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역사 속에 겪는 재난이라는 것은 전쟁만이 아니었습니다. 지진이나 해일이나 폭염이나 기근이나 폭우나 홍수나 이것 모두가 재난입니다. 이것은 인간이 막을 수가 없습니다. 불가항력적입니다. 지진은 누가 막습니까? 오늘날 두려움과 불안 속에 있는 세상 사람들을 향해서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다. 안심하여라! 겁낼 것 없다.” 내가 여기에 있다. 염려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어린아이가 혼자 장난감을 가지고 막 노는데 엄마가 옆에 있는 줄 알았습니다. 한참 놀다보니 돌아봐도 엄마가 없습니다. 울어버렸습니다. 옆방에 있던 엄마가 얼른 쫓아와서 “괜찮아. 괜찮아.”하고 달래면 그때서야 아이는 울음을 그칩니다.
주님은 풍랑 속에서 시달리는 제자들에게 “나다. 안심하여라! 겁낼 것 없다.” 말씀하십니다. 오늘 여러분이 어떤 불안과 두려움을 가지고 나왔더라도 오늘 하느님 말씀을 통해서 여러분의 마음에 두려움을 몰아내고 평안과 담대함을 회복하시기를 소원합니다. 예수님은 산으로 기도하러 올라가시고 제자들은 따로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건너가고 있었습니다. 한밤중에 거센 바람이 불어오고 풍랑이 몰아쳐서 제자들은 이제 속수무책의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풍랑은 그들에게 큰 두려움과 공포를 가져왔습니다. 이런 무서운 풍랑, 이건 우리도 어쩔 수 없다. 또 그 풍랑이 일어난 시점이 한밤중이었습니다. 아주 캄캄한 칠흑 같은 어둠가운데서 그런 풍랑을 만나니까 속수무책이었습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거기 계시지 않았습니다. 주님이 함께 배에 타고 있었더라면 문제는 달랐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거기 계시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다가 그 고난 받는 제자들을 보시고 물위를 걸어 제자들을 찾아오시는데 그 물 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보고 오죽했으면 제자들이 유령이라고 소리를 지릅니다. 왜 그랬을까요? 두려움 때문입니다. 저도 어린 시절에 밤에 친구 집에 놀러 갔다 집으로 들어가는 좁은 캄캄한 골목길이 그렇게 무서울 수가 없었습니다. 뒤에서 누가 잡아당기는 듯합니다. 그래서 두려움을 가지고 겁을 내고 뛰어갑니다.
여러분! 두려움으로 보면 그럴 수 있다는 것입니다. 판단력을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두려움은 믿음의 적입니다. 두려움이 온다는 것은 믿음을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 두려움을 다 몰아내실 수 있는 믿음을 회복하시는 시간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나다. 안심하여라! 겁낼 것 없다.!”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두려움이 존재해서는 안 됩니다. 그럼 우리가 두려워하지 않아야 될 이유가 무엇일까요? 왜 두려워하면 안 될까요? 첫째는 풍랑의 배후에 계신 분이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에게 풍랑을 일으키시는 분이 바로 주님이시고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요나서 1:4 보면 “야훼께서 바다에 바람을 일으키셨다.” 큰 태풍을 내리신 분이 바로 하느님이라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모든 우주의 주관자이시고, 만왕의 왕이 되십니다. 만약 하느님이 태풍을 허락하셨다면 우린 염려할 것 없습니다. 이 태풍을 멎게 하실 분도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이 태풍을 일으키신 그 분이 이 태풍 가운데서 우리를 보호하실 수 있는 것도 믿으시기 바랍니다. 결코 이 태풍은 우리를 파괴시키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면 선하신 하느님이 왜 이런 태풍을 우리들에게 허락하셨을까요? 거기엔 분명히 하느님의 어떤 계획이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고통에는 반드시 뜻이 있습니다. 우리가 경험하는 고통, 무의미한 고통이 없습니다. 우리가 그 이유를 알 수 없지만 거기에는 반드시 어떤 뜻이 있습니다. 우리는 고통 가운데 하느님을 바라보시기를 바랍니다. 하느님을 예배하는 자리로 나오시기 바랍니다. 내 삶의 우선순위에 하느님을 모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세상소리에는 귀가 예민했습니다. “어디서 돈을 벌 수 있다.” “이런 방법으로 하면 돈을 벌고 집을 살 수 있다.” “어디가 땅 값이 올라간다.” 이런 데는 얼마나 예민한지 모릅니다. 쫓아가서 듣습니다. 어떻게 하면 돈 벌수 있느냐고. 그런데 하느님의 음성에는 귀를 막았습니다. 예배하는 자리에는 발을 끊어버렸습니다. 아마 여러분의 대부분은 주일 예배 외에는 일주일동안 교회 오시는 분이 거의 없을 것입니다. 대부분은 저녁 기도회는 오지 않습니다. 새벽예배도 오지 않습니다. 철야기도 이미 오래 전에 끊었습니다. 주일 오전예배만 오직 나오는 것입니다.
참 그 마음이 훌륭합니다. 어떻게 그렇게 변치 않는지 모릅니다. 그것은 참 변치 않습니다. 나는 오직 주일 예배만 나가리라. 무슨 수요예배, 구역회, 새벽예배와는 원수 지셨습니까? 우리 대부분이 그렇습니다. 뭐 누구라고 말 할 것도 없습니다. 하느님의 음성을 들으려 하지 않고 TV의 음성을 듣고, TV를 찬양하고 탤런트를 바라보면서 우리는 한 주간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주님은 이제 오늘 시달림과 고통의 풍랑을 통해서 우리가 물질을 버리고 쾌락을 버리고 맘몬주의를 벗어버리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물질을 하느님처럼 섬겼습니다. TV를 주인처럼 모시고 살았습니다. 이제 이런 우상을 다 던져버리고 진정한 우리의 하느님 앞에 경배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은 오늘 이 고통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모든 사람들이 하느님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고집과 아집을 버리고 겸손함으로 무릎 꿇어야 할 것입니다. 풍랑의 배후에 계신 분이 바로 주님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회개의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두 번째로 우리가 풍랑 가운데 두려워해서는 안 되는 이유는 주님은 풍랑을 다스리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바로 이 온 세상을 그리고 바다와 풍랑을 창조하신 분입니다. 바로 그 분이 그 풍랑을 유일하게 다스리실 수 있는 분입니다. 오늘 성경에 보니까 그 분은 한밤중에 물위를 걸어오셨습니다. 물 위에 서실 수 있는 분. 물을 정복하실 수 있는 분이 바로 주님이십니다. 또한 32절에 보니까 “함께 배에 오르시자 바람이 그쳤다.” 예수님이 배에 오르니 바람이 잔잔해 졌습니다. 마태복음 8장에 보면 이와는 조금 다른 내용이 나옵니다. 예수님은 바람과 바다를 꾸짖었을 때 그 바람이 잔잔해지고 바다가 고요해 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풍랑을 다스리시는 분이십니다. 여러분께 한번 물어보겠습니다. 아주 사나운 개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나운 개가 딱 한사람에게 순종합니다. 누구에게 순종합니까? 주인 앞에서는 꼼짝 못합니다. 아무리 풍랑이 사납게 몰아쳐도 그 주인 되시는 주님 앞에서는 꼼짝할 수 없는 것입니다. 풍랑을 멎게 하시고, 풍랑을 다스리시는 그분! 그 예수님을 바라보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베드로가 이제 예수님이 물 위로 걸어오시는 것을 보고 너무 좋아서 주님! 저도 좀 물 위를 걷도록 말씀해 주세요. 간청합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야 걸어오너라. 그랬더니 베드로가 정말 믿음으로 그 물위를 걷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역사에 처음 있는 일입니다. 인간이 물 위를 걷다니 참 대단한 일입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최초의 사람이었고 최후의 사람이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바라보고 시선을 고정시키고 믿음으로 물 위를 걸어갔는데, 동시에 바람이 불어오는데 그 바람을 보자 무서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이러다 빠지면 어떡하지?’ 제정신이 돌아온 것입니다. 그 순간에 베드로는 물속에 빠져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주님 살려주십시오.”하고 소리쳤더니 예수님이 손을 내밀어서 베드로를 물에서 건져주셨습니다. 그러면서 “왜 의심을 품었느냐? 그렇게도 믿음이 약하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물에 빠진 우리를 건질 수 있는 분은 오직 주님밖에 없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분은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는 분입니다. 그분은 인생의 풍랑을 잔잔케 하실 수 있는 분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이제 풍랑의 주인 되시는 주님을 바라봅시다. 그분을 신뢰하십시오. 그리고 그분을 의지하십시오. 오직 하느님만이 풍랑을 다스리시고 이 바다를 정복하실 수 있는 그 하느님만을 신뢰하시기를 바랍니다. 세 번째로 왜 우리가 풍랑가운데서도 두려워해서는 안 될까요? 주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베드로가 부르짖어 기도하였습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고 주님 말씀하셨습니다. 위기 속에서 우리가 할 일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기도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기도 외에는 없습니다. 기도 외에는 이런 능력이 나갈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기도 외에는 기적을 체험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기도 안 해 보신 지가 오래되셨죠? 중대한 문제를 놓고 하느님 앞에 나와서 간절히 소리 높여서 기도해 보신 때가 언제였습니까? 여러분! 우리는 기도를 서서히 잊어버리기 시작합니다. 교회건축과 영적으로 피폐해져가고 냉담자가 많아지는 풍랑을 잔잔케 하기 위해서는 여러분 다시 기도의 자리로 나와야 할 줄로 믿습니다.
지금 별로 기도할 필요가 없죠? ‘왜? 만사가 형통한데 뭐.’ 기도할 필요가 뭐 있어?’ 이런 생각은 하지않기를 바랍니다. 기도하지 않는 죄를 범하지 않기를 바랍니다.주님은 오늘 우리가 깨어서 기도하기를 원하십니다. 기도할 때 주님이 응답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문제 각자 개인의 문제는 하느님만이 해결 하실 수 있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인간이 할 수 없습니다.
자연 재해를 누가 막습니까? 오직 하느님만이 이것을 조절하실 수 있습니다. 지금은 기도할 때입니다. 여러분! 기도의 끈을 다시 붙들 수 있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성도 여러분! 32절 "함께 배에 오르시자 바람이 그쳤다."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배에 오르시자 바람이 그쳤습니다. 주님이 배에 오르시면, 주님이 사람의 마음에 임재하신다면, 이 풍랑은 멈출 줄로 믿습니다. 지금이 바로 주님을 모셔드릴 때입니다. 그 분을 우리 인생의 주인으로, 우리 교회라는 배의 선장으로 그 분을 모셔드릴 때입니다. 예전에 어머니들이 항아리를 이고 물을 길러 오십니다. 항아리를 내려놓고 바가지를 가지고 물을 퍼붓습니다. 그리고 그냥 오시면 물일 출렁거려서 옷을 다 버리고 반도 안 남습니다. 그럴 때 어떻게 할까요? 물을 다 붓고 항아리 위에다 바가지를 엎어놓습니다. 그러면 물이 출렁거리질 않습니다. 이 풍랑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가 임하신다면 이 풍랑은 멎게 될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여러분이 인생의 어려운 위기 가운데 정말 주님과 함께 걸어간다면 무엇이 걱정이 되겠습니까? 주님과 함께라면, 예수님이 내 곁에서 나와 동행하신다면, 아니 주님이 내 손 잡아주신다면 무엇이 염려겠습니까? 사도 2:25 “ 주께서 내 오른편에 계시오니 나는 항상 주님을 가까이 뵈오며 내 마음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주님이 내 우편에 계신다면 무슨 걱정이 있겠습니까? 풍랑의 위기가 무슨 대수겠습니까? 염려할 것 없습니다. 주님과 함께라면, 능력의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면 우리는 능히 풍랑을 헤치고 승리하는 인생이 될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이제 마음의 두려움을 몰아내십시오. “왜 의심을 품었느냐? 그렇게도 믿음이 약하냐?” 두려움이 온다는 것은 믿음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믿음을 회복하십시오. 그리고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기도의 자리에 나아오십시오. 그리고 승리하고 용기 있는 믿음의 소유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