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와 신앙 / 생활묵상
설교 말씀
자유 게시판
교회 사진첩
한줄 나눔
교회 소식 / 공지사항
가족 소개
자료실
성서 이어쓰기

[3-1] 삼일절


복음의 능력은 진실함입니다.

작성일 : 2012-09-08       클릭 : 202     추천 : 0

작성자 안양교회  
첨부파일
우리는 누구나 마음속에 죄책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 시로페니키아 여인도 어린 딸이 악령에 들린 것에 대해 마음이 아프다 못해 죄책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질병에 걸린 것을 자신의 죄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욥도 자신의 육신이 병들고 고통받는 것을 자신의 죄 때문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또한 어떤 사람은 자신의 외모 때문에 죄책감과 열등감을 느낍니다. 그러나 성경적으로나 신앙적으로 외모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과연 외모를 보셨을까요?삶의 여러가지 죄책감과 열등감이 우리를 얽어 매고 다른 사람과 담을 쌓게 만들고 있으며, 그 결과 나를 나답지 못하게 만듭니다. 우리는 자신의 문제도 아닌 가족의 문제, 주변의 문제를 나의 문제로 생각하고 자신의 인생을 당당하게 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죄책감과 열등감에 사로 잡혀 있는 우리들을 향해 주님은 “나에게 오라!”고 초청하십니다. 죄책감에 빠져 있는 우리들이 예수님께 나아갈 때 도리어 능력이 됩니다. 죄책감에 빠져있는 모든 사람들을 예수님은 회복시키시고 치유하여 주십니다. 죄책감을 숨기는 것은 율법으로 때리시지만 도리어 죄책감을 고백하면 회복시키기고 능력을 주십니다. 522장은 예수님이 회복시켜 주심을 노래하고 있습니다.하느님이 상한 심령을 치유하십니다. 요한 8장 간음하다 잡힌 여인에게 예수님은 죽이라는 군중들의 외침에도 오히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없는 사람이 먼저 돌로 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여인에게 나도 “네 죄를 묻지 않겠다. 어서 돌아가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은 이같이 죄책감 가지고 있는 사람은 정죄 하지 않으시고 회복시키십니다. 자신의 죄를 은폐할 때는 죄책감만 느낍니다. 은혜만 말하는 것은 복음을 반쪽만 말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죄로 번민하고 있는 여인에게 필요한 것은 은혜입니다. 그러나 죄가 뭔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정죄입니다. 우리가 은혜 받지 못하는 이유는 스스로 의인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상한 심령 그대로 예수님께 나아갔습니다.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뿌리고 머리털로 닦았습니다. 여자가 상한 심령 그대로 나왔을 때 예수님은 받으시고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이 여인의 의로운 행위가 전파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배도 상한 심령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시로페니키아 여인의 심령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러한 상한 심령에게 하느님은 은혜를 부어 주십니다. 주님의 은혜가 회복되면 의가 회복됩니다.  많은 사람은 의를 옳고 그름으로 오해합니다. 그러나  의의 의미는 회복된 관계를 말합니다. 그리고 하느님과 나와의 관계에 있어 회복되는 길은 십자가 밖에 없습니다. 종들의 특징은  충성, 헌신했다는 것으로 주인에게 인정을 받으려 합니다. 그러나 자녀의 특징은 당당함입니다. 우리는 십일조, 주일성수하는 것으로 의롭다 인정 받으려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는 종의 태도와 같습니다. 행위로 인정 받으려는 종과 같다는 말입니다. “이제 종노릇 그만하고 하느님의 자녀가 되라!”고 사도 바울로 역시 로마서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깨진 심령으로 하느님께 나오면 은혜를 맛봅니다. 은혜를 맛보면 하느님과의 관계가 회복됩니다. 의는 관계의 회복임에도 불구하고 밤낮 자기 행위로 의를 얻으려 하는 종의 모습 되어서는 안됩니다. 두려움은 종의 영성을 말합니다. 누구든지 시로페니키아 여인처럼 예수님께 나오면, 예수님은 회복시키시고 치유하시며 은혜를 부어 주십니다. 그러면 의가 회복됩니다. 그 의는 관계의 회복을 말합니다. 그 관계에서는 기쁨이 있고 하느님의 자녀로서의 당당함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시로페니키아 여인에게 가르쳐 주시려고 한 것은 진짜 의가 무엇인지, 그리고 자녀의 영성을 가르쳐 준 것입니다. “너는 강아지가 아닌 하느님의 자녀다. 그러므로 자녀로서 당당함을 가지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도 시로페니키아 여인과 같이 죄와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지는않습니까?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에게 다가 오셔서 손을 잡으시며 “너희는 나의 자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뒤 예수님께서는 데카폴리스 지방을 거쳐 갈릴래아로 오셨습니다. 그 때 사람들이 귀먹은 반벙어리 예수께 데려오자 고쳐주십니다. 고치실 때 손가락을 귓속에 넣고 침을 발라 그의 혀에 대시며 고치셨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풀린다.’ ‘열린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에파다” 했을 때 귀가 열리고 혀가 풀려 말을 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 만났을 때 육체의 맺혀있는 것이 풀린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단지 육체뿐이겠습니까? 이사야 6장에서 이사야가 “제가 여기 있지않습니까? 저를 보내십시오.” 했을 때 하느님은 “너는 가서 이 백성에게 일러라. 듣기는 들어라. 그러나 깨닫지는 마라. 보기는 보아라. 그러나 알지는 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영적인 닫힘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영적인 닫힘도 예수님을 만나면 열리게 됩니다. 하느님은 다양한 방법으로 일하십니다. 사도행전 10장에서 하느님은 베드로에게 환상을 보여 주셨습니다. 하느님은 환상 중에 베드로에게 나타나 속되고 더러운 음식을 먹어라 하였습니다. 이에 베드로가 “절대로 안됩니다. 주님 저는 일찍이 속된 것이나 더러운 것은 한 번도 입에 대 본적이 없습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러자 하느님께서는 “하느님께서 깨끗하게 만드신 것을 속되다고 하지 마라”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도 이런 모습 아닙니까? 선입견 가지고 내 생각과 다르면 하느님이 틀렸다 말하지는 않습니까? 우리는 예수님이 안수기도를 통해 병고쳐 주는 것을 기대합니다. 그러나 말씀에는 안수기도가 아닌 생각하기에 더러운 방법으로 병을 고치셨습니다. 성공하고 은혜 받은 자의 약점은 자기 방식대로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느님께서는 어떤 방법으로든 사용할 수 있다는 열린 마음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선입견 가지고 병고칠 때는 안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발상을 바꾸어야 합니다. 엎드리는 방법, 새로운 방법 생각해야 합니다. 공식에서 벗어나십시오. 사무엘처럼 "야훼여, 말씀하십시오. 종이 듣고 있습니다."라는 열린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죤 웨슬레가 사역 할 때 영국교회는 교회 밖에서는 설교를 선포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웨슬레는 이태껏 교회에서 설교하던 관념을 벗어나 직접 광산으로 가서 설교하자 많은 광산 노동자들이 회심하였고 큰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생명은 교류하고 교제가 가능한 것입니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생명 주실 때 씨를 주십니다. 그래서 그 씨가 싹을 튀어 꽂 피우기 원하십니다. 요한12:24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아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말씀합니다. 왜 그럴까요? 썪지 않으면 한 알 밖에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닫혀 있기 때문입니다. 썪는다는 것은 연다는 것입니다. 꽃 피우고 열매 맺음으로써 교류가 가능합니다. 인생을 꽃 피우며 살아가십시오! 하느님이 주신 모든 가능성을 가지고 마음껏 누리십시오. 그러기 위해서는 열려야 합니다. 각 사람마다 약점 있습니다. 그런데 그 약점을 바울로처럼 자랑해야 진정한 자유 누릴 수 있습니다. 안양교회도 여러 가지 큰 사역을 안고 있습니다. 그러나 새벽성찬례 기도를 통해 더 풍성히 은혜를 누리고 있다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주님은 이 시간 ”에파타” 하실 때 우리들의 닫혀있는 마음이 열리기 원하십니다. 그런데 이 병자를 고치신 후에 이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그럴수록 예수님의 소문은 더 멀리 전파되셨습니다. 예수님이 소문을 금하신 이유는 기독교가 과시와 선전을 통해서 전파 되는 것 원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진실함 만이 전파의 지름길입니다. 요즈음 요란한 교회만 부흥하는 것이 아닙니다. 차분하고 경건한 교회에도 많은 성도들이 모입니다. 진실한 교회가 더 부흥합니다. 1요한 3:18 “사랑하는 자녀들이여. 우리는 말로나 혀 끝으로 사랑하지 말고 행동으로 진실하게 사랑합시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복음의 능력은 진실함입니다. 우리 모두 진실한 복음의 능력을 입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느님께 진실함으로 나아갑시다.


덧글쓰기  

광고성 글이나, 허위사실 유포, 비방글은 사전 동의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

이전글 거룩한 입술이 되게 하소서 안양교회 09-15 217
다음글 내 말을 새겨들어라! 안양교회 09-01 221


 

교회소개 | 오시는길 | 개인정보 보호정책 | 이용안내
대한성공회 서울교구 안양교회    담당사제 : 윤병학   주소 : 경기도 안양시 동안구 동편로 92번길 50    개인정보관리책임 : 윤병학
전화 : 031-423-84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