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인이라면 누구나 자기를 위하여 기도해 주는 사람이 있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특별히 신부님이나 교우들에게 기도 요청을 부탁하기도 합니다. 누군가가 나를 위하여 기도해주기를 기대하십니까? 그것은 혼자서 감당하기엔 너무나 힘든 일들이 많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실 이 세상은 누군가가 나를 위하여 기도해 주지 않고 누군가가 나를 붙들어 주지 않는다면 이 세상을 헤쳐 나가기엔 대단히 힘든 생활을 하여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믿지 않은 사람을 향하여도 내가 당신을 위하여 기도해 주었다고 하면 아주 좋아하고 기뻐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이렇게 하느님께 예배드릴 수 있고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은 누군가 우리를 위해서 기도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복음 성가에도 ‘누군가 나를 위하여 누군가 기도하네.’ 라는 찬양이 있습니다. ①당신이 지쳐서 기도할 수 없고 눈물이 빗물처럼 흘러내릴 때 주님은 우리 연약함을 아시고 사랑으로 인도하시네. 누군가 널 위하여 누군가 기도하네. 네가 홀로 외로워서 마음이 무너질 때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 ②우리의 마음이 지쳐있을 때에 갈보리 십자가를 기억합니다. 주님은 우리 외로움을 아시고 내 마음에 기쁨주시네. 오늘 복음 말씀은 예수께서 제자들을 위한 기도입니다. 히브 7:25 “예수께서는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중재자의 일을 하시니”라고 말씀합니다.예수님은 하느님 아버지께 나는 이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 돌아가지만 이 사람들은 세상에 남아 있으니 제자들을 아버지의 이름으로 지켜달라는 기도를 하십니다(11절) 제자들이 앞으로 살아가는 데 있어서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들이 만나게 될 터이니 잘 지켜 달라는 기도입니다. 아버지의 이름으로 이 사람들을 지켜 달라는 말은 무슨 뜻이겠습니까? 이름이란 소유를 말하는 것으로서 이는 아버지의 것으로 살게 해달라는 말씀인데 이제는 죽어도 아버지의 것이고 살아도 아버지의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또한 이름이란 그 이름의 권위를 물려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천한 사람의 이름이 들어있으면 천하게 되고 훌륭한 사람의 이름이 들어 있으면 훌륭한 것입니다. 가령 골동품도 누가 소장하던 물건이다 하면 그 이름 때문에 값이 올라가지 않습니까? 우리 각자에게도 이름이 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 교인. 성도 등으로 불려집니다. 때로는 이렇게 불려지는 것이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이 이름이 얼마나 귀한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만왕의 왕이신 하느님께 속한 사람으로서 한 사람 한 사람이 내 이름으로가 아닌 하느님 아버지의 이름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이름으로 지켜 주십시오’ 하는 말은 하느님께서 책임져 달라는 뜻으로 해석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이 악하다는 사실을 아셨습니다. 이 악한 세상으로부터 제자들을 지켜내게하시는 분이 오직 하느님밖에 없다는 것을 고백하는 기도를 하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15절처럼 이 세상에서 악마에게서 지켜주시기를 아버지께 기도하셨습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죄 씻음을 받은 자는 끝까지 구원을 지켜주신다는 말로서 한 번 구원받은 구원은 결코 없어지지 않는 영원한 구원이 되는 것입니다. 로마8:39 “높음도 깊음도 그 밖의 어떤 피조물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를 통하여 나타날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하나 되기를 원하는 기도를 하셨습니다(11). 하나가 되어야 함은 우리 모두가 너무나 잘 알고 있기는 한데 그런데 이게 대단히 어렵다는 말입니다. 하나가 되지 못해 겪는 어려움이 얼마나 많습니까? 가정도 직장도 나라도 세계도 하나만 될 수 있다면 야 얼마나 좋습니까? 하나되어서 불편한 것도 있지만 그래도 언제나 하나 되는 곳에 능력이 있고 평화가 있습니다. 마음도 분열되면 고민이 따르고 복잡해지지만 하나가 되기만 하면 그때부터는 평안해 집니다. 여기 하나가 되게 해 달라는 기도문에서 말씀하신 우리란 바로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느님을 일컫는 말로서 제자들도 이처럼 하나가 되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마태3:16~17)하나 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사실을 주님은 이미 알고 계셨습니다. 나누어지고 흩어지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과 하나가 된다는 것 거기에는 고민이 따르고 희생과 어려움도 따르게 되는데 왜냐하면 나의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기도하셨던 것처럼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소서.’ 라는 뜻을 세워 살아갈 때 아름다운 삶이 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서로가 하나 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은 우리 모두가 한 몸이기 때문이에요. 몸이 나누이면 안 되지요. 우리는 원래 신앙의 뿌리가 같은 사람이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났으니 같고 그리고 그 마지막이 같을 것입니다. 죽으면 갈 본향이 같은 사람들이라는 말입니다. 따라서 ‘아버지와 내가 하나인 것처럼 이 사람들도 하나가 되게 하여주십시오’라는 주님의 기도는 성도들로 하여금 오직 하느님께 시선을 집중하여 하느님의 눈으로 이 세상을 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는 당연히 하나 되는 모습으로 살아가야지요. 성경은 우리 각자를 몸에 붙은 지체와 같다고 했습니다. 지체는 그 지체 나름대로 고유한 기능이 있기 때문에 그것만 떼어놓아서는 안 되지 않습니까? 교회도 이와 같이 서로 부족한 부분을 메우고 협조하면서 하나가 되어 하느님의 나라에까지 진행해 나가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느님과 하나 되기를 정말 원하십니까? 어린아이처럼 순수하게 하느님께 무릎을 꿇고 기도하세요. 주님과 하나 되어 사는 사람들은 주님의 부요를 누립니다. 성공회 안양교회 성도로서 하나 되어 신앙생활 하기를 원합니까? 진정으로 넓은 마음을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상대방의 어떤 약한 모습, 죄악 된 모습, 허물에 속하는 것이라도 수용할 수 있는 마음을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그렇게 되어질 때 비로소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당신께 있는 기쁨이 제자들이 마음껏 누리게 되기를 바라는 기도를 하십니다(13). 이 말씀은 주님의 마음속에 있는 신령한 그 기쁨을 제자들에게도 있게 해 주십시오 하는 기도입니다. 그러면 주님의 기쁨이란 어떤 것입니까? 그것은 진리와 함께 하는 기쁨이요 하느님과 함께하는 기쁨입니다. 사람들은 기쁨을 얻기 위하여 무언가를 찾아 헤맵니다. 삶이 너무 무기력해지면 정상적인 삶의 패턴에서 기쁨을 얻지 못하고 역행함으로 얻는 기쁨을 얻지만 그 기쁨의 뒤에는 파멸이 기다립니다. 13절에서 말하고 있는 기쁨은 ‘하느님과의 영적 삶의 교제를 통해서 우리 영혼의 깊은 내면에서 얻을 수 있는 하늘의 신령한 기쁨을’ 말하는 것입니다. 기쁨이란 나 혼자서만 얻으려고 해서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더불어 살아가는 삶 속에서 찾을 수 있기 때문에 사랑으로 인한 기쁨 그리고 희생으로 인한 기쁨 그리고 섬김으로 누리는 기쁨 속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주님의 기쁨은 세상이 주는 소유나 명예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얻어지는 만큼 우리도 주님께 영적인 삶을 집중하면 그 기쁨이 대박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악마에게서 지켜주시기를 바라는 기도를 하십니다(15). 우리는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이것만은 피했으면 하고 도피적인 생각을 먼저 합니다만 그것은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방법이 아닙니다. 어려우면 어려운 대로 있는 그 자리에서 악에 빠지지 말라고 주님께서는 기도하고 계십니다. 현실 도피가 아니고 현실의 삶 속에서 악을 이기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소극적이거나 도피적인 기도를 해서는 안 됩니다. 예를 들면 하느님 가난도 면케 하시고, 병도 멀리 하시고, 어려운 환경에서 훌쩍 떠나게 하옵소서. 이러한 기도가 좋은 것 같지만 그것이 결코 바람직하지는 않습니다. “하느님! 지금 현재 그대로를 원하고 계십니까? 그러면 이 시험을 이기고 사랑으로 승리하게 해주십시오.” 라는 적극적인 기도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기도하고 있습니까? 그저 우리 아이를 편안하게 하고 어려운 일없이 잘되게 해 주세요 하고 사람 구실 할 수 없도록 기도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환난을 피할 것이 아니라 이길 수 있는 힘을 주십시오. 라고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의 기도도 제자들이 세상에 있으면서 악에게 지지 않고 승리하도록 기도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살고 그 영광의 손에 붙잡히게 될 때 거룩하고 아름다운 삶으로 가치 있게 쓰여 진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주님께서 드리신 이 기도야말로 우리의 기도요 우리의 생활의 지표이어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가 그렇게 되기를 원하고 계시므로 우리도 그렇게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남남인 우리가 하나가 될 수 있습니까?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지역으로 하나 되는 것이 아니고 모임이나 끼리 끼리로 하나 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 안에서 서로 사랑하므로 하나가 되는 거죠. 주안에서 서로 사랑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상대방의 약점과 단점을 내가 보충하고 용납하는 것입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서로 마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같은 방향을 보는 것이다.” -프랑스 소설가 생텍쥐페리 옳은 말입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주님을 바라보면 그 어려움을 이길 수 있습니다. 서로 싸울 때도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피곤하여 지쳐 넘어질 때도 주님을 바라보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에페4:1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불러주셨으니 그 불러 주신 목적에 합당하게 살아가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