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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삼일절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작성일 : 2012-03-03       클릭 : 167     추천 : 0

작성자 안양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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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이 좋은 것을 열심이 있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 이전의 사울은 열심 중에 열심이었지만 그 열심은 예수님을 박해하는 열심이었습니다. 열심보다 중요한 것은 바른 지식입니다. 로마 10:2 “나는 하느님께 대한 그들의 열성만은 충분히 인정합니다. 그러나 그 열성은 바른 지식에 근거를 둔 것이 아닙니다.”라고 교훈하고 있습니다. 이슬람교도 “알라 외는 다른 신은 없다” 등 5가지 믿음이 있고, 기도, 금식 등 5 가지 행동이 있습니다. 정말 그들도 믿음에는 열심이지만 그 열심은 극단적 열심주의에 불과합니다. 열심만 가지고는 안됩니다. 열심만 내세우다가는 이슬람교도나 사울과 같은 모습이 되고 맙니다. 어거스틴은 “잘못된 길에서 달리는 것보다 바른 길에서 기는 것이 낫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잘못된 길을 달려가는 것보다는 바른 길에서 제자리에 서 있는 것이 더 낫습니다. 그러므로 바른 지식, 즉 바른 신앙이 중요합니다. 바른 신앙의 핵심은 십자가입니다. 복음말씀에서 예수님은 원로들과 대사제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버림을 받아 많은 고난을 받을 것이며 그들의 손에 즉 십자가에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게 될 것을 미리 알려 주었습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펄쩍 뛰면서 그래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비록 베드로의 이 말은 순수한 마음에서 하였지만 예수님은 “사탄아 물러가라”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고 있다며’ 꾸짖었습니다.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 외에는 다른 복음은 없습니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수 없다. 세상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다.”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믿으십니까?
허물과 죄로 죽은 우리는 다른 어느 것으로도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진리는 오직 하나, 십자가 외에는 다른 구원의 길이 없습니다. 이러한 십자가는 믿음의 대상일 뿐 아니라 기복신앙이 되기도 합니다. 기복신앙은 영원한 생명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육체의 조건에 초점을 맞춥니다. 십자가를 저버린 신앙은 삶 속에서 십자가를 추구하지 않습니다. 말로는 십자가를 말하지만 추구하는 것은 육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같이 예수님 붙든다고 해서 우리의 삶이 완벽할 수는 없습니다. 삶에 있어서는 완벽한 것을 버리고 70%라도 헌신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삶의 자리에서 주님을 위해 헌신하여야 합니다. 10% 헌신도 좋고 20% 헌신도 좋습니다. 70% 헌신이 된다면 대단한 신앙입니다. 이같은 기준에 있어서는 독단적이고 편파적이 되어야 하지만 삶에 있어서는 넓어져야 합니다. 베드로는 “선생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라는 신앙고백을 하고 예수님의 칭찬을 받은 이후에도 연약한 모습 보이고 넘어지기도 했습니다. 실수하고 또 회개하는 모습을 반복한 이후 하느님의 위대한 복음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사탄은 기준에 있어서는 폭넓게 인정합니다. 종교다원주의를 주장하며 모든 종교는 서로 통하고 모든 종교에 구원이 있는 것처럼 말합니다. 정말 듣기에는 좋게 들립니다. 그러나 구원은 십자가외에는 있을 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참된 믿음에 대해서는 엄격하고 좁게 봅니다. 그러나 삶의 내용에 있어서는 연약함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점점 그리스도의 분량까지 자라나야 하는 것이지요. 고린토 전서는 사람이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고린토 교회안에 근친상간, 이혼, 별거, 우상숭배, 송사, 시기질투 등 온갖 추악한 모습 다 보여 줍니다. 그러면서도 고린토 교회는 성령의 능력과 예수님의 영광이 동시에 나타납니다.
내 모습 바라보면 사울과 자캐오 같은 모습 나타나지 않습니까? 그러나 더럽고 추한 내 모습 통해 하느님의 영광이 드러납니다. 헌신에는 10% 헌신도 있고 70% 헌신도 있습니다. 70%가 어려우면 가장 작은 것에서 충성하십시오! 헌신의 분량은 사람에 따라 혹은 믿음에 따라 달라 질 수 있습니다. 작은 헌신도 얼마든지 소중하게 쓰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교회가 왜 자꾸 약해집니까? 잃을 것이 많기 때문입니다.
필립비 3:12 "나는 이 희망을 이미 이루었다는 것도 아니고 또 이미 완전한 사람이 되었다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나는 그것을 붙들려고 달음질칠 뿐입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나를 붙드신 목적이 바로 이것입니다."라고 말씀하고있습니다. 바울조차 자신이 완전하다고 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모습을 쫓아간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베드로가 더 깊은 깨달음에 도달하지 못하고 믿음의 한계를 드러냈을 때, 주님은 베드로를 꾸짖으셨습니다. 주님은 깊은 깨달음에 이르지 못한 사람을 꾸짖으십니다.
믿음은 진리의 깨달음을 통하여 하느님을 아는 지식에까지 자라야 합니다. 깨달음이 없이는 참 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습니다. 참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주님께 대한 순종도 없고, 헌신도 없고, 희생도 없는 사람은 믿음의 개달음이 없는 사람입니다.
교회가 믿음의 능력이 없는 이유는 말씀에 대한 깊이 있는 깨달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믿는 사람들은 날마다 깨달음의 깊이가 더해가야 합니다. 깨달음을 얻기 위해 말씀을 붙드시고 기도하십시오.
 이제 우리는 자기를 버리고 십자가를 붙잡고, 관용을 베풀며 남을 나보다 더 낫게 여기는 인생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완벽한 인생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께 희망을 이루며 가는 나그네와도 같은 삶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기준이 아닌 십자가의 기준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모든 일을 십자가로 시작하고, 십자가로 마치십시오.
예수님을 자신의 그리스도로 믿고 고백하는 성도는 예수님의 흔적과 예수님처럼 살기를 결심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참 그리스도인이라면 이 말씀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내 안에서 사시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것은 나를 사랑하시고 또 나를 위해서 당신의 몸을 내어주신 하느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갈라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 내가 산 것 아니요 오직 내안에 예수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자기 몸 버리신 예수 위해 산 것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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