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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삼일절


서로 다투는 제자들

작성일 : 2012-09-22       클릭 : 152     추천 : 0

작성자 안양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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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보통 동상이몽이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오늘 복음 말씀을 보면 동상이몽이라는 말이 생각이 납니다. 예수님의 관심사와 제자들의 관심사가 너무 다릅니다. 예수님의 관심사는 “제자들을 가르치시며 또 사람의 아들이 사람들의 손에 넘어가 죽었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 날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예수님의 관심은 죽음과 부활에 집중돼 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의 관심사는 어떻습니까. “가파르나움에 이르자 예수께서는 집에 들어가시자 제자들에게 ”길에서 무슨 일로 다투었느냐?“하고 물으셨습니다. 제자들은 길에서 누가 제일 높은 사람이냐 하는 문제로 서로 다투었기 때문에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였습니다.”
제자들의 관심사는 ‘누가 제일 높으냐’ 거기에 관심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관심사와 제자들의 관심사가 전혀 달랐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왜 이런 마음을 품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마르9:1 “예수께서 또 말씀하셨다. 나는 분명히 말한다. 여기 서 있는 사람들 중에 죽기 전에 하느님의 나라가 권능을 떨치며 오는 것을 볼 사람도 있다.”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나라가 권능을 떨치며 오는 것을 볼 사람도 있다.’고 했을 때 제자들은 받아들이기를 ‘이 땅에서 예수님이 왕이 되는 구나!’ 그들의 가슴을 사로잡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에 무슨 얘기가 나오든지 귀에 들어오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왕이 되었을 때 나는 과연 어느 자리를 차지할 것인가. 이게 마음을 가득 사로잡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주님을 위해서 무엇을 충성하고 하느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지 하는 마음 보다는 성경말씀 몇 구절 읽고 난 다음에 그것을 통해서 나의 삶이 형통한 일만 있기를 바라는 잘 못 생각하는 동상이몽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믿음이라는 게 뭡니까. 예수님의 마음을 품는 것입니다. 믿음이 좋아진다는 건 자기 자신의 야망을 버리고, 예수님이 무엇을 좋아하시는지! 예수님이 무엇을 기뻐하시는지! 예수님이 추구하는 바가 무엇인지! 그것을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움직여 나가는 것입니다. 다시말해서 예수님의 심정을 이해하는 것이 믿음이 좋은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대로 움직이는 것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교회가 좋은 교회라 그랬습니까. 아버지의 뜻을 알고 아버지의 뜻대로 움직이는 교회 그게 제일 좋은 교회입니다.
교회에다가 성도라고 바꾸면 좋은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고 아버지의 뜻대로 움직이는 성도.’ 그게 가장 ‘좋은 성도가 될 수 있다.’ 라는 것입니다.
탕자의 비유를 볼 때 첫째 아들의 결정적인 문제가 무엇이었습니까. 그가 어떤 행동을 했느냐 안했느냐 그것보다 아버지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거 아닌가요? 아버지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면 아무리 아버지의 옆에 있다 할찌라도 건강한 자아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자아를 예수님 마음으로 바꾸시기 바랍니다. 예수님 마음을 우리 가슴속에 채우게 되면. 건강한 하느님 자녀가 될 것입니다. 자아가 굳어지고 병들지 않도록 예수님의 가르침을 들으십시오. 그러면 우리의 심령이 부드러워지고 건강해지는 은혜의 역사가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권력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 일상에서 밀접한 부분입니다. 정치인들만 권력에 갈등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일반시민들도 일상생활에서 가지고 있는 것이지요. 부부싸움도 알고 보면 주도권 다툼, 일종의 권력의 갈등 때문에 비롯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이런 문제는 늘 일어나기 마련입니다. 성공회는 직분에 대한 권력 때문에 갈등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개신교의 교회 직분중에 장로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은 열심으로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돈을 쓰거나 수고로운 일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오늘 주님께서 주신 말씀은 군중에게 주신 교훈이 아니라 주님을 닮기 원하고, 주님의 길을 따르기 원하는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그런데 정작 제자들의 관심은 "누가 제일 높으냐?"라고 하는 것에 있었습니다. 소위 서열에 관한 것입니다.
12명밖에 안 되는 제자들이 서로 서열을 정하는데 얼굴을 붉히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도 얼굴을 붉히는 일은 없어야 할 것입니다.  아마 서열을 정하려고 12명 중에서 예수님의 특별한 부름을 받았던 베드로, 야고보, 요한 같은 사람은 "그래도 우리는 예수님의 사랑과 인정을 받고 있다는 점에서 너희들 보다 높다"라는 말을 하지 않았을까요?
그런 말에 자존심이 상한 다른 제자들이 반격을 했을 것입니다. 12명이 이런 저런 이야기로 자기의 위치를 확보하려다 보니까 토론이 아니라 비난과 비판, 그리고 다툼이 되었겠지요.
제자들에게 주님께서 "무슨 일로 다투었느냐?"라고 표현을 쓴 것 보면 건설적인 비판의 자리가 아니라 서로 깎아내리고 내가 너보다는 높은 서열에 있어야 한다는 의식들을 서로가 갖고 있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서열이라고 하는 부분, 우리는 이것을 '병'이라고 할 수 있어요. 섬김을 받는 자리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깁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을 향해서 "첫째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꼴찌가 되어 모든 사람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다음 어린이 하나를 데려다가 그들 앞에 세우시고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이 하나를 받아들이면 곧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고, 또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나만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곧 나를 보내신 이를 받아들이는 것이다."하셨습니다. 야고4:10 "주님 앞에서 스스로 낮추십시오. 그러면 주님께서 여러분을 높여주실 것입니다."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낮아질 때 우리를 주님이 높여주십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삶의 자리에서 반드시 첫째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 첫째가 되는 비결이 있습니다. 주님 앞에서 스스로 낮추십시오.
어린이라고 하는 이미지가 무엇인가요? 왜 주님께서 어린이를 데려다가 첫째가 되기를 원하는 제자들 앞에 비유를 하셨습니까? 어린이는 이해관계에 이끌리지 않습니다. 어린이는 순수하다는 말입니다. 이기심에 의해서 행동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주님의 일을 하셔도 그것이 이기심에 의한 것이라면 이해득실을 따져서 나온 행동의 결과라면 그것은 첫째가 될 수 없는 일입니다.
이해관계를 따지는 사회에서는 첫째가 될 수 없습니다. 적어도 주님께서 인정하시는 첫째가 될 수 없습니다. 이해관계를 넘어 진정한 성도의 섬김, 제자의 삶이 시작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본받기를 원하는 것이 우리 성도의 최고의 목표입니다. 주님을 본받는다고 하는 것, 그것은 섬김의 정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직분은 섬김의 직분입니다. 그래서 일반 교우들 보다 교회 직분을 맡으신 여러분들은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좀 더 섬기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을 향해서 주시는 오늘 복음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교우 여러분들의 삶 속에 진정으로 누가 제일 높으냐가 아니라 주님께서 우리를 높여주실 때 진정으로 우리가 하느님의 인정하심 속에 머리가 되는 사람임을 믿고, 섬김에 있어서 첫째가 되는 성도의 삶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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