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아침에 교회오시는 기분이 어떠하신가요? 조금은 마음에 기쁘고 설fp이는 마음으로 오시나요? 교우 여러분들을 뵈니까 참 좋습니다. 하느님의 은혜가 주일 사모하며 주님 찾기에 열심인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교우 여러분, 살아가면서 제일 행복한 것이 뭔지 아십니까? 부득이하게 여러분을 강조 하자면 교우보다는 성도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성도가 살아가면서 제일 행복한 것은 좋은 교회에 다니는 것인줄로 믿습니다. 사람이라면 좋은 직장에 다니거나, 돈을 많이 버는 사업을 가지고 있거나 절친한 친구를 두고 있거나 여러 가지 이유를 들 수 있지만, 성도라면 그것은 당연히 좋은 교회를 다니는 것이지요. 이런 가치관이 정해져 있지 않았다면 이런 저런 일로 계속 교회를 들락거리지요. 그런데 성공회는 꼭 우리 교회만 오세요! 라고 하지 않습니다. 다녀보시고 결정하기를 권합니다. 우리 교회보다 더 좋은 교회가 있으면 그리로 가야지요. 우리는 그렇게 권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어떤 면에서 보면 성공회 안양교회에 대한 자신감이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여러분 스스로가 교회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는 일이기도 합니다. 정말 좋은 교회인데 왜 오려하지 않을까? 정말 좋은데 말입니다.건강한 교회, 좋은 교회를 다닌다고 하는 것은 성도로써 평생의 축복이요, 기쁨인 줄로 믿습니다. 그러나 이렇듯 좋은 교회는 저절로 생기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정말 말할 수 없는 성도들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인 줄 믿습니다. 그러기에 교회는 외형적으로 근사하고 화려한 시설이나 외관보다는 사람, 곧 성도가 중요한 것입니다. 주위에 계신분들이 어떤 사람이면 좋겠습니까? 외형적으로 보면 남녀노소가 함께하는 공동체가 좋겠지요. 안양교회는 어떤 분들이 오면 좋겠는지요? 남자들이 오기 좋아하는 교회가 되어야 할까요 아니면 여자분들이 오는 것이 좋아하는 교회가 되어야 할까요? 이왕 교회를 다닐거면 성공회 안양교회로 나가야지 하는 분도 계실 것으로 믿습니다. 좋은 교회는 남자와 여자, 어린아이와 젊은이와 노인들이 함께 할 뿐만 아니라, 누가와도 불편하지 않은 교회여야 할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도 교회에 와서 마음에 평안을 누리고, 부자도 교회에 와서 감사를 잃지 않는 교회가 좋은 교회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여기까지만이라고 한다면 진정 좋은 교회의 특징은 부족함이 있습니다. 진정 좋은 교회라면 하느님의 말씀이 선포되고, 예수의 복음이 증거되고, 십자가의 보혈의 능력이 나타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듣기 좋은 얘기를 많이해도 예수의 십자가의 복음이 전해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좋은 교회라고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교회, 생명력이 넘치는 교회라면 예수의 십자가의 보혈이 선포되고, 그 십자가의 보혈의 말씀을 듣고 심령에 찔림을 받아 회개와 새로운 삶의 고백의 역사가 일어나야 합니다. 그러할 때에 초대교회에 베드로를 통하여 말씀하신 것처럼, 회개하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면 성령을 선물로 받게 될 줄로 믿습니다. 바울 사도는 선포합니다. "나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느님의 능력이 됩니다." 성도여러분, 오늘 서신의 로마서의 주된 메세지는 로마교회를 향한 것입니다. 로마교회에는 두 그룹이 함께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한 그룹은 주로 유대인들이 중심이 된 공동체이고, 또 한 그룹은 로마에 사는 로마인들과 외국인들, 넓은 의미의 이방인들이 중심이 된 공동체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삶의 스타일들이 너무 달랐습니다.
유대인들은 돼지고기도 먹지 않습니다. 매달아 죽인 짐승의 고기도 먹지 않습니다. 더구나 생명의 상징인 피를 마시지 않습니다. 성경 레위기에 기록된 말씀을 철저히 지키려고 애쓰는 사람들입니다. 그런가 하면 이방사람들은 뭐든지 잘 먹지요. 그런데 문제는 이 성도가 저 성도의 식생활이나 습관을 보고서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며 판단하고 비판하는 것입니다. 한 쪽에서는 하느님이 주신 것은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다고 주장하고, 한쪽에서는 그럴 수 없다고 하면서 서로 대립을 세우는 일이 종종 벌어진 것입니다. 서로가 비난하고 비판하다 보니까 교회가 늘 평안하기 보다는 시끄럽습니다. 에페소에 머물던 바울사도가 그 소식을 듣고서 고린토교회에 편지를 보냈습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어떤 것을 먹고 마셔도 문제가 되지 않지만, 믿음이 연약한 자들이 그러한 것들을 통해서 상처가 된다면 여러분들은 덕을 위해서 절제 할 수 없겠습니까?
믿음이 연약한 사람들이 어느 공동체나 있기 마련인데 우리가 그들이 믿음이 부족하다고 비판하고 책망하기 보다는, 그들을 우리가 관용하고 품에 안아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지요. 이런 모습이 하느님께서 보실 때 기뻐하실 일이 아니냐고 반문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예수님은 바리사이파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죄인들과 같이 식사하고 그들의 가족을 방문했기 때문에 예수님을 향해 별명을 붙여주기를 죄인들의 친구란 별명을 붙여 주었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죄인들의 친구라는 말은 굉장히 정감이 있는 일이지만, 그 당시에는 상종하지 못할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런 바리사이파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내가 의인을 위해서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위해서 왔다. 그러면서 주님은 죄인들의 친구가 되기를 기뻐하셨고, 죄인들의 삶에 늘 가까이 다가가셨습니다. 가셔서 죄인들과 같이 죄를 지신 것이 아니라, 마음과 육신이 약해서 하지 못하는 그들을 위로하고 격려하셨습니다.
죄인들이 의인의 길로 가도록 격려하고 이끌어 주신 줄 믿습니다. 주님이 죄인의 친구라고 해서 우리도 같이 가서 같이 죄짓는일을 하는 오해는 없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죄인의 친구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십자가에 달리시는 일을 위해서 주님은 마지막 기도하실 때 제자들을 뽑아서 겟세마네 동산에 가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부탁합니다. 나를 위하여 기도해 다오. 내 마음이 괴로워 죽을 지경이니 나와 같이 깨어있라. 조금 떨어져 있는 곳에 주님은 엎드려 기도하셨습니다. 성경에 보면 땀방울이 핏방울처럼 흘렸다고 했습니다. 평안히 기도할 상황이 아니지요. 여러분, 요즘 수능을 앞둔 부모들은 평안히 기도할 상황이 아니지요? 그냥 간단히 기도가 됩니까? 그렇지 않을 걸요? 시험시즌만 되면 합격기원이나 승진기원을 한다며 백일기도를 각 교회마다 사찰마다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수험생들을 위해서 중보기도해야 함은 성도로서 마땅한 일인 줄로 믿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 지심에 대해서 고민하시면서 중보기도를 요청하시고 기도하시다가 돌아와 보니까 제자들이 어떻게 하고 있나요? 자고 있어요. 얼마나 기가 막히겠어요. 보통 사람이 아니고 제자 중에 제자를 뽑아 가지고 온건데, 적어도 이 사람들이면 내 사역에 도움이 될것이라고 기대하면서 동행을 요청했을 터인데 말입니다. 얼마나 주님께서 안타까워 하셨을까요? 그런데 놀랍게도 주님께서는 깊은 잠에 빠진 제자들을 깨우시면서 뭐라 그랬습니까? "마음은 간절하나 몸이 말을 듣지 않는구나." 성도여러분, 사람이 잘못 했을 때 막 소리를 지르고 그러는 것도 효과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아주 조용한 목소리로 격려를 하고 위로를 한다면 효과가 몇 배 더 큰 줄로 믿습니다.
지금 잠자는 제자들에게 기도하지 않는다고 호통을 치는 주님보다, 오히려 그들의 연약함을 이해하시고 불쌍히 여기시는 주님의 모습이 더 존귀하게 보이지 않습니까?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모습을 오늘 우리가 교회가 본받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우리의 모든 기준은 주님인 줄 믿습니다. 책망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연약한 자들을 위로하고 세워주었을 때 베드로를 중심해서 제자들은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리면서 순교한 줄로 믿습니다. 이제 우리들도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바라보시는 느낌으로 우리 주변 사람들에게 좀 더 이해하고, 좀 더 관용을 베풀기를 원합니다. 지금까지는 되는대로 그냥 말을 했어요. 눈에 보이는 대로 말을 했어요. 기도도 안 하고, 전도도 안 하고, 그렇게 쉽게 이야기를 했는데, 이제는 오죽하면 전도를 못 하고, 오죽하면 기도하지 못 했을까? 이해하면서 오히려 그들의 연약함을 내가 품에 안기를 원합니다. 진정으로 좋은 교회는 어떤 교회 입니까? 연약한 자를 세우는 공동체가 좋은 교회인 줄 믿습니다.
오늘 안양교회는 주님께서 바울 사도를 통해서 로마교회에 가셨던 그 귀한 말씀이, 오늘 안양교회에 주시는 말씀으로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 연약한 사람들이 많아서 우리의 목표가 더디다고 할 지라도 그들과 더불어서 함께 가면서 연약한 자를 세우는 평안의 공동체가 되기를 다짐하는 성도 여러분들에게 주님의 은혜가 언제나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