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여행중인 한 변호사가 주일 아침에 거리에서 교통정리를 하는 경찰에게 다가가서 교회를 소개해 달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 경찰관은 친절하게 한 교회를 소개해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교회를 찾아 가는 도중에 몇 개의 교회가 더 있음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변호사는 예배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그 경찰관에게 다가가서 가까운 교회가 여럿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굳이 그 교회를 소개했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경찰관이 하는 말이 이 지역에 어느 교회가 참 교회인지 좋은 교회인지 제가 직접 가보지 못해서 잘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주일 아침마다 교통정리를 하면서 보니 그 교회에 다니는 교인들의 표정이 가장 밝고 기뻐보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 교회를 자신 있게 소개한 것입니다. 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성도 여러분! 예배드리고 은혜 받아 나가시며 환하게 웃기만 해도 전도가 됩니다. 웃는 얼굴이 그 교회를 소문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하신 여러분들 모두 은혜 받고 밝은 모습으로 웃으며 돌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초대 교회에도 소문난 좋은 교회가 있었습니다. 바로 데살로니카 교회였습니다. 8절 “주님의 말씀이 여러분으로부터 마케도니아와 아카이아 지방에 두루 퍼져 나갔을 뿐만 아니라 여러분이 하느님을 잘 믿고 있다는 이야기가 사방에 널리 퍼져 나갔으니 그 이야기는 더 할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바울로는 데살로니카 교회의 소문을 듣고 감격해서 너무 기뻐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도 이러한 아름다운 소문이 가득한 교회가 되길 바랍니다. 교회의 부흥은 좋은 소문이 나는 것입니다. 좋은 소문이 나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좋은 모습을 보이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데살로니카 교회는 7절에 “여러분은 마케도니아와 아카이아에 있는 모든 신도의 모범이 되었습니다.” 모범이 되는 교회가 되니까 좋은 소문이 난 교회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데살로니카 교회가 오랜 역사를 갖고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좋은 목회자가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케도니아와 아카이아 지역, 데살로니카 교회가 있는 가까운 곳과 멀리 떨어져 있는 지역까지 믿는 자의 모범이 되는 교회가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데살로니카 교회는 바울로의 2차전도 여행 중 두 번째로 세워진 교회입니다. 첫째는 필립비 교회이고, 다음이 데살로니카 교회였습니다. 사도 17장을 보면 바울로는 이곳에서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개척하면서 많은 어려움과 박해를 당하게 됩니다. 그래서 데살로니카 지역에 오래 있지 못하고 베레아로 도망갑니다. 바울로는 데살로니카 지역에서 오래 머물지 못했습니다. 전승에 의하면 바울로는 데살로니카 지역에 머무른 기간이 짧게는 3주, 길게는 6개월을 머물렀다고 합니다. 데살로니카 교회에서 바울로가 목회한 것은 6개월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바울로가 데살로니카 교회에 편지를 쓰는 지금은 데살로니카 교회를 떠난 후 1년 반이 지났던 것입니다 데살로니카 교회는 개척된 후 1년 반 동안 목회자도 없이 교회가 운영 되었고, 2년 밖에 되지 않는 개척교회 수준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개척한지 2년 밖에 되지 않은 교회가 그 지역의 오래된 교회보다 신앙의 모범이 되는 아름다운 교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신앙생활 하신지 얼마나 되었습니까? 아마 이 자리에 계신 분들 대다수는 30년에서 50년은 되었을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신앙생활의 모범이 되고 있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나를 보며, 나도 당신처럼 살고 싶습니다. 당신이 믿는 하느님을 믿고 싶습니다. 당신의 삶에는 정말 하느님이 함께 계시는 것 같습니다. 하며 함께 예배드리길 기뻐하십니까? 신앙의 모범이 되고 있습니까? 우리가 좋은 믿음의 모범이 되는 성도가 되기 위해서는 신앙의 모델이 있어야 합니다. 6절에 보면 “여러분은 많은 환란 중에서도 성령께서 주시는 기쁨을 가지고 말씀을 받아들여 우리뿐만 아니라 주님까지 본 받았습니다.” 라고 말씀합니다. 데살로니카 교회 교인들은 바로 바울로의 모습을 닮기 위해 애썼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을 닮기 위해 애썼다는 말입니다. 데살로니카 교회 성도들의 신앙의 모델은 바울로였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주님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들의 삶이 아름다울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누구를 모델로 삼고 있으십니까? 여러분의 신앙의 모델은 누구입니까? 바울로는 예수 믿는 사람을 죽이는 일에 앞장섰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스데파노를 처형하는 자리에 바울로가 있었습니다. 바울로는 스데파노가 복음을 전하다가 돌에 맞아 죽어가는 상황이었지만, 성령이 충만한 모습으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얼굴에는 영광의 광채가 있었습니다. 돌에 맞아 죽어가면서도 "주 예수님 제 영혼을 받아 주십시오. 주님 이 죄를 저 사람들에게 지우지 말아주십시오" 하며 돌을 던지는 사람들을 향해 원망하지도 않고, 오히려 그들을 불쌍히 여기며, 그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외치는 스데파노의 모습을 보았던 것입니다. 이 스데파노의 모습은 바울로의 기억속에 오래 남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로는 복음을 전하다가 죽을 고비도 많이 넘기지만 그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고, 에페소 1:3절에 감옥 안에서 하느님께 찬양하는 인물이 되었던 것입니다. 또한 바울로는 주님을 닮고 있었습니다. 1고린 11:1절에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처럼 여러분도 나를 본받으십시오."고 말씀합니다. 저와 여러분도 지금 이 모습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주님의 모습을 닮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다가 자꾸 낙심하거나, 실족할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신앙의 모델을 제대로 설정하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신앙의 모델을 세우십시오. 그래야 나의 신앙이 자라게 되고 성장하게 됩니다. 그러면 데살로니카 교회는 어떤 모습이 있었기에, 모범이 되며 아름다운 소문이 나는 교회가 되었는지 보겠습니다. 먼저 데살로니가 교회는 목회자와 성도의 관계가 아름다웠습니다. 바울로는 데살로니카 교회를 개척하고 교인들과 성경공부도 하며 그들과 오래있고 싶었지만 박해 때문에 더 있고 싶어도 있지 못하고 그곳을 떠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 바울의 마음에는 늘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 떠나지 않고 있었던 것입니다.
바울로의 마음에는 데살로니카 교회의 성도 하나하나가 마음에 자리 잡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로는 기도할 때 마다 이들을 빼놓지 않고 기도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사제와 성도의 관계가 아름다워야 그 교회는 좋은 소문이 날 수 있습니다. 그래야 말씀도 들려지게 되고, 우리의 영이 살게 됩니다. 사제와 관계가 좋지 않으면 교회 오는 것이 즐겁지 않습니다. 교회에 와서도 예배 시간이 은혜가 되지 않아요. 그러면 내가 영적으로 침체됩니다.
사제와 성도의 관계가 아름다워야 교회는 부흥되고, 전도도 저절로 이루어지게 됩니다. 데살로니카 교회는 바울로와 성도의 관계가 아름다웠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교회가 건강한 교회가 되었던 것입니다.
혹시 사제와 좋지 않은 관계에 있거나, 오해로 막힌 것이 있다면 빨리 해결해야 합니다. 그래야 내가 살 수 있지요. 서로 좋은 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사제와 성도가 서로 좋은 관계가 되기 위해서는 기도해야 합니다. 여러분! 사랑한다는 표현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서로를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새벽 때마다 기도하시는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여러분! 이거 알아야 합니다. 사제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은 사제와 좋은 관계를 맺고 계시는 분입니다. 성도들끼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정말 사랑한다면 서로를 위해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주일에 한 번 기도하지 마시고, 새벽에도, 공기도 때마다 모여서 성도들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가며 기도 하십시오. 이것이 중보기도인 것입니다. 그분을 위해 기도할 때 진정 그분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데살로니카 교회는 믿음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믿음의 역사란 말씀이 선포될 때 성령의 임재가 있고, 구원 받는 사람이 생기며, 병든 자가 고침을 받는 일이 생겼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붙잡고 환란과 핍박이 왔지만 이겨내는 역사가 있었던 것입니다. 6절에 보면 “여러분은 많은 환란 중에서도 성령께서 주시는 기쁨을 가지고 말씀을 받아들여”라고 말씀합니다. 데살로니카 교회는 개척 당시부터 환란과 핍박이 있었습니다. 바울로를 따라 다니며 복음을 전하지 못하게 하는 유대인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당시는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는 다는 것은 환란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핍박이 있고, 마을에서 쫓겨나야 할지도 모르는 위험을 안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영접하며, 그 예수님을 끝까지 부인하지 않고 믿음을 지켰던 것입니다. 이들은 환란 가운데서 하느님을 부인하지 않고 끝까지 믿음을 지켰습니다. 이것이 믿음의 역사인 것입니다. 믿음의 역사는 말씀을 듣고 병 고침을 받는 것도 큰 역사이지만, 더 큰 믿음의 역사는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내가 손해 보거나, 고난을 당할 것을 알면서도 믿는 믿음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들이시만, 저와 여러분을 사랑하셔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 대신 목숨을 버리신 분이십니다. 저와 여러분을 사랑하셔서 지금도 함께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저와 여러분이 끝까지 사모해야 할 분인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손해 보면서도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핍박을 감수하면서도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왜 교회에 다니십니까? 왜 예수님을 믿으십니까? 교회 다닌다는 이유로 손해를 본다면 그래도 다니시겠습니까? 교회 다니기 때문에, 예수 믿기 때문에 친구들이 떠나고 내가 외톨이가 된다면 그래도 믿으실 수 있습니까? 교회 가야하기 때문에 내 자녀가 공부할 시간이 줄어들고, 내 수입이 줄어들지라도 과연 믿음을 지킬 수 있습니까? 정말 주님을 사랑하십니까? 정말 주님이 내 인생의 우선순위가 되고 있으십니까? 믿음은 내 인생에서 우선순위를 하느님께 내어 드리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에는 “믿음이 없이는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릴 수 없다.”라고 했습니다. 신앙의 선배들은 믿음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린 사람들입니다. 여러분! 이렇게 믿음으로 자신을 포기하며 나아갈 때 하느님께서 홍해를 가르는 이적과 아이를 낳을 수 없던 100세 된 아브라함에게 자녀가 생기는 기적을 경험하게 하셨습니다. 또한 데살로니카 교인들에게 믿음의 역사가 나타나게 된 것은 말씀을 듣는 자세에 있었습니다. 데살로니카 교인들은 2:13절에 “바울로가 하느님의 말씀을 전했을 때 사람의 말로 듣지 않고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었다.”는 것입니다. 선포되는 말씀을 나에게 하는 하느님의 말씀으로 듣고 순종하니까 역사가 나타났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 삶에 기적과 역사가 없는 것은 내가 말씀을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말로 받기 때문입니다. 마태오 8장에 보면 백부장이 나옵니다. 백부장의 믿음이 소리를 들은 예수님은 놀라셨습니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이스라엘 백성 중에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다”고 하셨던 것입니다. 말씀을 받는 자세가 달랐던 것입니다. 말씀을 들을 때 믿음으로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데살로니카 교회는 말씀 듣는 자세가 좋았기에 믿음이 역사가 있는 교회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교회가 부흥하려면 믿음도 있어야 하지만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믿음은 교회 안에 들어오면 보이는 것이지만, 세상 사람들이 교회를 느끼고 체험할 수 있는 것은 사랑입니다. 친절인 것입니다. 요즈음은 교회가 친절해야 합니다. 그래야 성도들이 모여들고, 교회에 등록합니다. 교회 안에 사랑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데살로니카 교회에는 그냥 사랑이 아니라 사랑의 수고가 있었다고 합니다. 사랑에는 반드시 수고가 따릅니다. 사랑하면 내 것을 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면 내 것을 포기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정말 어려운 사람과 함께 있어주며, 그분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분을 위해 기도해 줄 수 있는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울 때 함께 울어주고, 웃을 때 함께 웃어주는 사랑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데살로니카 교회는 소망의 인내가 있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부활 신앙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것이라는 재림 신앙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환란 중에서도 인내하며 나갔던 것입니다.
주님께서 재림하시면 우리의 눈물을 닦아 주시고, 우리의 억울한 일을 갚아 주실 것을 고대하며 기다리는 소망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부활 신앙과 재림 신앙이 있었기에 환란에 넘어지지 않고, 오직 주님만 바라보는 아름다운 신앙이 될 수 있었습니다. 데살로니카 교회는 오래되지 않은 교회였고, 큰 교회는 아니었지만 아름다운 교회요 모범이 되는 교회였습니다. 우리 교회도 사제와 성도가 아름다운 관계를 갖고,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이 가득해서 안양지역에서 모범이 되는 교회요, 아름다운 교회가 되길 소원합니다.
그래서 오고 싶은 교회, 함께 하고 싶은 교회가 되어 일평생 몸담고 섬기길 원하는 교회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