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통한다는 것은 인격적이라는 말입니다. 하느님과 모든 피조물은 인격적 관계입니다. 한 번 내뱉은 말 한 마디 때문에 우정이 깨어지기도 하고, 가정이 무너지기도 하며, 나라와 나라 사이에 전쟁이 발생하기도 하고, 역사가 바뀌기도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에 실수가 없는 자는 온전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하늘로부터 내려온 '생명의 빵'이 된다는 사실을 강조하셨습니다. 세상에 먹을 것만 찾아 헤매는 무리들에게 예수님은 당신이 생명을 얻게 하는 양식이 됨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들은 유다인들 가운데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어린 시절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을 업신여기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어떻게 촌스러운 목수의 아들이 메시아가 될 수 있단 말인가? 예수님의 외모만 보고 예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있습니다. 자신을 가리켜 '생명의 빵'이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유다인들의 반응은 예수님의 아버지 요셉이 목수였다는 사실과 그 집안 내력을 소상하게 다 알고 있는데 하늘로부터 내려왔다니, 한 마디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출신 배경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더 구체적으로 이들이 예수님을 우습게 여기고 수군거린 이유는 인간적이고 외적인 가치 기준을 가지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안에 있는 하느님의 신성을 보지 못했습니다.
오직 인간의 외모만 눈에 들어 왔습니다. 무엇보다도 나자렛이라는 작은 동네에서 목수일을 했던 요셉의 아들이라는 사실만 기억했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훌륭한 집안 출신이면 호감을 주고 좀 별 볼일 없는 집안 출신이며 쉽게 무시하는 것이 세상 풍조입니다. 여러분, 유다인들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복음의 메시지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오직 예수님의 출신 성분만 들먹거리고 있습니다. 세상적이고 외적인 가치 기준을 가지고 하느님의 일을 판단하려면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오직 인성적인 것만 보게 될 것입니다. 사무상16:7 "야훼께서 사무엘에게 용모나 신장을 보지 마라. 그는 이미 내 눈 밖에 났다. 하느님은 사람들처럼 보지 않는다. 사람들은 겉모양을 보지만 나 야훼는 속마음을 들여다 본다." 하셨습니다. 우리도 하느님 아버지처럼 사람의 중심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유다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는 들었는데 비판하기 위하여 들었습니다. 대화에서 상대방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그래서 상담학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이 상담하러 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태도입니다. 한 마디도 말하지 않고 상대방 이야기를 잘 들어주기만 해도 본인 스스로가 문제의 원인을 발견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듣는 것에는 몇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먼저 편견과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서는 상대방의 약점을 비판하고 공격하기 위해서 듣는 경우가 있습니다. 정치인들이 서로 논쟁을 벌일 때가 바로 이런 경우입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상대방의 잘못된 점을 발견해서 흠집을 내려고 듣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상대방에게 어떤 우월감을 지닌 채 마치 아버지가 자녀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과 같은 태도가 있습니다. 이 경우에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뭔가 지시를 내리고 훈계를 주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은 절대로 평등한 대화가 될 수 없습니다. 가슴과 가슴을 터놓고 하는 열린 대화가 될 수 없습니다. 무관심한 상태에서 건성으로 듣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저 지나가는 이야기 정도로 그냥 귀가 열려져 있으니 어쩔 수 없이 듣는다 하는 태도입니다. 이 역시 들어서 그 어떤 유익도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 무익한 청취로 끝나게 될 것입니다. 또 말할 기회를 갖지 못하니 억지로 들을 수밖에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무엇인가 배우고 이해하기 위한 경청이 있습니다. 가장 바람직한 들음이라 할 것입니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는 것은 무엇인가 나의 삶에 크게 유익이 되기 때문에 배우겠다는 겸손한 자세로 듣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상대방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하여 듣는다는 자세로 경청합니다. 바로 이렇게 듣는 것이 본인과 상대방을 위해서 가장 좋은 경청 방법입니다. 유다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비뚤어진 마음을 가지고 들었습니다. 비판하기 위해서 들었습니다. 어떤 인간적인 우월감을 가지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는 세상적인 것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건성으로 스쳐 들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들을 때 주님을 이해하고 배우기 위하여 들어야 하겠습니다. 나의 삶에 유익한 교훈을 얻기 위하여, 인격적인 변화를 얻기 위하여, 진지한 자세로 경청해야 할 것입니다.
요한6:45절을 기억하십시오. "예언서에 그들은 모두 하느님의 가르침을 받을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누구든지 아버지의 가르침을 듣고 배우는 사람은 나에게로 온다." 는 말씀 처럼우리 모두는 하느님 아버지의 가르침을 듣고 배운다는 자세로 주님께 나가야 합니다. 말씀의 결론은 예수님은 확실히 하느님으로부터 온 생명의 빵이라는 사실입니다. 유다인들이 인간적인 잣대로 예수님을 판단하고, 예수님 말씀을 제대로 듣지 못해서 오해했다고 할지라도 예수님은 분명히 하느님으로부터 왔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하느님으로부터 오셨기 때문에 예수님 자신 밖에는 하느님을 본 이가 없기 때문입니다(46절). 또한 유다인들의 조상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지만 다 죽었습니다. 그러나 하늘로부터 내려온 생명의 빵이신 예수님을 먹는 자마다 다 죽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될 것입니다(48-51절).
그 결과 생명의 빵이 되신 예수님을 믿는 자는 이미 그 안에 영원한 생명을 가졌습니다.
우리의 혀는 다른 사람을 축복할 수도 있고, 저주할 수도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축복의 말을 원하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말한대로 이루어 집니다.
축복의 말에는 사람의 인생을 바꾸어 놓을 수 있는 엄청난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민수6:27 “그들은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에게 내 이름으로 복을 빌어주면 내가 이 백성에게 복을 내리리라.”고 말씀하시며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이스라엘 자손을 이렇게 축복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비록 불순종과 불신앙을 보이며 못된 짓만 골라서 하는 백성들, 축복보다는 꾸중을 받아야 할 백성들이었지만, 그래도 하느님은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이스라엘 백성에게 축복하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말이 씨가 된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말한 것이 환경이 되어 버리고 말한 것이 현실로 나타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말대로 우리의 인생을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우리에게도 말의 권세를 주신 줄로 믿습니다. 따라서 칭찬의 말과 감사의 말과 축복의 말로 다른 사람들을 복되게 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