농토를 남에게 팔아버렸습니다. 그리고 농부는 파티를 벌이며 기뻐했습니다. 그러나 그 처분은 농부에게 일생 최대의 실수가 되었습니다. 그 웅덩이에서 거대한 유전이 발견된 것입니다. 무가치하게 보이는 것이 축복의 유전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평소에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그 가치를 잘 모르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생각해 봅시다. 사람이 70년을 살 경우 잠자는 데 20년, 일하는데 20년, 먹는데 6년, 노는데 8년, 치장하는데 5년, 전화거는 데 1년, 차속에서 7년, 사람을 기다리는데 3년 등이 걸린다고 합니다. 지나간 시간들에 대해서도 후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는 시간의 귀중함과 가치를 알아야 합니다.사람에게 주어진 시간은 일을 미루고 늦장을 부릴 만큼 길지 않습니다. 우리는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것에 상당한 시간을 허비합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여러분에게 주어진 기회를 잘 살리십시오.<세월을 아끼라>"(엡5:16) 요즘 건강의 귀중함을 압니다. 사람들은 평소에 돈, 명예를 아주 소중하게 여깁니다. 그것만 있으면 행복하게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건강을 잃으면 재산, 명예는 아무 것도 소용이 없습니다. 건강하다는 그 하나만도 얼마나 감사할 일인지 모릅니다.
하느님의 자녀는 성경말씀의 소중함과 그 가치를 알아야 합니다. 시편 기자는 하느님께 눈을 열어서 하느님의 말씀을 보게 해 주시기를 간구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깊고 오묘한 진리를 담고 있으며 성령님께서 조명해서 깨닫게 해 주셔야만 그 깊이 있는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을 모르는 사람은 그저 한 권의 책으로 볼 뿐이며 하느님의 귀한 말씀임을 알지 못하게 마련입니다. 가난 속에 사는 한 할머니가 있었습니다. 그 할머니에게는 아들이 하나 있었지만 여러 해 전에 미국으로 떠나 한 번도 할머니를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친구들은 할머니에게 아들이 한푼도 도와주지 않느냐고 곧잘 물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할머니는 얼굴을 붉히며 도와주지는 않지만 가끔 편지도 보내오고 그림도 보내온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는 한 친구에게 자랑하듯 그림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런데 그건 그림이 아니라 거액의 수표들이었습니다. 할머니는 오랜 세월 동안 쓸데없이 가난한 생활을 해 온 것입니다. 그런데 혹, 당신에게도 거액의 수표가 있다는 사실을 압니까? 성경에는 삶을 풍성하게 사는 비결이 담겨있습니다. 성경을 일반 책 정도로 생각하지 말기 바랍니다. 성경에는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무궁한 자원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2디모테오 3:15 "그대도 기억하다시피 그대는 어려서부터 성경을 잘 익혀왔습니다. 성경은 그리스도 예수를 믿음으로써 구원을 얻는 지혜를 그대에게 줄 수 있는 것입니다.” 말하고 있습니다. 복음의 소중함과 그 가치를 알아야 합니다. 하늘 나라에서 값으로 환산할 수 없는 선물인 복음이 매 순간 우리에게 전달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마음을 열지 않아 그 가치를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가치를 잘 모릅니다. 어떤 미국인이 프랑스를 방문해서 돌아다니다가 시골의 어떤 장터에서 싸구려 목걸이를 하나 사가지고 고국으로 돌아왔는데, 세관에서 높은 세금을 매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건 아주 싸구려 물건입니다” 했더니 “아닙니다. 이것은 아주 고가의 고급 품목입니다” 하더랍니다. 그래서 고가의 세금을 물고 왔습니다. 이 사람이 이상하게 여겨서 그 목걸이를 가지고 보석 감정 전문가에게 그 목걸이를 보였습니다. 감정가는 확대경을 가지고 한참 목걸이를 관찰하더니 “손님, 이건 보통 목걸이가 아닙니다.” 목걸이에 글자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조세핀에게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이.” 한 세기를 지배하던 나폴레옹의 사인 때문에 그 목걸이가 그렇게 고가품으로 인정될 수 있었습니다. 우리에게는 하느님의 사인과 하느님의 기대가 들어 있습니다. 하느님의 형상, 하느님의 놀라운 계획, 하느님의 임재하심 속에서 만들어진 우리의 인생 얼마나 소중한 인생입니까! 더구나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을 통해 피 흘려 구속받은 귀중한 존재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나의 존재를 묵상할 때 어찌 찬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하느님, 감사합니다. 인생이라는 은총, 짧은 인생이지만 내가 인간으로서 존재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하느님을 찬양합니다.” 우리는 인생에 있어 여러 번 바닥에 떨어지고, 밟히며, 더러워지는 일이 있습니다. 잘못된 결정에 의해서건, 환경에 의해서건 우리는 그런 일을 실제로 겪습니다. 그리고는 마치 자신이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느끼기도 합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우리에게 무슨 일이 있었건, 또 무슨 일이 일어나건 하느님의 관점에서 볼 때 우리는 자신의 가치를 결코 잃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아주 낡고 보잘 것 없는 바이올린 하나가 경매에 붙여졌습니다. 한 사람이 1실링을 불렀습니다. 그러자 방안에 폭소가 일어나더니 그 값으로 그에게 주라고 사람들은 입을 모았습니다. 경매인은 잠시 방안의 분위기를 살피다가말했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누가 이 바이올린으로 한번 연주해보시지 않겠습니까?” 잠시 방안에 침묵이 흐른 뒤 한 노인이 앞으로 걸어나왔습니다. 그 노인은 바이올린을 턱에 괴고 몇 번 활을 시험해 음을 맞추고 나서 그 낡은 악기로부터 절묘한 선율을 캐내기 시작했습니다. 순간 방안에 있던 사람들은 그 소리에 매혹되고 말았습니다. 아름다운 멜로디가 끝났을 때 방안은 감동의 박수갈채로 진동하였습니다. 다시 경매인은 바이올린을 들고 값을 물었습니다. 결국 “100파운드”로 낙찰되었습니다. 어찌된 일입니까? 그것은 전과 다름없는 바이올린이었는데…. 그 낡은 바이올린은 대가에 의해 명품으로 바꾸어졌던 것입니다. 우리들도 한결같이 쓸모 없고 무능한 존재처럼 보이지만 하느님의 손에 붙들리면 가장 가치 있고 위대한 명품 인생으로 바뀔 수 있음을 기억합시다. "여러분은 자신이 하느님의 성전이며 하느님의 성령께서 자기 안에 살아 계시다는 것을 모르십니까?"(고전3:16) 하느님의 사랑을 매순간 받습니다. 그것을 아시나요? 잘 모르시나요? 톨스토이의 우화입니다. 물고기들이 사람들의 대화를 엿들었습니다. 사람들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물이라고 했습니다. 물고기들은 그토록 중요한 물이 어떤 것인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늙은 물고기를 찾아가 물었더니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우리가 지금 물 속에 살고 있다. 물은 곧 생명이다. 우리 몸은 항상 물에 적셔져 있으며 날마다 그 속에서 산다. 그러나 우리는 느끼지 못하고 있다."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의 사랑 속에서 호흡하면서도 그 사랑을 모르고 살아갑니다. 하느님의 크신 은총과 축복을 받고도 잘 모릅니다. 생각해 보세요. 귀한 보물을 우리는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 보물이 여러분에게 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리고 보물을 찾아 헤매고 있지 않습니까? 바로 하느님께서 주신 여러분의 자녀들입니다.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인입니까! 이와 비슷한 일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삶 속에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것은 불행한 일입니다.
우리 가운데는 하느님의 놀라운 은총과 축복을 받고도 그 축복을 알지 못한 채 살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를테면, 하느님이 값없이 주시는 햇볕, 맑은 공기와 비, 바람까지도 그 소중함과 가치를 잘 모르고 감사하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가치를 잘 아시나요? 잘 모르신다구요? 강가에서 주은 돌이 수석전시회를 거치면서 가치 있는 돌로 변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가치는 얼마나 되는지 가늠을 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누구든지 그 가치를 인정하는 액수만큼 예수님은 그 사람에게 인정하는 만큼의 가치가 되어 주십니다. 하늘나라와 진리의 가치를 잘 모릅니다. 유럽의 탐험가들이 검은 대륙 아프리카에 처음 갔을 때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어느 바닷가에 갔더니 흑인들이 조개 속에서 번쩍이는 것을 물로 휙휙 던지고 있었습니다. 무엇인가 해서 가까이 가보니 값진 진주였습니다. 탐험가들은 가지고 간 음식과 물건들을 주고 진주를 모아와 부자가 됐습니다. 보화도 주인을 잘 만나야 빛이 나는 법입니다. 무지한 사람에게는 값진 진주도 돌처럼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하늘 나라와 진리의 가치를 재발견해야 합니다. 우리 크리스천들은 세상 사람들이 모르는 하늘 나라의 비밀과 귀한 진리의 가치를 알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이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장애물과 쓰레기처럼 여기고 버립니다.
성경에 "나에게 유익했던 이런 것들을 나는 그리스도를 위해서 장애물로 여겼습니다... 나에게는 내 주 예수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무엇보다 존귀합니다. 나는 그리스도를 위해서 모든 것을 잃었고 그것들을 모두 쓰레기로 여기고 있습니다."(빌3:7-8), 하늘 나라의 가치를 아는 사람은 세상에서 가진 모든 소유보다 더 값진 것을 알고 주님 사업에 자기 모든 힘과 능력과 마음을 다 바칩니다. 성도 여러분이 소유한 재산, 시간, 몸과 마음을 다 바치고 팔아서 하늘 나라의 보물을 소유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