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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삼일절


나를 누구라 생각하느냐

작성일 : 2011-08-20       클릭 : 285     추천 : 0

작성자 안양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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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픈 훈련병 시절에 초코파이를 먹고 싶어 교회에 한 번쯤 나갔던 적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자대에 배치 받으면 고참들의 눈초리를 벗어나서 잠시나마 자유를 누리고 싶은 욕구 때문에, 혹은 못다 잔 잠을 자려고, 혹은 하기 싫은 일을 피하려고 교회에 나간 적도 있습니다. 그것이 군대 교회를 다니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일종의 ‘복’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복을 중심으로 교회를 다닌 자들은 고참이 되면서 서서히 교회를 떠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기적을 많이 체험하고 많은 가르침을 알고 있지만 결국 교회를 떠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왜 그런 일이 발생할까요? 그들이 참 그리스도인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초코파이를 먹으려는 동기로 교회에 왔다가, 혹은 위로 받으려는 마음에서 교회에 왔다가 참 그리스도인이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경우는 교회에 머무는 기간 중에 반드시 알아야 할 신앙의 핵심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와는 달리 그 핵심을 모르면서 계속 다른 동기로 교회에 머무르고 있는 사람들로 인해 기독교 신앙은 왜곡되고 변질됩니다. 그 핵심을 모르면서 열심히 기독교 종교적인 일들을 하기 때문에 기독교 신앙은 더욱 빨리 부패해버립니다. 그렇다면 참 그리스도인임을 점검할 수 있는 표지는 무엇일까요? 이제 예수께서 어떻게 질문하셨는지 본문을 살펴봅시다.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 하더냐?”(13).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15). 예수님은 사람들이든 제자들이든 ‘예수님을 누구로 알고 있는지?’ 점검하기 원하셨습니다.
이 질문은 우리의 신앙이 ‘예수님은 누구신가’를 아는데 초점을 두어야 함을 말해줍니다. 우리의 전도와 선교 역시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전파하는 것에 초점이 있음을 알려줍니다. 기독교 신앙의 핵심은 ‘한 인격’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것입니다.
 지금 우리 나라는 변화와 개혁을 위해 법을 고쳐야 한다느니, 제도를 고쳐야 한다는 이야기들이 오래 전부터 나오고 있습니다. 다 맞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하셨던 일을 눈여겨보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법을 고치는 것은 중요합니다. 제도를 고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법을 고치고, 조직을 고치고, 제도를 고쳐도 그 법과 제도를 운영하는 사람을 고치지 못하면 말짱 도루묵이 되고 맙니다. 결국은 사람이 문제입니다. 사람이 달라져야 합니다. 내가 달라져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렇다면 사람이 달라지는 길은 무엇일까요? 사람을 살리는 길, 사람을 변화시키는 길, 사람을 개혁하는 길, 사람이 영원한 가치체계를 깨닫게 하는 길은 불가능할까요?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가능합니다. 처음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운 사람들은 그리스도께 소속된 사람들, 그리스도 안에서 변화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사람들에게는 불같은 성령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랑과 기쁨. 평화, 인내, 친절, 선행, 진실, 온유, 절제와 같은 성령의 열매가 이 땅 위의 어두운 곳에, 썩어져 가는 곳에서 수많은 성령의 역사를 일으켰습니다. 이것이 바로 초대교회 성도들의 모습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들에게도 사랑과 기쁨. 평화, 인내, 친절, 선행, 진실, 온유, 절제와 같은 열정이 끝없이 샘처럼 쏟아질 수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죽고 사는 권세가 입에 있습니다. 입술에서 나오는 말이 그렇게 중요합니다. 그런데 이 입은 길들일 수가 없습니다. 개나 돼지는 길들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세 치도 안 되는 혀는 길들일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하느님의 권능에 붙잡혀야 합니다. 성령께서 내 입술에 파수꾼이 되어주셔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자기 마음을 다스리십시오. 일어나는 것도 내 마음이고, 주저앉는 것도 내 마음이라고 한다면, 사랑하는 여러분, 모든 낙심과 좌절과 넘어짐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권세와 성령의 능력으로 털고 일어나시기를 축복합니다. 일어나면 해야 할 일과 달려갈 길이 보입니다. 일어나면 하느님의 도우심의 손길과 역사를 보게 될 것입니다. 오늘 복음 말씀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런 질문을 하고 계십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사랑하는 여러분, 만약 지금 여기에 예수님께서 오셔서 똑같은 질문을 하신다면 여러분은 무엇이라고 대답을 하시겠습니까? 당시 예수님을 따르던 많은 사람 가운데 다음과 같은 대답을 한 사람이 있습니다. "선생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고 해도 이 고백이 나오지 않는다면 헛 믿은 것입니다. "선생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주님께 드리는 이 고백은 삶이 평안하고 은혜가 넘칠 때에만 드리는 고백이 아닙니다. 내 삶이 힘들고 어려울 때라도 이 고백을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사실 우리는 우리의 삶이 평안하고 좋을 때에는 예수 그리스도는 나의 주님이라고 고백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내 삶이 힘들 때, 삶의 위기감을 느낄 때, 여러분은 예수는 나의 주님이시라고 고백할 수 있겠습니까?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선조들의 신앙이 훌륭했다는 것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들은 평안할 때 뿐만 아니라 힘들고 어려울 때에도 하느님의 선하심과 신실하심을 믿었습니다.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그 마지막 순간에도 그들은 하느님의 도우심과 역사하심을 믿었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주님 앞에서 신앙고백적인 삶을 살아드려야 합니다. 매 순간마다 주님은 나의 주님이시라는 고백을 드리는 거룩한 영적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나약한 믿음의 소유자가 되지는 마십시오. 그러면 본인도 힘들 뿐만 아니라 주변의 가족들도 힘들어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환경 때문에, 사람 때문에 믿음이 흔들리지 마십시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면서 성숙된 믿음 생활을 해 나가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하느님께 입술로 감사와 찬양과 고백을 올려드려야 합니다. 베드로는 실수도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에 그는 주님 앞에서 신앙고백도 잘 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의 고백을 들으신 주님께서 그를 향해 "베드로야, 네 인격이 참으로 귀하구나. 네 인격 위에 교회를 세우겠다."라고 칭찬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구원자라라고 하는, 죄와 슬픔과 아픔과 고난과 실패와 낙심과 죽음 가운데서 나를 구원하신 메시아라고 하는 이 믿음 위에 교회를 세우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주님께서는 "죽음의 힘도 감히 그것을 누르지 못할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땅에는 죽음의 힘을 가진 권세가 많습니다. 사단의 권세가 많습니다. 시험의 권세가 많습니다. 그러나 죽음의 힘을 무찌를 수 있는 것은 하느님의 도구인 교회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귀한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에 충성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교회를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가 거룩한 하느님의 사명 공동체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19절에서 주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이렇게 축복의 말씀을 하십니다. "또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도 매여 있을 것이며, 땅에서 풀면 하늘에도 풀려 잇을 것이다.." 이 말은 "하느님의 교회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 풀린다"는 뜻입니다.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에게는 이런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내 개인과 내 가정과 이 땅의 모든 문제에 응답을 받고 하느님의 새 역사의 새로운 터를 열리라는 꿈을 가지십시오. 나로 인해서 내 가정이 하느님의 축복의 역사를 열어 가리라는 비전을 품으십시오. 이 땅의 부흥과 회복의 역사는 바로 나로부터 시작되리라는 꿈을 가지시기를 축복합니다. 내가 하늘의 문을 열고! 내가 축복의 문을 열며! 나로부터 새로운 역사를 열어가겠다는 꿈을 가지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교회는 단순히 건물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를 헬라어로 에클레시아라고 합니다. 이 말은 건물이 아니라 사람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는 사람이 바로 교회입니다. 로마12:1-2 “여러분 자신을 하느님께서 기쁘게 받아주실 거룩한 산 제물로 바치십시오. 그것이 여러분이 드릴 진정한 예배입니다. 여러분은 이 세상을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하여 새 사람이 되십시오. 이리하여 무엇이 하느님의 뜻인지.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그분 마음에 들며 무엇이 완전한 것인지를 분간하도록 하십시오.”
이 말씀은 우리 자신이 하느님의 거룩한 교회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거룩한 성전에다 더러운 것을 쌓을 수 없습니다. 하느님의 거룩한 성전에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까요? 교회 공동체의 힘과 능력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 거룩함에서 오는 것입니다. 신앙고백에서 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도 그 당시에는 아무 일도 못했습니다. 오히려 낙심하고, 세 번씩이나 주님을 모른다고 배신함으로써 일평생 잊을 수 없는 배신자의 삶으로 떠내려갔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부활하신 후 마가의 다락방에 다른 제자들과 함께 모여 앉아 있는 가운데 그는 고민하면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모습이 내 모습이 아닌데, 이 신앙이 바른 신앙이 아닌데, 뭔가 있을 텐데, 뭔가 있을 텐데…." 그는 이 거룩한 고민 속에서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그때 오순절 성령이 그들의 믿음 위에 내려오셨습니다. 그때 교회가 살아났습니다. 하느님의 영인 성령이 그 생명 속에 육신을 입고 나타나셨습니다. 성령이 그들 속에 운행하셨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것은 오늘날도 똑같습니다. 삶이 어렵고, 앞날이 캄캄하다고 걱정하지 마십시오. 삶이 힘들고 어려움이 파도처럼 밀려올지라도 결코 혼자서 근심하며 염려하지 마십시오. 혼자 있을 때에 사단은 내 마음에 찾아옵니다. 혼자 있을 때에 나를 찾아온 사단은 내 마음에 걱정이라고 하는 부정적인 가라지를 뿌려놓고 갑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한 번 곰곰히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이 혼자 있을 때에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생각이 납니까, 아니면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생각들이 납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혼자 있을 때에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생각들을 합니다. 혼자 있을 때에 걱정과 염려를 하게 됩니다. 그래서 혼자 있는 사람들은 우울증에 빠지기 쉬운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간 하느님의 이름으로 권면합니다. 혼자서 고민하지 말고 교회 공동체에로 나아오십시오. 믿음의 성도들과 함께 하십시오. 그리고 함께 기도하십시오. 교회에 가서 아무도 없는 그곳에 엎드려 기도해 보십시오. 이른 새벽 미명에, 모두가 잠이 든 고요한 시간에 주님의 전에 나와서 기도해 보십시오. 이 하느님의 전에서 하느님을 위해 성령께서 주시는 큰 꿈을 꾸십시오.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큰 계획을 세우십시오. "하느님을 위해 내 가슴에 꺼지지 않는 진리의 불을 붙이리라"는 열정을 가져보십시오. 기억하십시오. 성령이 함께하시면 우리가 열면 열릴 것입니다. 우리가 묶으면 묶일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를 구주로 고백하는 당신의 믿음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환경에 얽매이지 말고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가지십시오. 이제 여러분이 그 믿음의 열쇠를 가지고 묶이면 묶일 것이요, 풀면 풀릴 것입니다. 사회적으로 삶이 힘들고 어려운 시기요, 교회는 교회건축으로 모두가 힘든 이 시기에 주님은 우리 모두에게  물으십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이 거룩한 주님의 물음 앞에 드릴 여러분의 대답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주님의 이 물음 앞에 이렇게 대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선생님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구하는 분이시며, 건지시는 분이시요, 살아 계신 하느님이십니다." 이렇게 대답하는 여러분에게 주님은 계속해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믿음으로 하늘의 보좌를 움직일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나로 인하여 내 가정이 하느님의 축복의 역사를 열어 가시기를 축복합니다. 이 땅의 부흥과 교회회복의 역사는 바로 나로부터, 우리로부터, 우리 교회로부터 시작되리라는 큰 꿈과 비전을 품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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