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께서 이스라엘에 평화를 주셨듯이 안양교회와 여러분의 가정 위에 하느님의 평화가 있기를 소원합니다. 하느님은 다윗의 가정과 백성들에게도 평화를 주셨습니다. 삼7:1절에 보면 "야훼께서 사면의 원수들을 다 물리쳐주셨으므로 다윗 왕은 궁에서 마음놓고 살게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들도 평안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하느님으로 부터 비롯됨을 알게 하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평안을 누리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평안을 위해서 노력했기 때문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평안으로 인도하셨기 때문이라는 메세지가 담겨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신앙고백에 대단히 중요한 부분입니다. 다윗이 지혜롭고 능력있고 여러 모양으로 뛰어났지만, 그의 가정과 나라가 평안한 것은 하느님께서 모든 원수들을 막아주셨기 때문이라는 고백이 중요한 것이지요. 다윗은 띠로 왕 히람이 보내준 송백나무로 지은 왕궁에서 평안을 누리며 지내고 있었습니다. 띠로 왕 히람은 소중한 송백나무를 목수와 석수까지 딸려 보내면서 다윗에게 정성을 들였습니다. 그렇게 해서 지어진 왕궁에서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얼마 전 까지만 해도 광야를 헤매던 다윗이었는데 생각하면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느 날 다윗은 나단 예언자에게 "나는 이렇게 송백으로 지은 궁에서 사는데 하느님의 궤는 아직도 휘장 안에 모셔둔채 그대로 있소."라고 자기의 마음을 솔직하게 내어 놓게 되었습니다. 아무래도 하느님의 궤를 생각하면 자신의 마음이 편하지 않다는 것을 고백하고 성전 건축의 의지를 밝혔습니다. 그러자 나단 예언자는 다윗의 마음을 귀하게 여겨 "야훼께서 함께 계시니 무엇이든지 뜻대로 하십시오."라고 동의를 해 주었습니다. 삼하7:4 보면, 그 날 밤 하느님께서는 나단 예언자를 불러서 말씀하십니다.“나의 집을 송백으로 지어주지 않느냐고 말한 적이 있있었더냐?”하시면서 다윗 왕과 나단을 책망하셨습니다. 문제는 우선순위였습니다. 지금 이스라엘에게 중요한 것은 사울의 실수를 되풀이 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외형적인 어떤 실적이나 모양보다 내면적인 삶의 실전이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예언자 나단도 다윗 왕의 헌신적인 열정과 태도에 감동해서 동의하였지만, 사실상 판단을 잘못한 결과가 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좀더 본질적인 부분을 염려하고 계셨습니다.
그것이 하느님의 뜻에 합당한 일인가 하는 것을 먼저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에 맞고 기뻐하시는 일인가 하는 점이 성도로서 검토해야 할 가장 중요하고도 근본적인 것임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나단이나 다윗의 실수가 있다면 그것은 하느님께 깊이 다가가며 그 분의 뜻을 헤아리지 못한 데 있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사울 왕을 세우실 때 제일 마음에 드셨던 덕목이 바로 겸손이었습니다. 모든 사람을 포용할 수 있는 넉넉한 그릇이 주님의 마음에 드셨습니다. 비주류들이 사울의 면전에서 꼴찌인 베냐민 지파에서 무슨 왕이 나올 수 있느냐고 공박을 할 때에도 사울은 너그럽게 받아주었습니다. 후에 왕이되어 그 사람들을 찾아내서 공박하지 않았습니다. 사울은 그렇게 그릇이 큰 왕이었습니다. 사울에게 그런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울이 교만해 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전쟁도, 제사도 모든 것이 자기 중심으로 판단하고 진행했습니다. 그러자 하느님께서 사무엘 예언자를 통하여 "야훼의 말씀을 거역하였으니 왕이 자리에서 파면시킬 것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 교만이라고 하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생각보다 자기의 생각이 앞서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생각보다 자신의 생각을 앞세워 나가는 것이 며, 자기 생각이 하느님의 생각을 넘어가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사무엘을 통하여 말씀하십니다. "야훼께서 순종하는 것이 제사드리는 것보다 낫다..." 이 말씀은 지금 뭔가 잘 못 알고 있는 것 같다는 것이지요.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우리의 신앙의 진실한 모습은 무엇입니까? 얼마나 많은 성과를 거두느냐보다 얼마나 하느님의 마음에 합당한 일을 하느냐? 하느님을 기쁘시게 하느냐에 있는 줄 믿습니다. 하느님께서 나단 예언자를 통해서 다윗을 책망하는 핵심은 그것입니다. 사울의 실수를 반복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하느님의 마음에 합당한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씀이지요. 안양교회 성도들은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으로 이끌어 가는 일이 매우 시급한 일이라는 말씀으로 믿습니다. 하느님께서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삶을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십니다. 하느님이 찾으시는 사람은 예배하는 자인 줄로 믿습니다. 하느님께서 나단 예언자에게 책망을 하신 후에 말씀하십니다. 나의 종 다윗에게 가서 일러주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다윗에게 놀라운 복을 약속하셨습니다. “네가 어디를 가든지 너와 함께 있겠다.”는 축복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삼하7:9 마지막에 보면 ”네 이름을 떨치게(존귀케) 해주리라.“는 존귀함의 복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가장 자랑스럽고 사람이 살면서 살 이유를 느끼는 것은 자신의 존귀함입니다. 우리가 자녀들을 낳고나서 석달이 지나고 나면 교회를 나옵니다. 출산감사예식을 통하여 사제에게 축복기도를 받습니다. 축복기도 중에 내가 빼놓지 않고 해 주는 문구가 있지요? ”날마다 주님의 은총 가운데 몸과 지혜가 자라며 하느님과 사람들에게 큰 기쁨이 되게 해달라는“ 축복기도를 합니다.
즉 아이가 하느님과 사람 앞에 존귀한 자가 되게 해달라는 기도입니다. 하느님이 인정하는 사람, 사람들이 존귀하게 여기는 그런 삶을 살게 된다면 그가 많이 가지던, 적게 가지던, 많이 배우던 적게 배우던 그런 문제가 아니라 이 땅에서 존귀한 자로서의 삶, 사람으로서의 자부심을 가지고, 자긍심을 가지고 살게 되는 거지요.
집 없는 사람들의 소원이 뭔가요? 내 집 마련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성도들이 거할 곳을 마련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내 백성 이스라엘이 머무를 곳을 정해 주어 그곳에 뿌리를 박고 전처럼 악한들에게 억압당하는 일 없이 안심하게 살게 하리라”(10절).라는 정착의 축복을 주셨습니다. 옛날 어른들은 자기 석자 이름의 문패를 거는 것이 평생의 소원이었습니다. 50대나 되야 직장 다니면서 저축해서 겨우 20평짜리 자기 아파트 하나 생깁니다. 그러면 아들 딸 결혼시키는 거예요. 이제 내 집 생겼으니 자식들 출가 시키는 것입니다. 그것이 과거의 부모들의 기쁨 중에 하나였습니다. 오늘 2-30대가 부모의 덕분으로 집을 척척 사면서 그 집에 대한 기쁨을 제대로 아는 지나 모르겠어요. 집없는 사람, 전세를 사글세를 사는 사람들에게는 내 집 마련하는 것보다 더 큰 꿈은 없습니다. 땅이 없는 나라의 민족에게는 정착할 땅을 가지는 것, 그 나라 민족들에게 더 이상의 축복이 없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다윗에게 약속합니다. 이제는 이리저리 방황하는 시대를 끝내고 한 곳에 정착해서 안심하게 살게 하시겠다니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그리고 삼하7:11 마지막에 “나 야훼가 한 왕조를 일으켜 너희를 위대하게 만들어주리라.” 엄청난 축복의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너를 위하여 왕조를 이루게 하겠다는 굉장히 중요한 선언입니다. 하느님께서 다윗왕조의 창건을 약속하는 선언입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는 이스라엘 초대왕이 사울이지만, 하느님께서 인정하시는 이스라엘의 초대왕조의 시작은 다윗이라는 것입니다. 사울은 하느님의 기억 속에서, 이스라엘 왕조의 기억에서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왜? 교만했기 때문입니다. 교만은 참 무서운 것 같습니다. 모든 것을 변질되게 만듭니다. 변질된 것은 음식도 버릴 수 밖에 없습니다. 사람도 변질되면 버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변함이 없어야 합니다. 처음과 끝이 같아야 합니다. 언제나 변함이 없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옆사람과 마주보시고 해봅시다. 절대로 변하지 맙시다. 성직자가 바라는 것도 성도가 바라는 것도 똑같습니다. 변함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상 하느님의 요청입니다. 에페소교회의 변함이 무엇이었나요? 첫사랑을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안양 교회가 창립 28년을 맞이합니다. 뜨거운 열정으로 개척을 하고 지하실에서 눈물로 성전을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사람을 보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선교교회에서 재정적으로도 모든 면에 있어서 자립하는 본교회가 되도록 기도했습니다. 성전을 두 번 씩이나 지어 하느님께 봉헌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자라서 결혼을 하고 이제 교회의 청년으로 성장하였습니다. 지금까지 하느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해 변함없이 충성하신 성도 여러분을 축복합니다. 교회를 사랑하고, 교회의 기둥이 되기 위해서 이모양 저모양으로 변함없이 수고를 감당하신 모든 성도들을 통하여 우리 모두는 큰 위로와 희망이 됩니다. 그런 분들의 수고와 희생이 오늘 안양교회를 있게 한 줄로 믿습니다. 하느님께서 다윗에게 내가 너를 위하여 집을 이루어 주겠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나서 삼하7:12 그의 후손에게서 날 솔로몬에게 축복을 계속 하셨습니다.“네 속에서 날 자식을 네 뒤에 세워 그 나라를 견고케 하겠다.” 자식으로 이어지는 국권에 대한 축복을 선언하셨습니다. 13절입니다. “나에게 집을 지어 바쳐 나의 이름을 빛낼 것이며, 나는 그의 나라를 영원히 든든하게 다지리라.” 할레루야!
이제 우리가 신경 쓸 것은 하느님 앞에 헌신하고, 언제나 겸손하고, 언제나 변함이 없는 내적인 신앙을 다지는 일을 해서 우리 자손들과 함께 성전을 건축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하느님께서 나단 예언자를 통해서 다윗에게 선언하시는 이 말씀을 보면서 우리의 생각과 방법들이 앞서갈 때가 있지만 그러나 우리의 생각과 방법을 내려놓으시기 바랍니다.
하느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인지, 하느님이 우선으로 하여야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기억하고 깨달을 수 있는 성도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울의 전처를 밟지 않고, 사울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서 하느님을 사랑하고, 하느님께서 기뻐하실 일을 통하여 축복하셨던 것처럼 오늘 우리에게도 순종함으로 똑같은 축복을 주시기 위함인 줄로 믿습니다.16절 “네 왕조, 네 나라는 내 앞에서 길이 뻗어 나갈 것이며 네 왕위는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하리라.”
안양교회와 성도들은 하느님 앞에서 영원히 뻗어 나갈 것이며 영원히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큰 위로와 희망을 가지시기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