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을 믿고 새 사람된 하느님의 자녀들에게는 경건함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 여기에 함께 모여서 예배드리는 저와 여러분들도 보면 예수를 믿기 이전과 비교해서 삶에 큰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우리 속에는 미성숙한 부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오늘 우리들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사도 야고보가 생활하던 초대교회도 완전히 변화되지 못한 성숙하지 못한 삶의 문제가 있었습니다. 삶의 경건이 실천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런 문제를 다룰 때 중요한 것은 이런 문제의 어려움을 쉬쉬하면서 속으로 숨기지 않고 솔직하게 받아들이면서 삶으로 실천하기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사람들은 잘 듣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보통 보면 말을 잘 듣는 사람이 말을 잘 합니다. 믿음의 사람은 하느님이 주신 귀로 하느님의 말씀을 잘 듣습니다. 왜냐하면 믿음은 들음에서 거듭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귀있는 자는 들어라”고 하시면서 “듣는자가 복있는 사람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시간도 하느님의 말씀이 들리고 있습니까? 사실 듣는 다는 것이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가 들을 때 단지 귀로만 듣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으로 듣습니다. 생각으로 듣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마음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이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 시간 하느님이 내게 말씀하시는 것을 잘 들으려면 내 생각을 접고, 들으려고 하는 마음을 모아야 합니다.
하느님의 사람, 즉 지혜로운 사람은 하느님의 말씀을 아멘하면서 듣습니다. 아멘이란 “그렇습니다. 동의합니다.”의미입니다. 시대마다 부흥이 일어났던 때의 한결같은 증거가 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잘 들으시기 바랍니다. 먼저 교회에서 성도들의 모습은 말씀을 먼저 듣는 자리를 갖기 바랍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말을 먼저 들으십시오. 경건한 사람은 남의 말을 잘 들을 줄 아는 사람입니다.
남의 말을 잘 듣는 사람들은 “공감”하면서 듣습니다. 슬픈 말은 함께 슬퍼하면서 듣고, 기쁜 말은 함께 기뻐하면서 듣습니다. 아픔과 고통의 말은 함께 아파하면서 말을 듣습니다.
경건한 사람은 듣기는 빨리하고 말하기는 더디하는 사람입니다. 왜 말을 더디하라고 하는 것입니까? 보통 말을 빨리 하는 사람들을 보면 성격이 급한 사람입니다. 성격이 급한 사람은 보통 분노도 빨리 합니다. 이렇게 해서 말을 빨리하면 실수를 많이 하기 때문입니다.
야고보 역시 ‘말하기를 더디하며 여간해서는 화를 내지 말라’고 합니다. 급한 분노에 의해서 실수할 말들을 막 쏱아놓고 난 뒤에 후회한 경험들이 있을 것입니다. 특별히 교회생활에서 우리가 말의 실수와 상처로 인해서 공동체가 하나되지 못하고 지체들끼리 연합하지 못하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성경은 ‘화를 내는 사람은 하느님의 정의를 이룰 수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실례로 모세를 통해서 볼 수 있습니다. 출애굽 이후 광야 생활을 하던 중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물이 없다고 모세를 원망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모세와 다투게 됩니다(민수 20장).
모세가 얼마나 상처가 되겠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만 목이 마르고 힘이 든 것이 아닙니다. 모세는 더 힘이 들고 더 마음고생이 많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모세를 향해서 명령하십니다. ‘회중을 모아라. 바위에게 물을 내라고 명령하여라. 모세는 분부대로 행하고 바위에서 물이 나옵니다.’
이 일로 하느님께서는 모세와 아론에게 꾸중하십니다. “너희는 나를 믿지 못하여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내 영광을 드러내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너희는 내가 이 회중에게 줄 땅으로 그들을 인도하여 들이지 못한다.” 하셨습니다.
하느님의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감정에 매이지 않고 그 감정을 믿음으로 다스릴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말에 덕을 세울 수 있는 사람입니다.
이 후로 여러분들이 만나는 사람마다 말로 힘을 주고 격려와 덕을 세우는 한 주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실 사람들의 마음에 적당한 욕심이 있어야 합니다. 욕심이라는 말을 긍정적으로 사용하면 욕구입니다. 우리에게는 먹고 싶은 욕구가 있고, 자고 싶은 욕구, 명예의 욕구, 지식의 욕구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자연스러운 욕구가 도를 넘어서 욕구를 탐하게 될 때 문제가 됩니다.
삶의 욕구가 신앙적 열심으로 바뀌어지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믿음 생활을 하면서 우리는 많이 알고 깨닫는 것을 힘써야 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내적인 힘을 키워야 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많이 깨달을수록 마음은 단순해집니다.
우리들 신앙에서의 문제는 마음이 단순하지 않고 마음에 무언가 가득차있어서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마음에 세상욕망들이 가득 차 있으면 그 힘이 우리 삶의 방향을 결정짓습니다.
야고보는 ‘자기 자신을 지켜 세속에 물들지 말라’고 합니다. 우리가 살고있는 세상은 분명히 부패한 세상입니다. 어두운 세상입니다. 사도 바울로 역시 로마12:2 “여러분은 이 세상을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하여 새 사람이 되십시오.”라고 말합니다.
이 말씀은 곧 세상에 물들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본받고 가까이하고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서 정결하게 살기 위해서는 먼저 사명감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들에게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하셨습니다. 부패한 세상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소금같은 역할을 해야 합니다. 또한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하셨습니다. 어두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들은 빛을 비추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그리고 오늘 우리들을 향해서 “너희는 가서 이 세상 모든 사람을 내 제자로 삼으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세상에 있는 것은 주님의 뜻이요 사명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주님께서 말씀하신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요 빛이다.’라고 하는 사명을 갖으시기 바랍니다. 소금의 사명이 있는 사람은 가는 곳마다 부패한 곳이 정결하게 됩니다. 빛의 사명이 있는 사람은 가는 곳마다 어두운 곳이 밝아지는 역사가 있습니다. 그런데 소금과 빛이 맛을 내고 빛을 발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희생되어야 합니다.
십자가의 주님이 우리에게 감동을 주시는 것은 바로 생명을 내주시면서 희생하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지는 것이 이기는 것입니다. 누가 질 수 있습니까? 정말 강한 사람만이 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정결하게 거룩하게 무장되어서 세상에서 멋있게 희생할 수 있는 삶으로 날마다 세워져가시기를 바랍니다.
복음의 능력으로 죄에서 구원받은 우리들은 이제 더 이상 과거의 잘못된 습관에 매여서 살면 안됩니다. 이제는 새로운 말로 살아야 합니다. 이제는 받는 사람에서 주는 사람으로, 나누는 삶으로 살아야 합니다. 이제는 세상에 정결함으로 영향력을 줄 수 있는 경건의 사람으로 살아가면서 주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가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