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렐루야! 예수님의 부활의 은총이 성도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기쁜 부활절입니다. 부활의 기쁜 소식을 처음으로 들었던 여자들은 공포와 두려움으로 숨어 있던 제자들에게 부활의 소식을 전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사건은 많은 사람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십자가는 제자들의 삶에 두려움과 공포를 안겨 주었습니다. 그들의 미래는 불투명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의 소식은 이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로 말미암아 절망이 희망으로 바뀌고, 슬픔이 기쁨으로 바뀌고, 미래에 대한 기대를 갖게 되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로 예수님에 대한 모든 것을 새롭게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모든 것들이 한낱 아름다운 추억이 될 뻔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예수님에 대한 기억 하나 하나가 새로운 의미로 다가오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정말 하느님의 아들이었다.” 라는 믿음이 주어졌습니다. “그분이 하신 모든 말씀들은 진실했으며” 그리고 “그분이 하신 행동 하나 하나가, 그분의 삶 전체가 하느님의 아들로서 우리에게 본을 보이신 것이었다.” 라는 사실들을 통하여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소식은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게 했고, 그 말씀을 믿게 했고, 그 말씀에 순종하게 했습니다.
부활은 교리적으로 이해 할 수 없는 사건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경험했고, 부활의 소식을 전해 듣고 믿은 사람들은 모두 그들의 삶이 변화되었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 이후에 제자들의 삶의 변화는 놀랍도록 달라졌습니다. 우선 담대해졌습니다. 자신들이 믿는 것에 대하여 거침이 없었습니다. 전에는 겁에 질려 숨어 있던 사람들이 이제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감옥에 끌려가거나, 매를 맞는 것 따위는 전혀 개의치 않았습니다.
“사도들을 불러들여 매질한 다음 예수의 이름으로는 아무 말도 말하지 말라고 단단히 일러서 놓아 보냈다. 사도들은 예수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욕을 당하게 된 것을 특권으로 생각하고 기뻐하면서 의회를 물러나왔다.”(사도 5:40-41)
예수님을 반대하던 바리사이파 사람들이나, 대사제들은 예수의 무덤이 빈 것은 제자들이 시체를 훔쳐 숨겨 놓고 그가 부활했다고 사람들을 속이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정말 제자들이 그렇게 예수님의 시체를 다른 곳에 숨겨 놓았다면, 그들 스스로 세상을 속이는 사람들이, 그렇게 삶이 변화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예수가 부활했다고 목숨을 내 놓고 담대하게 주장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의 부활로 놀라운 변화를 가져 온 사람 하나가 있었습니다. 그의 행동은 제자들도 믿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는 악명이 높았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잡혀간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최근에 극적으로 변화되어 그리스도 예수를 전파하는 사도가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제자들 간에도 그렇고, 예루살렘의 사도들도 그를 믿을 수 없다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사도들은 그들이 가장 신뢰하는 사람의 말을 듣고서야 비로소 그의 변화를 인정할 정도였습니다. 그 사람이 바로 바울로라는 인물입니다.
본래 그의 이름은 “큰 사람”이라는 뜻을 가진 사울이었습니다. 예수 안에서 완전히 변화된 그는 “작은 사람”이라는 뜻을 가진 바울로라는 이름으로 바꾸었습니다. 바울로는 하느님의 은총을 크게 받고 깊이 깨달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바울로는 늘 하느님의 은총을 자랑하였습니다.
오늘 서신에서도 자신이 붙들고 있는 중요한 하느님의 은총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자신이 여기까지 이른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총으로 된 것이라는 것입니다. 자신이 하느님의 교회를 박해한 사람으로 사도라고 불릴 자격이 없는데 하느님의 은총이 아니고는 있을 수 없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자신이 어느 사도보다 더 열심히 수고했지만 자랑할 것이 없음은 그것도 하느님의 은총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한 것은 아무것도 없고 나와 함께 하신 하느님의 은총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하느님이 감동 주시고, 믿음 주시고, 지혜 주시고 능력 주셔서 감당한 것이지 나는 아무 자랑할 것도 교만할 것도 없다는 말입니다. 이 고백에는 우리의 신앙에 꼭 포함되어야 할 아주 중요한 진리가 담겨 있습니다. 우리 역시 바울로와 같은 고백을 하며 하느님의 은총을 붙들어야 바울로와 같은 큰 복을 누리며 살 수 있습니다.
사도바울로는 생각합니다. '팔삭동이 같은 나에게 못난 짓만 골라하던 나를 버리지 않으셨다. 하느님의 교회를 박해하는 나를 심판하지 않으시고 기다려 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친히 나타나 부활의 몸을 보여 주셨으니 이게 얼마나 큰 은총인가?' 그래서 내가 부활의 증인이 되고 사도가 된 것은 하느님의 은총으로 된 것이요 내게 주신 하느님의 은총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바울로는 기독교 역사상 가장 많이 수고하고, 가장 큰 일을 감당한 인물입니다. 가장 많은 성경을 혼자 기록했습니다. 가장 넓은 지역을 돌아다니며 가장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가장 많은 교회를 세웠습니다. 가장 많은 제자를 길러냈습니다. 가장 많은 고생을 하며 핍박을 감수하고 믿음의 승리를 했습니다. 가장 열정적인 인물, 가장 능력이 많은 인물, 가장 효과적으로 일한 일꾼. 어떤 이름을 갖다 붙여도 어울리는 영적인 사람입니다.
그런데 바울로는 '이 모든 것은 내가 한 것이 아니고 나와 함께 하신 하느님의 은총이라'고 고백합니다. 이것은 바울로의 가장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우리는 헌금 많이 하고 시험듭니다. 교회에서 열심히 봉사하고 시험듭니다. 열심히 새벽기도 나와 기도하고 시험듭니다. 열정을 가지고 부지런히 전도하고서 시험에 들어 넘어지는 이들이 있습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내가 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나는 이렇게 힘을 다하여 헌금하고 몸이 부서져라고 충성 봉사하는데 왜 누구는 안하느냐?는 생각이 들면 실족합니다. 나는 이렇게 고생하며 기도하고 전도하는데 왜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잘 했느니, 못했느냐? 라는 생각이 들면 상처받고 시험듭니다.
뭐가 문제입니까? 봉사하고 기도하고 전도하고 헌금한 것이 문제입니까? 아닙니다. 그게 문제가 아니고 하느님의 은총으로 하지 않은 것이 문제입니다. 여러분, 할 수 있으면 다른 사람보다 더 수고하려고 하십시오. 할 수 있으면 다른 사람보다 더 헌신하려고 하십시오. 그러나 여러분의 힘으로 하지 말고 하느님의 은총으로 하려고 하십시오.
다시 말해 여러분의 것이 아닌 하느님이 주신 물질로 많이 드리십시오. 하느님이 주신 힘으로 많이 섬기십시오. 하느님이 주신 은사로 큰 일을 감당하십시오. 하느님이 주신 능력으로 많이 수고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아까운 마음이 들거나 억울한 마음이 들일이 없습니다. 누가 수고했다고 하면 하느님의 은총으로 감당해서 감사할 뿐입니다. 라고 말하십시오. 그러면 하느님의 손에 붙잡혀 쓰임받는 감격에 사로잡힐 것입니다. 나같이 별 것 아닌 사람을 하느님이 사랑하시고 함께 하시며 무한한 자원을 공급해주심을 온 몸으로 느끼며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 간혹 시험이 들 때가 있지요? 섭섭하고 의욕을 잃고 은근히 원망스럽게 느껴지기도 하지요? 그럴 때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그 모든 것을 다 네 힘으로 하였다고 생각하니? 교회를 세운것도, 은혜를 끼친 것도, 사람을 사랑한 것도 네가 다 한 일이니?" 얼핏 보면 내가 다 한 일 같지만 사실은 주님이 하신 일입니다.
나는 단지 주님의 손에 붙잡혀 쓰임받은 것뿐입니다. 쓰임받은 것보다 더 큰 은혜가 무엇일까요? 부족한 사람, 자격 미달인 사람 귀하게 써주신 것이야말로 큰 은혜입니다. 그래서 주님 앞에 엎드려 회개하고 은혜를 붙잡고 다시 일어서게 됩니다. 여러분 지금까지 받은 은혜 너무 크지 않습니까? 은혜를 은혜로 깨닫고, 은혜로 느낄 때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 줍니다.
은혜가 우리의 삶에 새 힘이요, 용기요, 지혜가 될 것입니다. 날마다 그 때 그때 필요한 좋은 은혜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은혜를 확신하고 은혜를 고백하고 은혜를 붙잡고 자랑하며 그 은혜 가운데서 살아가기를 부활하신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