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은혜와 축복이 함께하시기를 소원합니다. 하느님의 은혜를 받고 사는 여러분은 가장 가치 있는 삶을 살고계십니다. 여러분에게 하느님의 은혜를 받고 사는 것이 정말 가치 있는 일이라고 믿으시나요? 하느님께서 죄악에 물든 이 세상에 오셔서 고난을 받으신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죄악으로 물든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낮은 자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신 주님. 자격을 따지지도, 무엇을 요구하지도 않으시고 그냥 오셔서 십자가에서 더럽고, 추한 우리의 죄를 끌어안으시고, 희생 제물로 대신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 주셨습니다. 내가 뭔데, 도대체 나란 인간이 뭐 길래, 하느님께서 외아들 독생자를 아무 조건 없이 주신 것은 “아 하느님의 은혜입니다.”
특송 : 1.아 하나님의 은혜로 이 쓸데없는 자 왜 구속하여 주는지 난 알 수 없도다. 2.왜 내게 굳센 믿음과 또 복음 주셔서 내 맘이 항상 편한지 난 알 수 없도다. 3.왜 내게 성령 주셔서 내 맘을 감동해 주 예수 믿게 하는지 난 알 수 없도다. 4.주 언제 강림 하실지 혹 밤에 혹 낮에 또 주님 만날 그곳도 난 알 수 없도다. 후렴) 내가 믿고 또 의지함은 내모든 형편 잘아는 주님 늘 돌보아주실 것을 나는 확실히 아네.
여러분, 우리는 어떻습니까? 변함 없는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입고 살아도 여전히 깨닫지 못하고 살 때가 많지 않습니까?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목숨을 버리고, 내가 내 생명보다도 너를 더 사랑한다. 그래서 내가 죽었다. 그리고 지금도 나는 너를 사랑한다."고 말씀하셔도 우리는 별로 감동을 받지 않습니다.
주님이 왜 그렇게 우리를 사랑해야 되는지도 잘 모릅니다. 무엇 때문에 십자가에 큰 고통을 당해야만 하는지도 잘 모릅니다. 그만큼 우리는 영적으로 무지한 상태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은 지금도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지금도 변함 없이 너희를 사랑한다."
하느님 사랑에 진정한 깨달음 속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다면, 그것은 내가 받은 하느님의 사랑, 내가 받은 구원의 감격을 이 세상을 향하여 외치는 것입니다. 한 영혼을 위해 교회가 관심을 갖는 것 중요한 일입니다.
오늘 복음은 한 중풍병자를 위하여 그를 아끼는 친구들의 아름다운 이야기가 기록되어있습니다. 중풍병은 당시만 해도 거의 불치병이었습니다. 미래를 포기 할 수밖에 없는 병이었습니다. 본인 스스로도, 그리고 가족도 이미 포기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를 포기 할 수 없었던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불행을 겪고 있는 친구를 요에 눕힌 채, 지붕을 뚫고서라도 예수님께 나아가게 했던 이 중풍병자의 친구들을 통해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첫째로. 친구를 주께로 인도하려는 열망이었습니다. 주님은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너는 죄를 용서 받았다.”(5절). 하셨습니다. 그들의 믿음입니다. 무엇보다 네 친구의 결단은 믿음에서 시작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친구가 예수님을 만나기만 하면 고침 받을 것으로 믿은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할 수 있는 수단과 방법을 다하여 친구를 요에 눕힌 채 예수님께 데리고 왔고 예수님은 그를 고치셨습니다.
교회는 전도대상자와 냉담자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믿음을 가질 것을 기대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지금 내 가족, 내 친구 아직은 예수님을 모르고 믿지 못하고 있지만 그들도 복음을 들으면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가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은 우리를 믿음의 통로로 쓰셔서 전도대상자들과 냉담자들을 구원하실 것입니다. 대부분 한 영혼의 구원의 뒤에는 그의 구원을 믿고 기도한 누군가의 믿음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불가능을 뛰어 넘어 가능한 길을 찾았습니다. 저희들에게는 여러 가지 불가능의 장벽이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그 중에 하나는 중풍병자라고 하는 사실입니다. 중풍병은 유다인 사회에서 저주 받은 자로 취급하였습니다. 이 병은 환자 자신에게 절망이었습니다. 다른 모든 사람에게도 치료가 불가능한 난치병으로 여겨져 왔습니다. 결코 중풍병자 혼자는 예수님께 갈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4명이 매고 예수님께 왔는데 사람들 때문에 길이 막혀 버렸습니다.
그들은 불가능을 뛰어넘어 가능을 보았으며, 가능의 길을 찾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구하는 사람이 받고, 찾는 사람이 찾고, 두드리는 사람에게 열리는 것은 진리입니다.” 친구를 살리겠다는 집념하나로 그들은 지붕을 벗겨 구멍을 내고 요에 눕힌 채 예수님 앞에 달아 내려보내는 모험을 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가족과 이웃이 구원받기를 진실로 소망하십니까?
친구들이 예수님을 통해 친구 중풍병자에게 기대한 것은 중풍병의 치유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예수님으로부터 ‘죄를 용서 받았다.’라는 내면의 치유를 먼저 허락하셨습니다. 이것은 보다 근본적인 인간의 문제임을 예수께서는 아셨기 때문입니다. 속사람의 치유 없이 인간은 겉 사람의 치장만으로는 결코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을 예수님은 아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죄 사함의 말씀 앞에 종교 지도자들의 반응은 매우 날카롭습니다(7절). "이 사람이 어떻게 감히 이런 말을 하여 하느님을 모독하는가? 하느님 말고 누가 죄를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
이들의 반응은 결코 잘못 된 것은 아닙니다. 죄인인 인간은 동일한 죄인을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하느님 한 분만이 죄를 사할 권한을 갖습니다. 그러나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이 무지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가 하느님이심을 모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가 하느님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를 만난 사람은 하느님을 만난 것입니다.
죄 사함을 받은 것입니다.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가 소망이시고 예수가 구원이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를 전해야 합니다. 사람들을 예수 앞으로 인도해야 합니다. 예수를 만나는 순간 영원한 미래가 열려오고 현재는 새로워집니다. 속사람이 치유되고 겉 사람도 새 힘을 얻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의 최고의 선물이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한사람이 구원받았다고 해서 주님은 절대 만족하지 않습니다. 하느님은 여전히 문 밖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우리를 먼저 하느님의 자녀로 삼으신 것은 우리가 빨리 가서 하느님이 기다리시는 잃은 양을 찾아오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데 혹시 우리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려 들지 않으면서 이웃이 구원 받기를 원하지는 않으십니까? 내 가족이 구원받기를 원합니까? 여러분 가운데 집안에 예수 안 믿는 사람이 있어도 일년이 다 지나도록 전도 한번 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자신의 가족 가운데 그 가족의 구원을 위해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는다면, 과연 하느님이 그런 사람들이 모이는 교회를 기뻐 받으시겠습니까? 드리는 예배를 하느님이 기쁘게 받으실까요? 대답은 너무나 분명합니다. 하느님은 자기만 아는 이기주의자들을 절대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우리 모두 하느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에 힘을 냅시다. 하느님이 제일 기뻐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잃은 양을 찾는 것입니다. 교회가 아무리 적어도, 주차장이 아무리 불편해도, 장소가 비좁아도 좋습니다. 그런 것은 문제될게 없습니다. 이제 우리 역시 우리의 전도대상자들과 냉담자들, 우리 주변에 아직도 예수를 믿지 않는 분들을 주 앞으로 인도해야합니다.
이 중풍병자를 위해 많은 것을 희생했던, 친구들처럼, 우리 역시 영혼 구원을 위해서 어느 때는 시간을 내야합니다. 어떤 때는 돈을 써야합니다. 자존심을 접어두고 접근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만큼 가치 있는 일은 없습니다. (아 하나님의 은혜로) 여러분, 신앙인으로서 흐트러진 삶을 정상적인 제 궤도로 올려놓는 결정적인 열쇠는 하느님의 나라를 구하는 것에 달려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의 증인, 하느님 나라의 증인으로서 살고 있느냐에 따라 신앙인의 성패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늘 말씀드리는 것이지만, 그리스도인의 삶은 말에 있지 않고 능력에 있습니다. 무엇이 그리스도인의 능력 있는 삶입니까? 우리가 예수의 증인된 삶을 보여준다면 그리스도인으로서 삶의 고리가 정상적으로 엮어져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마태6:33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하느님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것을 구하여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는 말씀의 본질입니다. 우리가 하늘을 생각하고 살면 하느님께서는 이 땅도 덤으로 주실 줄 믿습니다. 그러나 날마다 땅을 생각하고 땅에 주목하고 산다면 우리의 가정도, 직장도, 재물도, 젊음도, 건강도 결국 다 잃어버릴 것입니다.
죄악으로 물든 이 세상에서 주님을 의지하고 하느님의 은혜로 살면서 우리 주님이 다시 오실 그날까지 그리스도의 증인으로서 잃어버린 생명을 건지는 삶 보다 더 아름다운 삶은 없습니다. 올 한 해 안양교회가 전도의 풍성한 열매가 가득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