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한 대학 친구가 있었습니다. 교회 나가기를 기도 했는데 다행스럽게 믿는 여자와 결혼을 했습니다. 여전히 교회는 안 나갑니다. 가금씩 교회 나간다고 합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교회나가니 어떠냐? 이 친구 하는 말이 뭐가 뭔지 모르겠구, 마누라가 나가자, 나가자 해서 바람도 쏘일 겸 나간다. 그런데 예수는 모르겠고? 나쁜 말은 안 하더라. 그래서 나간답니다. 여러분에게 있어 예수님이 누구입니까? 여러분은 왜 교회에 나갑니까? 여러분은 예수님을 누구로 믿습니까?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교회를 다닌 여러분에게 예수님은 도대체 누구입니까? 베드로가 대답합니다. “선생님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 주는 메시야요 하느님입니다. 그것이 고백입니다. 이 말이 믿어집니까? 예수님이 베드로를 축복합니다. 네 이름을 반석이라 하라. 네 이름위에 교회를 세우리라. 하늘나라 열쇠를 주겠다. 하셨습니다. 이런 사건이 있고 나서 이어지는 이야기가 오늘의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의 신앙고백을 듣고 난 다음 자신이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서 죽음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실 것을 말씀 하셨습니다. 이 소리를 들은 베드로가 주님에게 항변을 합니다. “주님. 안 됩니다. 결코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때 주님이 무서운 말을 합니다. “사탄아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장애물이다. 너는 하느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을 생각하는구나.” 하고 꾸짖으셨습니다. 이것은 최악의 표현입니다. 복음서 전체에 예수님께서 “사탄아, 물러가라!”이 말은 딱 두 번입니다. 하나는 사탄을 보고 “사탄아, 물러가라!”했고. 그리고 오늘 베드로를 보고 “사탄아 물러가라!”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자기를 판 가룟 유다를 보고도 하신 적이 없습니다. 시랑 하는 성도 여러분 잘 들어야 합니다. 이 말은 세상 사람들에게 한 말이 아닙니다. 로마 군인들에게 한말도 아닙니다. 베드로에게 한말입니다.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제자요 가장 사랑을 많이 받은 자요 예수님이 신임을 하는 자 입니다. 그 베드로에게 사탄아 물러가라하십니다. 여기서 강하게 내 가슴을 치는 말씀이 들려옵니다. 너도 사탄이 될 수 있다 하는 말입니다. 누가 사탄입니까? 내가 사탄입니다.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는 내가 사탄입니다. 베드로가 사탄입니다. 보십시오. 지금 베드로는 최고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하늘나라 열쇠를 받았는데 자기가 풀면 모든 것이 풀어지고 자기가 매면 모든 것이 매이는 권세를 받았습니다. 예수님이 이제 왕권을 잡으면 자기는 큰 출세를 하는 것입니다. 아마 너무 좋아서 밤잠을 못 잤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갑자기 하루도 안 되어서 태도를 바꾸는 것입니다.
“나는 고난을 받고 죽을 것이다” 기가 막힌 일입니다.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될 판입니다. 예수님에게 배신감 같은 것을 느끼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보시다시피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습니다. 그러니 저희는 무엇을 받겠습니까? 고향을 떠난 것도 주님을 위해서 떠났습니다. 가족과도 이별했습니다. 자신들의 직업도 버렸으며, 그 동안 나름대로 견디기 어려운 핍박도 많았지만 참고 왔는데 이제와서 죽는다고 하시니. 당신만 괴로우신가요?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인데 우리는 뭐가 됩니까? 그래서 항변합니다.” 이것은 주님을 위협한 것입니다. 이 모습을 보신 주님이 그 사랑하는 제자에게 못할 말을 하는 것입니다. "사탄아,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장애물이다. 너는 하느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을 생각하는구나." 하였습니다. 네가 하는 일, 네가 생각 하는 일, 네가 추진하려고 하는 일, 네가 옳다고 주장하는 일, 그 일은 사람의 일이요 땅의 일이요. 사탄이 하고자 하는 일이다. 라는 것이지요. 언제나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하느님을 생각했다면 하느님께 영광을 돌려야 했습니다. 하느님께 순종해야 했습니다. 내가 이해 되지 않는다 해도, 내가 힘이 들고 손해를 보아도, 억울함을 당한다 해도 하느님을 생각했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뜻을 헤아려야 했습니다. 그런데 사람의 일만 생각합니다.
내가 손해 보면 안 되고, 내편이 손해 보면 안 되고, 내 가족이 기득권을 빼앗기면 안 되고, 그 일을 통해서 하느님이 더 이루어진다면, 그 일을 통해서 하느님의 교회가 더 부흥한다면 그런 것은 없습니다. 오직 내 생각, 나 중심, 나 밖에는 없습니다. 이런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하느님의 일을 가르쳐 줍니다. 그것은 주님이 가시는 길입니다. 모든 사람을 구원하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고 죽는 것입니다. 24절을 보십시오.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 25절 “제 목숨을 살리려고 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며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얻을 것이다.” "주님을 따르려면 누구든지 " 그 첫째가 자기를 버려야(부인)합니다. 자기를 버려야 한다는 것이 무엇인가요? 내가 없는 것이지요. 오직 그분만 있는 것이지요. 내 삶의 목적을 나에게 두지 말고 하느님께 두라는 것이지요. 가령 공부를 한다. 자기를 버리는(부인)사람은 그 공부하는 목적을 하느님께 두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의 갈등이 있습니다. 그럼 나는 뭐냐는 것이지요. 이것을 생각하면 자기를 버리는 것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자기를 버리는 사람은 그것조차 생각이 없습니다. 자신의 미래가 무엇이 될는지 자신의 미래에 뭐가 이루어질는지 관심이 없습니다. 오직 주님입니다. 그것이 자기를 버리는 것입니다. 목적이 하느님께만 있습니다.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열심입니다. 사업의 목적도 하느님께 있습니다. 가정의 목적도 하느님께 있습니다. 모든 것이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내가 나를 버리고 하느님중심으로 살 때 하느님은 나를 책임지십니다. 나를 위해 모든 것을 버리면 100배로 갚아 주시리라 했습니다. 두 배 만 해도 좋습니다. 아니 보상이 하나도 없어도 좋습니다. 그런데 백배입니다. 할렐루야 그 다음 주님을 따르려면 자기 십자가를 지라고 하십니다. 주님이 가신 길은 십자가의 길입니다. “주님 가신 길 십자가의 길 외롭고 무서웠던 길 골고다의 거친 언덕길 지치신 주님의 음성 오 나의 주님, 용서 하소서 죄인위해 고난 받으셨네. 이 세상에 생명주신길 그렇게도 원하셨던 길” 성도 여러분! 십자가가 주님의 길입니다. 21절 "그 때로부터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자신이 반드시 예루살렘에 올라가 원로들과 대사제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그들의 손에 죽었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날 것임을 알려주셨다." 주님의 길은 십자가의 길입니다. 그 십자가를 통하여 부활에 이르는 길이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따르면서도 주님의 길을 바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떤 분이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고 가셨는데 요즘 사람들은 십자가를 타고 다닌다." 저는 이 말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래 그랬구나. 나는 십자가를 타고 다닌 사람이구나. 십자가는 지고 가는 것인데 나는 타고 다녔구나.
그래서 주님이 받을 영광을 내가 받았고 주님 가시는 길에 방해만 하였고 주님이 이루시는 일을 허물기만 하였구나. 그 이유가 뭐요, 위에서 말한 대로 하느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한 것이지요. 십자가는 지고 가는 것이 쉽지를 않습니다. 고민해야 합니다. 어떻습니까? 그냥 교회만 다니는 사람입니까? 주님을 따르는 일에 고민을 하고 다닙니까? 주님을 따른다는 것이 참으로 어렵습니다. 따라가야 하는데 어느 때는 잊어버려서, 어느 때는 게으르고 나태해서, 어느 때는 욕심 때문에. 어느 때는 몰라서 , 어느 때는 너무 힘들어서 이렇게 저렇게 우리는 주님을 따라가지 못하고 삽니다. 그래도 고민하며 사는 사람은 괜찮은 사람입니다. 오늘 교회에 주일 참석하시느라고 얼마나 고민하셨습니까? 안산교회도 많은 성도들이 주님을 따르는 일에 고민을 하고 사는구나, 주님을 따르기 위하여 많은 애를 쓰는구나, 하고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들이 그런 고민 없이 오늘도 살아가고 있습니다. 주님을 따르는 길이 무엇입니까? 마틴 루터 킹 목사는 몽고메리에서 인종차별 하는 버스에 대하여 승차거부운동을 하다가 체포되었습니다. 그때가 그의 나이 28세의 청년 목사 시절이었습니다. 그는 옥중에서 "원수를 사랑하라" 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썼습니다. 이 설교는 1957년 성탄절에 덱스터 침례교회에서 선포되었는데 유명한 설교가 되었습니다. 킹 목사는 그 설교에서 이렇게 외칩니다. "우리를 투옥해도 그대를 사랑하리라, 우리 집에 폭탄을 던지고 우리 아이들을 위협해도 그대를 사랑하리라. 한밤중에 우리 마을을 습격하여 우리를 때리고 반쯤 죽여 놓아도 그대를 사랑하리라. 그러나 우리의 대장은 예수님이요, 우리의 깃발은 하느님이시니 결국에는 사랑이 승리하리라. 우리의 승리는 흑인들만의 승리가 아니라 전 세계에서 차별 받으면 살고 있는 모든 민중의 승리이므로 우리는 이중의 승리를 거두리라." 십자가를 지는 사람은 세상을 이깁니다. 악을 이깁니다. 사탄의 세력을 이깁니다. 우리 예수님이 모든 것을 이긴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이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자기를 버리고 십자가를 지고 가야 하는, 이 제자의 길을 우리의 힘으로는, 우리의 생각으로는 도무지 갈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제자의 길을 갈 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주님과 함께, 그리고 보혜사 성령의 도우심으로 이 길을 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제자의 길을 여러분의 힘과 지혜로 제자의 길을 가겠다는 자만을 버리고, 주님과 함께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이 길을 갈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우리와 함께하시고 연약한 우리를 위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기도하시는 성령의 생각을 따라서 성령께 의존하면서 이 제자의 길을 갈 수 있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