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란 본의 아니게 잘못한 것을 의미합니다. 가볍게 넘어갈 수 있는 실수도 있지만 때로는 사람의 생명과 직결되는 중대한 실수를 범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올 해 여러분은 얼마나 실수 하셨습니까?
복음 말씀에 보면 전통에 따라 소년 예수는 12세가 되는 해의 유월절에 부모님과 함께 예루살렘을 방문하였습니다. 눅2:43절에 보면 “그런데 명절의 기간이 다 끝나 집으로 돌아올 때에 어린 예수는 예루살렘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런데 명절 행사가 다 끝나고 집으로 돌아갈 때에 요셉과 마리아는 어린 예수가 다른 친척들과 함께 뒤 따라 오고있는 줄 알고 열심히 하룻길을 갔습니다. 가다가 찾아보니 예수는 동행중에 없었습니다. 예수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오늘날의 신자들도 이런 실수를 합니다. 예수를 잃어버리는 실수 말입니다. 혹시 예수를 잃어버린 사람 없습니까? 요셉과 마리아는 다른 친척들과 함께 당연히 자신들의 뒤를 따라오려니 했습니다. 그리고 평안하게 길을 갔습니다. 우리들은 살면서 평안함을 추구하려는 본능이 있습니다. 될 수 있으면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될 수 있으면 그것이 영적으로 아무리 유익하다해도 모험 같은 것은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러면서도 예수가 자동적으로 자기와 함께 하려니....하고 평안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1데살5:3절에서 “사람들이 태평세월을 노래하고 있을 때에 갑자기 멸망이 그들에게 들이닥칠것입니다.” 라고 경고합니다. 신앙생활에서 현실에 안주하려는 것은 예수를 잃어버리게 합니다. 교회 다니고 있고, 종교 생활을 착실히 하고 있으니까 당연히 예수는 나와 함께 동행하고 있겠지.. 라고 안심하고 착각하지 마십시오. 성경은 “나 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것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간다.”고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힘들어도 예수님을 모시고 살아야 합니다. 귀찮아도 예수님과 함께 걸어야 합니다. 예수가 함께 따라 오는지 안 오는지 중간에 한번만 살폈어도 잃어버리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루 종일 잊고 있다가 동행중에 있겠지 하고 무관심했다가 저녁에 찾아보니 없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에 대한 관심을 얼마나 가지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대화의 내용에 예수 이야기가 얼마나 등장합니까? 여러분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모든 일에 얼마나 예수님 생각과 뜻을 반영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까? 예수님도 믿는 사람들의 무관심에 대해 지적하셨습니다. 마25:41-46절에 보면 심판 날에 왼편에 있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내가 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지 않았고,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지 않았으며, 나그네 되었을 때에 따뜻하게 맞이하지 않았고,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지 않았으며, 또 병들었을 때나 감옥에 갇혔을 때에 돌보아 주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에 대한 무관심은 주님을 위해서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귀찮은 일로 여깁니다. 바쁘다고 피곤하다고 외면합니다. 남도 하지 않는데 핑계됩니다. 때로는 열심히 일해 놓고 좋은 소리 듣지도 못합니다. 그러나 주님에 대해 관심이 있는 사람은 일합니다. 사실, 아까운 시간을 그냥 흘려보내는 것은 큰 죄입니다. 성도는 자기중심적인 시간이 아니고, 예수 중심적인 시간관을 가진 자들입니다. 예수께로 부터 맡은 사명적인 의무를 다해야 합니다. 무관심은 죄입니다. 그리고 예수를 잃어버리게 하는 결정적인 요인이 됩니다. 예수와 그의 뜻에 관심을 가집시다. 마리아와 요셉은 예수를 잃어버리고도 하루 동안 몰랐습니다. 함께 동행하고 있는 줄로 믿었습니다. 그러나 그 믿음 깨지고 맙니다. 하루 동안이었기에 망정이지 더 오랜 시간 몰랐다면 어찌 되었을까요? 오늘날의 사람들 중에도 믿음을 잃고도 잃은 줄을 모르는 사람 들이 있습니다. 기도를 잃고도 잃은 줄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열심을 잃고도 잃은 줄 모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분명히 문제가 있는데 무슨 문제인지 모르는 것이 가장 답답한 문제인 것처럼, 잃어버리고도 잃어버린 줄 모르는 것이 가장 큰 실수라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하지 않으면서 예수는 항상 자기와 함께 한다고 믿고 있는 분들있습니다. 함께 하시는 것은 주님 편에서 하실일이지 우리는 예수 잘 믿는 일에 더욱 열심을 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예수를 잘 믿어 볼 수 있을까 염려하고 고민하고 잠 못자는 밤이 있었습니까? 실험실 개구리이야기를 아실 것입니다. 개구리를 미지근한 물에 집어넣었습니다. 개구리는 뛰어나오지 않았습니다. 밑에서 불을 땠습니다. 온도가 20도 쯤되었습니다. 개구리는 따스함에 기분이 좋았습니다. 계속 불을 땠습니다. 30도가 되고 40도가 되었습니다. 점점 온도는 높아져 60도가 되고 80도가 되어도 개구리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결국 천천히 데워진 물은 개구리의 몸에 뜨거움에 대항하는 내성을 일으켰습니다. 나중에 물이 끊어 다 익어도 뜨거운 줄 모르고 물에 있다가 죽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에도 이런 부정적이 면역성이 있습니다. 은혜받은 처음에는 기도하지 않으면 큰일 나는 줄 압니다. 봉사하고 싶은 사명이 생깁니다. 교회를 위해 충성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불충성하면 큰일 나는 줄 압니다. 은혜 받는 자리라면 부지런히 좇아다닙니다.
그런데 어느 때 부터인가 영적인 내성이 생겼습니다. 그렇게 열성스럽게 안 해도 괜찮더라는 거지요. 적당히 믿어도 별 손해 없더라는 것입니다. 영적 독성이 자라기 시작하면 이미 영적으로 죽은 것입니다. 혹시 예수를 잃어버리고도 모르는 지금 자신과 함께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예수가 보이지 않자 요셉과 마리아는 예루살렘으로 예수를 찾아갑니다. 아이를 잃어버린 마리아와 요셉의 마음이 얼마나 탔겠습니까? 그들은 정신없이 예수를 찾았습니다.
사흘이나 걸렸다고 한 것을 보아서 사람이 많은 예루살렘 거리를 헤메고 다닌 것이 분명합니다. 성경은 사흘 만에 성전에서 예수를 찾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는 성전에 있엇던 것입니다. 오늘날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실수를 범하며 살아갑니다. 모두가 다 하느님을 잃어버렸습니다. 에덴동산 낙원을 잃어버렸습니다. 인간이 진정으로 누려야 할 행복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잃어버린 것 조차 모르고 살아갑니다. 그저 그러려니 하고 말입니다. 잃어버린 줄 모르니 어찌 찾아나서겠습니까? 살면서 문뜩 자기 삶의 저리에서 무엇인가 잃었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무엇인가 잃어버린 그것을 찾기 위한 노력을 시도합니다. 물질에서 찾으려고 합니다. 명예에서 찾으려고 합니다. 권력과 권세에서 찾으려고 합니다. 자식에게서 찾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잃어버린 예수는 길에도 없었습니다. 예루살렘거리에도 없었습니다. 잃어버린 예수는 성전에 있었습니다. 그는 성전에 계십니다. 예수를 찾읍시다. 요2:21절에 보면 성전은 예수님의 몸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이 표적을 보여달라고 했습니다. 그 때 주님은 예루살렘 성전을 가리키면서 “이 성전을 허물어라.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라고 요2:19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에 대해서 유대인들은 이해를 못했지만 요2:21절에 보면 “예수께서 성전이라 하신 것은 당신의 몸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다.”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전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그리스도의 육체입니다. 그는 지금도 십자가에 계십니다. 성도들은 예수를 어디에서 찾습니까? 가련한 인생들을 위해 고난 당하신 십자가에서 찾아야합니다.
십자가는 상징적인 것이 아닙니다. 성도들의 삶이 되어야 합니다. 성도들은 예수님을 고난의 현장에서 찾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계신 십자가가 바로 고난의 현장이 성전이기 때문입니다. 성전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공간적으로는 구별된 곳, 교회입니다. 그리스도의 거룩한 몸으로서의 교회입니다. 성도들이 교회에 모일 때 주님을 찾습니다. 교회의 모임에 열심히 참여하고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사람이 예수를 잃어버리는 실수를 하지 않습니다. 영적인 의미로는 성도들의 몸입니다. 구약 시대는 보이는 건물 성전 시대입니다. 신약시대는 예수님 몸이 성전이었습니다. 초대교회시대에는 신자들의 몸이 성전입니다. 바울은 1고린3:16 절에서 “여러분은 자신이 하느님의 성전이며 하느님의 성령께서 자기 안에 살아계시다는 것을 모르십니까?” 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성령이 거하는 성전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예수를 어디에서 찾아야 합니까? 성도들의 몸에서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성도의 몸에서 찾는 다는 것은 바로 성도들의 행실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불신자들에게 성경이 되어야 합니다.
불신자들은 예수를 성경에서 찾으려고 하지 않고 성도들의 몸에서 찾으려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몸을 통해 예수를 나타내지 못하는 이유는 철저히 예수 그리스도에게 헌신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찾읍시다. 여러분의 몸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찾으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잃어버린 삶은 하느님 안에 모든 것이 다 있다고 할지라도 아무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잃어버리는 데는 하루 밖에 안 걸리지만 되찾는데는 사흘이 걸렸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 만큼 잃기는 쉬워도 찾기는 힘들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오늘 내가 과연 예수를 잃어버리지 않았는가?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면서 하루 하루의 삶에서 예수를 잃어버리는 실수를 범하지 않는 삶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