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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삼일절


성령으로 굳세게

작성일 : 2012-07-28       클릭 : 168     추천 : 0

작성자 안양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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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에게는 언제나 긴장관계가 형성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외적인 것과 내적인 관계입니다. 외적인 것이 육신에 속한 영역이라면 내적인 것은 하늘에 속한 영역이라 할 수 있습니다. 외적인 것은 언제나 육신의 건강을 걱정하고, 땅에 속한 문제에 관심을 갖는 반면, 내적인 것은 영적인 건강을 걱정하고 영적 문제에 관심을 갖기에 이 두 가지는 언제나 대립관계에 있습니다. 바울로 조차도 자기 안에 이 두 가지가 끊임없이 싸우고 있음을 고백하면서 "나는 과연 비참한 인간입니다. 누가 이 죽음의 육체에서 나를 구해 줄 것입니까?"라고 로마 7:24 고백하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들은 지난 한 주간을 어떻게 보내셨습니까? 내적 사람의 승리로 보내셨는지, 아니면 외적 사람이 승리해서 하느님께 부끄러운 모습으로 이 자리에 오셨습니까? 중요한 것은 내적 사람이 승리한 사람들만 이 자리에 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때로 외적 사람이 승리함으로 인해 영적인 삶이 형편없이 만신창이가 되었을지라도 우리는 다시 주님의 자리에 돌아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삶의 영적 싸움에서 실패하고 힘들어하는 이들에게 더 큰 관심을 표현하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사람들아 다 나에게로 오너라." 고 말씀하심으로서 하느님의 교회 공동체가 승리한 사람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실패한 사람들을 위한 재충전의 공동체라는 것을 선포하고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고린4:16 "우리는 낙심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외적 인간은 낡아지지만 내적 인간은 나날이 새로워지고 있습니다."라고 함으로서 지난날 실패의 삶을 살았다 하더라도 오늘 다시 승리할 수 있는 새로운 용기와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기를 기도했던 에페소 교인을 향한 바울로의 심정을 잘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바울로의 첫 번째 기도입니다.
에페3:16 보면 "내적 인간으로 굳세게 하여주시기를 빕니다."라는 기도입니다. 우리가 사는 동안 외적인 것이 강하게 지배함으로서 내적으로 굳세질 겨를이 없습니다. 세상이 엄청난 힘으로 도전하기 때문에 우리는 내적인 것이 제 구실을 할 수 없는 경우들이 종종 있습니다.
그것을 알고 있는 바울로는 에페소 교우들을 향해서 "성령으로 여러분의 힘을 돋우어 내적 인간으로 굳세게 하여 승리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바울로의 관심은 내적 인간이 굳세어지는 것입니다. 내적 인간 강해지려면 외적 인간이 깨져야 됩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깨진다는 표현을 상징적으로 잘합니다. "아무개 교우는 이번에 깨졌어. 수련회 가더니 이번에 완전히 깨지고 왔어" 긍정적인 의미로 깨진다는 표현을 씁니다. 외적 인간이 깨진다고 하는 것, 그런데 외적 인간이 깨지는 일은 우리의 의지만으로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하는 사실을 우리는 고백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에페소 말씀을 보면 ‘내적 인간을 굳세게 해달’고 기도하는 바울로의 기도 앞에는 전제가 하나 있는데 "성령으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령에 의지하지 않고는 우리의 내적 인간이 굳세지고 외적 인간이 깨질 수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딱딱하고 거칠고 험악하던 우리의 외적 인간의 모습이 부드럽고 온유한 모습으로 변하기 위해서는 성령의 도우심이 있어야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변한 사람들을 가리켜서 깨졌다고 말합니다.
"저 사람 깨졌어. 새로워지고 완전히 깨졌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성직자가 말씀을 선포하는 시간은 사실은 성도들을 깨뜨리는 시간입니다. 반대로 성도들은 깨지지 않으려고 자기 방어가 심한 경우가 있지요. 그러나 결국 성령께서 승리하실 줄 믿습니다. 깨져야 합니다. 깨져야 할 부분들은 철저하게 깨져야 합니다. 바울로의 두 번째 기도입니다.
바울로는 에페3:17절에서 "그리스도로 하여금 여러분의 마음속에 들어가 사실 수 있게 하여 주시기를 빕니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내적 인간이 분명히 주인이 있어야 하는데 내가 외적 인간이 강할 때에는 내적 인간이 힘을 제대로 쓰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주인이 없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내적 인간이 굳건해지면 곧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주인이 되어 계시다는 증거입니다. 내적 인간이 굳건해지고 승리의 삶을 사는 것은 곧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신 능력으로 전신갑주를 입고 우리가 세상을 향해 싸우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승리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지속적이고 계속적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주인일 때에는 오래 갈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주님의 일을 할 때에는 그래서 언제나 "의욕만을 가지고 일하면 안 됩니다."
의욕은 오래 못갑니다. 길어야 몇 년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느님 앞에서 감당하길 원하는 사명은 몇 년 정도가 아니라 그분이 부르실 때까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능력에 힘입어서 그리스도께서 나를 다르시면서 주장하시는 그리스도의 인도하심을 받아가면서 살아갈 때 우리의 사역은 언제나 계속될 줄로 믿습니다. 바울로의 세 번째 기도입니다.
바울로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 수 있게 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가 지배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자신을 주장하시는 주님의 속성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을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라' 기독교를 대표하는 가장 분명한 한마디 '사랑의 종교' 하느님이 사랑이시고, 주님이 사랑이기에 우리는 이 주님을 섬기는 공동체를 사랑의 공동체라고 말합니다.
주님이 지배하시는 내적 인간, 그 내적 인간이 그리스도의 사랑 가운데 뿌리를 박고, 사랑 으로 굳어져서 사랑으로 튼튼한 기초가 되어지면 이제 사랑이라고 하는 것에서부터 그의 삶이 시작되고 성장해 나간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하느님의 사랑이 어떤 것인가를 구체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성도들과 함께 하느님의 신비가 얼마나 넓고, 길고, 높고, 깊은지를 깨달아 알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의 넓이 넓이가 얼마나 넓습니까? 그리스도는 모든 사람들을 당신의 사랑의 대상에 포함시키신 줄로 믿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조차 하느님의 선택받은 사람이라는 그들조차 제외시켰던 세리와 창기조차도 주님은 사랑에 포함을 시켰습니다.
뿐만 아니라 할례받지 못한자들, 배우지 못한 사람들, 야만이들에게도 주님은 사랑의 범위에 포함을 시키셨습니다. 우리는 이 사랑을 넉넉한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 사랑의 길이는 우리가 잴 수 없는 길이입니다. 주님의 사랑은 너무나도 크고 너무나도 길 뿐만 아니라 그 사랑을 죽기까지 사랑하셨기에 측량할 수 없는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사랑의 길이를 측량할 수 없습니다. 주님의 사랑의 높이가 어떻습니까? 하늘 보좌까지 버리시고 이 땅에 오신 주님입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를 새롭게 하셔서 우리의 내적 인간을 굳세게 하셔서 다시금 당신의 보좌로 우리를 인도하시겠다고 약속하신 분입니다.
주님의 사랑은 깊이가 있습니다. 그 사랑의 깊이가 얼마나 깊은지 우리의 얕은 생각으로 측량할 수가 없지요. 우리는 아주 넉넉하고 너그러운 사람의 용서를 삼세번이라고 말합니다.
사실 세 번 정도는 용서할 수 있어도 우리는 큰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그러나 주님은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한계가 없는 사랑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이 깊은 사랑을 '아가페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희생적인 사랑이고 계산하지 않는 사랑이라고 우리는 고백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직도 여러분 안에 있는 외적 인간이 여러분의 특징이 되고, 아직도 내 안에 외적 인간의 세력들이 우리를 주장한다면 이것은 에페소 교인을 향한 바울로의 기도와 같이 우리의 내적 인간이 이제는
굳세져야 하는데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고 언제나 외적 인간 중심이 아니라 날마다  새로운 내적 인간 중심으로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인생의 방향을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이 주신 꿈을 소유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세상에서 만들어진 꿈이 아니라 하느님이 주신 꿈을 가진 사람입니다. 교회에서 직분을 맡고 자기의 역할을 충실하게 할 수 있는 것은 하느님의 꿈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부정적인 꿈의 사람이라면 긍정적인 꿈을 갖도록 해야 합니다. 세상의 꿈을 갖고 있다면 신성한 꿈으로 바꾸십시오.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꿈이 어떤 것이냐에 따라 여러분의 인생이 결정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 하느님의 말씀 안에서 새로운 꿈, 원대한 꿈을 소유하십시오. 꿈이 있는 교회는 부흥될 수 있습니다. 꿈이 있는 성도는 하느님께 크게 쓰임 받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축복된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행복하고 건강한 교회를 만들 수 있으며 누구든지 성공하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들의 꿈은 성취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진실로 가치 있고 하느님이 주신 뜻에 의한 꿈이라면 이루어집니다. 이제부터 꿈을 이루는 신앙의 삶을 사십시오. 꿈이 이루어지기를 위하여 간절하게 기도하십시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사랑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곧 꿈을 이루실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안에서 힘차게 활동하시면서 우리가 바라거나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풍성하게 베풀어주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라고 했습니다.
지금도 살아계셔서 여러분들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하느님은 여러분이 하느님과 하느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한 꿈을 가지고 기도하며 일을 진행할 때에 여러분이 구하는 기도가 생각보다도 더 넘치게 이루어주실 줄로 믿습니다. 이런 확신으로 원대한 꿈을 향해 살아가는 저와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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