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병이어 기적의 말씀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말씀입니다. 아무것도 먹지 못한 사람들이 안타까워 군중들을 마을로 돌려보내자고 말하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그들을 보낼 것 없이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한 두 명도 아니고 여자와 아이를 빼고도 오천 명이나 되는 군중들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 중에 오천 명분을 혼자 먹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오천 명을 먹이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오천 명분을 혼자 먹는 사람을 잘 사는 사람이라고 이야기하지만 하느님은 오천 명을 먹이는 사람을 잘 사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십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잘 아는 오병이어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오천 명을 먹이는 사람이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복음말씀인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는 말씀 속에 담겨져 있습니다. 살다보면 오천 명에게 먹을 것을 주는 것은 고사하고 남에게 도움을 받아야 할 만큼 가난하고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저도 개인적으로 생각해 보면 다른 사람을 도와주기는 고사하고 다른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정신적인 도움만이 아닌 물질적인 도움도 참 많이 받으면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 은혜를 잊지 않으려고 합니다. 사람을 불행하게 하는 치명적인 가난이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가난이 다 불행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가난 때문에 불행하기 보다는 상대적인 박탈감 때문에 스스로를 괴롭히며, 괜히 있는 자들을 미워하고 시기하는 마음 때문에 더 불행해 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가난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가난을 무조건 두려워하지는 않지는 않습니다. 부를 자랑할 것도 없고 가난을 부끄러워 할 것도 없습니다. 더욱이 다른 사람들의 부를 시기할 것도 없습니다. 그냥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살면 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로 역시 ‘비천하게 살 줄도 알며, 풍족하게 살 줄도 압니다.’라고 고백한 삶이 있었음을 알고 있습니다. 가난을 부끄러워 할 필요도 없지만 구태여 가난을 자랑할 것도 없습니다. 부함 자체가 훌륭한 것이 아닌 것처럼 가난 자체도 훌륭한 것은 아니지요. 부함을 무조건 성공으로 여기고, 가난함을 무조건 거룩함으로 여기는 것은 다 성경적인 생각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와 같은 생각은 기독교 안에도 있습니다. 하나는 예수를 믿으면 부자가 되고, 건강해 질뿐만 아니라 세상적으로도 성공하고 형통하다는 것을 내세우는 것과 예수를 잘 믿으려면 가난하게 살아야 하고 특히 성직자들은 꼭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저는 그 어느 쪽에도 동의하지 않습니다. 저는 그것이 다 성경적인 생각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부함을 자랑하는 것도 인간적이고 가난함을 자랑하는 것도 인간적입니다. 둘 다 다 건강치 못하고 성숙하지 못한 생각들입니다. 훌륭한 삶을 살기 위해 부해지려고도 하지 않겠고, 일부러 가난해 지려고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그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성경이 저희들에게 가르쳐 주시는 생각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잘 살기 위해 부자가 될 필요는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을 돕고 섬기기 위하여, 다시 말해서 오 천 명분을 혼자서 먹기 위하여 부자가 되기 보다는 오천 명을 먹이기 위해 부자가 되는 것은 좋을 것 같습니다. 우리는 부자를 무조건 죄악시하고 경원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오 천 명분을 혼자서 먹기 위한 부자’와 ‘오 천명을 먹이기 위한 부자’를 구별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을 잘 구별하지 못합니다. 구별하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구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라는 예수님의 말씀 속에는 부자 됨에 대한 소명이 들어 있습니다. 목적이 들어 있습니다. 그와 같은 소명감과 목적을 가졌다면 부자가 되어도 좋다는 인정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하느님이 공평하신 분이라고 생각하고 하느님께서 사람과 세상을 공평하게 창조하셨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과 다릅니다. 제가 보기에 하느님은 공평하신 분이 아니라 불공평하신 분이십니다. 어떤 사람은 부하게 어떤 사람은 가난하게 창조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높게 어떤 사람은 낮게 창조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건강하게 어떤 사람은 약하게 만드셨습니다. 그것은 자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불공평하심에는 의도가 있으십니다. 그것은 ‘흐름’입니다. ‘흐름’은 생명입니다. 물은 흘러야 깨끗해집니다. 그리고 돈도 사랑도 인정도 흘러야만 세상이 아름다워지고 건강해 집니다. 높고 낮음이 있어야 흐름이 발생하고 강하고 약한 것이 있어야 흐름이 발생합니다. 모든 것이 평평하고 공평하다면 흐를 수 없습니다. 하느님은 이 흐름을 위하여 엄청난 값을 지불하시기도 합니다. 그것이 바로 홍수와 태풍이 아니겠습니까? 하느님의 흐름에는 원칙이 있습니다. 그것은 높은데서 낮은 데로, 강한 데서 약한 데로 흐르는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는 생명의 흐름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들이 타락하면서부터 그 흐름이 원칙이 깨지게 되었습니다. 타락한 인간의 세상에는 흐름의 역류가 일어납니다. 높은 데서 낮은 데로 흐르는 것이 아니라 낮은 데서 높은 곳으로 흐릅니다. 강한 데서 약한 데로 흐르는 것이 아니라 약한 데서 강한 데로 흐릅니다. 부한 데서 가난한 데로 흐르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데서 부한 데로 흐릅니다. 그것을 사람들은 쉽게 ‘빈익빈 부익부’(貧益貧 富益富)라고 이야기 합니다. 이와 같은 흐름의 역류를 막기 위하여 사람들은 공평한 세상을 꿈꿉니다. 가난한 자도 없고 부한 자도 없는, 강한 자도 없고 약한 자도 없는 그런 세상을 꿈꿉니다. 저는 그것이 사회주의자들의 이상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곧 예수님의 가르침, 성경의 가르침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성경의 가르침이 아닙니다. 하느님이 설계하신 세상은 가난한 사람과 부한 사람의 차이가 없는 공평하고 평등한 세상이 아닙니다. 가난한 사람도 있고 부한 사람도 있는 세상입니다. 불공평한 세상입니다. 다만 하느님이 원하시는 세상은 ‘바른 흐름’ 다시 말해서 ‘생명의 흐름’이 있는 세상입니다. 부함과 가난함이 없어서 남 줄 것도 없고 남에게 받을 것도 없는 세상은 좀 삭막한 세상이 아닐까요? 부한 사람도 있고 가난한 사람도 있으며, 건강한 사람도 있고 약한 사람도 있지만, 부한 사람이 가난한 사람을 섬기고, 건강한 사람이 약한 사람을 진심으로 섬긴다면 그것이 훨씬 더 살 맛 나는 세상이 아닐까요? 그것이 바로 하느님이 원하시는 세상이 아닐까요? 그것이 바로 오늘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라고 말씀하신 말씀의 정신이 아닐까요? 오 천 명분을 혼자서 먹으려고 할 때 하느님의 역사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것을 다른 사람과 함께 나누려고 할 때 하느님의 역사 즉 오병이어의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저는 그와 같은 기적의 역사가 오늘도 나타난다고 믿습니다. 하느님은 우리들이 가난을 자랑하거나 훌륭하게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되는 것 원치 않으십니다. 형편과 처지에 따라 얼마든지 가난하게 살 수도 있지만, 그것을 부끄러워하지도 않으며 하느님이 주시는 은사와 축복에 따라 오천 명을 먹이는 삶을 사는 사람이 되는 것을 원하십니다. 하느님은 자신의 소득을 하느님과 나눌 줄 아는 사람 되기를 원하십니다. 최소한 십분의 일은 하느님의 것인 줄 알고 자기가 쓰기 이전에 먼저 하느님께 내어 놓을 줄 아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안양교회 교우 여러분들은 자신의 소득을 먼저 하느님께 떼어 놓을 줄 아는 사람 되시기를 원합니다. 십일조가 정확하지 못한 사람은 결국 큰일을 못합니다. 주를 위하여 쓸 줄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주님께 쓰임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저는 주를 위하여 쓸 줄 아는 사람을 주께서 쓰신다고 믿습니다. 하느님은 자신의 소득을 가난한 이웃과 함께 나누어 쓸 줄 아는 사람 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잘 아는 레위기 19장에 보면 추수 할 때에 밭에서 모조리 거두어들이지 마라, 거두고 남은 이삭을 줍지 말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저는 모든 사람이 다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살지 못한다고 해서 부끄러워 할 것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살 수 있기를 소망하고 사는 것도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오천 명을 먹이는 사람이 되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우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부하면 나눌 줄 아는 자가 되고, 가난한 중에서도 자족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 늘 행복을 잃지 않는 사람이 되라고 가르쳐야겠습니다. 그러나 할 수 있는 대로 부자가 되어서 하느님과 이웃들을 위해 내어 놓을 줄 아는 사람이 되라고 가르쳐야겠습니다. 할 수 있다면 10의 9조를 하느님과 이웃 그리고 세상을 위하여 쓸 줄 아는 사람이 되라고 가르쳐야겠습니다. 여자와 아이를 제하고도 오천 명이 넘는 무리를 먹이겠다고 제자들이 예수님께 들고 온 것은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마음을 기쁘게 받으셨습니다. 그 마음과 빵 다섯 개 그리고 물고기 두 마리를 들고 감사의 기도로 축복하셨습니다. 그랬더니 오천 명이 먹고도 12 광주리가 남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이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고 능력이 없는 제자들에게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라고 말씀하실 때 예수님은 이미 제자들이나 누구나를 막론하고 저 먹을 것만 생각하지 아니하고 작은 것 하나라도 이웃과 함께 그것을 나누려고 하는 자에게는 정말로 오천 명을 먹이고도 12 광주리나 남을 만큼의 능력을 주시겠다는 의도를 가지고 계셨습니다. 이와 같은 의도가 지금도 동일하게 하느님께 있음을 확신합니다. 우리 안양교회 교인 모든 분들에게 이와 같은 축복이 임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천 명을 먹이는 사람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부터 그것을 실천하실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