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자의 삶은 쉽지 않습니다. 특히 바울로의 전도인생은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때로는 감옥에 갇히기도 하고, 돌에 맞아 이마가 찢겨지기도 하고, 성 밖으로 내던져지기도 하였습니다. 2고린토 보면 그가 직접 고린토 교인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당한 고초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유다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를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고, 몽등이로 맞은 것이 세 번, 돌에 맞아 죽을 뻔한 것이 한 번, 파선을 다한 것이 세 번, 밤낮 하루를 꼬박 바다에서 표류한 일도 있습니다. 강물의 위험, 강도의 위험, 동족의 위험, 이방인의 위험, 도시의 위험, 광야의 위험, 바다의 위험, 가짜 교우의 위험 등 온갖 위험을 다 겪었습니다..』(2고린 11:24-27) 그것 뿐 아니라 그에게는 정말 참기 힘든 고질병이 하나 있었습니다. 간질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그것은 바울로에게 얼마나 큰 고통을 안겨주었는지 모릅니다. 그는 그것을 “육체의 가시”라고 표현하였습니다.
바울로의 삶은 매일매일 위협과 고통과 가슴을 아프게 하는 일들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바울로는 데살로니카 교인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교우 여러분. 아시다시피 우리가 여러분을 찾아간 것은 결코 헛된 일이 아니었습니다.』(1데살 2:1)라고 말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바울로의 데살로니카 방문은 완전히 실패한 것으로 비난했습니다. 바울로가 데살로니카를 떠난 후 어떤 사람들은 잘못된 소문을 듣고 바울로의 설교를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일종의 중상모략이 바울로의 선교를 방해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① 바울로는 정치적 범죄 기록을 가지고 피해다니는 범죄자이니 이런 도망자의 말에 귀 기울 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② 그의 가르침이 망상에서 오는 것이라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3절에서 자신의 권면은 ‘잘못된 생각이나 불순한 동기나 속임수’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인정을 받아 복음을 전할 사명을 띈 사람임을 분명히 합니다. ③ 사람의 환심을 사려고 한다. ④ 율법주의를 반대하고 ⑤ 탐욕으로 한다. ⑥ 개인의 영광을 위해 한다. ⑦ 권위를 내세운다.바울로의 해명을 보면 결코 거짓된 전도자가 아니라 하느님 앞에서 세상과 분리된 거룩한 사역을 감당하는 사도였음을 압니다. 오히려 이런 엄청난 위협과 비난과 박해를 받으면서도 바울로는 끝까지 인내하며 행한 일들이 있었습니다. 생명의 위기 앞에서도 포기하지 않은 일들입니다. 바울로는 하느님에 대해 결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늘 선배 신부님들의 수고와 희생으로 오늘의 목회를 이렇게 평안하게 하고 있음을 감사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누가 구원의 복음을 전한다고 우리를 감옥에 가두지도 않고 돌팔매질을 하지도 않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편히 예수를 믿습니까? 정말 감사한 일입니다. 예수 믿는다는 것 때문에 신분의 위협을 받지 않습니다. 아무리 경제가 어렵다고 해도 굶어죽지는 않습니다. 지금처럼 신앙의 자유가 주어진 때가 언제 있었습니까? 그런데도 신앙의 열심이 너무 부족하니 선조들 앞에서 미안하기만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하느님을 믿는 다는 것 때문에 생명의 위협을 느낄 때 끝까지 하느님을 믿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이렇게 외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비록 하느님 때문에 나의 생명이 버림을 받는다 해도 “나는 하느님을 믿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합니다.”고 외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어떤 때는 하느님이 야속할 때가 있습니다. 하느님이 나를 외면하시거나 아예 무시하고 있는 듯 느낄 때도 있습니다. 무언가 삶이 풀려나가지 않아서 하느님께 기도해도 아예 내 기도에 귀를 막고 있는 듯 응답되지 않을 때 답답합니다. 그런 때도 “하느님을 믿습니다.”고 외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느님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마음대로 하느님을 해석하지 마십시오. 하느님의 길은 우리의 길과 다릅니다. 하느님의 방법은 우리의 방법과 다릅니다.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사랑은 영원하십니다. 바울로는 결코 하느님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데살로니카 교회에 바울로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어도 바울로는 결코 데살로니카 성도들을 그리스도에게 인도하라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외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것은 하느님을 위한 사랑뿐만 아니라 사람을 사랑하고 돌보는 일이 바울로에게는 결코 멈출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기서 바울로의 시선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바울로는 언제나 그의 시선을 그를 괴롭히는 문제에 두지 아니하고, 예수 그리스도에 두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랑할 수밖에 없는 사람에게서 그의 눈길을 떼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울로의 위대함입니다.
선택은 우리에게 있습니다. 힘든 날들, 험한 세월을 어떻게 만들겠습니까? 우리 인생을 쓰디쓴 인생으로 만들게 하겠습니까? 아니면 보다 나은 인생의 날들로 만들겠습니까? 어차피 가는 세월인데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날들이 계속된다 해도 두 가지 일들은 결코 우리를 헛되지 않게 합니다. 결코 하느님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사람을 사랑하는 일을 중단하지 마십시오. 헛되지 않은 일들입니다. 우리를 보다 나은 미래로 만드는 일들입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리 하느님은 우리를 돌보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