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교회 각 교단마다 가장 많이 사용하던 주제는 교회 성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들어 교회마다 가장 중요한 주제는 교회 성숙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양적 성장을 중심으로 한 교회성장을 강조했지만 이제는 질적 향상을 위한 교회성숙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 둘은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진정한 성장은 진정한 성숙이 기초가 되어야 합니다. 진정한 성숙은 진정한 성장을 낳는 것입니다.
한국갤럽 조사에 의하면 “한국교회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과제 또는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라는 질문에 큰 문제점으로 지적한 것이 양적 팽창, 즉 외형에 너무 치우친다는 것이었습니다. 또 밖에서 교회를 바라보는 세상의 일반 사람들도 한국교회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양적성장과 팽창주의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한국교회가 앞으로 가장 변화해야 할 중요한 것으로 교파를 축소하고 외형에 치우치는 것을 지양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앞으로 한국교회의 과제는 성장된 교회를 이제 성숙한 교회로 세워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 안양교회 또한 예외가 아닙니다. 우리는 안양교회가 더 많은 사람들이 구원받아 양적으로 더 성장하기를 소원합니다. 그러나 그 이전에 우리들이 먼저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성장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숙한 교회는 어떻게 만들어질 수 있습니까? 바울로는 에페소 교회를 향하여 하느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바울로는 우리가 다 예수님을 믿는 일에 하나가 되어야 하는 것을 강조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아는 일은 바로 성숙한 인간으로서 그리스도의 완전성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과 관련해서 성숙한 인간을 이루어어야 함을 강조합니다. 과연 성숙한 인간은 어떤 사람인가? 그리스도의 완전성에 도달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교회가 성숙한 교회인가? 아닌가? 하는 것은 바로 그리스도의 완전성에 도달한 사람인가? 아닌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과연 누가 성숙한 사람입니까? 예수님을 닮은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닮은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가치를 닮은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말을 닮은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비젼을 닮은 사람입니다.
생각과 말과 행동이 주님을 닮은 제자가 바로 성숙한 사람입니다. 지금 이 시대 교회에 주님이 찾고 있는 사람은 자신을 닮은 제자 성숙한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교회는 건강한 교회, 성숙한 사람 즉 그리스도의 완전성에 도달한 사람이 있는가? 그것을 보아야 합니다. 물론 많은 숫자가 모이는 것 의미가 있습니다. 물론 큰 건물의 장소를 갖고 있는 것도 의미가 있습니다.
다양한 행사도 하고 프로그램이 존재하는 것 물론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란 본질적으로 복음으로 사람을 구원하여 그리스도의 완전성에 도달하게 하는 성숙한 사람을 키워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먼저 무슨 일을 하기에 앞서 성숙한 사람이 되는 것이 우선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다른 어떤 가치보다도 주님 닮은 성숙한 사람을 세워가는 것이 우선가치가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사람이 변화될 수 있을까요? 사람의 인격이나 그 성격이 변화될 수 있습니까? 우리가 구원받았지만 죄성이 구원받은 순간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죄는 용서받았지만 그 죄성은 여전히 우리 속에 남아 있습니다. 물론 세상 사람들보다 정도는 덜하지만 여전히 부분적인 죄성이 우리에게 남아 있습니다. 이런 죄성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변화 받을 수 있습니까? 바울로는 우리에게 요구합니다. “마침내 우리 모두가 하느님의 아드님에 대한 믿음과 지식에 있어서 하나가 되어”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완전성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에게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믿는 일에 힘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성숙을 위한 마음을 가지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일에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먼저 교회 속에서 “하나 되는 믿음”을 소유하는 일에 힘을 써야 합니다.
바울로는 자신이 변화되어가는데 있어서 주님을 아는 지식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교회 교육가 양육 훈련의 목표가 무엇입니까? 교사들이 교회학교에서 어린아이들을 가르칠때 목표가 무엇이 되어야 합니까? 중고등부에서 말씀들을 가르치는 목표가 무엇이 되어야 합니까? 교회의 모든 양육과 훈련과정을 통해서 우리가 가르쳐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바로 그리스도의 완전성에 도달하기 위해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배우고 변해야 할 사람은 누구도 예외가 없습니다. 저도 교회위원도, 단체장 및 사역자들과 모든 평신도들도 예외가 없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보면 볼수록 느끼는 것이 제가 아직도 미숙하고 불완전함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더 말씀 앞에 나를 내려놓을 수 밖에 없고 나를 복종시킬 수 밖에 없습니다.
주님 앞에 가는 그 순간까지 주님처럼 완전하기를 힘써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가 작은 예수같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로처럼 ‘나를 본받으라.’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감사한 것은 교회 속에 이렇게 하느님의 아들을 믿는 일과 지식을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변화받는 성숙한 교우들이 있음을 바라봅니다. 전혀 주님을 알지 못하던 사람이 주님을 믿고 알고 배우고 양육받고 자라서 변화되어 새사람이 된 증거들이 우리 들 속에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말씀의 능력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의 능력입니다. 바라고 원하기는 이것이 멈추어서는 안 됩니다. 주님 오실 때까지 믿는 일과 아는 일에 더욱 자라나기를 바랍니다.
성숙한 사람을 가늠하는 중요한 요소 중에 하나가 바로 ‘흔들리거나 이리저리 밀려다니지’ 않는 것입니다. 마음이 쉽게 흔들리지 않아야 합니다. 뜻이 쉽게 흔들여서는 안됩니다. 교회가 성숙한 교회인가 아닌가는 쉽게 사람들이 흔들리는가 아닌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성숙한 교회는 문제가 있어도 쉽게 흔들리지 않습니다. 환난이나 세상의 유혹 앞에서 흔들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무엇보다도 믿음 생활을 할 때 여러분의 마음을 잘 다스리는 습관과 훈련이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삶과 모든 일에 진리대로 살면서 여러 면에서 자라나야 한다고 말합니다. 범사에 성숙한 사람의 믿음은 어떤 특징이 있습니까? 사랑도 있고 진리도 있는 믿음의 사람입니다. 사랑은 있는데 진리가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랑은 없는데 진리만 강조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것은 성숙하지 못한 것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할 수 있는 단계” “사랑으로 진리를 실천할 수 있는 수준”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교회가 어려운 것이 바로 이 점입니다. 세상은 사랑을 위하여 진리도 포기하기도 합니다. 진리를 위하여 사랑을 포기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교회는 사랑도 포기할 수 없고 진리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어떻게 사랑 안에서 진리를 붙잡을 수 있습니까? 분명한 진리의 체계와 진리의 확신이 필요합니다. 분명한 진리의 표준을 바로 세워놓는 것입니다. 교회는 부드러운 사랑의 분위기 속에서도 바른 진리의 원칙이 필요합니다. 보이는 유형교회의 순수성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엄격한 진리의 틀이 있어야 순수성을 보존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진리가 나의 마음을 감동하고 그 진리의 능력을 느끼게 되면 결국 사랑의 열정을 일으키게 됩니다. 그래서 누가 보든 보지 않든 사랑의 선행을 행하게 됩니다. 그 사랑의 선행을 행할 때 그 사람을 결코 정죄하지 않습니다. 주님의 진리 앞에서 주님의 사랑으로 사랑을 통해 그 사람을 주님께로 인도하고자 하고 오직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고자 합니다.
교회는 진리를 붙잡아야 하고 진리를 수호해야 합니다. 진리의 말씀이 우리 속에 충만하도록 그 순수성을 보존하기 위해서 범사에 힘을 모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그 진리로 무장된 머리와 함께 사랑의 가슴으로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성도로 자라가야 할 줄 믿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기억할 것은 진리 위에 사랑을 실천할 때 반드시 댓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시간의 댓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물질의 댓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수고의 댓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감사한 것은 이런 댓가를 지불하시면서 은밀하게 행동하시는 여러분들이 있는 줄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라는 것은 더욱 그런 증거들이 우리 교회 속에 많이 나타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두는 진리 안에서 사랑을 실천하도록 함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성도가 진리 안에서 사랑을 실천하는 것은 성도의 사명입니다. 사명은 해도 되고 안해도 되고의 문제가 아니라 반드시 해야 할 주님의 뜻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숙한 교회와 성숙한 교우들을 위해 먼저 주님을 믿고 아는 일에 더욱 힘을 쓰시기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