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하느님 나라를 세우시기 위하여 왕으로 오셨습니다. 빌라도가 예수님을 불러서 제일 먼저 물어본 말은 “네가 유다인의 왕인가?” 빌라도가 이 질문을 한 것은 대사제들과 원로들과 율법학자들이 고발한 죄목에 따라 유다국가를 세울 왕이냐고 물은 것입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는 판결을 한 사람입니다. 실제로 빌라도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냐? 거기에는 여러 가지 다른 의견이 있습니다. 빌라도가 예수님을 십자가 고난의 길을 가게 한 사람이라는 오명을 가졌지만, 실제로는 빌라도는 재판 중에 예수님이 무죄하다는 것을 알았고 나름대로 예수님을 살려보려고 애를 썼던 사람입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을 보고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를 어떻게든 살려보려고 모든 수단을 다 썼습니다. 유다 명절이 되면, 로마 총독의 권한으로 죄수 한 사람을 살려줄 수 있는 전례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살려주는 것이 어떠냐고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사제들에게 제안을 했습니다. 그러나 유다인들은 차라리 바라빠라는 강도를 살려달라고 소리침으로 무산되었습니다. 빌라도로서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입니다. 요한19:12 “빌라도는 예수를 놓아 줄 기회를 찾기 시작하였다.” 그러면 빌라도는 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것입니까? 이유는 하나입니다. 빌라도의 정치적인 야망 때문입니다. 빌라도는 유다 총독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더 큰 정치적 야망이 있었습니다. 그는 앞으로 더 넓은 지역을 담당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가 예수를 놓아주려고 했을 때, 무리들이 "이 사람을 놓으면 카이사르의 충신이 아닙니다. 만일 그 자를 놓아준다면 총독님은 카이사르의 충신이 아닙니다.”라고 소리쳤을 때, 이 말은 그 어떤 말보다 빌라도에게 충격을 주었습니다. 지금 자신은 어떻게 하든지 황제 카이사르에게 충성스러운 신하라고 하는 인정을 받아야 할 형편인데, 자신이 반역하는 일에 동참을 했다고 하는 말은 감당할 수가 없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정치적 야망을 포기하면서까지 예수님을 살려줄 마음은 없었습니다. 과연 빌라도는 잘한 것일까요? 그는 자기의 정치적인 야망을 위해서 또 세상의 성공을 위해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받도록 내어 줍니다. 진리를 외면했습니다. 이것이 잘한 일일까요? 만약에 빌라도가 그들의 불의한 요구에 굴복하지 않고 당당하게 예수님을 풀어주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마 유다인들은 다른 방법으로 예수님을 죽였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하느님께서 정하신 뜻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빌라도는 반역자를 살려주었다는 모함 때문에 파면을 당했을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빌라도는 역사에 남은 영원한 의인으로 기록되었을 것입니다. 지금 빌라도의 형편을 생각하면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빌라도 자신은 몰랐지만 그 인생의 가장 긴급했던 상황에 처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재판을 받으려고 빌라도 앞에 서셨습니다. 그러나 엄밀히 보면 빌라도가 예수님 앞에서 재판을 받는 순간이었습니다. 빌라도 생애에 가장 중요한 순간을 꼽으라면 바로 이 날 이 순간이었습니다.
빌라도의 운명이 바뀌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는 영원히 사느냐 영원히 죽느냐 하는 운명이 바뀌는 순간이었는데 자신이 그 자리에 있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그는 생명의 주님이면서 동시에 심판주이신 예수님을 만난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빌라도는 세상 욕심 때문에 진리에 대하여 눈이 멀어있었습니다. 진리이신 예수님을 보고도 전혀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2고린“그들이 믿지 않은 것은 이 세상의 악신이 그들의 마음을 어둡게 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형상이신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복음의 빛을 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빌라도는 진리 그 자체이신 예수님에게 “진리가 무엇이냐?”고 질문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진리를 증거하러 왔다”고 말씀하실 때 불쑥 던진 질문입니다. 그 순간이 빌라도에게는 정말 중요한 순간이었습니다. 영적으로 대단히 긴박한 상황이 벌어지는 때였습니다. 그러나 빌라도는 진리에 대하여 물었지만, 진리에 대해 듣고 싶은 마음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질문을 던지고는 유다인들을 만나러 나가 버렸습니다. 그의 마음 안에 진리에 대한 갈망이 없었다는 증거입니다. 그 까닭에 진리와 영생이신 예수님과의 만남이 그에게 무서운 저주의 순간이 되었던 것입니다. 진리를 그저 호기심 정도로만 여겼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것은 그대로 우리의 문제입니다. 우리 안에 진짜 진리에 대한 열망, 영생에 대한 갈망이 있습니까? 만약에 우리가 진리에 대하여 분명히 알지 못하고, 영생을 준비하지 못한 상태에서 이 세상에서 잘 되는 것이 오히려 화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단순히 자녀들이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세상에서 성공하고 출세하기를 원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람들로부터 성공하였다고, 출세했다고 축하를 받을 수는 있습니다.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영생을 얻지 못한 채, 존귀한 자리에 앉는 것은 정말 두려운 일입니다. 시49:20 “사람은 제아무리 영화를 누려도 잠깐 살다 죽고 마는 짐승과 같다.” 빌라도가 영화를 누리는 자리에 있었지만 진리를 깨닫지 못했다면 죽고 마는 짐승과 같다는 것입니다. 빌라도가 차라리 총독이 아니고, 사형 언도를 내릴 수 있는 재판권을 가진 사람이 아니었다면, 아마 빌라도는 이런 저주를 받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영적으로 준비된 사람입니까? 여러분, 빌라도만 아니라 우리도 ‘죽느냐 사느냐?’ 하는 긴급한 상황에 처할 때가 있습니다. 진리를 갈망하는 마음으로 영적으로 깨어있지 하지 못하면 그러한 순간이 영원히 무너지는 순간이 됩니다. 그러므로 항상 진리이신 예수님을 갈망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요한복음에서 말하는 진리는, 우리 모두가 영원히 멸망할 죄인이라는 것과 하느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님을 우리에게 구주로 보내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님을 통하여 구원을 받으며 하느님께 나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요한14:6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거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이 진리에 굳게 서고, 진리이신 예수님을 갈망하는 사람은 복있는 사람입니다. 그는 어떤 긴박한 상황에서도 주님의 인도를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만나게 되는 순간은 어느 누구에게나 인생의 최대 사건입니다. 가장 긴박한 순간입니다. 어린 나이에 부모님을 따라 교회에 나간 날이 예수님을 만난 날이 될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준비되어 있습니까? 언제 어떻게 주님이 우리를 찾아오실 지 모릅니다. 예수님께서 여러분을 찾아오십니다. 어느 순간에 여러분 앞에 오십니다. 주님에 대한 갈망을 가진 사람은 예수님을 만납니다. 우리가 정말 주님을 갈망하는 마음이 있을 때 주님이 우리에게 오십니다. 너무나 평범하게 지나갈 것 같은 모든 순간들이 주님이 우리를 만나주시는 순간임을 깨닫게 됩니다. 성찬예식은 예수님을 만나는 복을 주시는 시간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살을 먹고 예수님의 피를 마시면서 예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고 내 안에 계신 것을 나로 알게 하신 시간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마음에 세상 걱정과 근심, 또는 세상 성공을 향한 욕심을 두고 있다면 주님이 여러분을 찾아오시는 순간을 놓져버리게 됩니다. 오히려 그런 일에서 여러분은 말할 수 없는 영적인 침체를 경험하고 심지어 빌라도와 같이 버림받은 자가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주님의 십자가를 붙잡읍시다. 인격적으로 예수님을 만나십시오. 우리의 생명이시고 주님이신 예수님, 우리에게 역사해 주시고. 우리의 눈을 뜨게 해주시고. 우리 모두와 함께 계시는 주님을 바라 볼 수 있게 되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