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지금까지 하느님을 잘 믿는다고 하였는데, 어떤 열매가 있는지 생각해보았는데 이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라는 말을 할 수 있을까? 나는 정직하게 살아가고 있는가? 주님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여 헌신하고 충성하고 있는가? 나의 생각은 어떠하며, 나의 의지는 믿을만한가?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나는 그런대로 신앙생활 한다고 하지만, 나는 과연 다른 사람들을 지도하고 이끌어 갈만한 리더십이 있는가? 다른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면서 ‘그래도 예수 믿는 사람이라’고 인정받을 수 있을까? 사실 아직 멀었고, 한없이 부족하다고 생각됩니다. 오늘 읽은 복음 말씀 중에 “자라나는 씨의 비유”는 마르코복음에만 나오는 비유입니다. ‘자라나는 씨의 비유’와 ‘겨자씨의 비유’는 둘 다 하느님 나라의 본질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먼저 비유라는 것은 ‘대조한다.’, ‘비교한다.’는 뜻입니다. 심오한 진리의 말씀을 잘 설명해주고 이해시키려는 방법으로 평범하고 친숙한 어떤 사건을 예화로 드는 것이 비유입니다. 예화를 든다는 말은 알아듣기 쉽게 하려는 것입니다. 아무리 정신을 차리고 귀담아 들으려고 해도 이해할 수 없는 말이라고 하면 말하는 사람도 헛수고요, 듣는 사람은 정말 답답한 일입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하느님 나라의 비밀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그 심오한 진리를 가지고 이제는 사람들에게 알아듣도록 설교해야 하고, 가르쳐야만 됩니다. 예수님은 비유가 아니면 아무 것도 말씀하지 않으신 적이 있습니다(마13:34).
그러면 예수님이 하신 모든 말씀이 다 비유냐 하면 그것은 아닙니다. 그래도 많은 말씀이 비유의 형식으로 말씀하셨기 때문에 비유가 아니면 말씀하지 아니하셨다고 표현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비유를 잘 사용하신 비유의 달인이라고 할 수 있는데, 당신이 말씀하려는 것을 재미있게 말씀하려는 의도로 비유를 사용하셨습니다. 말이란 감칠맛 나게 재미있어야 좋습니다. 아무리 유식한 말이라고 하여도 딱딱하고 알아듣기 어렵다면 귀가 닫히게 되고, 눈이 감깁니다. 그리고 졸립니다.
사실 교우 여러분은 다른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데, 저는 교회의 본질과 비전을 말해야 하니, 참 답답하지요. 예수님께서 비유를 사용하시는 것은 잊어버리지 말라는 뜻에서 사용하신 것입니다. 선포된 말씀은 우리의 마음과 영혼의 양식이 되어야 하고, 우리의 인격을 형성하고, 우리의 생각을 지배하도록 우리 안에 스며들어가야 하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비유를 들은 것은 잊어버리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비유는 음식과 같은데, 다 차려진 상처럼 사모하는 사람들은 와서 그 자리에서 먹기만 하면 됩니다. 그냥 차려놓은 그대로 먹으면 되지 비유를 가지고 다시 새로운 음식을 만들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비유는 다 된 음식입니다. 비유는 아주 쉽습니다. 주님은 하느님 나라를 자라나는 씨로 비유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땅에 씨를 뿌려놓고 씨를 뿌려놓은 것을 잊어버리고 일상생활에 돌아갔습니다. 하루하루 자고 일어나고 하는 사이에 그 씨에서 싹이 나고 자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어떻게 그렇게 되었는지를 알지 못하였습니다. 땅이 저절로 열매를 맺게 하는데, 처음에는 싹을 내고, 그 다음에는 이삭이 패고, 또 이삭에는 알찬 낟알을 맺힙니다. 씨를 뿌린 주인은 곡식이 익은 것을 보고는 낫을 대어 추수하였다는 것입니다. 농부는 씨를 뿌린 것 외에는 그가 한 일이란 별로 없습니다. 씨를 뿌려놓고 그의 일상생활에 몰두하였습니다. 그러나 생명을 가진 씨는 땅에 심겨져 싹이 나고 이삭이 패고, 풍성한 곡식을 추수하게 된 것입니다. 바울로는 1고린3:6-7에서 “나는 씨를 심었고 아폴로는 물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자라게 하신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심는 사람이나 물을 주는 사람은 중요할 것이 없고 자라게 하시는 하느님만이 중요하십니다.”라고 했습니다. 오늘의 비유도 하느님의 나라는 하느님이 자라게 하신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비유를 말씀하신 후에 겨자씨의 비유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겨자씨 한 알과 같다. 땅에 심을 때에는 세상의 어떤 씨앗보다 더욱 작은 것이지만, 심어놓으면 어떤 푸성귀보다도 더 크게 자라고 큰 가지가 뻗어서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만큼 된다.”고 하셨습니다. 이 비유는 아주 간단한 내용인데, 참으로 엄청난 보화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 진리의 말씀, 생명을 주는 복음이 한 사람의 마음 밭에 심겨졌으면 그 다음에는 하느님이 자라게 하시고 열매 맺게 하십니다. 저는 이 말씀에 공감합니다. 목회자가 여러분을 쫓아다니며 간섭하고 지도한 것 없습니다. 농부와 같은 목회자로 일단 선포하여 마음에 뿌리고 심은 것뿐이지, 그 씨를 자라게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교인들 중에는 저 사람, 제대로 신앙생활을 할 수 있을까? 생각되는 사람도 있습니다. “저러다가 세상으로 나가지” 그런데 주일예배만 아니라, 수요기도회에 나오고, 교회의 중요한 일에 참여하게 됩니다. 하느님이 자라게 하십니다. 여러분, 목회자의 기쁨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저 하느님이 하시는 일을 바라볼 뿐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사람의 힘으로 확산되고 확장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아버지가 하시는 일입니다. 사람들이 김을 매고 거름도 주지만, 하느님의 나라는 사람의 힘으로, 사람의 노력이 아닌 하느님이 자라게 하고 열매 맺게 하십니다. 오직 하느님의 은혜로 구원받는 역사가 하느님의 나라입니다. 복음을 전파하고, 익은 곡식을 거둬들이는 일은 이미 믿고 있는 기존 신자들의 책임이라는 것입니다. 씨를 뿌리는 것이나 곡식을 거두어들이는 것이 인간의 책임이라고 하지만, 곡식을 자라게 하시고 열매 맺게 하시는 이가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은 당신의 나라를 시작하셨고, 확장하시고 완성하십니다. 모든 영광은 하느님에게 돌려져야 합니다. 우리들이 하느님 나라를 위하여 한 일이라고 하는 것은 아주 적은 일이요, 전 과정은 하느님이 하셨으며, 우리는 다만 적은 부분을 담당한 것입니다. 믿음의 생활을 시작하신 분들, 조금도 염려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느님은 여러분들을 통하여 크고 놀라운 일을 계획하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하느님은 아무런 목적이 없이 인간을 지으시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불러 놀라운 일을 하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참으로 소중한 하느님의 자녀들입니다. 하느님의 기뻐하시는 뜻대로 쓰임을 받기를 소망해야 크게 사용되어 집니다. 겨자씨의 비유를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는 것은 역시 성장인데, 이것은 하느님 나라의 외형적인 성장, 사회성의 성장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겨자씨 한 알”은 아주 작습니다. 세상의 어떤 씨보다도 작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땅에 심겨지고 보니, 자라서 큰 가지를 내게 됩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사람들이 보기에 미미하고 보잘것없는 것 같지만, 강하고 능력 있는 모습으로 크게 보일 때가 곧 다가옵니다. 가장 작은 것이지만, 가장 큰 미래를 담고 있었습니다. 은밀하게 자라나는 씨가 처음에는 싹이 나고 이삭이 패더니, 이삭에 충실한 알곡을 맺었습니다. 그런데 이 겨자씨 비유에서는 풀보다 커지며 큰 가지를 냅니다. 그리고는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만큼 되었습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큰 가지를 내도록 자라야 하고, 영향력을 끼칠 수 있고, 공중에 날아다니다가 더위에 지치고 피곤한 새들이 날아와 쉬기도 하고 보금자리를 만드는 것입니다. 안양 교회는 큰 가지의 그늘을 내는 나무와 같은 교회이어야 합니다. 그늘을 낼 수 있다는 것은 나무가 옆으로 가지를 내어야 그늘을 만들 수 있습니다. 나무가 오랜 연륜만 자랑하고 하늘 높이 한 줄기만 자라면 그늘을 내지 못합니다. 교회의 본질적인 목적의 하나는 섬기고 봉사하는 교회여야 합니다. 사람을 양육하는 교육하는 교회여야 합니다. 교회가 건물이 아니라, 사람이라고 할 때에 사람을 세우는 교회, 사람을 살리는 교회, 사람을 섬기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교회 안에 들어와서 참된 안식을 얻고 새 힘을 얻어 다시 공중으로 날아오를 수 있게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는 꿈과 비전을 가져야 합니다. 오래된 나무라고 자랑하지만, 그늘을 낼 수 있는 가지들이 없다고 하면 오고가는 사람들에게 아무런 유익과 혜택을 주지 못합니다.
우리만 좋사오니, 다른 사람들은 들어오던지 말든지 상관없다고 하는 것은 교회의 본질을 모르고 하는 말입니다. 교회는 계속하여 선교하는 교회일 때에 비로소 교회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새로운 교회를 만들어 지역사회를 위한 그늘을 만들려고 합니다. 이 일은 한 두 사람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기도로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기도보다 성령보다 앞장설 수 없고, 앞서가도 안 됩니다. 하느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통하여 받으실 영광이 있습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통하여 이루실 좋은 계획들이 있습니다. 하느님의 선한 사업에 쓰임을 받아야 합니다. 맥스 루카이도 목사는 “하느님은 당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신다. 그러나 그대로 두시지는 않는다. 당신이 변화되기 원하신다.”라고 했습니다. 지금 이 모습 이대로 주님 앞에 선다고 하여도 조금도 부끄럽지 않는 삶이어야만 합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더 변화되어야만 합니다. 예수님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성장해야 됩니다. 우리는 아직은 미미하지만 장차 놀라운 일을 계획하시는 하느님을 믿고, 복음의 씨를 뿌려야겠습니다. 겨자씨와 같이 아주 미미하고 작아 보이지만, 그 안에는 엄청난 성장과 열매와 역량을 바라보면서 씨를 뿌려야 합니다.
우리는 작은 것에서 큰 것으로 자라게 하고 확장하게 하시는 하느님, 시작은 미약하지만 나중은 심히 창대하게 하시는 하느님입니다. 고난에서 영광으로, 십자가에서 부활로, 보이지 않는데서 보이는 것으로, 미미한 데서 위대함으로, 변화시키시며, 자라게 하고, 붙잡고 사용하는 하느님의 역사를 믿어야겠습니다. 안양 교회는 자라야 합니다. 푸성귀 보다 더 자라야 하고, 큰 가지를 내고 잎을 키우는 사람, 큰 그늘을 낼 수 있는 나무가 된 사람들로 자라야 하며, 최선을 다하여 주님을 섬기셔야 합니다. 우리 모두 크게 쓰임 받고, 알찬 열매를 맺고, 우리의 전 삶을 다 동원하여 하느님 나라의 확장을 위하여 헌신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