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 주 동안 부흥에 대해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부흥은 단순히 숫적인 증가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부흥은 ‘새로워진다.’ ‘소생한다.’ 라는 뜻입니다. 부흥이 일어나면 우리의 옛 모습이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됩니다. 부흥이 일어나면 모든 죽었던 것이 새롭게 살아납니다. 아프리카 초원지대에 건기가 되면 모든 풀들이 말라 죽습니다. 그러나 우기가 되어서 비가 내리면 강을 중심으로 풀들이 살아납니다. 이와같이 죽었던 것들이 새롭게 살아나는 것이 부흥입니다. 무기력하게 잠들었던 자들이 힘있게 소망을 품고 일어나는 것이 부흥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혹시 이런 생각을 하는 분이 계시지는 않는지요? 나는 더 이상 부흥이 필요하지 않은데... 왜 신부님은 자꾸 부흥이 필요하다고 하시나? 그러나 감히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우리 가운데 부흥이 필요 없을 만큼 주님 보시기에 온전한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심령 속에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죄악의 쓴뿌리가 있습니다. 우리 가정 가운데 주님 보시기에 깨끗하지 못한 부분이 있습니다. 우리의 일터 가운데, 사업장 가운데도 정직하지 못한 것들이 있습니다. 이 나라 민족 가운데 많은 부정이 있고, 우상숭배가 가득합니다. 거짓과 어둠의 영들이 많은 사람들을 혼미케 하고 있습니다. 사회 곳곳에 갈등과 분열과 아픔들이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 모두에게 하느님의 부흥이 필요합니다. 우리 신앙생활의 목표는 생존이 아닙니다. 하느님 나라의 부흥이요 회복입니다. 부흥의 역사는 단계가 있습니다. 첫단계는 회개의 역사입니다. 눈물로 회개하지 않는 부흥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요나가 ‘40일이 지나면 니느웨 성이 잿더미가’ 된다고 외쳤습니다. 그 말은 들은 왕과 모든 백성들, 심지어 가축들까지 금식하며 회개할 때 패역한 니느웨 백성들이 하느님께 돌아오는 놀라운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정말 부흥이 일어나기를 소망한다면 끊임없이 눈물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넘어질 수 있고, 실수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보기에는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짓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을 통과하면 정결케 됩니다. 십자가를 통과하는 방법이 바로 회개입니다. 내 안에 부족한 부분이 무엇인가를 깨달았다면 지체없이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회개의 눈물은 마음을 새 마음으로 바꿔줍니다. 새 노래, 찬양으로 바꿔줍니다. 새로운 희망으로 바꿔줍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피값으로 세워진 것입니다. 나 같은 죄인을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신 사랑과 구원의 역사가 이 교회를 통하여 오늘도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교회의 하느님 자녀가 되었으니 감사할 뿐입니다.
교회는 교우들의 기도와 땀으로 커가는 것입니다. 안양교회가 이만큼 성장하기까지는 교우들의 기도와 땀 흘린 희생이 있었기에 이렇게 좋은 교회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까지 알게 모르게 교회를 위하여 묵묵히 기도와 땀 흘리며 눈물을 삼켰던 교우들을 생각하며 감사하고, 하느님께서 갚으시는 큰 은혜와 복이 내리시기를 소원합니다. 앞으로도 안양교회 위에 하느님의 인도하심과 기적 같은 역사하심이 늘 함께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아버지가 옆에 있는 것도 모르고 열심히 벽돌쌓기를 하고 있는 아이를 보고 “너 지금 뭘 하고 있니?”하고 물었더니 이 어린아이가 뒤돌아보면서 “쉿! 조용히 하세요. 지금 교회를 짓고 있어요.” 아버지는 깜짝 놀랐습니다. 늘 이 어린것의 손을 잡고 교회에 다니기는 했지만, 교회에 갔을 때마다 떠들어서 조용히 하라고 주의시킬 정도로 이 아이는 늘 말썽이었는데 이만큼이나 믿음이 생겨 있구나 싶은 것이 대견스러워서 한마디 더 물었습니다. “얘야, 교회에서는 왜 조용히 해야 되니?” 아이의 대답은 뜻밖이었습니다. “아빠도 참. 교회에서는 조용히해야지요. 사람들이 다 잠들었으니까요. 떠들면 모두들 깨잖아요.” 어린아이를 데리고 교회 나가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갔을 때마다 이 아버지는 잤거든요. 아이가 이걸 보아왔으니 그런 대답을 할 수밖에요. 교회는 가서 조용히 자는 곳이다, 그러니 떠들지 말아야 된다, 라고 생각해온 것입니다.문제는 내가 가진 교회관이 어떠냐입니다. 여러분은 교회를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교회를 어느 정도로 필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내 모든 생활 중에 교회가 차지하는 비중은 어느 만큼입니까?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은 신앙고백이 따라야 합니다. 먼저, 하느님께 대한 고백입니다. 하느님을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하느님을 어떤 분으로 알고 믿는가, 하느님께 대하여 어떤 고백을 하고 있는가, 그것이 문제입니다. 하느님은 창조주, 심판하시는 분, 죄인을 벌하시는 분, 아주 무서운, 폭군과 같은 분 - 옛 유다사람들은 이렇게 알고, 하느님의 명령을 거역하면 즉시 벌이 내린다고 믿었습니다. 이미 법을 어겼기 때문에 구제받을 수 없다, 하고 아예 하느님의 백성 됨이나 율법 지키는 것을 포기하고 버려진 자로서 사는 그런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축복이고 저주고 생각할 것 없이 되는 대로 살아버리고 말자. 하는, 그렇게 버려졌다는 존재의식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그런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하느님께 대한 이해는 그렇지를 않습니다. 하느님은 좋으신 하느님 아버지다, 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우리가 외우고 있는 주기도문에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로 시작합니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하느님은 어디까지나 아버지 하느님이십니다. 사랑의 아버지입니다. 설사 진노가 있어도 그 진노 속에 사랑이 계시되어 있습니다. 그런 하느님으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탕자비유’입니다. 탕자의 아버지, 얼마나 좋은 아버지입니까. 못된 아들이 집을 나가겠다고 할 때 유산을 나누어주는 아버지. 그 아들이 돌아올 것을 생각해서 기다리고 있는 아버지. 재산을 다 탕진하고 거지가 되어서 왔지마는 살아 왔다고 해서, 그것이 고마워서 잔치를 열고 기뻐하는 아버지. 이렇듯 좋은 아버지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소개하시는 하느님 상입니다. 오늘도 이렇게 자비하신 아버지 하느님을 이 성전에서 만나시기를 바랍니다.
다음으로는 교회관입니다. 교회가 무엇입니까. 긴 설명을 할 수 없지만,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교회는 친교기관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만나서 서로 인사하고 악수하고 뭐 하자는 데가 아닙니다. 또한 봉사기관도 아닙니다. 봉사하지마는 봉사가 교회의 목적은 아닙니다.
교회는 내 아버지의 집이요 그리스도의 생명력이 계신 곳입니다. 예수님 열두 살 때 하신 말씀입니다. “내가 내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할 줄을 모르셨습니까(눅 2:49).” 너무나 좋은 말씀입니다. 열두 살 된 어린 예수님께서도 성전을 생각할 때 ‘내 아버지의 집’이었습니다. 거기에 내가 하느님의 자녀로, 아들로 여기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곳이 곧 교회입니다. 하느님을 아버지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그리고 성령이 역사하시는 교회로 생각하는 고백 속에 나의 나됨이 있고 구원의 길이 있는 것입니다. 교회관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그리스도만이 영광을 받으시고 그리스도의 능력이 함께하시므로 교회입니다. 물론 교회에 나오는 사람마다 여기에 와서 그리스도를 만나야 됩니다. 그것이 가장 중요한 핵심입니다.
신학자 폴 틸리히는 교회의 필요성에 대해서 ‘나는 교회를 떠나서 기독교를 생각할 수 없다. 비록 교회에 문제가 많다하더라도 기독교가 교회를 떠나서 존재할 수는 없다.’ 고 말합니다. 마지막 고백은 교회 속에 있는 성도의 역할에 대한 고백입니다.
교회를 하느님과의 평화에서부터 설명해 나갑니다. 에페2:14 ‘그리스도야 말로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담을 헐어버리시고 그들을 화해시켜 하나로 만드시고’ 하였습니다. 15절에서는 예수께서 평화를 이룩하신다고 말씀하며, 17절에 가서는 평화의 기쁜 소식을 전해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교회를 통하여 존재하시고, 교회를 통하여 역사하시고, 성령의 역사와 함께 주님 친히 평화를 이루시고 평화를 전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 안에 있는 교인은 누구인가? 19절에 보면 우리 교인은 하느님의 한 가족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리스도의 가정, 하느님의 가정의 한 식구, 한 멤버가 된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과거의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닙니다. 현재 살아계신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살아계신 그리스도의 생명력 안에서 우리는 하느님의 한 가족입니다.
여러분은 교회를 어느 정도로 중히 여기십니까? 어느 정도로 필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내 생애에 있어서 가장 중심되는 것이 교회요, 내가 마지막 의지 할 것이 교회입니다. 우리 교인들 중에서 여러가지 사정은 어렵지만 ‘어떻게 하든 교회 주변에서 머물러 살면서 마지막까지 교회와 함께 살다가 죽을랍니다.’ 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까?
이런 교인들이 참 자랑스럽습니다. 그 어떤 조건보다 교회를 우선으로 여기는 믿음. 여러분 중요한 것은 교회입니다. 마침내 의지할 곳은 교회밖에 없습니다. 어떤 분들은 멀리 여행하다가도 주일 하루 지키기 위해서 달려오는 사람도 있습니다. 모두가 다 그러시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마는 그런 신앙은 특별한 것입니다. 거룩함입니다. 주일을 거룩히 지키고, 그 주일을 내가 섬기는 교회에서 거룩히 지키면서, 나 자신이 거룩해지고, 내 생활이 거룩해지고, 내 존재가 거룩해지고, 내 운명이 거룩해지는 것이 성도입니다. 교회와 함께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그리스도와 사귀고, 그리스도를 만나고, 교회의 한 가족이 된 행복을 즐깁니다. 여기에 참된 성도의 생활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느님 아버지께서 이 땅에 안양교회를 세우시고 우리들을 불러 모으셨습니다. 이 교회를 통하여 믿음의 훈련을 받고 거룩한 한 가족이 되어 하느님이 주시는 은혜와 복을 누리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 교회를 통하여 하느님이 내리시는 놀라운 축복을 대대로 받아 누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