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수감사절 절기는 사람의 생각에 의해 제정된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친히 지키라 명하신 절기입니다. 그러므로 연례행사처럼 습관적으로 지켜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 의미를 깊이 되새기면서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진심어린 감사의 절기가 되어야 합니다.. 아메리카 신대륙에 첫발을 내디딘 청교도들은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대서양을 건너는 중 절반 이상이 죽고, 생명을 건진 사람들은 낯선 땅 신대륙, 아무것도 없었던 그 황량한 땅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그들이 하느님께 감사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낯선 땅의 환경만 보고 절망에 빠져 불평했다면 그들은 모두 죽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의 자유를 찾았다는 기쁨과 감격만으로도 감사할 수 있었기에 그들이 생활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플리머스 회관 현관에는“너희 조상들이 어려움 속에서 성취한 것들을 비겁하게 포기하지 말라.”는 글이 쓰여 있습니다. 이것은 미국인의 좌우명이 되어 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미국인들은 그들의 화폐인 달러마다“우리는 하느님을 의지한다.”라는 글귀를 써 넣었습니다. 추위와 굶주림으로 속에서도 봄에 씨앗을 뿌려 정성껏 농사를 지었지만 가을에 추수한 곡식은 양식으로 하기에도 부족한 적은 양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교도들은 첫 열매에 감사하며 눈물의 추수감사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들의 감사는 소유에 대한 감사가 아니라 생명에 대한 감사였습니다. 오늘 내가 생존해 있음에 대한 감사요 또한 구원받음에 대한 감사였습니다. 하느님은 바로 이 감사를 받으시고 “기적”의 복을 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모든 교회가 지키는 추수감사절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적 근원을 보면 그보다 훨씬 더 오래전부터 감사절을 지켰습니다. 구약시대의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에서 해방되어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 수확을 한 후 추수절을 지켰습니다. 이 절기는 하느님의 명령에 의해 지켜졌으며, 초막절이라고도 했습니다. 이는 한해의 곡식을 거두어 창고에 들인 후 양식주신 하느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의 표시였습니다. 감사를 할 때 아무런 생각 없이 감사할 수는 없습니다. 감사할 제목을 발견할 때 감사할 수 있습니다. 생각하면 감사가 나오게 됩니다. 신명8:2 “너희는 지난 사십 년간 광야에서 너희 하느님 야훼께서 어떻게 너희를 인도해 주셨던가 더듬어 생각해 보아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이 ‘기억하라’는 하느님께서 광야 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을 어떤 방식으로 인도하셨는지, 또 어떤 은혜를 주셨는지 기억하라는 명령입니다. 모세가 설교한 말씀을 보면 하느님은 광야생활 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무한한 은혜를 주신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 낮추심의 은혜입니다. 사람을 낮추는 것이 무슨 은혜냐고 하실 지도 모르겠지만, 사람은 조금 낮아져야 은혜를 받게 됩니다. 이것이 겸손케 하시는 은혜입니다. 하느님은 당신의 백성들이 교만한 상태에 머물러 있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교만한 상태에 있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낮추시기 위해 쓰신 방법은 목마름과 배고픔입니다. 빵과 물이 없는데 교만할 사람은 없습니다. 광야에서는 빵과 물을 구할 수가 없습니다. 빵과 물이 없는 척박한 땅에서 바라볼 수 있는 곳은 오로지 열린 하늘입니다. 인간이 아무리 위대해도 빵 문제, 물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일 년만 가뭄을 내리시면 반드시 빵 문제, 물 문제가 생기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풍성하게 물을 사용하는 것 같지만, 사실 대한민국도 물 부족 국가입니다. 하나님께서 일 년만 기근을 주시면 우리나라는 난리가 날 것입니다. 아무리 최첨단 컴퓨터를 만들어내고, 위대한 정치철학을 가지고 있다고 할지라도 인간은 빵 문제, 물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낮추심을 통해 인간이 독립적인 존재가 아니라 하느님을 의존하면서 살아야 하는 의존적인 존재라는 것을 가르쳐 주십니다. ‘낮아짐’은 은혜를 받을 수 있는 자리에 와있다는 의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배고파서 낮아졌을 때, 하느님께서는 두 번째로 만나의 은혜를 주셨습니다. 만나의 은혜는 먹이시는 은혜입니다. 우리에게 밥이 있다는 것과 그것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낮아졌을 때, 하느님께서는 하늘 문을 여시고 만나를 내려서 먹이시는 기적을 보여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낮추시고 만나를 주신 것에는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너희를 고생시키시고 굶기시다가 너희가 일찍이 몰랐던 만나를 먹여주셨다. 이는 사람이 빵만으로는 살지 못하고 야훼의 입에서 떨어지는 말씀을 따라 산다는 것을 너희에게 가르쳐주시려는 것이었다.”(3절) 사람은 빵을 먹고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이 빵만 먹고 사는 동물적인 존재는 아닙니다. 사람은 하느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아서 영혼이 있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이 영혼은 하느님의 말씀을 먹고 사는 존재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하늘의 양식이며, 하늘의 만나입니다. 사람이 하느님의 말씀을 양식으로 먹으려면 먼저 낮추심의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마음이 가난한 자는 행복하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 5:3) 하느님 앞에 나오면서 “나는 내 힘으로 인생을 살 수 있어. 나는 내 마음에 하느님의 은혜가 없어도 살 수 있어. 왜 나에게 꼭 예수를 믿으라고 하는거야? 왜 나보고 꼭 말씀을 들으라고 하는거야?”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하늘 만나를 맛볼 수도 없고 하늘 나라를 소유할 수도 없습니다. 오직 하느님 앞에서 “하느님. 제 영혼은 하느님의 말씀이 아니고서는 채워질 수 없는 공간이 있습니다. 하느님. 제 기도를 들으시고 나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라고 기도하는 사람에게 하느님께서는 은혜를 부어주십니다. 여러분이 은혜 받았던 때를 생각해보십시오. 그 때가 언제였는지....세 번째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옷이 떨어지지 않는 은혜를 받았습니다. 우리는 성경에 기록된 것처럼 입은 옷이 하느님의 기적적인 역사로 떨어지지 않았다고 믿어야 합니다. 중요한 사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할 때 입었던 옷이 40년 동안 떨어지지 않는 은혜를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물질적인 입는 옷의 은혜를 공급받는 것도 감사하지만, 더욱 감사한 것은 하느님께서 예수 믿는 성도들에게 영적인 옷을 입혀주셨다는 사실입니다. 그 영적인 옷은 바로 그리스도의 의의 옷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조금도 죄를 짓지 않고 완전한 의를 이루어서 우리에게 입혀주실 옷을 준비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을 믿게 되면 첫째로 죄 용서함을 받고, 둘째로 그리스도께서 준비하신 의의 옷을 덧입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옷은 의의 옷이요, 하늘 나라에 들어 갈 때 입고 들어가야 할 예복입니다. 하늘 나라는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입은 사람만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내가 스스로 선하게 살았다고 해서 입을 수 있는 옷도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사람만이 입을 수 있는 옷입니다. 이 옷은 결코 중간에 벗겨지거나 닳거나 해어지는 옷이 아닙니다. 예수 믿는 사람에게는 그리스도께서 의의 옷을 입혀주셔서 자녀됨과 하늘 나라를 보장해 주셨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입고 있는 옷은 그리스도의 의의 옷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옷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이 옷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네 번째 은혜는 발이 부르트지 않는 은혜입니다. 하느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발바닥까지 신경을 쓰신 하느님이십니다.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우리가 바쁜 일과 중에도 그 일을 감당할 수 있는 건강과 힘을 주신 것은 발바닥까지 지켜 주시는 하느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느님께서는 징계하시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자기 자식을 잘 되라고 고생을 시키듯이 그렇게 너희를 잘 되라고 고생 시키신 것이니 이를 마음에 새겨두어라.”(5절). 건실하게 자식을 징계하고 야단치는 부모 밑에서 자란 자녀들은 잘못하다가도 결국 다시 돌아오는 것을 많이 봅니다. 그러므로 징계하시는 것도 하느님의 은혜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징계에는 두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로 징계는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증거입니다. 히브 12:8 보면 “자녀는 누구나 다 아버지의 견책을 받게 마련이다. 견책을 받지 못한다면 여러분은 서자입니다.”고 기록되었습니다. 둘째로 징계는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징표입니다. 히브리서 12장 6절에 “주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자를 견책하시고 아들로 여기시는 자마다 매를 드신다.”고 기록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징계하시는 목적은 무엇일까요? “우리에게 이익과 당신처럼 거룩하게 만드시려는 것입니다.”(히 12:10). 이 징계가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낮추신 것도 큰 은혜요, 징계하시는 것도 큰 은혜요, 굶기시는 것도 큰 은혜요, 먹이시고 상주시는 것도 모두 은혜라는 사실을 깨달으시고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신 목적은 첫째로 야훼의 명령이 무엇인지 마음에 간직하여 그 도를 따라 행하고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너희는 너희 하느님을 경외하여 그의 계명을 지키고 그가 보여주신 길만 따라가도록 하여라.”(6절)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잘못을 저지르다가도 하느님을 두려워함으로써 돌이키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인생은 결국 끝이 좋지 않습니다.하느님께서 은혜를 주신 두 번째 목적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그 땅에 합당한 백성으로 살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가나안 땅은 물이 풍성하고, 농산물이 풍성하며, 지하자원에 부족함이 없는 땅입니다. 그러므로 그 땅에 합당한 백성으로서 하느님을 섬기면서 살도록 하느님께서 훈련을 시키신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하느님의 선한 은혜이며, 선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 때에 우리는 감사하고 찬송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감사할 제목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것 같아 보여도 먼저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느님을 찬양하십시오. 감사와 찬양을 드리면 하느님께서 하늘 만나도 내려주시고 힘과 능력도 주셔서 하느님 나라 백성으로 연단된 인격을 가지고 살도록 인도하실 것입니다. 감사와 찬양을 풍성하게 드리는 추수감사절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