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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삼일절


죽어야 맺는 열매

작성일 : 2012-03-24       클릭 : 159     추천 : 0

작성자 안양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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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명절을 지내러 예루살렘에 오신다는 말을 듣고 군중들은 예수님을 맞으러 갔습니다. 군중들은 많은 기대를 가지고 예수님을 주목했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님은 변화를 바라는 군중들에게 아무런 흥미를 주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그들이 상상하지도 못하는 밀알의 비유를 말씀하심으로  그들의 기대가 무너져 버리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아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하셨습니다. 밀알이 씨앗으로 심어지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밀알이 심어지는 일은 마치 그 자신의 생명을 죽이는 일과 같은 것입니다. 자신이 썩고 온전히 희생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은 하시고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아끼는 사람은 잃을 것이며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목숨을 보존하며 영원히 살게 될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하나는 예수님의 죽으심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자기 목숨이라고 표현하신 목숨은 인간의 육체적인 생명을 말합니다. 이 생명은 혼으로써 자연적 생명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고 하신 생명은 주님께 받은 영원한 생명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육신적인 생명을 버리시는 일을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지는 것으로 비유하신 것입니다.
다른 하나의 뜻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참 생명을 얻는 생활 태도를 밝히신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생활은 바로 주님을 섬기는 생활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라오너라” 하셨습니다. 그런데 주님을 섬기기 위하여 주님을 따르는 생활이야말로 영원한 생명을 얻는 생활인데 이런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자신의 육체적인 생명을 버려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이 생활은 죄에 대하여 죽는 생활을 말합니다(롬6:11). 이런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육체의 일을 버리고 영을 쫓는 생활을 말합니다. “육체를 따라 살면 여러분은 죽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힘으로 육체의 악한 행실을 죽이면 삽니다. 누구든지 하느님의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사는 사람은 하느님의 자녀입니다.”라고 했습니다(롬8:13-14). 그리스도인의 이런 생활은 지난날의 옛사람을 벗어버리는 생활을 말합니다.
 주님을 섬기는 자의 축복? 예수님은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라오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주님의 말씀을 우리의 신앙생활의 거울로 삼아야 합니다. 주님을 섬긴다는 말과 주님을 믿는다는 말은 같은 말입니다. 그를 믿으면서 섬기기를 원치 않는다면 그 사람은 과연 믿음을 가진 사람일 것인가?
성경은 주님을 섬기는 그리스도인들의 태도에 대하여 여러 가지로 교훈해 주고 있습니다.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히 일하며 열렬한 마음으로 주님을 섬기십시오.”라고 했습니다(롬12:11).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도록 경건한 마음과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하느님께 예배를 드립시다.”라고 했습니다(히12:28).
예수님은 “내가 있는 곳에는 나를 섬기는 사람도 같이 있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이 계신 곳은 말할 것도 없이 하느님 나라를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내 아버지 집에 는 있을 곳이 많다.”고 하셨습니다(요14:2). 이곳은 주님을 섬기는 모든 성도들을 머물게 하실 충분한 장소이기 때문에 누구라도 염려 할 것이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거지로 살아 왔지만 하느님을 섬기는 생활로 아브라함의 품에 안겨진 라자로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주님을 섬기는 이들에게 “누구든지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높이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높이신다는 말씀은 지극히 사랑하신다는 말입니다. 하느님이 높이시는 그리스도인이야 말로 얼마나 놀라운 축복의 사람이겠는가?
하느님께 높임을 받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닙니다. 주님을 성심과 정성과 열심으로 섬기면 되는 것입니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으신 예수님처럼 우리도 밀알 하나가 되어 내 육신의 생명이 썩을 때 그 때 비로소 하느님 나라의 상속자가 되며, 하느님께서 높여주시는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밀알이 땅에서 썩듯이 육체가 원하는 생활을 버리고 주님을 섬기는 삶을 보내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실 일을 앞에 두시고 아버지께 기도하셨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이 기도하시는 모습에서 그가 지실 십자가에 대한 어려움을 다시 한번 절감하게 됩니다.
온 인류의 죄를 담당하시는 일은 연약한 사람으로서는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느님의 뜻을 이루어드리기 위해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필립2:8). 예수님은 십자가를 앞에 두고 마음에 갈등이 일어나거나 심히 답답하셨을 때 아버지께 기도하셨고 이 기도로 그는 골고타 언덕으로 올라가고 계셨습니다. 십자가를 지실 주님의 마음? 예수님은 육체를 가진 사람이란 점에서 우리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우리의 사제는 연약한 우리의 사정을 몰라주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와 마찬가지로 모든 일에 유혹을 받으신 분입니다. 그러나 죄는 짓지 않으셨습니다.”라고 하셨습니다(히4:15).
주님은 “내가 지금 이렇게 마음을 걷잡을 수 없으니 무슨 말을 할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십자가를 지실 일을 앞에 두시고 예수님의 마음의 갈등을 표현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무슨 말을 할까?”라고 하신 말씀은 그가 앞으로 당하실 모든 고난에 대하여 낱낱이 알고 계신데서 나온 괴로움을 나타내신 표현입니다.
예수님은 가리옷 유다의 배신을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자기 제자들이 도망가고 한 명도 그의 고난에 동참하는 자가 없음을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그가 받으실 재판의 과정을 이미 아셨고 로마 군인들이 그에게 가할 모욕적인 학대를 이미 바라보셨습니다.
주님은 십자가에 달리셔서 고통을 받으실 일, 그가 그 괴로움 중에서 아버지의 버리심을 받으신 일까지 알고 계셨습니다. 이 어찌 답답하고 걱정스러운 일이 아니었겠습니까.
예수님은 “아버지여 이 시간을 면하게 하여 주소서”라고 기도 드렸습니다. 주님이 “이 때를 면하게 해 달라”고 하신 이 때란 십자가를 지실 고난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은 주님의 인간적인 갈등과 고민을 아버지께 솔직히 아뢴 기도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즉시 기도를 수정했습니다. “아니다 나는 바로 이 고난의 시간을 겪으로 온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주님께서 자신의 사명에 대한 확인입니다. 예수님도 자신의 사명을 수행하는 일이 매우 어려운 일이었지만 그러나 그는 밀알 하나로서의 사명을 죽기까지 복종하심으로 온전히 이루신 것입니다. 언제나 기도의 결론은 말씀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주님의 위대하심은 육체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아버지의 뜻을 이루신 일입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영광을 드러내소서”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아들이 이 세상에서 하신 일은 모두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해 드리는 일이었습니다. 이 같은 예수님의 기도에 하늘에서 아버지의 응답이 음성으로 들려왔습니다. “내가 이미 내 영광을 드러냈고 앞으로도 드러내리라.” 이 말씀은 그 아들로 인하여 아버지께서 이미 영광을 받으셨다는 말씀입니다.
아들은 이 땅에서 수도 없이 아버지의 영광을 들어내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구속사업의 완성으로 얻으실 영광으로, 모든 죄인을 구원하시는 그리스도의 복음은 아버지 하느님을 영광스럽게 해드린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이 세상을 떠나 높이 들리게 될 때에는 모든 사람을 이끌어 나에게 오게 할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복음으로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믿게 될 일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느님의 구원의 역사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들리심으로 완성되어 복음이 형성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이제 이 세상의 심판이 이르렀다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이 말씀을 특히 그의 죽으심과 연결시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은 이 세상 심판과 관련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제는 이 세상 통치자가 쫓겨나게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이 세상 통치자란 사탄을 말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승리는 사탄으로부터 사망의 권세를 빼앗았습니다. 음부의 권세가 하느님의 교회에 미칠 수 없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지실 십자가의 어려움을 아버지의 영광을 위하여 기쁘게 지셨습니다.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십자가를 질 때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롬8:17)
1베드로4:13-16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이니 오히려 기뻐하십시오. 여러분은 그리스도께서 영광스럽게 나타나실 때에 기뻐서 뛰며 즐거워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 때문에 모욕을 당하면 행복합니다. 영광의 성령 곧 하느님의 성령이 여러분에게 머물러 계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고난을 당한다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히려 그리스도인 된 것을 하느님께 감사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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