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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삼일절


내 살과 피를 마시라

작성일 : 2012-08-19       클릭 : 227     추천 : 0

작성자 안양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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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찬 예식의 빵과 포도주는 우리에게 영원한 예수님의 임재를 생각나게 해주는 거룩한 상징입니다. 예수님께서 티베리아 호수 건너편에서 복음을 전하실 때 많은 사람들이 예수께 몰려 왔는데, 이는 예수님께서 병자들에게 행하시는 표적을 보기 위함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을 광야에서 먹이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초자연적인 능력만이 가능한 일이었기에 예수님께서는 한 소년이 가져 온 보리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시는 표적을 베푸셨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목격한 군중들은 예수님을 찾아다녔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자신들의 현실적인 문제들을 해결하여 주실 분임을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유다 사회는 이방인에 의해 식민 통치를 받고 있었습니다. 정치, 경제적으로 심한 압박을 받고 있을 즈음에 예수님께서 오천 명을 먹이시는 기적을 보이시자 군중들은 예수님을 왕으로 삼으면 먹는 문제가 해결될 젓으로 믿고 예수님을 찾아온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성경이 증거한 메시야에 대한 왜곡된 생각이 있었습니다. 즉 메시야를 현세적인 복을 주는 존재로만 이해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사실을 아시고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영원히 살며 없어지지 않는 양식을 얻도록 힘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군중들은 예수님께 하느님의 일을 행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질문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이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곧 하느님의 일을 하는 것임을 말씀하시면서 자신을 믿으면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누린다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믿는 자에게 영원한 생명의 축복이 주어짐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은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빵이라고 말씀하시며, 사람의 아들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지 않으면 너희 안에 생명을 간직할 수 없다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조상들에게 주신 만나는 사람들이 먹고 육신의 생명만을 연장할 수 있었지만, 예수님 자신의 살을 먹으면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이것은 만나가 예수 그리스도를 대표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심은 성도들이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기념하는 성찬예식으로 그 의식이 세워졌고, 의미는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믿는 신앙의 고백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구속 사역을 믿는 자에게는 마지막 날에 부활의 영광을 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또한 자신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는 자와 항상 함께 하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빵이심을 말씀하시자 유다인들은 그 말씀에 대하여 의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물질적 빵'을 바라고 자신을 따르는 군중들에게 '하늘의 빵'을 믿음으로 먹을 것을 권고하신 주님은 그 빵에 대하여 설명하십니다.
기독교의 신앙이란 유다인의 의식적 차원이 아니라 우리에게 임재하시는 하느님의 '피와 살'에 참예하는 생명적인 차원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예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믿음이란 생명의 빵 예수를 '먹는 것'이라는 주님이 말씀입니다.
유대인들은 대부분 그 말씀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구약에서 예언된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나실 하느님의 사자인 '사람'(단7:13)을 기다렸지만 정작 성육신하신 하느님의 아들은 믿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불의한 인간이 거룩하신 하느님과 교제하는 것이 신앙이라면, 그 교제에는 조건이 있는데, 바로 '피의 제사'로서 죄를 속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속죄의 개념을 유다인은 성전의 동물 제사로 이행해 왔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내 피를 마시라'는 의미는 '너희가 갈망하던 그 속죄자가 바로 나다'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찬 예식에 참예했다고 해서 만족할 수는 없습니다. 신앙이란 나의 유일한 속죄자이신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에 매일 참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나의 불의한 옛사람은 주님의 죽으심과 함께 죽어 버렸고, 하느님의 의와 영광을 얻은 하느님의 자녀로 거듭난 사실을 늘 기억해야 합니다.
기독교 신앙은 윤리적 대상이나 모범을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내 삶에 들어오신 절대자 하느님의 요구에 생명을 걸고 응답하면서 헌신 하는 것이 기독교 신앙의 본질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자신의 살과 피를 내어주셨습니다. 젊은 나이에, 30대 초반에 그렇게 하셨습니다. 나를 얼마나 사랑하셨으면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 죽으시면서 까지 나를 사랑하셨는가? 오늘 우리 성찬예식은 그런 마음의 믿음의 기초를 가지고 받으심으로 주님의 말씀으로 영원히 주님이 내 몸과 마음에 흔적으로 남아있을 수 있는 거룩한 예식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들은 하느님의 사랑을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반면 주님께서 아버지 하나님께 충성하며 사신 것처럼 우리들도 생명을 바쳐 '죽도록 충성'(계 2:10)하며 살아야 합니다. 이 사명은 율법적 선행과 지식으로는 얻을 수 없습니다. 주님은 유다인들에게 율법의 생명보다, 그 생명의 근본이신 예수님 자신을 받아들이라고  권면하셨습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누릴 것이며  내가 마지막 날에 그를  살릴 것이다.(요 6:54)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영원히 살 것이다.”(요6:58절) 하셨습니다. 
오늘 현대인들이 신앙생활을 성실하게 하기가 여간 힘든 것이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오라는 사람은 없어도 사실 갈 데는 많고, 돈은 언제나 부족하다고 말하면서 써야할 데는 많습니다. 우리가 세상 쪽으로 조금만 눈을 돌리면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는 곳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오늘 교회가 주는 유익이나 혜택보다는 세상이 주는 매력이 더 화려하고 멋지고 커 보입니다. 바울로는 “여러분은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깊이 생각해서 미련한 자처럼 살지 말고 지혜롭게 살라”고 하셨습니다. “어떻게”라는 말은 “어떤 방식, 어떤 자세로”, “어떤 마음으로”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오늘을 살아가면서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갈 것인지를 생각하고 확정해야 합니다. “처신.”은 오늘 하루를 살아도 어떤 자세로, 어떤 마음가짐으로 하루를 살아가느냐 하는 것을 깊이 생각하고 주의하라는 말씀입니다. 성경에는 세상이 요구하는 대로 살아가는 것은 어리석은 인생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목표지향적인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오늘 우리 자신을 한 단계 끌어올리고 하느님의 말씀으로 무장해야만 합니다. 오늘 설교를 잘 들어야 할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나라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설교하는 내 자신 역시 선포하면서 듣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느님 앞에 서야 할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위해 준비하라고 보냄을 받은 하느님의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이해하려고 힘써야 합니다. 이해한다는 말은 깨닫는다는 말입니다. 들음으로 받아들인다는 말입니다. 듣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주님이 기뻐하시는 뜻, 무엇이 더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는 선택이 될 수 있는지, 묵상하고 기도하고, 성령으로 말씀을 깨달아야 합니다. 여러분, 생각한다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기도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세상에 고통이 따르지 않는데, 어떻게 귀한 열매를 얻을 수 있습니까?
여러분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십시오. 성령에 취해 성시와 찬송가와 영가를 소리 높여 불러 봅시다. 오늘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입니까? 바울로는 지혜로운 인생을 살아가라고 하십니다. 세월을 아끼라고 하십니다. 때가 악합니다.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이해하십시오.
그리고 성령의 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모든 일에 언제나 예수님의 이름으로 살아야 합니다. 세상에서 충실한 사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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