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건강하게 살아야 합니다. 좋은 일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야 합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하느님의 은혜를 받아야 됩니다.
예수님은 고향인 회당에서 안식일에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 지혜와 권능에 놀랐습니다. 그런데 고향 사람들은 순수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에게 친숙하였기 때문에 선입견과 편견을 가지고 반응하였습니다. 이같이 친숙함과 익숙함은 믿음의 방해가 될 수 있습니다. 편견과 선입견은 불신을 갖게 만듭니다. 우리의 모습도 이와 마찬가지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감동형과 비판형 중 어느 것이 더 유익합니까? 비판은 자기가 본 부분을 두고 비판합니다. 비판형이 나쁜 이유는 배울 수 없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감동은 커지는 인생입니다. 예수님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놀랐습니다. 그러나 감동하지 않고 비판하였습니다. 비판은 자기의 현 수준에서 이루어지는 것이지만 감동은 자기보다 훨씬 높은 수준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럼 비판이 쉽습니까? 감동이 쉽습니까? 물론 비판이 쉽습니다. 왜냐하면 비판은 자기가 아는 것 가지고 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감동은 더 많이 알아야 가능한 것입니다.
편견과 선입견에 사로 잡혀 있으면 자신의 가치를 모르게 됩니다. 대신 자꾸 덧붙이려고만 하게 됩니다. 자신의 가치를 발견케 하는 하느님의 사랑을 방해하는 편견과 선입견을 버리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가르치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실천을 가르치셨습니다. 제자들을 둘씩 짝지어 배운 것을 실행하기 위해 세상에 파견을 하셨습니다.
오늘 복음 중에서는 두 가지 시각에서 접근해 볼 수 있겠습니다. 한 가지 시각은 복음 전하는 제자들의 시각과 다른 하나는 그 복음 받아 들이는 자들의 시각입니다. 먼저 복음 전하는 제자들의 시각에서 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날 한국사회의 문제 중에 하나는 과도한 교육의 문제입니다. 너나 없이 대학 가고 더 나아가 대학원, 유학까지 갑니다. 배운 이후 써 먹을 것 생각하여야 합니다. 배운 것은 사용해야 합니다. 아무리 작은 것도 쓸 때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에서도 어린아이가 물고기 두 마리와 빵 다섯개를 내어 놓았을 때 비로소 큰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소아시아 일곱 교회중 크게 칭찬 받은 필라델피아 교회로 요한묵시록 3:8 “나는 네가 한 일을 잘 알고 있다. 네 힘은 비록 미약하지만 너는 내 말을 잘 지켰으며 나를 모른다고 부인 한 일이 없다.”라는 말씀처럼 미약하지만 잘 지키고 받은 것 가지고 충성하였기 때문에 칭찬받았습니다.
우리는 너무 많은 것에 손을 대다 아무것도 못하는 인생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우리 인생에는 해도 되는 것과 안 해도 되는 것이 있습니다. 쓸데없는 것 하다 시간낭비하지 말고 가장 기본적인 것 하나 붙잡으십시오. 가장 중요한 그 한 가지는 바로 예배입니다.
요한4:23 “진실하게 예배하는 사람들이 영적으로 참되게 아버지께 예배를 드릴 때가 올 터인데 바로 지금이 그 때이다.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예배하는 사람들을 찾고 계신다.”계속하여 24절에서 "하느님은 영적인 분이시다. 그러므로 예배하는 사람들은 영적으로 참되게 하느님께 예배 드려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배 하나 붙드는 인생이 될 때 그 인생에는 큰 부흥이 있습니다. 영적 부흥을 위해 필요한 것은 새벽기도입니다. 경제적 부흥을 위해 필요한 것은 십일조입니다. 새벽기도는 밤 문화를 깨고 우리로 하여금 인생을 더욱 부지런히 살게 합니다. 한편 십일조는 우리를 경제적 축복을 받게 만듭니다. 우리 자녀로 하여금 경제를 알 때부터 십일조를 가르칩시다.
예배는 인생의 기초입니다. 새벽기도와 십일조의 인생을 살 때 불꽃같은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제자들은 비록 배우지 못하고 부족한 사람들이었지만 교회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1달란트 받았지만 충성하니 크게 쓰임을 받았습니다. 연약하였지만 작은 강점 하나 붙잡고 인생의 승리자가 되었습니다.
다음으로 복음을 받아들이는 자, 말씀을 듣는 자의 시각에서 보도록 하겠습니다.
마르6:11 말씀은 마태10:14~15절 말씀에 비교하면 “누구든지 너희를 받아들이지 않고 말도 듣지 않거든 발에 묻은 먼지를 털어버려라”고 경고의 표시를 하라 하셨습니다. 영접하지 않는 자의 결과는 멸망이라는 것입니다.
비판하고 거부하는 자는 소돔과 고모라 같은 결과를 가져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영접하는 것 배우십시오. 성경은 대접 하고 환대할 것을 가르칩니다. 하느님을 영접하면 형제자매도 품게 됩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창세 18장에는 야훼 하느님이 두 천사를 데리고 아브라함을 방문하는 이야기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느님을 “영접”하였습니다. 송아지까지 잡아 대접 하였습니다. 그 결과 하느님은 아브라함에게 그의 소원인 아들을 주겠다는 축복을 해 주셨습니다.
어떤 사람을 잘 영접하고 환대하면 그의 삶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을 주실 것입니다. 참된 복음 들어간 곳에는 영접하는 것 배우게 됩니다. 영접 잘하면 그 영접 받은 자는 자신의 가장 중요한 것 주고 갈 것입니다.
열왕기상 17장에 엘리야와 사렙다 과부 이야기가 나옵니다. 하느님은 굶주린 엘리야에게 사렙다 과부에게 갈 것을 명합니다. 과부는 마지막 남은 밀가루 한줌과 기름 몇 방울을 그의 아들과 함께 먹고 죽겠다 말합니다. 그런데 엘리야는 그것을 자신에게 대접할 것을 요구합니다.
우리의 상식으로 볼 때는 정말 잔인한 요구입니다. 그런데 그 과부는 순종하였습니다. 그러자 엘리야는 그 통에 밀가루가 마르지 않고 그 병에 기름이 마르지 않게 하겠다는 축복의 약속을 하였습니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영접의 영성 가지고 있는지 테스트 합니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영접의 영성 가지기를 원하십니다. 마태10:42 “보잘 것 없는 사람 중 하나에게 그가 내 제자라고 하여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사람은 반드시 그 상을 받을 것이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축복 구하십시오. 영접의 영성 가지십시오. 그러면 하느님이 가장 좋은 것으로 채워 주실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그러한 축복 구하는 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