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금기시 하는 말이 있습니다. 죽음이란 말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숫자 4도 의도적으로 피하려고 합니다. 건물에 대개 4층은 없고, 5층 아니면 F층이라고 합니다. 4호도 잘 없습니다. 다 부질없는 짓인데도 굳이 왜 그렇게 합니까? 숫자 4와 한자의 죽을 사(死)자와 음이 같기 때문입니다.
이건 미신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런 것으로부터 자유할 수 있어 좋습니다. 그런게 아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은 오직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창조하시고, 이 땅에 보내신 분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 땅에 사는 동안 크고 작은 어려움들을 만나게 됩니다. 개인적으로뿐만 아니라 가정이나 사회나 민족의 고통을 겪기도 합니다. 분명히 하느님의 보냄을 받았고 사명을 가진 존재로 태어났는데도 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도 그랬습니다. 그들은 특별한 민족이었습니다. 하느님이 만민 중에서 구별하셨고, 택함을 받았습니다. 말씀을 받았습니다. 성전을 가졌습니다. 제사장 나라가 된 것입니다. 그들이 하기에 따라 열방이 축복을 받을 수도 있고, 고통을 받을 수도 있는 역사의 열쇠와 같은 민족이 된 것입니다.
그들이 하느님의 뜻대로 살고,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는, 자기들만 복 받은 것이 아닙니다. 그 주위에 있는 나라들이 함께 복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할 때는 자기들만 고통을 겪은 것이 아니라 이웃나라들도 함께 고통을 받았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사람의 아들이 와서 하느님의 심판을 선언하셨습니다. 비극은 예루살렘이 함락되고 성전이 무너진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이방인에게 밟히게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겪는 모든 고통에는 다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무의미한 고통은 없습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느님의 어떤 섭리가 있습니다. 성경은 과학책이 아니지만 성경의 내용이 과학으로 증명되고 있습니다. 분명한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천지창조에 말씀으로 참여하셨던 예수님이 그날에 이뤄질 일을 말씀하셨기에 충분히 믿을만합니다. 그분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동시에 존재하시는 분입니다. 그분에게는 항상 현재만 있습니다. 베드로는 그걸 깨닫고 이렇게 권면했습니다. 2베드3:8 “이 한 가지를 잊지 마십시오. 주님께서는 천 년이 하루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습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에 먼저 하늘의 징조가 언급됩니다. 하늘의 징조가 구체적으로 묘사되고, 다음 땅의 징조가 언급됩니다. 사람이 이 땅에서 사는 동안 꼭 그 정도는 아닐지 몰라도 무서운 일들을 접하게 됩니다.
여러분은 어떤 것을 두려워하십니까? 무엇을 무서워하십니까? 죽는 것 자체를 무서워한다면 여러분은 이상한 그리스도인입니다. 구원의 확신이 있는지를 물어봐야 하고 영생을 소유했는지를 확인해봐야 합니다. 우리가 무서워해야 할 것은 죽음이 아니라 영적인 삶을 살아가는데 장애가 되는 생활 전반입니다.
그것은 큰 것일 수도 있지만 아주 작은 것일 수도 있습니다. 아니 어쩌면 작은 것이 더 문제입니다. 여러분이 영적인 삶을 살아가는데 가장 문제가 되는 것도 습관일 겁니다. 게으른 습관, 나태한 습관, 미루는 습관, 포기하는 습관, 과소비하는 습관, 과식하는 습관, 잠자는 습관, 그 외에도 많겠지요? 여러분에게는 어떤 습관이 가장 문제가 됩니까?
예수님은 재림을 공개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일부 사람을 제외하고 아무도 모르게 이루어졌던 초림과는 달리 재림은 믿는 자는 물론이고 그를 대적했던 자들까지 다 볼 수 있도록 공개적으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재림하시는 주님이 어디에 오실지에 대한 논란은 무가치합니다. 어디에 오셔도 상관없습니다. 문제는 재림하시는 주님을 맞을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다시 오시는 주님을 영접할 준비를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만일 우리가 죽기 전에 주님을 뵌다면 그 때 우리가 어디 있었느냐가 중요합니다. 만일 우리가 살아있을 때 주님이 오시지 않는다면 우리가 어디서 무얼 하다가 죽느냐도 중요합니다.
자다가 깨어나지 않는 것도 좋지만 이왕이면 기도하다가 죽든지, 성경 읽다가 죽는 것이 더 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한 번 죽습니다. 본인의 뜻대로는 안 되겠지만 은혜로운 죽음을 위해서 기도해야겠습니다. 살아있을 때 전도 많이 못했으면 죽을 때에라도 전도해야 합니다.
무화과나무의 비유는 자연현상을 보고 때를 분별할 수 있듯이 종말의 때도 징조를 보면 분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루가21:31절을 보면 종말이 가까웠으니 깨어있으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흥청대며 먹고 마시는 일과 쓸데 없는 세상 걱정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그 날이 갑자기 닥쳐올지도 모른다. 조심하여라.”하고 스스로 조심할 것을 권면하십니다.
주님은 분명히 스스로 조심하라고 하십니다. 누가 조심시켜 주는 것이 아닙니다. 스스로 삼가고 스스로 절제하는 것입니다. 유다서 1:18-19 “마지막 때에 하느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기들의 욕정을 따라 사는 자들이 나타나 여러분을 조롱할 것이라고 사도들이 여러분에게 말했습니다. 이런 자들은 성령을 따라 살지 않고 본능적인 욕정을 쫓아서 살면서 분열을 일으킵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 이런 사람들이 전혀 없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요? 혹 전에 실수했다가 철저히 회개하고 돌아섰다면 문제되지 않겠지만 아직도 끊지 못하고 있다면 약간이라도 미련을 갖고 있다면 돌아서야 합니다. 특히 경건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어떻게든 해결해야 합니다.
교회를 다녀도 생활의 걱정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 생활의 걱정이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여도 걱정은 마음을 둔하게 만들고, 주님께 집중하지 못하게 합니다. 신앙의 열매도 맺혀지지 않습니다. 1베드 5:7 “여러분의 온갖 근신 걱정을 송두리째 하느님께 맡기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여러분을 돌보십니다.”
주님은 전혀 예기치도 않았던 날에 다시 오십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평소가 중요합니다. 평상시에 어떻게 신앙생활하느냐가 중요합니다. 보통 때 육신의 일에 마음을 빼앗기고, 그 영혼이 잠들어 있던 자가 주님이 재림하실 때 정신을 바짝 차리고, 주님을 맞을 수 있을 것 같습니까? 그건 요행을 바라는 것입니다. 평상시에 영적인 일에 관심을 쏟고 평소에 영혼이 깨어 있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앞으로 닥쳐 올 이 모든 일을 피하여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도록 늘 깨어 기도하여라.” 우리가 장차 올 그 모든 일을 피하고 주님 앞에 서기 위해서는 늘 기도하며 깨어있는 방법 밖에 없습니다. 늘 기도하고 깨어 있는 자에게는 뜻밖에 그날이 덫처럼 임하지 못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 때 가서 잘 믿으려고 하면 늦습니다. 지금 잘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때 가서 기도하려고 하면 늦습니다. 늘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 때 가서 깨어 있으려고 하면 늦습니다. 늘 깨어 있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다시 오십니다. 우리는 살아서 주님을 만날 수도 있고, 죽음 이후에 천국에서 만날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한 번은 주님을 만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주님을 만날 준비를 하셔야 합니다. 그 날이 언제일지 모르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 날 주님과의 행복한 만남을 꿈꾸며, 오늘도 주님과 행복한 동행을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