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베리 마르타라는 가난한 사람이있었습니다. 그녀는 마음에 큰 소원을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가난해서 공부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 학교를 세워서 참 사람으로 길러 내는 진정한 교육을 해보는 것입니다. 그 일이 유일한 기도제목이었습니다. 교회에 나가서도 그 일을 위해 기도하고, 집에 와서도 그 일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기도하는 중에 하루는 자동차 재벌인 헨리 포드를 찾아갔습니다. 어렵게 만난 자리에서 학교를 세우려 하니 기부해 달라고 했습니다. 헨리 포드는 어이가 없다는 듯 동전 하나를 주며 모욕적으로 거절을 표현했습니다. 그러나 베리 마르타는 포드가 준 동전에 하느님의 뜻이 있으리라 믿고, 그 동전을 가지고 씨앗 한 봉지를 샀습니다. 그리고 씨앗을 공터에 뿌렸습니다.
그 후 몇 해 동안 상당한 수확을 거두어 건물 한 동을 짓게 되었습니다. 헨리 포드를 다시 찾아갔습니다. "오셔서 몇 해 전에 주셨던 동전 하나로 세운 성과를 봐 주십시오." 헨리 포드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 직접 찾아가 보고는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학교를 위하여 100만 달러를 기부했습니다. 교회는 크고 작은 것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교인들이 부자이거나 가난한 자이거나 그것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믿음으로 기도할 때, 작은 씨앗에서 큰 비전을 보았던 베리 마르타 여인처럼 기적을 일으켜 나가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힘을 과시하려는 교회는 반드시 무너져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는 이 성전을 허물어라.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성전의 파괴란 하느님으로부터의 버림과 같은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처럼 충격적인 말씀을 왜 하셨을까? 주님께서 허물라고 하신 성전은 바로 하느님의 거처의 상징으로 사용되는 마음의 성전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을 헐라고 하신 의미가 아닙니다. 하느님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소굴이 되어버린 유대인들의 마음의 성전을 헐라는 것입니다. 성전을 더럽힌 너희 심령을 헐라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생활에도 바르지 못하게 세워진 마음의 성전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지금 헐어버려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다시 세워 주실 것입니다. 이 시간 마음의 잘못된 성전을 헐어버리기 바랍니다. 그것이 돌로 46년 걸려 지은 성전이라 할지라도, 화려한 성전이라 할지라도, 헐어 버려야 합니다. 헐려야 예수께서 원하시는 교회가 새롭게 세워지기 때문입니다. 마음의 성전이 바로 세워지지 않으면, 아무 것도 이룰 수가 없습니다. 마음의 성전은 주님의 마음으로 세워지는 성전입니다. 마음의 성전은 주님께서 사흘 만에 세우신 성전입니다. 주님은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 하셨습니다. 마음의 성전이 반드시 회복되어져야 할 것들을 의미합니다. 무엇이 회복되어져야 합니까? 첫째로 희생을 회복1900년대에 한국에 들어온 많은 선교사들. 열악한 땅에 와서 오직 복음에 매여 복음을 위하여 죽기까지 헌신한 선교사들의 노력으로 이 땅에 교회를 세우는 초석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끊임없이 한국의 상황을 본국에 알렸습니다. 한반도에 복음을 전하는 것이 얼마나 시급한 것인가 하는 것을 설득하기 시작했습니다. (일본 성공회 개척자 카나다 선교사 쇼 총사제는 1880년 일본인 전도사 1인을 한국에 파송하여 한국어를 공부시킴. 그 비용은 동경교회 교인들이 부담/ USPG 본부에 한국선교를 담당할 주교와 성직자 파송 요청. CMS에서 중국에 파송한 스코트 주교역시 1883년 선교사 파송을 본부에 요청. 중국 주교 스코트와 일본 비커스 테드 주교가 1887년 9월 26일 한국을 방문. 스코트 주교는 제물포에 내려 경성을 둘러보았고, 제물포에서 배를 타고 부산에 가서 비커스 테드 주교와 합류하여 선교 시찰 후 귀국합니다. 후에 1888년 람베스의회를 통해 USPG에 조선에 선교하라고 위임. 중국주교에게 2,500파운드) 그들은 한 영혼을 살리는 일에 자신의 생명을 돌보지 않았습니다. 한 영혼과 나라를 구원하기 위해서 철저하게 한국 사람이 되었던 선교사들도 있었습니다. 의료선교사 랜디스 박사는 젊은 나이에 가나하고 병든자들을 돌보다 결국 자신이 병들어 죽어갔습니다. 선교사 한 사람의 희생이 이 한국 땅에 큰 열매를 가져온 것입니다. 복음에 나오는 성전에는 소와 양과 비둘기 제물을 팔고 돈 바꾸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과월절(유월절)에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 먼 곳에서 오는 사람들은 제물인 소와 양을 끌고 오니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시간도 많이 걸리고 고생도 무척 심했습니다. 이를 알고 성전 앞에 제물을 파는 장사꾼들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또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느님께 돈을 바칩니다. 그런데 카이사르의 얼굴이 새겨진 드라크마를 바칠 수 없기에 세겔이란 성전 화페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드라크마와 세겔을 바꾸는 장사꾼들이 생겼습니다. 이것은 하느님 앞에서 순수한 돈을 바치려는 마음과 순수한 제물을 바치려는 노력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결국에는 지나치게 편리만을 추구하려는 사람들 때문에 성전은 돈 바꾸는 사람들과 제물을 파는 장사꾼들이 가득한 소굴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교회가 편리만을 추구하면 성전의 본질을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너무 편리한 것, 유익한 것, 간편한 것만 추구하다보면 예배자의 자리를 떠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에게 희생이 필요합니다. 진정 희생의 제물이 있어야 합니다. 교회가 왜 점점 무기력해집니까? 희생이 없기 때문입니다. 희생의 제물이 없기 때문입니다. 희생의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여건과 환경의 이유를 대며 충성하는 자리를 쉽게 떠납니다. 예배하는 자리를 떠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용납지 않으십니다. 채찍을 만들어 편리를 추구하는 장사꾼들을 내어 쫓으셨습니다. 돈 바꾸는 상을 뒤집으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몸소 편리를 추구함이 아닌 희생의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17절에 "하느님이시여, 하느님의 집을 아끼는 내 열정이 나를 불사르리이다." 라는 말씀은 자신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을 뜻하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정말로 교회를 사랑하십니까? 그렇다면 희생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요한12:24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아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하였습니다.
교회 안에 희생이 없으면 어떤 능력의 역사도, 은혜의 역사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해관계를 떠나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희생의 삶을 살아갈 때 예수께서 세우시려는 진정한 교회가 될 줄로 믿습니다. 둘째로 말씀을 회복 우리는 평소에 어떤 소리를 듣고 살아가십니까? 세상 소리에 민감하지 않습니까? 우리의 모습이 바로 이런 모습이 아닙니까? 하느님의 말씀은 듣지 못하면서 세상의 소리는 잘 들리지 않습니까? 세상이 말하는 외침에 귀를 기울이며 사는 모습은 혹시 아닙니까? 하느님 말씀의 소리를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하느님 말씀을 듣는 사람들은 하느님께서 아무리 세미한 음성으로 말씀하셔도 들립니다. 열왕상 19장에 엘리야가 낙심하여 쓰러져 있는데, 하느님의 세미한 음성이 들렸습니다. 작은 소리임에도 불구하고 엘리야는 들었습니다. 평소 하느님의 음성을 듣는 훈련이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을 회복해야 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들어야 살아나기 때문입니다. 모라비아 교회 선교사들이 예수의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최초로 그린랜드에 파견되었을 때 그들은 그 곳 사람들에게 먼저 자연종교의 교리를 가르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단 한사람의 개종자를 얻는데 무려 17년이라는 세월이 걸릴 정도로 비참한 것이었습니다. < 코프 주교 역시 7년간 사역에 2명에게 세례를 주었다> 어느 날 카야르 낙이라는 악한 남자가 선교사의 움막에 들렀다가 성경 읽는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 때 선교사가 읽고 있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 중 마지막 한 주간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그 원주민은 예수께서 죄인들을 위하여 죽으셨으며, 그 분을 통하여 구원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희미하게나마 알게 되었고 그에 대해 자세히 듣기 위해 선교사에게 물었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저에게 자세히 말씀해 주십시오. 저도 구원받고 싶습니다." 뜻밖의 일에 선교사는 깜짝 놀랐고,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카야르낙과 그의 가족은 그리스도께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그린랜드에서 주께 드려진 첫 열매가 되었습니다.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선교사들은 죄인들에게 가장 먼저 설교해야 할 것은 바로 하느님 말씀을 통한 그리스도의 구속의 희생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고 합니다. 요한 5:25절에 "정말 잘 들어두어라. 때가 오면 죽은 이들이 하느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것이며 그 음성을 들은 이들은 살아날 터인데 바로 지금이 그 때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안양교회 역시 하느님의 말씀이 회복됨으로 주님이 세우시려는 교회가 되어지기 소원합니다. 셋째로 기도를 회복 세상에서 교회가 세워질 수 있던 것은 성도들의 갈망하는 기도의 힘이었습니다. 교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된 것 바로 기도의 힘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회복되어야 할 것은 바로 기도입니다. 기도는 삶입니다. 삶의 한 부분이 아닙니다. 기도가 삶의 전체여야 합니다. 하루를 기도로 시작하고 기도로 마쳐야 합니다. 한 달도 기도로 시작하고 기도로 마쳐야 하며, 일년도, 우리의 일생도 기도로 시작하고 마쳐야합니다. 교회의 모든 일에는 기도가 앞서야 합니다. 기도가 교회를 이끌어 가야 합니다. 기도는 교회의 힘이며, 재산이 되어야 합니다. 하느님이 교회에 주신 무기는 물질이 아닙니다. 세상의 권력도 지혜도 아닙니다. 오직 기도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기도를 무기로 사용할 수 있어야합니다. 기도의 크기가 교회의 크기입니다. 기도가 클수록 그 만큼 교회는 하느님의 영광이 드러납니다. 기도생활이 클수록 기도하는 사람을 통해서 하느님은 크게 역사 하십니다. 우리 교회가 위대한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기도하는 성도들이 많이 일어나야 할 줄로 믿습니다.기도를 자원으로 삼아야 합니다. 기도로 무장해야 합니다. 기도를 통해 세상을 정복하는 교회가 되어야합니다. 주님이 일으키시는 교회는 바로 희생과 말씀과 기도가 회복되는 교회입니다. 그러한 교회가 바로 여러분의 모습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