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삶의 조건과 환경에 관심을 갖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조건과 환경 자체가 아니라 사람의 태도입니다. 환경과 조건에 의해 모든 것이 결정된다고 생각하다보면 물질주의 빠지게됩니다.
예수님은 비유를 들어 말씀하십니다. 어떤 사람이 먼 길을 떠나면서 종들을 불러 재산을 각자의 능력에 따라 각각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를 맡겼습니다.
우리는 먼저 중요한 사실 한 가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주님이 맡기신 것은 결코 우리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종종 착각합니다. 우리에게 속해 있다고 해서 우리의 것이라고 착각할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우리에게 있는 모든 것의 진짜 주인은 주님이시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다만 주님이 맡기신 것을 관리하는 청지기일 뿐입니다. 우리의 재능도 주님의 것입니다. 우리의 시간도 주님의 것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재물도 다 주님이 맡기신 것입니다. 심지어 우리의 생명도 주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모든 것이 다 주님이 맡겨 주신 것입니다. 결코 우리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는 다릅니다. 마찬가지로 개개인의 삶의 환경과 사명의 무게는 서로 다릅니다. 그런데 서로 다른 것으로 인해 좌절하기도 합니다. 자신이 받은 사명은 귀하지 않다거나 환경이 남만 못하다고 여겨지면 쉽게 열등감에 빠지게 됩니다. 사람은 성품과 태도에 따라서 얼마든지 자신의 환경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두 달란트 받은 사람은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에 비해 열등의식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받은 달란트를 가지고 조금도 지체하지 않았습니다. 주인에게 다섯 달란트를 받자마자 일터로 나갔습니다. 그리고 두 배의 이윤을 남겼습니다. 두 달란트를 받은 종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지금 즉시 일하기를 원하십니다. 더 이상 미룰 이유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나중으로 미루지 않습니까? "좀 더 배운 다음에 교사로 섬기겠습니다." "좀 더 많이 번 다음에 바치겠습니다." "저는 아직 전도할 정도로 믿음이 성숙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흔히 하는 핑계들입니다. 얼른 듣기에는 다음에 하겠다는 말이 겸손한 것 같지만 그것은 핑계에 불과합니다. 지금 여기서 시작해야 합니다. 모든 것이 어설플지라도 지금 바로 섬기지 않으면 주님을 섬길 기회는 영영 오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느님은 모든 사람을 똑같이 소중하게 여기시고 사랑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각자에게 필요한 은사와 사명을 주십니다. 하느님은 각 사람에게 서로 다른 모습으로 역사하십니다.
성도 여러분! 주인의 처사가 불공평한 것일까요? 만일 맡긴 금액만 가지고 따진다면 주인은 분명히 불공평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각자의 능력에 따라 달란트를 주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인은 종들의 능력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최선의 결과를 얻을 수 있는 만큼 각기 종들에게 주었습니다. 나보다 나 자신에 대해서 더 잘 알고 계신 분이 바로 우리 주님이시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환경이나 조건이 아니라 거기에 임하는 사람의 태도와 자세입니다. 믿음으로 어떤 환경과 상황도 이겨 내야 합니다.
돌아온 주인은 다섯 달란트 남긴 사람과 두 달란트를 남긴 사람을 칭찬하십니다. 두 사람이 받은 칭찬의 내용이 똑같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잘하였도다. 너는 과연 착하고 충성스러운 종이다. 네가 작은 일에 충성을 다하였으니 이제 내가 큰 일을 너에게 맡기겠다. 자 와서 네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라.”
주인은 그들의 삶의 규모보다 삶에 임하는 태도에 관심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자신의 상황과 여건을 탓하지 않고 주어진 사명에 충성하는 것이 주인이 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한 달란트를 받은 종은 달랐습니다. 그는 땅에 돈을 감췄습니다. 그 당시 돈을 땅에 묻는 것은 원금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인이 원했던 것은 달란트를 땅에 묻어 두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주인은 종들이 달란트를 사용하기를 원했습니다. 달란트를 좋은 곳에 투자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이윤을 남기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한 달란트를 받은 종은 그 돈을 땅에 묻어 두었고 결국 주인으로부터 책망을 들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너야 말로 악하고 게으른 종이다." "이 쓸모없는 종을 바깥 어두운 곳에 내쫓아라. 거기에서 가슴을 치며 통곡할 것이다." 만일 그 한 달란트를 받은 종이 그 돈을 땅에 묻어 두지 않고 열심히 일하다가 혹시 손해라도 보았으면 주인이 어떻게 했을까요? 이런 질문은 말 그대로 쓸데없는 질문입니다.
왜냐 하면 여기서 말하는 달란트는 돈이나 재물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달란트는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재능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돈이나 재물은 잘못 투자하면 손해를 볼 수도 있고 때로는 원금까지 다 잃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주신 재능, 즉 은사는 결코 손실이 있을 수 없습니다. 쓰면 쓸수록 더 많은 결실을 맺는 것이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사라는 말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갖고 있는 것은 모두 주님의 것입니다. 우리의 집, 우리의 차, 우리의 직업, 심지어 우리와 관계 맺고 있는 사람들까지 우리의 소유가 아닌 주님의 소유라는 사실을 분명히 인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왜 이런 고백이 중요합니까? 이 고백이 있어야 비로소 우리에게 있는 것을 우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주님과 하느님 나라를 위해서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우리를 믿고 주님의 것을 맡기셨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능력을 잘 아시기 때문에 최선의 결과를 얻을 수 있을 만큼 맡기셨습니다. 사실은 주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것은 충분하고도 남을 정도입니다. 결코 불공평하다고 불평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제 남은 것은 맡기신 재능을 가지고 우리가 얼마나 충성스럽게 봉사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다섯 달란트 받은 종이나 두 달란트 받은 종처럼 충성스럽게 봉사할 것입니까? 아니면 악하고 게으른 종처럼 받은 것을 그냥 땅에 묻어 두겠습니까? 대답은 분명하지 않습니까? 맡은 바 모든 것을 고맙게 생각하며 믿고 맡기신 주님과 하느님의 나라를 위해서 마음과 뜻을 다해서 충성스럽게 봉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장차 하느님 보좌 앞에 섰을 때 "착하고 충성된 종아 주인과 기쁨을 함께 나누어라!"는 칭찬과 함께 영광의 면류관을 상급으로 받는 복된 주님의 제자들이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