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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삼일절


주의 길을 닦고 고르게 하는 자

작성일 : 2011-12-03       클릭 : 223     추천 : 0

작성자 안양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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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 쫓겨다니는 사람의 특징은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기 위해서 과도하게 일과 야망에 쫓겨서 살아갑니다. 그래서 쫓겨다니는 사람은 항상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살아가지요. 결국에 가서 겉으로는 성공했는데 내적으로는 공허함만 쌓이게 됩니다. 이렇게 쫓겨다니는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몇가지 증상이 있습니다. 첫째 오직 성취함으로써만 만족을 얻습니다. 내가 목표로 한 일들을 성취하였을때 행복하고 그것을 이루지 못할때에는 항상 불만족스러워합니다. 둘째 매사에 집착합니다. 가령 더 큰 집, 더 높은 직위, 더 많은 통장을 얻는 것들입니다. 셋째 쫓겨다니는 사람들은 인격에는 별관심이 없습니다. 가령 이런 쫓겨다니는 사람들은 믿음의 삶을 살더라도 내면의 인격보다는 외면의 활동에 초점을 모으고 살아갑니다. 넷째 쫓겨다니는 사람들은 사람을 다루는 기술이 서툴고 미숙하다는 점입니다. 다른 사람과 잘 지내는 문제는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직 자신의 목표를 이루는 것에 더 관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혹시 좇겨다니는 삶을 살고 있지 않습니까? 쫓겨다니는 삶은 항상 바쁩니다. 그리고 삶에 스트레스가 많습니다. 그로 인해서 내면에 항상 커다란 웅덩이처럼 공허하고 만족이 없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누구입니까? 주님께 부름받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를 따르도록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우리가 다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부름을 받았다고 다 부름받은 삶을 사는 것은 아닙니다.
마르코복음에서 복음의 시작을 알리면서 세례자 요한을 우리에게 소개합니다. 마르코복음이 우리에게 쓰여진 목적은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우리에게 알리는 것이 목적입니다. 그래서 마르코복음 1:1절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복음의 시작이라”고 합니다. 오늘 마르코복음에서는  세상살이로 항상 분주하게 쫓기고,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이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하느님의 아들로 믿고 고백하고 증거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이 복된 삶이요 기쁨의 삶이 됩니다.
 그런데 바로 그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복음에 부름을 받은 자가 바로 세례자 요한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세례자 요한은 자신이 부름받은 것에 대한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확신에 걸맞는 삶을 살았습니다. 부름 받은대로 쓰임 받았습니다.
세례요한은 회개의 메시지를 증거합니다. “회개하고 세례를 받아라. 그러면 죄를 용서 받을 것이다.”라고 선포했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자신이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 살았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회개의 세례를 주는 자로서 살았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았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처음부터 끝까지 광야에 외치는 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회개의 세례를 주는 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이 사명을 위해서 그는 결국 목숨을 바쳤습니다. 최선을 다해서 부름받은 자로서 자신의 사명을 다한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께 가장 큰 자로 인정을 받습니다.
오늘 그리스도인들이 이 땅에서 삶을 살아갈 때 내가 누구인지를 바로 아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누구인지를 모르는 사람은 종종 인생을 그릇된 방향으로 열심을 낼 위험이 있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자신이 메시야가 아니요 메시야를 준비하러 부르심을 받은 것임을 잘알고 그 목적을 향해 살았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을 부르신 하느님은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특별한 삶이 아닙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모세가되라고 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다윗이 되라고 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바울이 되라고 하지 않습니다. 
우리 각자에게 부르신 부름의 뜻이 있습니다. 그 자리에서 우리가 최선을 다해서 살면 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누구인지 알고 그 분량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생각을 다스려가야 합니다. 내가 누구인지 알아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먼저 생각하여야 합니다(롬12:3).
여러분 우리가 왜 살고 있습니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부르셔서 살고 있지요? 그리고 우리에게 어떤 삶을 요구하십니까?  나를 구원하시고 새로운 삶의 소망이 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삶을 살기를 소원하십니다. 부르신 주님이 우리에게 주님을 증거하라고 하셨기에 우리가 그 부르심대로 삶을 사는 것입니다.
 복음이신 예수님을 증거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말씀과 찬양과 기도로 주님을 증거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순종함으로 주님을 증거하셔야 합니다. 늘 말씀드리지만 주님을 증거하기 위하여 여러분 모두가 해외 선교사로 나갈 필요 없습니다. 성직자가 될 필요도 없습니다. 주님은 지금 그 자리에서 증거하라고 하십니다. 부름받은 자의 삶은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지금 내가 머물고 있는 그 자리가 바로 주님을 증거하여야 할 자리입니다. 가정에서 주님을 증거하는 주부가 되십시오.
지금 학생으로 학교에서 주님을 증거하는 학생이 되십시오. 지금 직장에 있습니까? 직장인으로서 주님을 증거하십시오. 가정에 가보면 대문입구에 교패를 부착합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증거입니다. 그런데 집은 그리스도인 집인데 그 집에서 이루어진 모습이 만약에 아니라고 한다면 얼마나 영광을 가리우는 일입니까? 교회 다니는 사람으로서 주변 사람들과 마찰이 생기면 참 곤란할 때가 있습니다. 시비를 가리게 될 때 험악한 때가 있지요. 한바탕 하고 싶은데 머뭇거리게 됩니다. 예수 믿는 것 때문에 피하게 됩니다. 교회 주차 문제로 많이 힘드시죠? 조금만 참으십시다.
 세례자 요한은 낙타 털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두르고, 메뚜기와 들꿀을 먹으며 살았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광야에 있으면서 이렇게 단순한 옷과 음식과 삶을 살았습니다. 교회역사를 보면 우리가 존경하는 영적인 인물들은 한결같이 단순했습니다. 생각과 마음이 단순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삶이 단순했습니다.  목적이 분명하기에 그런 것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회개의 메시지를 선포했습니다. 회개의 세례를 주었습니다. 구구절절 옳은 소리 옳은 일을 한 것에 그치지 않고 그대로 삶으로 실천했습니다. 그것도 지속적으로 그렇게 삶을 살았습니다. 여러분 오늘 그리스도인들에게 요구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말씀대로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러분 지속적으로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가 이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얼마나 말은 쉽게 합니까? 그런데 쉽게 보이는 그것도 그대로 행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무엇 때문에 원망하고 지도자 모세를 비판했습니까? 하느님이 내려주신 만나 먹는 것이 지겹고 싫어서 원망했습니다. 여러분 같은 음식 반복해서 먹는 것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광야에서 세례자 요한은 지극히 단순하게 살아가는것들에 대해서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교우 여러분! 주님을 위해 불편하기를 거부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교회 생활을 하면서 힘들어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주님을 위해서 좀 불편하고 고생이 요구되는 때가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런데 점점 현대교회는 주님으로 인해 고생하는 것을 못참습니다. 갈수록 더욱 그렇습니다.
교회는 많은 성도들의 자발적인 봉사의 사역으로 움직입니다. 그러나 갈수록 바쁘다는 것으로 인해 봉사의 영역이 점점 좁아집니다. 우리 교회의 현실은 어떠한가요? 여러분 우리가 주님의 부름을 받은 자로서 주를 위하는 일에 우리의 불편함과 고생을 피하기 시작하면 우리의 신앙은 점점 약해집니다. 이 땅에서 너무 편하고 잘먹고 잘입고 잘살때에 결국 우리는 하늘의 소망이 점점 희미해지는 법입니다
우리가 세례자 요한을 통해 생각할 것은  그렇게 단순한 삶을 살았던 것은 그가 머문 자리가 바로 광야였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원받고 먼저 머문 곳이 바로 광야입니다. 지금 구원받은 우리가 이 땅이 바로 광야입니다. 여러분 성지순례를 가보신 분들은 광야를 보셨을 것입니다. 세례자 요한이 머물던 이스라엘 광야는 어떤 곳입니까? 모래바람으로 불편합니다. 밤에는 춥고 낮에는 더운 곳입니다. 한마디로 살고 싶지 않는 곳입니다. 한마디로 거칠고 힘든 곳입니다. 광야에서 무슨 복잡한 생각을 할 필요가 있습니까? 단순해야 내가 살아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이 바로 광야입니다. 세례자 요한이 지냈던 그 광야보다 더 힘들고 메마른 광야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여러분 그 광야에서 우리는 더욱 인생의 메마름을 배우고 있습니다. 그 인생의 메마름을 해결하기 위해서 세상 사람들은 육신의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좇을 것입니다. 그 메마름을 채우려고 노력하면 할 수록 더욱 메말라할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들의 광야의 삶을 단순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광야에서 잠깐의 나그네 인생을 사는 존재들입니다. 아침에 있다가 저녁에 지는 꽃과 같은 존재입니다. 광야는 우리가 영원히 머물 곳이 아니라 잠깐 지나가는 곳입니다. 그 광야에서 우리는 잠깐의 나그네 삶을 사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행을 하면 할수록 요구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단순합니다. 복잡하면 여행이 어렵습니다. 먼저 짐이 단순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단순해야 여행이 즐겁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여행을 할 때 목적지를 분명하게 정하고 단순하게 움직여야 합니다. 생각이 많아서 여기도 가고 저기도 가고 그러면 그럴수록 고생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 생활도 믿음 생활도 단순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누구든지 어린아이가 되지 않으면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셨을 때, 어린아이의 중요한 특성이 무엇입니까? 단순합니다. 대개 어린아이들 보면 말을 하면 그대로 믿고 단순하게 그대로 순종합니다. 여러분 그것이 주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이요 그것이 소명자의 삶입니다. 저는 잘 모르겠는데 남들이 까다롭다고 합니다. 청년 때는 왜 그렇게 복잡하게 살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꼭 알아야 할 것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것도 모르면서 사소한 것들을 너무 알려고 하면서 중요한 것들을 놓치게 되는 때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는 좀더 단순하게 살려고 합니다. 하느님이 그렇다면 그런 것이다.  이제는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목회도 나의 계획 나의 생각 나의 프로그램을 막 세워서 가는 것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압니다. 중요한 것은 하느님의 도우심이요 하느님의 인도하심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광야는 복잡하고 화려한 옷으로 화려한 음식으로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오늘 우리는 단순한 삶을 살고 있습니까?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주연을 빛나게 해주기 위하여 필요한 조연이 있습니다. 세례자 요한 바로 조연의 역할을 한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위해서 주연의 삶을 사는 것을 사명으로 감당했습니다. 물론 조연의 삶이 그렇게 쉽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의 삶이 조연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었기 때문입니다. 그를 따르는 제자들도 많았고 그를 따르는 무리들도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례자 요한은 자신을 낮추었습니다. 그리스도를 높이기 위해서 자신을 끝까지 낮추고 주님을 흥하게 하셨습니다. 사람들의 인생 속에서 문제가 무엇입니까? 내가 주인공이 되려고 한다는 점입니다. 자꾸 내가 흥하려고 한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의 삶은 어떻게 됩니까? 내가 흥하려고 할 때 망한다는 것입니다.  사울이 그랬습니다. 가리옷 유다가 그랬습니다. 이들은 결국 다 버림을 받고 맙니다.
그러나 반대로 조연의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됩니까? 하느님의 조연으로 주님의 조연으로 살았던 자들이 결국 주님께 인정을 받습니다. 주님께서 귀하게 사용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가 예수님의 조연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높이고 예수님을 나타내고 예수님을 자랑하는 조연인 것입니다.
세계2차 대전 뒤에 나치의 핍박 속에 살아남은 네덜란드출신의 할머니 중에 ‘코리텐 붐’이라고 하는 할머니가 있습니다. 그는 나치의 감옥 속에서 많은 핍박을 받으면서도 살아남은 뒤에 세계적인 전도자의 역할을 감당하게 되었습니다.
이분이 가서 간증을 하는 곳마다 많은 큰 부흥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녀가 미국을 방문했을때도 가는 도시마다 교회마다 사람들이 미어졌습니다. 그녀의 메시지와 간증이 끝날때마다 사람들은 끝없는 박수갈채를 보내곤 했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이상하게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이를 본 한 신문기자가 궁금하게 여기면서 물었습니다. “코리 여사님 정말 기쁘시지 않으십니까?” 이때 코리여사가 그 유명한 대답을 했습니다. “나귀가 착각하면 쓰겠는가?” 무슨 뜻입니까? 성경에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성에 들어가실때 사람들은 ‘호산나’ 소리질렀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에 대한 기대와 소원의 소리였습니다. 그런데 나귀가 그것을 자기에게 보내는 박수로 착각한다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누구입니까? 조연입니다. 우리는 당나귀와 같은 사람들입니다. 요한은 주인공되시는 예수님을 소리높여 외치는 것이 사명이었습니다. 그리고 전달한 다음에는 조용하게 침묵합니다. 그것이 요한의 생애였습니다. 예수님이 무대 위로 올라오자 그는 조용히 무대 뒤로 퇴장합니다. 그리고 순교의 제물이 되어 인생을 마칩니다. 부름받은 자는 시끄럽지 않습니다. 요란스럽지 않습니다. 복잡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주님이 드러날 수 없습니다. 오직 주님을 위해 조연의 삶을 살아가는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인생의 주인되시는 그분을 위해 조연으로 살아가는 자리로 우리 모두가 부름을 받았습니다. 이제는 살아도 주를 위하여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는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증거자로 우리 모두가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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