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예수 믿고 난 뒤에는 우리의 신앙이 성숙되어가야 합니다. 신앙 성숙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사람됨의 그릇이 커지는 것이지요. 우리가 예수님을 닮아서 점점 큰 그릇으로 변화되어가야 합니다. 그래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를 나타낼 수 있습니다. 그래야 이 세상에 거룩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습니다
복음말씀에서 우리가 본받을 만한 큰 사람을 만날 수 있습니다. 바로 세례자 요한입니다. 요한은 자기가 누구이며, 자기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던 사람입니다.
사람들이 요한에게 “네가 누구냐”고 물을 때 그는 명확하게 자기가 누구인지를 밝혔습니다. “나는 예언자의 말대로 주님의 길을 곧게 하여라, 하며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라고 한 말은 요한은 자신이 어떤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우리 인생에 갖가지 바람이 붑니다. 때론 유혹의 바람이 붑니다. 내가 누구인지를 잘 알고,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 사람인지를 잘 아는 사람은 그 유혹의 바람을 견뎌냅니다. 돈의 유혹이 찾아옵니다. 성숙한 사람은 그 돈의 유혹을 뿌리치고 자기 일터, 자기 자리를 잘 지켜냅니다. 쾌락의 유혹이 찾아옵니다. 성숙한 사람은 그 쾌락의 유혹을 뿌리치고 자기 가정, 자기 가족을 잘 지켜냅니다. 때론 시련의 바람이 붑니다. 내가 누구인지를 잘 알고,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 사람인지를 잘 아는 사람은, 그 시련의 바람을 견뎌냅니다. 박해를 잘 참고 믿음을 지켜냅니다. 고통을 잘 참고 사명을 지켜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정체성이란 나무의 뿌리와 같은 것입니다. 내가 누구이고 나는 무엇을 하도록 부름 받은 사람이란 사실을 정확하게 알고 인생을 살아갈 때 뿌리깊은 나무처럼 우리는 큰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요한 1:27을 보면 “이 분은 내 뒤에 오시는 분이지만 나는 이분의 신발 끈을 풀어드릴 만한 자격조차 없는 몸이오.”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신발 끈을 푼다는 말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당시 유대 관습 상 신발 끈은 종들이 풀었습니다. 그러니까 신발 끈을 푸는 일은 너무 천한 일이기 때문에 제자들로서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은 지금 자기는 예수님의 신발 끈을 푸는 일조차도 할 사람이 못된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의 종이 될 처지도 못된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자기의 주인처럼 높인 것입니다. 자기를 종처럼 낮춘 것입니다. 우리 사회에는 줄 세우는 문화가 뿌리 깊습니다. 누군가를 처음 만나면 고향을 묻습니다. 고향이 같다는 것이 확인이 되고 나면, 나이를 묻습니다. 자기보다 나이가 적으면 바로 “동생!”하고 나옵니다. 반대로 나이가 많으면 “형님!”입니다. 또한 누군가를 처음 만나 이야기하다가 출신학교를 묻습니다. 동문이 확인이 되고나면 학번을 묻습니다. 학번이 아래면 바로 “후배!”하고 나옵니다. 반대로 학번이 위면 “선배님!”하고 나옵니다. 이것이 우리 사회의 서열 문화입니다. 서열을 정하고 그 서열이 하나의 기준이 되어 질서가 형성됩니다. 형님 동생이 정해지고 선후배가 결정됩니다. 그리고 나면 형님과 선배는 대접을 받으려 합니다. 동생과 후배는 깍듯이 모셔야 합니다. 이것이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라는 주님의 말씀을 지키기 힘들게 합니다. 만일 요한이 오늘 우리 사회에서 활동했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예수님을 만나자 마자 소리쳤을 것입니다. “예수 동생!” “예수 후배!” 그러나 세례 요한은 이런 서열과 질서를 뛰어넘어 자기를 낮추고 예수님을 높였습니다. 그리고 말하기를 “그분은 더욱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요3:30) 했습니다.
성숙한 사람은 겸손할 줄 압니다. 겸손은 콤플렉스에 사로잡혀 어쩔 수 없이 자기의 부족함을 인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겸손은 그야말로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것입니다. 진심으로 상대방의 장점을 인정하고, 기쁨으로 남의 성공과 출세를 축하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당당하게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겸손은 우리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남의 장점을 인정하고 축하하는 것입니다. 이런 겸손을 실천할 때 우리는 성숙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세례요한은 철저하게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신 내적 욕망을 다스렸고, 자신으로부터 자유로운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욕구와 욕망은 다른 것입니다. 욕구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욕구를 주셔서 생존케 하셨습니다. 그러나 욕망은 우리가 물리쳐야 할 것입니다. 사탄이 우리 마음에 이 욕망을 불러 일으켜서 우리를 종으로 삼으려 합니다.
모든 동물들은 다 이 욕구를 따라 살아갑니다. 그렇지만 우리 인간은 기계처럼 욕구를 따라 살게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하느님의 형상으로서 자유의지를 따라 이 욕구를 조절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배가 고파도 참을 수 있고, 배가 불러도 더 먹을 수 있습니다.
어떤 중국 음식점에 씨름선수가 들어왔습니다. 배가 고팠는지 자장면을 9그릇을 시켜 먹었습니다. 식당 주인이 너무 놀라기도 하고 장난삼아 한 그릇을 더 시켜서 10그릇을 채우는 것이 어떠냐고 했습니다. 이 선수가 화를 내면서 일어났습니다. “내가 돼지인 줄 압니까!” 이것이 욕망입니다. 배가 터지도록 먹습니다. 그리고 제 생각, 기분, 상황에 따라 먹는 것을 조절합니다. 내 몸에서 오는 싸인을 따라서 먹는 욕구를 무시하고 제 멋대로 합니다.
그렇습니다. 정말 성숙한 사람은 절제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욕망을 끊고 하느님이 주신 욕구를 따를 줄 아는 사람입니다. 성령의 도우심을 따라 절제의 열매를 맺고 사는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절제는 성령의 열매입니다. 성령께서 우리 심령 속에 사탄이 뿌려놓은 욕망을 거둬내게 해 주시고, 하느님이 주신 건강한 욕구를 따르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절제의 삶을 살 때 우리는 성숙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람의 행복은 사람이 어떻게 마음먹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그리고 그 마음 중심에 하나님을 모시고 살아야, 어떤 환경의 변화에도 흔들리지 않고 언제나 감사하고 항상 기뻐하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세상을 바라볼 때에는, 정의롭게 산다는 것이 참으로 부질없어 보입니다. 왜냐하면, 불법을 행하면서 부정직하게 사는 사람들이 오히려 더 잘 사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하느님을 믿지 않아도 건강하게 잘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하느님께 열심히 기도하지도 않아도, 사업에 성공하고 돈도 많이 벌어서 아주 떵떵거리며 잘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어느 정도 흐르면, 그들이 어떻게 되는지 알 수 있습니다. 불법과 부정을 행하면서 하느님을 멀리하고 사는 사람들이 과연 어떻게 되는지, 그 결과를 알 수 있습니다. 어쨌든, ‘심은 대로 거둔다.’는 하느님의 말씀은 어느 시대를 불문하고 언제나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빛으로 오신 주님을 바라보고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어둔 세상에서는 결코 소망을 찾을 수 없습니다. 잠시 사람의 마음과 눈을 속이는 것만이 있을 뿐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지켜 사는 자에게만 참되고 영원한 소망이 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믿고 사는 사람들은 ‘야훼께 복 받은 종족(백성)’이라는 칭찬을 받게 될 것입니다(사61:9).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복은, 하느님의 뜻에 따라 인간답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천국에 들어가서 귀한 상급을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선 이 땅에서 하느님이 일러주신 말씀에 따라 살아감으로써 행복한 인생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행복한 인생을 살면, 하느님께서 기뻐하십니다. 우리가 행복한 인생을 살아야 하느님께 영광을 돌릴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영적 전쟁에서의 승리는, 우리 힘만으로는 어렵습니다. 우리는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느님께 도움을 청해야 합니다. 지혜도 구하고 능력도 구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느님께서는 조금도 지체하시지 않고 성령으로 오셔서 우리를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혹, 우리가 힘들거나 어렵다고 해서 잠시 쉬게 될 경우, 마귀도 함께 쉬게 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마귀는 우리가 쉬고 있는 그 틈을 이용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바쁘다고 해서 잠시 정신을 못 차리고 있을 때, 마귀는 그때를 이용하여 우리를 공격하여 넘어뜨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쉬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야 기쁨과 감사가 넘치는 은혜의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혹, 교회에 와서 졸게 되는 경우가 생길지라도, 빠지지 말고 열심히 참석해야 합니다. 그래서 마음의 끈을 단단히 붙잡고 있어야 합니다. 신앙의 무장을 계속 새롭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날씨가 흐린 날은 왠지 마음이 우울하고 기분이 안 좋습니다. 특히, 겨울에는 춥기까지 하기 때문에, 더욱 마음이 움츠려 드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날씨가 맑고 따뜻한 날에는 기분도 상쾌해지고 마음도 밝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만큼, 햇빛은 우리에게 중요한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빛으로 오신 예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하면, 우리 인생이 완전히 새롭게 바뀝니다. 우리 마음을 지배하던 어둠의 세력을 물리친 후에, 영원하신 하느님을 섬기면서 참으로 행복한 인생을 살도록 해주는 것입니다. 인생살이가 너무나 버겁고 힘들어서 지쳐있던 사람들에게 새로운 힘과 용기를 주시고, 인생을 아름답게 살 수 있는 지혜도 주십니다. 우리는 언제나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가까이 모시고 살아감으로써 하느님께서 우리 인생들에게 허락하신 모든 복을 누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에게 빛이 되고 모범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를 믿으면 ‘이처럼 복이 되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생활로써 보여주어야 합니다. 아무쪼록, 주님께서 일러주시는 대로 성실하게 믿음생활을 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요한은 성숙한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도 요한을 본 받아 성숙한 사람이 되어가야 하겠습니다. 자신을 알고, 겸손하며, 용기있고, 절제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주님께 성숙한 사람이라 칭찬 받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