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는 응답받기 위해 하는 것입니다. 응답이 없다면 기도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고 응답이 없다면 그것은 혼자만의 넉두리에 불과합니다. 갈멜산에서 바알과 아세라의 선지자들은 아침부터 정오까지 부르짖었습니다. 그러나 응답이 없었습니다. 바알은 신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는 하느님은 살아계신 분입니다. 우리의 기도를 듣고 응답하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살아계신 하느님께 기도해도 응답을 못받을 때가 있습니다. 성경은 믿음으로 기도하면 응답받는다고 말합니다. 또 모든 기도는 믿음으로 해야합니다. 믿음으로 기도하면 다 응답받아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믿음으로 기도해도 응답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믿음이 부족해서 그럴까요? 우리는 기도해도 응답을 받지 못하면 믿음으로 기도하지 않았거나 믿음이 부족해서 그렇다고 스스로 판단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바울로의 경우를 보면 기도응답에 예외가 있음을 알게 됩니다. 첫째는 예수님의 경우입니다.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죽음의 잔을 거두어 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소서” 기도하셨습니다. 쉽게 말해서 십자가에 죽음을 벗어나게 해달라는 것이 기도입니다. 그러나 ‘내 뜻대로가 아니라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라고’ 기도하셨지만 주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기도는 할 수 만 있으면 십자가를 피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기도를 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오셔서 말씀하셨습니다. "아직도 자고 있느냐? 자 때가 왔다. 사람의 아들이 죄인들 손에 넘어가게 되었다. 일어나 가자. 나를 넘겨줄 자가 가까이 와 있다." 하셨습니다.
이것은 주님이 원하는 대로 응답을 받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주님께서 받은 기도응답은 십자가를 지셔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만일 주님이 자기가 원하는대로 기도응답을 받으셨다면 주님을 파는 자가 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주님은 분명 원하는대로 응답을 받지 못하셨습니다. 기도를 잘못해서 그러셨을까요? 성경에는 주님이 기도를 하실 때 ‘땅에 엎드려 기도하셨다.’고 말합니다. 루가복음 22:42절 관주를 보면 주님이 그 기도를 하실 때 ‘마음의 고통과 싸우면서도 굽히지 않고 더욱 열렬하게 기도하셨다. 그러는 동안 핏방울 같은 땀이 뚝뚝 흘러 땅에 떨어졌다.’고 말합니다. 이정도면 기도를 잘못하셨다고 말 할 수 없지 않습니까? 누가 이렇게 기도하겠습니까? 예수님께서 믿음이 없어서 그랬을까요? 믿음으로 기도하지 않아서 원하는 대로 기도응답을 못받았을까요? 히브 5:7 "예수께서는 인간으로 이 세상에 계실 때에 당신을 죽음에서 구해 주실 수 있는 분에게 큰 소리와 눈물로 기도하고 간구하셨고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경외하는 마음을 보시고 그 간구를 들어주셨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하느님이 자기를 죽음에서 구원하실 수 있는 분이라고 믿었습니다. 하느님은 능히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지 않게 하실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믿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느님께 기도할때 통곡과 눈물로 기도하고 간구하셨습니다. 그러나 그가 원하는 대로는 응답을 받지 못하셨습니다. 하느님은 ‘죽음의 잔’을 예수님에게서 거두시지 않았습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을 경외하는 마음을 보시고 그 간구를 들어주셨다는 말씀은 십자가에 죽지 않아도 된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히려 십자가에 죽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주님은 그렇게 기도해서 십자가에 죽어야한다는 응답을 받은 것입니다. 하느님이 능력이 없어서 예수님을 죽지 않게 못하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믿음이 없어서 응답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를 거두는 것은 하느님의 뜻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죽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었기 때문에 예수님이 구하는대로 하느님은 응답지 않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죽으셔야 우리가 구원받기 때문에 하느님이 응답지 않으신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하느님은 예수님의 기도를 응답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죽음후의 부활을 약속하시므로 예수님의 마음에 위안과 확신을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자 때가 왔다. 사람의 아들이 죄인들 손에 넘어가게 되었다. 일어나 가자. 나를 넘겨줄 자가 가까이 와 있다.’ 하신 것입니다. 그것은 죽음을 앞둔 예수님의 절망적인 말이 아니라 승리와 희망이 담긴 말입니다. 믿음으로 기도하고 정성을 다해 기도해도 원하는대로 응답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것은 내 믿음이 부족하거나 정성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하느님의 뜻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도할 때도 주님의 뜻이냐 이것을 먼저 물어야 하는 것입니다. 내 뜻대로만 구하였다가 응답되지 않으면 실망하지 않게 됩니다. 둘째 사도 바울로의 예를 봅니다. 바울로에게는 하느님이 주신 육체의 가시가 있었습니다. 바울로는 이것이 자기에게서 떠나기 위하여 세번씩이나 주께 간구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가시는 그대로 있었습니다. 하느님이 그대로 두셨습니다.
귀신들린 아이를 제자들은 고치지 못하였습니다. 예수님이 그 아이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셨습니다. 그리고 집에 들어가서 우리는 어찌하여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습니까? 하고 물을 때 '너희 믿음이 적은 연고라'하셨습니다. 바울로가 믿음이 없어서 육체의 가시가 그대로 있습니까? 믿음으로 기도하지 않아서 그런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느님이 바울로에게 주신 게 너무 많아서 그것마저 없어지면 바울로가 교만해질까봐 하느님이 남겨주신 것입니다. 사람은 무엇이든지 구하는대로 다 얻으면 교만해집니다. 고난이 조금은 있어야 겸손해 지려는 시늉이라도 냅니다. 바울로는 여러가지 은사와 능력을 하느님께 받은게 있어서 육체의 가시라도 없으면 하느님이 된 것처럼 행동할지 모릅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바울로를 신처럼 여길지도 모릅니다. 바울로가 리스트라에서 앉은뱅이를 고쳐주었을 때 "저 사람들은 사람 모양을 하고 우리에게 내려온 신들이다." 하고 짐승들을 가져와 제사를 하려고 하지 않았습니까? (행14:8-18) 고통이 좀 있어야 바울로 자신도 ,나는 어쩔수 없이 연약한 사람이구나' 하는 것을 인식하고, 다른 사람들도 바울로가 고생하는걸 알아야 '바울로도 역시 우리와 같은 사람이었구나'하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가시를 그냥 두신 것은 정말 은혜 중에 은혜입니다. 피차를 망하지 않게 하는 하느님의 안전핀입니다. 이것이 뽑혀지면 망하는 것입니다. 자기 뜻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이 사람에게 안전핀을 두십니다. 이것은 고통일수도 있고 실패일수도 있습니다. 이런게 있어야 기도하게 되고 매달리고 겸손해져서 하느님을 바라봅니다. 하느님이 나를 위해 안전핀을 두신 것을 우리는 어리석게도 치워달라고 합니다. 이것 때문에 뭘 못하겠다고 불평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은혜입니다. 여러분은 기도해서 응답을 받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체험도 생기고 담대해 집니다. 자신감을 얻게 됩니다. 내가 기도한대로 응답받지 못했어도, 내뜻과는 정반대로 응답을 하셨어도 예수님처럼 흔쾌히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일 수 있는 성숙한 신앙인이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 응답을 받고 못 받고를 단순히 우리의 입장에서 판단하지 말고 하느님의 뜻에 촛점을 맞추어 생각하는 성숙함이 있기를 바랍니다. 내 뜻은 십자가를 피하는 것이었는데 하느님의 뜻은 십자가를 지는 것이었구나 이렇게 생각하는 믿음이 있기를 바랍니다. "불의한 자는 그 가던 길을 돌이켜라. 허영에 들뜬 자는 생각을 고쳐라. 야훼께 돌아오너라. 자비롭게 맞아주시리라. 우리의 하느님께 돌아오너라. 너그럽게 용서해 주리라.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같지 않다. 나의 길은 너희 길과 같지 않다. 야훼의 말씀이시다."(사55: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